[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 실감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 실감
  • 설재원(본지 에디터)
  • 승인 2019.03.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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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Sheol
ⓒJaewon Sheol

2월 7일, 베를린국제영화제Berlinale Film Festival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 드골공항에서 이른 아침 7시 5분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다. 1시간 30분만에 도착한 베를린 테겔공항에는 베를린국제영화제를 알리는 대형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매년 2월이 되면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전 세계 영화인들의 축제가 된다. 올해로 69회째를 맞이한 베를린국제영화제는 1951년 6월, 독일 서베를린 시장 빌리브란트가 세계의 평화와 화합을 지향하면서 창설한 국제영화제이다. 유럽에서 개최되는 영화제 중 그 성격이 가장 정치적이며, 격조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호텔에 짐을 풀고 영화제가 열리는 포츠담 광장으로 향했다. 동·서 베를린이 나뉘는 지점에 위치한 일대는 1989년 11월 9일 무너진 베를린 장벽이 마치 설치미술품처럼 광장을 지키며, 오가는 행인들의 이목을 끈다.
프레스센터가 있는 포츠담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도착하자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세계 각지에서 온 취재진들로 붐볐다. 프레스센터에서 나는 미리 신청한 아이디카드를 받았다.

개막식에서 여전히 미모를 뽐내는 줄리엣 비노쉬
개막작 <The Kindness of Strangers>
개막식 레드카펫의 최고 화제는 프랑스 배우 줄리엣 비노쉬였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 자격으로 영화제에 참석한 그녀는 시종일관 여유롭고 부드러운 미소로 취재진에게 화답했다. 누드톤 블랙 테이핑 디자인의 세련된 드레스는 그의 품격 있는 미모와 잘 어울렸다. 줄리엣 비노쉬는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칸영화제, 베니스영화제,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석권한 배우로 국내에서는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개막작은 로네 셰르피 감독의 <더 카인드니스 오브 스트레인저스The Kindness of Strangers>가 선정됐다. 개막 영화 스크리닝에는 로네 셰르피 감독을 비롯한 오스트리아 배우 프란지스카 웨이즈가 참석해 포즈를 취했다.
<아름다운 날들Their Finest>(2016)의 감독 로네 셰르피가 연출하고 조 카잔, 타하르 하림,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칼렙 랜드리 존스, 제이 바루첼, 빌 나이가 출연하는 이 영화는 뉴욕의 러시안 레스토랑 '겨울 궁전'을 배경으로 한 현대판 드라마로, 배우의 연기력은 물론 우아한 영상미와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폭력적인 경찰 남편으로부터 두 아들을 데리고 도망친 클라라(조 카잔)는 도착하자마자 뉴욕의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사실상 빈털터리 신세의 클라라에게 자비를 베푸는 이들이 있었으니, 갈 곳 없는 클라라에게 침대를 제공한 간호사 앨리스(안드레아 라이즈보로)와 '겨울 궁전'에서 일하는 전과자 출신 마크(타하르 라힘)이다. 클라라는 '겨울 궁전' 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따스함을 느낀다.
이처럼 감독 로네 셰리프는 클라라를 통해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행동을 탐구하고 있으며, 예리한 시선으로 도시에서의 가혹한 삶을 묘사하는 동시에 제목처럼 낯선 이들의 친절함과 우정을 함께 그려내고 있다. 개막 다음날 한 번 더 관람하였는데, 전날 보지 못한 영화 곳곳에 깃들은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 콘텐츠판다 / 엣나인필름
ⓒ 콘텐츠판다 / 엣나인필름

베를린에서 만난 한국영화의 힘
<우상>은 예매 시작하자마자 매진 행렬

개막작을 포함한 17편의 경쟁부문 초청작 등 400여 편이 7일부터 17일까지 포츠담을 비롯한 베를린 일대에서 상영되었다. 올해 초청된 한국영화는 김태용 감독의 <꼭두 이야기>(제너레이션 섹션), 장률 감독의 <후쿠오카>(포럼), 김보라 감독의 <벌새>(제너레이션 14+), 이수진 감독의 <우상>(파노라마), 임권택 감독의 <짝코>(클래식) 등 5편이었다. 또, 2016년 영화 <스파 나잇>으로 선댄스 영화제 특별심사위원상을 수상했던 한인 감독 앤드류 안의 <드라이브 웨이Driveways>가 베를린 영화제 제너레이션 섹션에 진출했다. 한국영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하듯 영화 <우상>은 티켓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영어제목 ‘Idol’보다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표기한 ‘Woosang’으로 불리우며 인기를 끌었다.
베를린영화제 5일째인 11일 밤에는 베를린에 위치한 주독일한국문화원에서 영화진흥위원회와 주독일한국문화원(원장 권세훈)이 공동주최한 ‘한국영화의 밤(Korean Film Night)’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는 이번 영화제에 초청된 한국 영화들을 소개하고,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를 조명하는 자리이다. 장률 감독, 김보라 감독, 임재원 국립국악원 원장, 배우 박상주, 이하경, 박지후, 김새벽, 이승연을 비롯한 카를로 샤트리안 차기 베를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르베라 베니스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영화계 주요인사들이 참석해 날로 성장해가는 한국영화의 힘을 실감하게 했다.
오석근 위원장은 “베를린국제영화제를 계기로 국내외 영화인들의 교류가 활성화되길 바라며 한국을 비롯해 더욱 많은 아시아의 영화들이 유럽에서 조명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한 15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열린 한국영화 100년 기념 학술행사에는 북측 영화인 3명도 참석해 남북 영화교류 방안을 모색했다.

ⓒJaewon Sh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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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너님스>가 황금곰상, <벌새>가 제너레이션 포틴 플러스(14+) 그랑프리 수상
열흘 동안 경쟁부문에 총 17편의 작품이 올라 경합을 벌인 가운데 황금곰상은 프랑스와 독일, 이스라엘이 공동제작한 영화 <시너님스Synonyms>에게 돌아갔다.
<시너님스>는 이스라엘 전직 군인이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라피드 감독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단지 가혹하거나 급진적인 정치적 서사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며 “인간적이고, 실존적이며 예술적인 방향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또 은곰상인 감독상은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바이 더 그레이스 오브 갓By the Grace of God>이,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은 <소 롱 마이 선So Long My Son>에 출연한 중국 배우 왕징춘과 용 메이가 각각 수상했다.
한국영화들은 아쉽게도 경쟁부문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비경쟁부문에 5편의 영화가 초청돼 저마다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며 시선을 끌었다. 김보라 감독의 독립영화 <벌새>는 청소년 영화들을 모은 제너레이션 포틴 플러스(14+)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으며, 설경구 천우희 주연의 <우상>은 레드카펫과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서 주연 배우들이 참석해 그 열기를 더했다. 상영이 끝난 뒤에는 객석에서 약 5분간의 기립박수가 쏟아지는 등 해외 영화인들의 진심어린 응원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또한 색다른 한국문화를 선보인 김태용 감독의 <꼭두 이야기>, 일본 후쿠오카의 한 술집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장률 감독의 <후쿠오카>, 최근 디지털 복원된 임권택 감독의 <짝코> 등 한국영화에 대한 인기도 기대 이상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2015년, 처음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나는 밤늦게까지 무리해가면서 영화를 관람하고 포럼, 특별전 등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당시에도 매진을 보였던 <국제시장>(윤제균 감독)의 인기를 잊을 수 없지만, 4년이 지난 올해는 한국인과 한국영화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고 할 만큼 사소한 곳에서부터 한국영화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Jaewon Sh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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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 평등’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베를린영화제
‘Berlinale Talents - Kill Your Darling’에 참여

‘양성 평등’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 개막식을 비롯해 European Film Market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는데, 'Berlinale Talents - Kill Your darling'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Berlinale Talents'는 현직에서 왕성하게 활동중인 실무자를 초청하여 진행하는 마스터클래스 프로그램으로, 나는 Susan Korda 편집감독이 진행한 ‘Kill Your Darling’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그녀는 편집자들이 흔히 반복하는 실수들을 이야기하며 자신만의 편집 원칙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죠스> 영화 클립을 함께 보며 포인트를 집어내는 그녀의 족집게 강의는 자리를 가득 메운 젊은 영화인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그녀는 피드백 스크리닝을 통해 재미없고 지루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는 애정어린 조언과 함께 프로그램을 마쳤다.
베를린국제영화제는 예술성 짙은 작품이 주로 출품되며 수상도 한다. 또한 베를린이라는 대도시에서 개최하기 때문에 칸영화제에 비해 장소, 숙박, 교통편 등이 원활하며 일반인도 저렴한 비용으로 참관할 수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쿨투라 독자라면 한번 참관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2020년 2월 20일 개최될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는 또 어떠한 주제로 기획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쿨투라》 2019년 3월호(통권 5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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