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투라 객석] 콜로라투라 손가슬, ‘나이팅게일’을 노래하다
[쿨투라 객석] 콜로라투라 손가슬, ‘나이팅게일’을 노래하다
  • 박영민(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18.12.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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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비평가들에 의해 ‘부드럽고 크리스탈 같은 청아한 고음’, ‘불꽃 같은 무대 위의 장악력’이라는 호평을 받은 소프라노 손가슬의 독창회가 지난 11월 7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연세에서 열렸다. 피아노는 빈 국립 음대 교수로 세계적 가곡 반주자인 찰스 스펜서Charles Spencer가 맡았다.
소프라노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천상의 소리 같다는 느낌이 든다. 소프라노 중에서도 절대 고음을 내는 ‘콜로라투라coloratura’는 이탈리아어로 ‘색채가 있다’는 뜻이다. 여성 소프라노에서 가장 화려한 고음과 고난도의 가창을 기술적으로 구사하는 창법이다. 즉 타고난 음역을 연마하여 화려한 비르투오조와 고음이 의미하는 감정의 극치를 표현 할 수 있는, 어쩌면 체조선수와 비슷한 유연함과 체력 또한 요구되는 영역이다.
피아노 중앙의 기본음 ‘도’보다 두 옥타브 높은 도 이상의 음들에서 자유롭게 표현해내는 콜로라투라의 최고음은 1300헤르츠 이상으로 일반 여성이 낼 수 있는 400헤르츠보다 3배 이상 높다. 그리하여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 이상을 구현해내기에 그 절정기교에 관객들은 경이로움을 느낀다.
조수미가 대표적인 콜로라투라이며 명성을 잇는 콜로라투라로는 미국에서 활동 중인 캐슬린 김과 유럽에서 존재감을 과시해온 손가슬이 있다.

손가슬, 그녀의 이름은 일반 대중들에게는 좀 생소하다. 그녀는 서울대 성악과 재학 시절 동아콩쿨에 입상했으며 졸업 후 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악대학 성악과,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음악대학 솔로 성악과 및 오페라과 대학원 과정,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에서 리트·오라토리오 마스트과를 졸업하였다.
23세에 세계적인 지휘자 Yakov Kreizberg의 지휘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렛따 역으로 스페인 빼렐라다 페스티발에 초청되어 데뷔했다. 이후 독일 바이커스하임 오페라 페스티벌, 동튀링엔 국립극장, 코블렌쯔 극장과 프랑스 오뜨 노르망디 루앙 극장, 오스트리아 빈 무직페라인, 벨기에 왕립 발로니 오페라극장, 알덴 비젠 페스티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헤이그 극장 등 많은 오페라 무대에 섰다.
그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고난이도 테크닉을 요구하는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의 체르비네따,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의 블론데에서부터 벨칸토의 정수를 보여주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루치아, <청교도>의 엘비라, <리골렛또>의 질다 역으로 공연했다.
특히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리골렛또> 공연에서는 “성층권과 같은 풍부한 울림과 탄탄한 테크닉, 그에 버금가는 연기력, 그리고 유연하고 빛나는 고음으로 관중의 심장을 정복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찰스 스펜서, Mya Besselink 교수를 사사한 손가슬은 국내에서도 임헌정, 전승현, 김우경 등 세계적 연주자들과 예술의전당 기획공연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을 연기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울예고, 예원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그녀는 이번 독창회에서도 영롱한 색깔의 비르투오조뿐만 아니라 출산 후 한층 풍부해지고 따뜻해진 소리와 깊이 있는 음악적 해석으로 객석의 감성을 뒤흔들었다.
막이 시작되자 고아한 청색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슈베르트의 <Der Hirt auf dem Felsen, 바위 위의 목동>을 불렀다. 연주시간이 12분에 달하는 이 곡은 슈베르트의 생애 마지막 해인 1828년 10월에 소프라노, 피아노, 클라리넷을 위한 큰 규모의 아리아 형태로 작곡된 가곡이다. 뮐러의 시 「겨울 나그네」에 붙인 서정적인 전반부는 연인을 그리는 목동의 그리움과 슬픔을, 극작가 세치의 시에 붙인 후반부는 다가오는 봄의 기운을 만끽하는 듯 한껏 즐겁고 경쾌한 표정을 짓는다. 김민이의 클라리넷 연주와 함께 들려주는 이 곡은 꼭 그녀를 위해 작곡된 곡처럼 느껴졌다.

인터미션intermission이 끝나고 노란 드레스의 그녀가 등장했다. 곡의 분위기에 딱 맞는 의상이었다.
레날도 안Reynaldo Hahn의 <라일락의 나이팅게일Le rossignol des Lilas>,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꾀꼬리에게An die Nachtigall>, 카를로스 구아스타비노Carlos Guastavino <장미와 버드나무La Rosa y el Sauce> 등 나이팅게일과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오스카 와일드의 「나이팅게일과 장미」에서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울다 자신을 희생한 나이팅게일처럼 따뜻하고도 청아하면서도 슬픔이 묻어나는 나이팅게일의 지저귐을 연상시켰다. 화려하면서도 깊이 있는 그녀의 목소리는 관객을 사로잡았다.
마지막으로 ‘역사상 가장 어려운 콜로라투라 아리아’라는 평을 받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의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Ariadne auf Naxos> 중 <고귀하신 공주님Großmachtige Prinzessin>을 들려주었다. 객석은 잠시 숨이 멎었다. 온몸을 전율케 하는 고음과 절정의 기교, 13분 가까이 이어지는 아리아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지속되는 극고음이 화려하게 공연장을 채우자 그 소리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높고 화려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진수를 그녀는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복잡다양한 관계와 사랑이야기를 털어놓는 쩨르비넷따라는 매력적인 역을 표현하는 데에 연극의 독백을 보는듯한 강렬한 감동을 받았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심금을 울리는 소리라고 하는구나!”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공연 후 만난 손가슬은 “세계적인 대가이신 나의 스승과 함께한 꿈꿔왔던 무대라 더욱더 가슴이 벅찹니다. 이 공연을 위해 오랜 기간 많은 준비와 연구를 하였기에 음악적으로도 새로운 지평이 열린 듯합니다. 찰스 선생님은 많은 이야기를 하시지 않지만 직접 음악으로 가르침을 주시죠. 이번 리허설 기간 동안은 더 많은 것들을 들을 수 있었고 제게 큰 영감을 주셨습니다. 그 모든 깨달음과 준비들이 무대에서 발현될 때 엄청난 쾌감을 느끼죠. 오늘 또한 최선을 다해 준비했기에 놀라운 선물 같은 순간들이 무대 위에서 일어난 듯 합니다.”
오페라의 감동을 최고의 음역에서 빛나게 끌어올리는 콜로라투라, 조수미, 신영옥 씨 등에 이어, 여기 또 한 명의 콜로라투라, 손가슬을 객석에서 만났다. 매혹적이고 청아한 그녀의 고음이 오래 여운으로 남았다.

 

 

* 《쿨투라》 2018년 12월호(통권 5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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