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Theme] 스낵 쿠커의, 스낵 쿠커에 의한, 스낵 쿠커를 위한 변론: 스낵 컬처를 만드는 사람들
[10월 Theme] 스낵 쿠커의, 스낵 쿠커에 의한, 스낵 쿠커를 위한 변론: 스낵 컬처를 만드는 사람들
  • 방유정 (드라마 작가)
  • 승인 2021.10.0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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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어는 봤나, 스낵! 스낵의 사전적 의미는 간단한 식사나 간식거리로, 그 대표주자는 단연 ‘심심풀이 땅콩’ 되시겠다. 심심하고 지루할 때 땅콩을 까먹는다는 이 문화적 맥락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통용된다. 심리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정서적 허기를 느낄 때 실제로 생물학적 배고픔을 느끼고 음식을 먹는 행위를 통해 심적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처럼 음식을 씹고 맛보는 행위와 정서 충족을 위한 콘텐츠 소비는 깊은 유사성을 드러내며, 근래 태동한 스낵 컬처(스낵+컬처)라는 신종 문화는 매우 자연스러운 발생이라 할 수 있다.

  스낵 컬처는 5~15분 내외에 소비되는 콘텐츠인데 마치 스낵을 먹듯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게 특장점이다. 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심적 배고픔을 느낄때마다 틈틈이 스낵 컬처를 소비하며 마음을 충전한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손쉽게 파악하고 선택할 수 있으며, 분량이 짧고 내용도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아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급등하는 수요에 힘입어 스낵 컬처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이런 시류에 발맞춰 창작자들은 본진인 방송, 문학 등의 전통적 시장에서 스낵 컬처 시장으로 대거 이동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수요와 공급 모두 확실한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것이다.

  이렇듯 현대사회에서 당당히 주류문화로 자리매김한 스낵 컬처는, 그러나 많은 이들의 오해와 무지 아래 발전성을 훼손당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바로 스낵 컬처는 보는 것만큼 만드는 것도 간편할 거라는,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스낵 컬처를 하나의 창작품으로 여기기보단 팔기 위해 마구 찍어내는 공산품에 가깝다고 여기는 대중들의 인식이다. 과거 예술계에서 키치가 클래식의 하류로 취급 받은 것과 같은 모양새다. 과연 스낵 컬처는 이런 취급을 받아야 마땅한 것일까? 그래서 준비했다. 일명 스낵 쿠커의, 스낵 쿠커에 의한, 스낵 쿠커를 위한 변론이다.

  [변론 1] “분량은 짧지만 고민은 길다.” - 웹드라마 작가 A씨 (29세, 여 )

  웹드라마는 대개 회당 10분 내외의, 10부작이에요. 총 시간으로 따지면 약 120분, 딱 TV드라마 2회분 혹은 영화 1편 분량인 거죠. 많은 사람들이 TV 드라마 2회분이나 영화 한 편을 12분 단위로 쪼개서 10부작을 만들면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그건 매우 나이브한, 심지어 무례하기까지한 오해예요. 마치 시인에게, 단편소설을 쪼개면 시가 10개쯤 나오지 않냐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거든요.

  웹드라마는 엄연히 TV 드라마나 영화와 별개의 콘텐츠입니다. 시와 소설이 다른 것만큼, 지구와 명왕성의 거리 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어요. 웹드라마는 TV 드라마나 영화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 이들에게 제공되기때문에 대본을 집필할 때 소재는 물론 플롯, 구성, 톤 앤 매너 등에서 전혀 새로운 시각이 필요해요. 분량이 짧은만큼 한층 더 정제된 호흡이 요구되는 거죠.

  한 가지 더. 스낵 컬처는 유입이 쉬운 만큼 이탈은 더 쉬워요. 음원 창작자들은 음원사이트의 미리 듣기 30초 안에 승부를 봐야 하니까 초반부에 영혼을 다 갈아넣는다고 하더군요. 저희 역시 초반 30초 내(후킹 포인트)에, 아니 대표 썸네일 한 컷에 총 원고 집필 만큼의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습니다.

  ‘짧지만 완전한’, 그것이 저희의 모토이자,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싶네요. 

  [변론 2] “무거운 것과 깊이있는 것은 다르다.” - 웹드라마 감독 B씨 (33세, 여)

  스낵 컬처는 주 시청층이 젊은 세대이기 때문에 주로 캐주얼하고 트렌디한 소재를 다루긴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깊이 있는 통찰력을 요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스낵 컬처라 하면, 창작자들이 대충 감에 따라 뚝딱뚝딱 만들면 되는 줄 알더군요. 한마디로, 전혀 오해입니다.

  포장지가 그럴싸해 보이는 건 알맹이도 그럴싸해 보이도록 속이기 쉽지만, 달랑 투명 비닐포장지로 싸놓은 알맹이가 고급스럽다고 인정받기란 정말 힘든 일 아닐까요?

  JYP 박진영 씨가 그랬잖아요. 록이나 R&B는 어렵고 심오하니까 정통 음악이고, 댄스는 쉽고 듣기 편하므로 싸구려 음악이라고 여기는 건 대단히 무지한 편견이라고. 스낵 컬처도 마찬가지예요. 콘텐츠 소비가 간편하다는 이유로 수준까지 얕다고 후려치기 당하는 건 정말로 억울합니다. 저희 창작자들은 늘 콘텐츠에‘가 볍지만 깊음’을 담아내기 위해 불철주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답니다. 스낵 컬처가 킬링타임용 콘텐츠로 방치되지 않도록 창작자로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고, 반드시 그렇게 돼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요. 

  [변론 3]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건, 프로듀스 101이 아니다.” - 웹툰 작가 C씨 (31세, 남)

  스낵 컬처는 태생적으로 대중에 기반한 문화이기 때문에 오로지 국민 프로듀서님들의 평가에 존망이 걸려있어요. 이런 이유로 제작자는 우리 콘텐츠가 예술성보단 대중성을 갖추길 바라죠. 클릭수가 작품 성공의 바로미터니까요. 물론 대중성이 스낵 컬처의 요체란 것엔 큰 이견이 없습니다. 돈 되는 걸 만들어야 제작자도 돈을 벌고, 창작자에게도 돈을 지급할 수 있겠죠. 다만 대중성‘만’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건 대단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라 생각해요. 대중의 구미에만 맞춘 천편일률적인 콘텐츠는 점차 소비자들에게 염증을 느끼게 하고, 종국에는 산업 전체의 질을 저해하게 될 테니까요. 실제로 웹툰 페이지를 보시면 유행하는 장르의 작품수가 타 장르에 비해 월등히 많아요. 그러면 안 돼요. 문화라는 건 무조건 다양해야 옳아요.

  사회적으로 스낵 컬처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중예술가라기보다 마치 자본주의의 사생아처럼 인식되는 듯한데요, 솔직히 일정 부분 인정합니다. 그래서 전 지금 변론보다 자성을 하고 싶어요. 어쩌면 우리가 그런 오해와 편견을 자초한 게 아닐까 하구요. 스낵 컬처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점에서, 만드는 사람들 스스로 자정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억울하다는 말로 책임의식을 간단히 벗어던지지 말자구요. 

  위 3개의 변론은 실제 인터뷰가 아닌 평소 주변 스낵 쿠커와의 대화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몇몇 작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낵 컬처가 위와 같은 오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은 변론 1의 말처럼 낯섦과 무지함에서 오는 편견일 수도 있고, 변론 2의 말처럼 오랜 선입견에 따른 착오일 수도 있으며, 변론 3의 말처럼 산업의 특수성에 따른 불가피한(혹은 스스로 자초한) 현상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스낵 컬처에 대한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은 결과적으로 창작자보다 소비자에게 해악을 끼칠 것이다. 왜냐하면 낮은 기대에 낮은 결과로 부응하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소비자가 스낵 컬처를 폄하하는 마음가짐을 갖고 저급한 콘텐츠조차 당연시 여긴다면, 스낵 컬처의 퀄리티는 점차 퇴보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이 스낵 컬처를 엄연한 하나의 창작품으로 인식하고 지속적인 독려와 경계를 보낼 때, 그래서 창작자들이 그 기대와 관심에 부응하고자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스낵 컬처는 억울한 오해에서 벗어나 완숙한 진면모를 드러낼 것이다.

 

 


방유정
드라마 작가. 웹드라마 〈한입만1〉, 〈한입만2〉, 〈크리스마스가 싫은 네 가지 이유〉, 〈옐로우〉 그리고 JTBC드라마 〈라이브온〉을 집필했다. 

 

* 《쿨투라》 2021년 10월호(통권 8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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