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에세이] '댄싱9'과 '썸바디', 그 후
[무용 에세이] '댄싱9'과 '썸바디', 그 후
  • 임수진(무용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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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용의 대중화 전략에 대한 단상

 

ⓒMnet

  우리나라 무용계가 오랫동안 고민해오고 있는 여러 쟁점 중들 중, 안무가의 작품 성향이나 예술 정책, 학술연구 등 모든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 바로 대중화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를 위한 해결책들은 대부분 미디어 플랫폼을 수단으로 접근하는데, 대중매체에 무용이 노출되는 빈도수를 높임으로써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듯하다. 과거 발레리나 강수진 등 해외 유명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발레리나들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TV프로그램에 간혹 등장한 것에 비해 오늘날은 비교적 상당수의 무용 스타들이 미디어에 등장하는데, 그 촉진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2013년 첫 방송된 M.Net의 춤 오디션 프로그램 <댄싱9>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댄싱9>은 2013년 첫 방송 이후 시즌3까지 제작된 바 있는데,그동안 대중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무용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3년간 방송되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다. 시청자들은 당시 프로그램에 출연한 무용수들에게 큰 관심을 보였고, 프로그램 종료 직후 개최된 갈라 공연을 비롯해 몇몇 무용수들의 개인 공연에도 직접 찾아가는 등 그들의 방송 활동은 대중에게 무용을 소개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 듯 보였다. 국내 무용계 역시 대부분이 이러한 반응에 고무되어 그동안 ‘우리들만의 잔치’로 전락했던 무용이 이제 ‘대중화’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물고가 터진 것으로 기대했다.

  물론 당시 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역시 존재했는데, 문화산업에 휩쓸려 무용예술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예술 중·고등학교를 비롯해 해외 무용단에서 활동하거나 교육 받은, 소위 엘리트교육을 토대로 성장한 이들이 CJ E&M이라는 거대 회사에서 제작한 대중문화 프로그램, 더욱이 서바이벌이라는 자극적인 포맷에 등장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자본가가 만들어 놓은 ‘상품’에 예술가가 스스로 뛰어들어 그들의 입맛에 따라 변모하는 상황을 지적하는 것이다.

  국내 무용계의 특이점은 오랫동안 ‘대중화’라는 기치를 쫓았다는 것이다. 이는 해외사례와 비교해봐도 이례적으로 많은 수의 종합대학 내 무용과 수를 비롯해 콘서바토리, 학원 등 수많은 교육기관에서 배출되는 무용수의 수에 비해 그들이 전문무용가 혹은 관련 업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는 현저히 적고, 무용예술을 향유하는 수용자 역시 타예술과 비교해 가장 최하위를 기록할 정도로 외면 받는 이유를 대중과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슈퍼스타K> 등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수많은 스타 가수를 배출한 M.Net이 무용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소식은 대중을 만나고,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것은 대중이 정말 원하는 것, 대중에 대한 이해이다. <댄싱9>이 끝난 후 한동안은 무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지속되는 듯 했지만, 우려했던 대로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무용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은 다시 줄어들었는데, 무용수들은 여전히 <댄싱9>을 이해했던 방식으로 대중성을 추구함에 따라 예술성과의 균형도 잃고 무용공연으로써의 완성도도 떨어지며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화려한 테크닉과 표정 연기를 앞세워 음악에 몸을 맡겨 춤추는 이들이 처음에는 신선하고 흥미로웠겠지만, 기교적 완성도 외에 무용·공연예술만이 지닌 독특하고 특별한 무언가가 결핍된 이들의 작품이 주는 감동과 자극이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눈이 부시게>, <SKY캐슬>, <킹덤> 등TV와 넷플릭스 드라마들 마저 극본의 참신함을 넘어 영상미적 완성도로 대중문화 콘텐츠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데 말이다.넘쳐나는 문화콘텐츠들 속에서 대중의 취향은 이제 그 어떤 전문가나 예술가의 수준과도 명확히 차별화 둘 수 없다는 것, 아마도 무용가들이 흔히 간과하고 있는 점이라 생각된다.

  얼마 전 종영한 <썸바디>가 안타까운 점도 여기에 있다. ‘춤을 통해 댄스 파트너이자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기획의도부터 그 성격을 알 수 있는 만큼 기존의 커플매칭 프로그램에 좀 더 신선한 ‘춤’이라는 요소를 가미한 정도임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아쉬웠다. 수준급의 무용수들(장르불문)이 출연하고 국내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이자 영상콘텐츠의 선두주자인 CJE&M이 제작하는 <썸바디>가 선보인 ‘뮤직비디오’들을 보고 있자니, 오늘날 춤과 영상미디어의 결합으로 새로운 영상미학을 선보이는 ‘댄스필름’은 커녕 마치 90년대 댄스가수의 뮤직비디오가 떠올랐다.

  M.Net의 목적은 단순하다. 서바이벌, 그리고 커플 매칭이라는 자극적인 포맷에 무용이라는 다소 낯선 장르를 얹어 시청률을 높이는 것.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사업가의 전략에 무용이라는 장르가 선택됨에 따라 많은 무용수들이 대중매체에 등장해 대중에게 소개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진정한 대중과의 소통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재고해야할 필요가 있다. 무용가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음악 산업과 거대 자본의 영향력이 끼치지 않은 한 도시의 작은 클럽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음악을 연주하며 관객들과 서로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들의 문화로 시작된 비틀즈이지, 사업가에 의해 단숨에 만들어진 미국의 몽키스와 같은 문화상품은 아닐테니까.

임수진
성균관대학교 트랜스미디어 연구소 선임연구원. 성균관대학교에서 예술학 박사, 뉴욕대학교(NYU)에서 공연학(Performance Studies) 석사 학위를 받았다. 무용월간지 《몸》 편집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자료원 근현대구술사 책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 《쿨투라》 2019년 4월호(통권 5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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