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산책] 시공간을 넘어서는 감동의 음악, 미사곡
[클래식 산책] 시공간을 넘어서는 감동의 음악, 미사곡
  • 한정원(클래식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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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젊은 날 대부분을 독일에서 보냈다. 모태신앙인 나는 그 곳에서도 자연스럽게 교회를 오갔다. 유럽에 머물렀던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규모가 크고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에서 오르간으로 예배 반주를 했고, 그 유서 깊은 악기의 울림에 한껏 빠져 지냈다. 돌이켜보면 많은 연주회를 하며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뜨겁게 누렸던 감사한 시간이다. 독일이 통일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동독 지역에 속해 있던 음악 도시 라이프치히를 방문했다. 두 주 동안 유명 교수님의 마스터클래스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 옛날 오랜 세월을 성 토마스 교회에서 칸토어로 일했던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발자취를 느껴보고자 먼 길에 용기를 내었다. 어느 날 오후, 공부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곱고 선한 노랫소리에 이끌려 한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 유럽식 교회는 찬양 팀이 뒤쪽 이층 높은 곳에서 노래하는 구조인데, 그 교회도 여느 교회처럼 천사 같은 소리가 뒤쪽 위에서 들려왔다. 당일 결혼식 행사를 위해 리허설을 하는 중이었는데 여린 소리의 소프라노는 모차르트의 <알렐루야>를 부르고 있었다. 문득 그 천사 같은 고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떤 얼굴일까 보고 싶었다. 결국 그를 보지 못했지만 지금껏 그날 귀에 울리던 그 천상의 소리는 한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는다. 이 세상의 햇빛이 교회 안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온전히 환하게 밝히던 그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얼마 전 합창 연주회에서 조지 오르반(1947~ )의 미사곡<Mass No. 6>을 연주했다. 1991년에 작곡된 이 작품은 루마니아 태생의 헝가리 작곡가 오르반이 만든 여성 합창곡이다. 르네상스와 고전시대를 이어온 전통적 예배 의식인 미사에 따른 교회 음악이다. 이 연주용 미사곡은 클래식한 기법의 바탕 아래 재즈라는 현대적 언어를 가미하여 탄생하였다. 전통적 고전 스타일을 모델로 삼아 헝가리 합창 전통을 이어온 그의 걸작 가운데 하나이다. 이 합창곡은 어떤 울림을 가지고 있을까? 미사라고 쓰인 제목의 악보를 펼치며 호기심이 일었고, 나는 궁금함에 얼른 유튜브에서 이 곡을 찾아 들어보았다. 아! 언젠가 이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었다. 바로 주위가 환해지는 느낌! 다시 오래전 가졌던 라이프치히 어느 교회에서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교회 건물 높고 많은 벽면을 수도 없이 부딪치고 타고 흐르며 여러 차례 울려오는 소리가 마치 돌림노래처럼 몽환적으로 들려온다. 둥글고 큰 공간을 고스란히 채우면서 반향되는 울림들, 반복되는 가사와 공명이 잘 이루어진 환상적 울림에 마치 천사들의 노래를 듣는 듯하다.
  긴 역사와 시간을 관통하여 우리가 만나고 있는 클래식 음악은 여러 장르로 구분할 수 있다. 악기 편성에 따라 관현악곡, 실내악곡, 독주곡 등으로 나눌 수도 있고, 사용한 텍스트가 있다면가장 많이 대중화한 오페라, 미사, 오라토리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가끔이라도 공연 소식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미사, 레퀴엠, 칸타타, 오라토리오 등의 제목을 가진 공연 포스터를 쉽게 접했을 것이다. 교회에서는 곧 다가올 사순절을 정점으로 이러한 타이틀을 가진 연주회가 많이 열린다. 이들의 발생 과정을 살펴보면 모두 종교적인 속성을 가지지만, 현대에는 더욱 넓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미사Missa는 가톨릭교회의 거룩한 제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미사곡이란 이 거룩한 제사를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다. 예전에는 미사의 모든 전례 의식이 라틴어로 진행되었고 그 내용은 통상문과 고유문으로 구성되었다. 통상문이란 절기와 상관없이 항상 들어가는 내용이고, 고유문은 부활절이나 성탄절 같은 특별 절기에만 포함된다. 대부분의 미사곡은 기본적인 통상문인 키리에Kyrie, 글로리아Gloria, 크레도Kredo, 상투스Santus, 아뉴스 데이Agnus Dei에 곡을 붙인 것이다.
  미사곡은 작곡자나 곡은 다를지라도 가사는 항상 동일하다. 첫 곡인 키리에는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을 지니며, 대영광송인 글로리아는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의 뜻을 가진다. 연이어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사오며’로 시작하는 신앙고백인 크레도, 이사야 6장 3절 천사들의 찬미와 합창 ‘거룩하시다’ 상투스와 ‘축복 받으소서’ 베네딕투스, 마지막 곡으로 ‘신의 어린 양’이라는 뜻의 탄원 기도문 아뉴스 데이 등 다섯 곡이 기본이며, 가끔은 상투스와 베네딕투스를 따로 분리하여 여섯 곡으로 부르기도 한다.
  미사곡은 그레고리오 성가에 의해 기틀이 만들어졌다. 처음 노래 형태는 단선율이었으나 13세기에 이르러 다성 음악으로서 점점 더 화려하고 조화로우며 정교한 틀을 갖추게 되었다. 최초의 연속 미사곡으로는 중세 작곡가 기욤 드 마쇼(1300~1377)의 노래<노트르담 미사>가 남아 있다. 미사곡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최고 전성기를 이루는데, 이탈리아 작곡가 팔레스트리나(1525~1594)는 100곡이 넘는 미사곡과 무반주 형태의 수많은 성악곡을 남김으로써 교회 음악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렇듯 중세와 르네상스를 지나는 동안 많은 발전을 이룬 미사곡은 바로크 시대에 들어서면서 그 동력을 잃게 된다. 이는 가톨릭교회가 음악의 중심이 되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그 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지만, 미사곡은 꾸준히 새롭게 작곡되었다. 바로크 시대에 나온 바흐의 b단조 미사, 모차르트의 미사 브레비스, 베토벤의 장엄미사곡 등은 지금도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여전히 사랑받는 곡들이다. 이들은 이전 미사곡과 달리 미사곡 형식을 빌려 연주회용으로 작곡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진혼곡’이라고도 불리는 레퀴엠 역시 미사곡의 일종이다. 레퀴엠이 보통 미사곡과 다른 점은, 장례 미사에 쓰던 라틴어 텍스트를 붙여 만든 곡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 미사곡에 비해 분위기가 음울하고 슬프고 장중하다. 라틴어로 ‘안식’이라는 의미를 지닌 레퀴엠은 처음을 ‘주여, 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로 시작한다. 통상문 중 찬양송인 글로리아와 크레도를 제외하고 진혼 미사의 고유문을 넣어 노래한다. 아뉴스 데이에서도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로 대체한다. 이에 ‘영원한 빛’, ‘눈물의 날에’, ‘우리를 구하소서’ 등 레퀴엠에 삽입되는 고유문을 넣음으로써 마무리한다.
  음악은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존재해왔다. 중세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시대를 초월하여 동일한 가사로 전례 기도문을 하나로 엮어내 예술 작품으로 형상화한 미사곡은, 비록 지금은 공연을 위한 연주회용 합창곡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여전히 시공간을 넘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위대한 감동의 음악이 아닐 수 없다.

한정원
피아니스트. 연세대학교 기악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악대학,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대학에서 독주와 실내악을 전공하고 최고연주자과정(Konzertexamen)을 마쳤다. 이태리 디노치아니 국제콩쿨 특별대상을 받았고, 유럽을 중심으로 연주 활동을 하던 중 귀국하여 십여 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일송출판사에서 악보 해설집을 출간하였으며, 현재 국내외로 많은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 《쿨투라》 2019년 2월호(통권 5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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