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ICON] 악 혹은 인간에 대한 탐색가 정유정: 2021 ICON 문학 부문
[2021 ICON] 악 혹은 인간에 대한 탐색가 정유정: 2021 ICON 문학 부문
  • 강유정(문학평론가, 강남대 교수)
  • 승인 2021.12.0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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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
ⓒ정유정 작가

  1. 한국의 장편 소설가

  한국에 스티븐 킹과 같은 작가가 있다면 누가 될 수 있을까?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는 한국문학에 있어 매우 오래된 유리바닥이다. 순수문학이 문단과 언론의 고전적 양성 체계 속에서 보존된다면 장르문학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수많은 곁가지와 독자를 가지고 있다. 장르문학이라 부르며 속으로 대중서사라고 괄호 치는 것도 한국문학만의 특수성 중 하나이다. 이렇게 이분법으로 나뉜 세상에서 정유정은 매우 특별한 작가이다. 정유정은 공모전을 통해 당선해 작가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순수문학 작가이기도 하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설가로서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또 다르다.

  정유정의 소설은 순수문학과 장르문학 경계에 있고,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다는 점에서 한편 대중문학의 경계에 놓여 있다. 소수의 엘리트 평론가들보다 먼저 대중이 발견하고, 인정하고, 평가한 작가, 그런 작가를 가리켜 대중문학 작가라고 부른다면 정유정은 대중문학 작가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대중문학이라 부르기 위해서는 매우 섬세한 검토와 반성이 필요하다. 소위 대중의 선택을 엘리트 비평의 선택과 구분하는 방식으로서의 대중이라는 수식어는 이미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정유정의 소설은 매우 동시대적이다. 오히려 대중성은 동시대성으로 호명해야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지금, 여기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 그 이야기를 정유정은 한다. 정유정을 지금의 정유정으로 있게 한 『7년의 밤』도 그랬고, 대단한 기대감 속에 발표했던 차기작 『28』의 세계도 그랬다. 정유정이 그려내는 세계는 분명 이곳의 현실과 조금은 다른 허구적 공간이었지만 바로 이곳이었고, 피와 살이 튀는 살인의 현장부터 인수공통감염의 재난 상황까지 분명 창조된 공간이지만 사실적이었다. 정유정이 그려낸 허구적 세계는 현실의 거울 이미지였던 셈이다.

  무엇보다 정유정은 장편소설을 쓴다. 단편 위주의 한국문학의 현장에서 자기만의 리듬을 지켜가며 꼬박꼬박 장편 소설을 써낸다는 것은 현상 이상의 가치가 있다. 기대감의 압박을 이겨내며 장편소설로서, 독자와의 약속을 지켜가며 동시대의 문제를 거듭 허구화해내는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는 바로 정유정이다. 그 예민한 호흡과 선택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둔해진 서사의 세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정유정의 소설은 말하자면 리듬감 있고, 재미있다. 정유정이 다루는 세계는 아직 오지 않은, 그리고 현존하지 않는 허구적 공간이지만 그럼에도 현재적이며 동시대적이다.

ⓒtvN
ⓒtvN

  2. 정유정의 소설 공학

  정유정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속도감이다. 치고 나가는 듯, 달리는 문장은 빠른 호흡으로 독자를 허구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2021년에 발표한 새로운 장편소설 『완전한 행복』에서도 이런 특징은 고스란히 유지된다. 짧은 문장들이 이어받듯이 긴장감을 확산하고, 그 확산된 긴장감 속에서 구체적 이미지를 가진 공간이 떠오른다. 정유정의 소설이 영화적인 이유이다. 짧고,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제공한다.

  또 다른 매력은 바로 다양한 시점의 활용이다. 『7년의 밤』 역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서로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이야기로 진실과 거짓, 표면과 이면의 긴장을 가져왔다면 『28』과 『종의 기원』, 『진이, 지니』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배턴을 이어받듯 서로 다른 시점에서 세계를 기술한다. 다른 시점의 서술자에 의해 기획되고, 조형된 세계는 다층적일 수밖에 없다. 정유정은 작가로서 이 다양한 상충적 서술을 재배치하면서 작가 정유정이 보는 세상의 조감도를 제공한다. 냉정하지만 분명한 이미지로.

  『완전한 행복』은 2020년 발생했던 끔찍했던 여성 살인마를 다루고 있다. 정유정은 살인 사건의 선정성이나 윤리적 평가에 집중하지 않는다. 정유정이 집중하는 것은 건조하게 사건 수사 보고서의 수사 기록 속에 등장할 법한 인물들의 내면에 깃든 개연성이다. 살인 사건의 수형도에 하나씩 달려 있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 안에 박제된 인물들의 내면과 심리를 따라간다.

  아직은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그래서 엄마나 아버지처럼 양육자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대리 체험할 수밖에 없는 딸 지유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유는 아이이면서 한편 살인자의 딸이다. 지유는 그 왜곡된 어머니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배울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법은 아이의 법이다. 아이 지유의 눈을 통해 재현된 엄마 유나는 동화 속 잔혹한 계모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재혼한 남편이 본 유나, 언니가 본 유나, 아버지가 봤던 유나, 주변의 인물이 바뀜에 따라 유나라는 인물은 달라진다. 우리 곁의 이웃의 모습은 그렇게 알 법한 사람에서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달라진다. 이런 입체적인 조형을 위해 작가 정유정은 다양한 시점과 서술자를 활용한다. 작가 정유정은 쉽게 자신의 전지적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양한 서술자를 통해 도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수수께끼이다. 『종의 기원』 이후 정유정은 분명 선행보다는 악행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악은 결국 인간의 행위를 통해 구체화된다. 사람을 들여다보며 악의 기원에 대해 탐구하고 그것을 재구성한다. 정유정에게 악이란 인간을 가장 깊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이기도 하다.

  문제적인 것은 정유정이 그려내고 있는 악의 세계가 점차 허구로부터 현실로, 개연성 있는 상상에서 사실주의적 재현으로 바뀌어 간다는 점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악인이 동시대 뉴스로 출현한다. 어쩌면 소설 속에 재현된 악이야말로 우리가 이미 이해하고 정복한 과거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악이라는 순수한 가상이 아닌 실재하는 악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정유정의 소설도 그 노력의 하나라는 게 매우 아이러니하다. 인간은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 인간을 이해하기에 악이 가장 확실한 통로라는 정유정의 제안을 거부할 길은 없다. 작가 정유정의 악인에 대한 탐구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 우리의 현실에 있는 셈이다.

 

 


강유정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2005년 《조선일보》《경향신문》《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등단. 저서로는 『영화 글쓰기 강의』『타인을 앓다』 등이 있다.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 《쿨투라》 2021년 12월호(통권 9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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