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 예술]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장의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Book review - 예술]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장의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 손희(본지 편집장)
  • 승인 2019.03.20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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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가장 예술적으로 기억하는 도시, 베를린으로 떠나는 여행

 조형예술을 공부하고 미술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오랫동안 공공미술을 주목해온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장이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을 펴냈다.

 그는 베를린의 공공미술을 찾아다니며 작품과 설치 장소의 맥락, 그곳을 찾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관찰하고, 느끼고, 경험했다. 특히 도시 역사를 응축한 기념조형물들이 산재한 독일 베를린을 2000년대 초부터 계속 탐구해왔다.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은 기념조형물이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기록하고 형상화했는지를 세심하게 살핀다.

이로써 하나의 예술 작품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을 발견해간다.

10가지 기념조형물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것은 때론 길바닥에 납작하게 설치된 작은 동판(「슈톨퍼슈타이네 프로젝트」)이거나, 기념비들의 숲(「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을 이루며, 버스 정류장(「아이히만의 유대인 담당부서」)이거나, 거대한 광고판의 형식(「빛상자들」)을 취하기도 하고, 역사의 흔적을 갖가지 형태로 품고 있는 거대한 기념공원(‘베를린장벽 추모공원’)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기념조형 물이 설치된 장소와의 연관성이 뚜렷하며, 주변 풍경에서 단절 되지 않도록 맥락과의 조화(혹은 충돌)에 대한 고려가 반영되었던 덕분이다.

 이러한 특징은 틀에 박힌 상징과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베를린의 기념조형물들은 대부분 넉넉한 여백의 공간을 품은 채 설명적이거나 장식적 요소를 최대한 배재한다. 이를테면 나치의 야만적인 ‘분서’ 행위를 상기시키려는 미하 울만의 기념조형물 「도서관」은 책이 불태워졌던 장소, 곧 베벨 광장의 지하에 설치되었다. 지상에는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은 사각형 투명 유리창만이 있을 뿐이고, 직방체의 지하 공간에는 도서관이라는 이름과 달리 텅 빈 책장만이 존재한다.

「도서관」은 기념비에 대해 흔히 기대되는 도드라진 형태, 뚜렷한 물질성을 거부한다. “책들의 시신조차 남아 있지 않은 텅 빈 묘지 내부” 같은 작품은 분서가 행해진 곳에 남은 침묵을 상징하며, 비워내고 고요해짐으로써 유리창 위의 관찰자들이 더 오래 응시하도록, 더 많이 생각하도록 한다. 또 원래 세계대전의 비극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소로 개조된 ‘노이헤바헤(신위병소新衛兵所)’는 건물 내부의 텅 빈 공간, 그 가운데 놓인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 청동상, 새로 낸 천창을 통한 자연 조명이라는 최소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로 인해 형성된 여백의 공간이야말로 이 건축물의 변천사에 담긴 고통을 숙고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처럼 베를린의 기념조형물이 구현한 ‘덜어냄’의 미학은 과밀한 도시에서 관조의 틈새,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베를린의 기념조형물들은 방문객 또는 시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념 공간이다. 홀로코스트를 기리기 위한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는 서로 다른 높이의 콘크리트 블록 2711개가 숲을 이루고 있는 형태다.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콘크리트 블록들이 슬픔, 상실감, 무수한 익명의 죽음과 같은 심상을 전하는 한편, 도심의 공원처럼 언제든지 쉽게 접근해서 그 사이를 돌아다니거나 블록 위에 앉아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개방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이 같은 추모지에서 우리는 역사를 기억, 기념하는 행위가 나의 일상 그리고 현재와 괴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이 책 프롤로그에서 “베를린 기념조형물들의 공통된 특성에 주목했다. 그 기념조형물은 대부분 역사적인 기억을 품은 장소에 밀착된 느낌을 준다. 광장의 지하에 숨은 듯이 설치되어 있거나, 광고판, 버스 정류장, 기차 승강장, 보도블록 등 도시의 일상을 구성하는 요소처럼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또 공원처럼 조성되어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체험하고 머무를 수도 있으며, 베를린장벽처럼 동서 분단의 유산이지만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가 된 곳도 있다.

이처럼 일상적인 풍경과 단절되지 않도록 제작, 설치된 방식을 나는 ‘도시의 피부에 스며드는 형식’이라고 오래전부터 정의해왔다. 이런 형식이야말로 기념조형물이라는 ‘예술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적절하다.

(중략) 역사적인 기억을 매개하는 예술 작품으로서 하나의 기념조형물을 경험한다는 것은 미적인 체험과 더불어 역사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역사 속의 인간들이 겪었던 아픔과 기쁨까지 모두 공감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념조형물은 역사의 교훈뿐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해 성찰하도록 만든다. 결국 기념조형물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최호근(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은 한 번 읽고 말기엔 아까운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기념의 공화국’ 베를린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을 얻는다. ‘브란덴부르크 문’과 ‘승전기념물’이 독일의 과거라면, 이 책이 조명하는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와 「도서관」은 독일의 미래다. 이 책은 독일이 걸어온 길이 아니라, 독일이 걸어갈 길을 보여준다. 기념의 홍수 속에서 기억의 갈증에 시달리는 우리에게는 중요한 문제”라고 평했다.

 

 

* 《쿨투라》 2019년 2월호(통권 5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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