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미지의 땅 타슈켄트에서 울려 퍼지는 한글아리랑: 조철현, 『허선행의 한글아리랑』
[북리뷰] 미지의 땅 타슈켄트에서 울려 퍼지는 한글아리랑: 조철현, 『허선행의 한글아리랑』
  • 권준안(본지 인턴기자)
  • 승인 2022.07.04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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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즈드랏스부이쩨. 저는 대한민국에서 온 허선행입니다.”
  마침내 첫 수업이 시작됐다. 그는 미리 준비했던 말로 자기소개를 한 뒤 학생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모두가 고려인으로 스무 명쯤 되는 학생들은 연령층이 다양했다. 10대와 20대로 보이는 여학생과 남학생이 있는가 하면, 40대와 50대도 있었고, 60대 이상의 어르신도 눈에 띄어 그는 교생실습 때와는 사뭇 다른 교실 분위기에 압도됐다.
  - 본문 65쪽

  고려인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겠다며 대학시절 ‘미지의 땅’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난 이가 있다. 1992년 3월 패기 있게 한국을 떠난 27세의 청년 허선행은 어느덧 타슈켄트1 세종학당의 학당장이 되어 한글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한글을 세계 중심 언어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떠난 허선행은 30년 동안 8,000명 가량의 제자를 배출했다. 『허선행의 한글아리랑』은 1세대 한국어 교사로 활동한 허선행의 30년 기록을 조철현 작가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냈다. 또한, 현지 한인 사회와 한-우즈벡의 교류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함으로써 ‘제2의 허선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친절한 나침반 역할을 하는 책이다.

  한글 한류를 빚어낸 한글 아리랑 4중주

  사범대 졸업반이던 청년 허선행은 구 소련 지역에서 한글 보급을 위해 헌신할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교사 발령 직전에 우즈베키스탄행을 택했다.

  급여 한 푼 없고, 생활비 보조는커녕 항공권조차 직접 부담해야 했던 험난한 길이었다. 열혈 청년의 자원 봉사로 시작된 한글의 세계화에는 현지 한인사회 및 고려인 사회의 역할, 대사관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역할, 현지에 진출한 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한글 아리랑 4중주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모국어 공동체의 확장과 한글 한류를 일으킨 것이다.

  우리 한글이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중앙 아시아로 나아가는 데는 고려인들의 역할이 컸다. 또 현지에 진출한 기업체들과 대사관의 역할이 있었고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따뜻하게 품어 준 친한파 현지인들의 도움 또한 중요했다. 그리고 교육원과 코이카 봉사단원 등 이국까지 와서 한글을 보급하고자 노력한 교사들의 역할도 소중했다.
  – 본문 241쪽

  허선행은 “한글의 해외 보급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30년 우즈베키스탄 생활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이제 그에게 배운 제자들 중 상당수가 한글학교 선생님이 되어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또다른 학생들에게 한글
을 보급하고 있다. 그의 제자들이 한국과 중앙아시아 교류의 다리 역할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업무 공간인 ‘학당장실’은 30년 전 그가 처음 왔을 때 숙소로 썼던 그 방이다. 당시 그는 이 방을 ‘관사’로 불렀다. ‘관사’가 ‘학당장실’로 바뀌면서 그가 누웠던 자리에는 대형 책상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식사하던 자리는 조그만 탁자 1개와 의자 2개를 들여 응접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 이대로가 좋았다. 추억이 가득한 공간이라 이 방에 들어설 때면 늘 27세의 청년 허선행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때론 천장 얼룩 지도를 바라보며 영산강과 봉황천을 그리던 자신의 옛 모습을 만날 수도 있었다 .
  – 본문 390쪽

주우즈베키스탄한국대사관에서 동백장을 수훈하는 허선행과 그의 가족
주우즈베키스탄한국대사관에서 동백장을 수훈하는 허선행과 그의 가족

  허선행의 한글학교는 2007년 시작된 ‘제1회 세계한인의 날’ 행사에서 한글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로 전 세계 3,500개의 한글학교들을 제치고 국민포장을 받았으며, 2013년에는 한글발전 유공자로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21년에는 ‘평화 번영의 한반도 기반 조성’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올해는 한-우즈벡 수교 30주년이자 2012년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으로 출발한 세종학당재단이 출범 10년차를 맞는 해이다. 허선행의 시선은 벌써 다음을 향하고 있다. 이번 책 출간을 계기로 그가 속한 세종학당을 우즈베키스탄 교육부가 인정하는 정규학교로 발전시키는 것을 다음 30년의 목표로 삼고 있다.

  저자 조철현은 3년동안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을 왕래하며 허선행의 발자취를 쫓았다. 허선행의 삶의 흔적을 가감없이 담아내기 위해 그의 가족부터 주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까지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그는 “허선행의 30년 동안의 선행先行한 결과가 수많은 표창과 훈장”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허선행을 지원한 ‘타슈켄트 한글학교 사랑회’와 장학재단 ‘고려인의 꿈’, ‘한글사랑샘’ 등 다양한 단체들에 대한 기록들과, 수많은 제자들이 그에게 표현하는 존경심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 《쿨투라》 2022년 7월호(통권 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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