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라이프] 다양한 교감의 매개체, 제주 고사리 여행
[제주 라이프] 다양한 교감의 매개체, 제주 고사리 여행
  • 유혜영(방송작가)
  • 승인 2019.03.25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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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이건 꿈. 그것도 굉장히 유치한 꿈인걸.

무의식세계 어딘가에 남아있는 이야기보따리 친구 할아버지에 대한 부러움때문인지.

아님 아이와 나눴던 잭과 콩나무의 마법의 콩 얘기가 감정에 남아있었기 때문인지.

꿈속에서 본 고사리는 채 두 뼘도 안되는 제 분수를 모르고 잭의 콩나무처럼 쭉쭉 뻗어가고 있었다. 고사리 맞아? 이건 고사리가 아니라 나무인데 하며 줄기에 손을 뻗는 순간. 툭.

나의 꿈도 끊기고 말았다.

잠에서 깬 나는 온몸이 뻐근하기도 하고, 꿈을 꾸는 순간에도 느꼈듯이 아이 눈높이의 꿈이 유치한 생각도 들어 다시 잠을 청하지 않고 그렇게 이른 아침을 시작했다.

작년 4월 어느 날의 일이다.

제주로 내려오고 나서 매년 3월이 되면 봄만큼이나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고사리다. 사실 고사리와 나의 첫 만남은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고사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식성이 한몫을 했기 때문이다.

제주 고사리의 명성이 나에게만큼은 오름에서 내려오는 아주머니들의 까만 비닐봉지를 볼 때도, 중산간 지역 도로변에 즐비하게 서있는 차들을 지나칠 때도, 아 고사리 철이 됐네! 하는 정도. 딱 그정도였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간절히 바라서 몸을 움직이는 일과 어쩌다 보니 몸을 움직이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재밌는 것은 동기와 과정과 그 결과는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제주의 고사리는 어쩌다보니 하게 된 우리가족의 야외놀이였는데 결과는 간절히 바라서 하게 될 일이 돼버렸다. 고사리는 먹는 즐거움보다 과정의 즐거움이 더 큰 행위이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고사리에 대한 얘기로 들어가보자.

먼저 고사리를 만날 수 있는 계절이다. 고사리의 향연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해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고사리는 3월 말부터 5월 중순이 되면 제주도 전역에 모습을 드러낸다. 혹 시기를 잊었다해도 고사리의 출연은 너무도 요란하다. 이상하게 자주 내리는 비. 비가 계속 와서 우울해질 때로 우울해질 때쯤 되면 혹시~ 하며 달력을 보자. 바로 4월 1일 아니 3월 25일쯤 됐을 수도 있다. 이렇듯 고사리철이 됐다고 자연이 보내주는 신호는 어쩌면~ 하고 매번 탄성이 나온다.

제주도민은 이때의 비를 고사리비라고 한다.

우리가족의 고사리데이는 비내린 바로 다음날이나, 그즈음이다.

목적지는 우리만이 아는 장소! 제주에서는 자신이 발견한 고사리 밭은 며느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비밀에 부친다.

나 또한 아는 분께 고사리 밭을 물으니 널린 게 고사리 밭이라는 대답만 해줄 뿐 구체적인 장소는 알려주지 않았다. 다녀보니 제주고사리는 중산간 도로 근처나 숲, 오름 등 어디든 분포하고 있지만 분명 포인트가 있음이 분명하다. 맨처음 고사리를 따러 다닐 때 육지 사람인 우리의눈에는 왜 그렇게 목장 근처와 묘지 근처에 몰려있는 고사리만 보이는지, 장소가 마땅치 않아 채취하지도 못하고 입맛만다셨는데 제주생활 10년이 넘어가니 우리가족의 이름을 붙인 유혜영1호 유혜영2호… 해서 꽤 많은 비밀의 장소를 우리도 알 수 있게 됐다.

고사리 철에 길을 가다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어디론가 들어가는 걸 보면 따라가 보는 것도 포인트를 발견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제주의 고사리는 먹고사리와 백고사리가 있다. 나무가 울창하고 햇볕이 안 드는곳의 먹고사리는 길이가 길고 굵으며 빛깔 또한 살짝 붉은 빛이 돈다. 고사리에 계급이 있다면 먹고사리는 귀족 중의 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위풍당당하다. 반면 백고사리도 먹고사리처럼 길고 통통한 것도 있지만 비교해보면 살짝 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맛은 백고사리파와 먹고사리파 둘 다 팽팽해서 본인의 기호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힘들게 굽이굽이 들어가 꺾은 먹고사리에 모두 손을 들어주지 않으니 내가 가는 곳에 있는 고사리가 최고로 맛있다고 생각하고 꺾으면 된다.

고사리는 석탄식물로서 온갖 변화무쌍 한 환경을 극복한 불굴의 식물이다.

하나를 꺾으면 그곳서 두 개가 나오고 밭에 들어갈 때 안 보이던 고사리가 나올 때 보이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도 만든다. 고사리를 꺾을 때 톡하고 나는 소리와 손에 전해지는 전율은 2-3시간의 노동에도 손을 멈출 수 없는 묘한 중독증상으로 나타난다.

제주할망들에게 고사리는 걸음낭비없이 몇 십만 원의 소득이 생기는 효자식물 이어서 시간을 정하고 꺾지 않으면 그 재미에 날이 지고, 길을 잃게 돼 해마다 실종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꼭 무리를 지어 다녀야 하고 시간을 정해놓고 해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 고사리는 꺾는 재미와 함께 다양한 교감의 매개체다.

복수초가 떠난 자리를 채워주는 봄까치꽃 꽃마리 사철 피는 민들레부터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 달래, 냉이. 그리고 온갖 곤충들…. 처음 도마뱀을 본 순간 얼음이 됐던 나는 이제 도마뱀을 보면 도망갈 길을 내줄 만큼 자연생물들과 친해졌다.

 

이제 3월,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간밤의 꿈에는 눈에 파란 물이 들것 같은 하늘에서 비가 떨어졌었지. 비록 꿈에서는 콩나무도 고사리도 보이진 않았지만, 나뭇가지마다 꽃눈이 맺히는 것을 보니 제주 안에서 또다시 여행이 시작 될 듯싶다. 고사리여행.

주먹진 아기손 가득 겨울을 품고 있었으니 기꺼이 걸음걸음 옮겨 두 손 가득 고사리를 담아올 것이다.

어서 보자 고사리!

 

 

* 《쿨투라》 2019년 3월호(통권 5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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