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광석 시인 제35주기 추모제] 시대정신의 총아, 채광석 시인을 추모하다
[채광석 시인 제35주기 추모제] 시대정신의 총아, 채광석 시인을 추모하다
  • 이승철(시인, 한국작가회의 이사)
  • 승인 2022.08.0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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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의 독전관’ 채광석 시인

1980년대 ‘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채광석 시인(현 한국 작가회의 명예사무총장)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언 35주기를 맞이했다. 1975년 5월 22일 서울대 사대 영어과 재학시절, ‘김상진 열사 추모시위’와 관련한 ‘오둘둘 사건’으로 2년간의 옥고를 치렀고, 1980년 신군부의 5·17쿠데타로 예비검속되는 등 네 차례의 제적과 두 번의 투옥을 겪으며 이 땅의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그 사람, 채광석!

1983년 3월에 출간된 신작평론집 『한국문학의 현단계 2』 (창작과비평사)에 평론 「부끄러움과 힘의 부재」를 발표하고, 5월에 조태일 시인이 주재하던 무크 《시인》 제1집에 「빈대가 전한 기쁜 소식」, 「사람의 길」 등의 시편으로 한국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채광석은 5공정권의 폭압을 뚫고 전방위적 활동을 전개한 ‘민족문학의 독전관’이자, 1980년대 대표적 ‘문화운동가’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그는 1983년 6월, 《시와경제》 동인지 제2집(‘일하는 사람들의 미래’, 육문사)에 노동자 출신 ‘박노해 시인’을 발굴함으로써 한국 ‘민중문학’의 서막을 열어 젖히기도 했다.

1980년대 민족문화운동을 주도하다

채광석 시인은 1980년 5월 이후 신군부에 의해 활동이 정지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약칭; 자실)의 재창립(1984.12.19)을 주도했다. 그는 ‘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민족문학의 밤’, ‘민족문학교실’ 등을 개최함은 물론 ‘자실’의 총무간사(지금의 사무국장)로서 ‘반독재 민족문학’을 1980년대 문학의 주류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김명인 평론가(인하대 국문과 교수)가 언급했듯이 채광석은 1980년대 초중반의 변혁적 문학운동을 가장 강력하게 추동한 중심인물이었다. 채광석은 《오월시》, 《시와경제》, 《광주젊은벗들》, 《삶의문학》, 《분단시대》, 《남민시》 동인을 ‘자실’이라는 단일대오로 묶어세워 ‘전두환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문예조직을 진두지휘했다. 아울러 ‘민예총’의 전신인 ‘민문협’의 결성과 문익환 목사가 이끌던 ‘민통련’의 문화예술분과위원장으로서 전천후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채광석의 주도로 ‘자실’은 1980년대 군사정권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는 양심세력으로 존재했고, 1987년 9월 ‘민족문학작가회의’로 개편된 후 2007년 12월,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총무간사와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민주화운동을 이끈 채광석(1948. 7. 11~1987. 7. 12) 선생에게 지난 6월 10일, 정부는 ‘6월항쟁’ 35주년을 맞아 영예로운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이에 ‘채광석 시인 제35주기 추모제준비위원회’(위원장 윤재걸),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윤정모), ‘광주전남작가회의’(지회장 이지담)는 공동주최로 지난 7월 12일 오후 4시, 광주광역시 운정동의 ‘국립5·18민주묘지’ 제2묘역 채광석 묘소 앞에서 ‘채광석 시인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식 및 제35주기 추모제’를 개최했다.

양기창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제35주기 추모제는 땡볕 염천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광주, 전남, 부산 등지에서 40여 명의 추모객이 참석했다. 윤재걸(시인) 준비위원장을 비롯해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역대 회장인 이명한 김준태 나종영 김경윤 조진태 김완 시인과 채희윤 소설가, ‘한국작가회의’의 박관서 사무총장, 박몽구 시분과위원장, 김창규 통일분과위원장, 권위상 대외 협력분과위원장, ‘광주평화포럼’의 김수 이사장, 백수인 류명선 장헌권 이승철 김이하 김해화 박석준 박학봉 조현옥 김옥종 서승현 백애송 강지산 김호균 유종 정종연 박노식 박종관 강희정 시인, 박호재 김남일 전용호 이진 소설가, 윤기현 동화작가, 김채석 수필가, ‘광주민예총’의 윤만식 박종화 전현직 회장, ‘나눔문화’ 임소희 이사장, ‘탑골’의 한복희 대표, 홍기원 목사 등과 유족이 참석해 고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그 생애를 추모했다.

영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하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추모제는 5월영령 및 채광석 시인에 대한 분향 및 묵념,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윤재걸 준비위원장의 모시는 말씀, 채광석 약전소개(이승철 시인), 추도의 말씀(김준태 박몽구 박관서 시인, 김남일 소설가) 채광석 시인 대표시 「어느 새의 노래」 낭송(김옥종, 백애송 시인), 채광석 추모조시 「신념의 메아리」 낭송(박학봉 시인), 추모 예배(김창규 시인, 목사),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유가족 인사(강정숙 미망인, 채희석 동생), 닫는 말씀, 헌화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추모제를 마무리하면서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한 채희윤 소설가는 다음과 같이 채광석 시인을 추모했다.

망자亡子, 고인故人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존재로 환원된다는 것일 겁니다. 세월이 35년 정도가 되면, 고인들은 대명사의 하나로 고착되어집니다. 시인 누구, 소설가 누구, 연극인 누구로… 그러나 끝내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그 절정에 가닿지 못한 채 홀연히 떠난 재능이 넘치던 분들이 그렇습니다. 그 대표적인 분이 바로 여기, 이곳에서 눈 감고 계시는 채광석 선배이십니다. 전위적 운동가, 전천후 실행가, 오둘둘, 진정한 민중적 민족문학가, 무지무지한 욕쟁이, 문학비난가, 시인 등등… 뭐라고 단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김정환 시인의 시를 빌려 몇 줄 덧붙입니다.

“그가 없는 우리들의 모임, 그가 없는 우리들의 운동/ 그가 없는 우리들의 사랑, 그가 없는 우리들의 투쟁/ 그가 없는 우리들의 죽음, 그가 없는 우리들의 부활/ 그가 없는 우리들의 건설은 상상할 수 없다…”

채광석 선배님! 여기 광주 ‘5월 민주’의 하늘 아래 잘 오셨습니다. 부디 우리 광주와 한국작가회의 모든 회원들께, 모름지기 문학예술은 ‘시대정신의 총아’여야 마땅하다고 주창했고, 이를 곧바로 실행에 옮겼던 선생님의 박력 있던 힘으로… 아직 미완인 ‘통일문학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많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선생님의 ‘5월묘역 천장’ 과 ‘훈장’ 역시 민족문학운동을 선도하심이며, 이는 더 큰 민족문학으로의 도정을 위함이라 확신합니다. 명예사무총장님! 자주는 못 오겠지만, 간간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2000년 7월 12일, 채광석 시인의 고향인 충남 서산군 안면도의‘자 연휴양림’ 안에 건립된 채광석 시비(김운성 조각, 구중서 글씨)
2000년 7월 12일, 채광석 시인의 고향인 충남 서산군 안면도의‘자 연휴양림’ 안에 건립된 채광석 시비(김운성 조각, 구중서 글씨)

‘국립5·18민주묘지’에서 35주기 추모제를 마친 후 뒤풀이 및 추모한마당이 광주시내 참뫼식당에서 밤늦도록 진행되었다. 이날 김남일 소설가(전 실천문학사 대표)가 언급했듯이 채광석 선생은 백낙청의 ‘시민적 민족문학론’을 ‘민중적 민족문학론’으로 그 외연과 깊이를 확장했으며, 황지우 시인이 명명했듯이 ‘민중적 민족문학의 독전관督戰官’으로서 한국문학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갱신’을 위해 전인적인 삶을 불꽃처럼 뜨겁게 살다가 향년 39세로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간 채광석 시인! 그가 타계한 지 35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여전히 그는 진보적 문학예술인들에게 추앙 받고 있다. 제35주기 추모제를 계기로 ‘채광석 시인 기념사업회’가 발족될 예정이다.

 

 


사진 김이하(시인, 사진작가), 이승철(시인)

 

 

* 《쿨투라》 2022년 8월호(통권 9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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