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K-콘텐츠의 현재를 스토리텔링하다!: 김세연, 『뉴미디어 시대, 콘텐츠를 읽다』
[북리뷰] K-콘텐츠의 현재를 스토리텔링하다!: 김세연, 『뉴미디어 시대, 콘텐츠를 읽다』
  • 양진호(영화평론가)
  • 승인 2022.08.0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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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시대, 콘텐츠를 읽다』는 미디어비평가이자 소설가인 김세연의 첫 비평집이다. 신자유주의의 척박한 현실을 견뎌내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가장 마음이 쓰이는 저자는 장르와 장르 사이에서 그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발견해내려고 한다.

이 책의 1부에는 2019년부터 2021년 사이에저자가 여러 매체에 발표했던 미디어 콘텐츠들에 대한 비평이 담겼다.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이 고려했던 관점들이 현재에도 유효한지, 혹은 그 중요도가 바뀌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글의 순서를 정리했다. 논의가 끝난 문제들에 대한 비평은 덜어내고, 지금 가장 격렬한 논쟁의 지점에 있는 문제들은 더 보강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가장 절실한 문제에 대한 성찰들이 책에 고스란히 담길 수 있게 했다. 특히 저자의 이러한 방식은 ‘드라마’ 장르를 분석할 때 예리함을 드러낸다. 소설가로도 활동하며 한국적 서사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 익숙한 그는 어느 미디어비평가보다 더 섬세하게 드라마 서사의 결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K-드라마에서는 정신적인 가치의 소중함, 가족과 이웃에 대한 의리가 부각된다. 도덕道德 그리고 효孝와 충忠. 나는 이것을 코리안 선비 스웩이라고 부르고 싶다. 뜨겁지만 절제된 사랑. 남을 위해 기꺼이 나를 내어주는 용기. 부와 명예보다 정직을 택하는 단호함. 우리 몸속에 녹아들어 있던 고매한 선비 정신은 K-드라마를 통해 재전유된다. 한국드라마가 보수적이라는 평가는 결코 욕이 아닐 것이다.
-「K-드라마, 코리안 선비 스웩이 먹혔다」 중에서, 본문 45쪽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콘텐츠 등 여러 플랫폼의 다양한 콘텐츠들에 대한 비평들도 드라마 분석못지않게 흥미롭다. 저자는 서울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 〈서울엔 우리 집이 없다〉를 통해 현재 서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젊은 세대들의 현실을 읽어내고, 게스트의 성향, 현재의 고민과 앞으로의 계획 등 한 사람에 대한 총체적인 고려를 통해 ‘칭찬 밥상’을 차려내는 것이 주요 포인트였던 예능 〈더 먹고가〉를 통해 한국인들의 ‘시간’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분석한다. 저자의 미디어비평은 콘텐츠의 정보 못지않게 그 콘텐츠가 가진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에 집중한다. 숫자나 문자로 고스란히 표현될 수 없는 우리의 삶의 조각들을 그 이야기의 맥락 속에서 찾아내고, 그것들을 통해 K-콘텐츠의 본질을 정의하는 것이 저자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더 먹고 가〉는 요즘 시류에 꽤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다. ‘밥을 요리하고, 사람을 요리하고, 인생을 요리한다’는 기획 의도를 갖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게스트의 성향, 현재의 고민과 앞으로의 계획 등 한 사람에 대한 총체적인 고려를 통해 ‘칭찬 밥상’을 차려내는 것이 주요 포인트다.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 셰프는 육아에 지친 박정아를 위해 ‘한우 업진살 토마토 밥’을 짓고, 도시 생활에 익숙하면서도 토속적인 어머니의 맛을 그리워하는 허재를 위해 ‘토종닭 완자밥 구이’를 만든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이라 생경한 이름의 요리들은 그러나 다른 누가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기에 어렵지 않게 감동을 자아낸다. “생각지 못한 맛”이면서도 “그리움의 맛”이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맛”(2회 박중훈 편)인 것은 그 때문이다.
-「힐링 먹방의 새로운 패러다임: 〈더 먹고가〉, 〈강호동의 밥심〉」 중에서, 본문 38쪽~39쪽

2부에는 장강명, 윤이형, 정도상, 정세랑, 백온유 등 한국문학의 ‘현재’를 이끌어가는 작가들의 작품에대 한 비평이 담겨 있다. 저자는 2부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1부에서 다뤘던 ‘콘텐츠’들과 같은 맥락에서 분석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다른 대중 장르나 미디어 콘텐츠에 비해 현실을 반영하는 속도가 느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첫 소설집 『홀리데이 컬렉션』을 출간할 때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같은 영상의 시대에도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직 글로만 표현 가능한 섬세한 감정이나 사유, 문제의식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소설의 속도나 호흡은 분명 영화나 TV 드라마 등에 비해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서사의 진행 속도가 현실을 읽어내는 속도와 비례하다고 볼 수는 없다.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한국 소설에는 오직 한국어로만 표현 가능한 감정들과 생각들이 명징하게 수놓아져 있다. 그것을 미디어 콘텐츠의 스펙터클 같은 것으로 재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어쩌면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바로 소설이라고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저자가 2부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한국 소설의 이러한 지점이다.

미디어비평가이자 소설가인 김세연이 이번에 펴낸 비평집은 우리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해준다. 어떤 이론적 틀이나 해외의 분석보다도 그가 가장 많이 참고하는 것은, 한 사람의 독자나 시청자로서 이야기를 즐기는 ‘자기 자신’이다. 미디어 플랫폼과 소설 속에서 아주 잠깐 재현된 한 개인의 삶의 순간을 그가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이야기 바깥이 아니라 이야기의 안에 머물려고 하고, 또 거기서 스스로가 확인한 것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자신의 비평에 담아내려고 한다.

앞으로도 ‘세계’라는 무대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공유해 나갈 독자들이, 김세연의 이번 콘텐츠비평집을 통해 우리의 ‘진짜 이야기’들과 더욱 친숙해질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쿨투라》 2022년 8월호(통권 9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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