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em] 곽효환 시인의 「겨울, 자작나무 숲에서」
[K-Poem] 곽효환 시인의 「겨울, 자작나무 숲에서」
  • 곽효환(시인)
  • 승인 2022.08.0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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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자작나무 숲에서

곽효환

 

붉은 금빛으로 온통 물들던 숲에
혹독한 바람 불어 불어
겨울,
날카로운 선으로 서다

낙엽송마저 마지막 잎을 다 떨어뜨린
텅 빈 산에 우우— 앙상한 울음
문득 멈추고 눈부시게 하얀 알몸으로
울울창창 자작나무 무리 지어 있다

예 어디쯤 주렁주렁 돌기와 인
당신 닮은 등 넓은 너와집 한 채 있어
둥치부터 하얗게 홀로 빛나는
자작나무 숲 장엄한 그늘에 기대어 몸 들였다

지붕 낮은 집 굴뚝에 연기 올리고
눈 덮인 산마을에 햇볕 한 줌 불러내리니
쩡— 쩡— 갈라지는 계곡 깊은 얼음소리의 울림
이제는 다 잊었다고 믿었던 지난 사랑 더듬으니
손목 아래 동맥을 스치듯 살짝 비켜 간
불에 덴 자국
좀체 지지 않더니
자작나무 그늘 아래 눈꽃처럼 환하게 웃다

 


곽효환 시인 1967년 전북 전주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6년 《세계일보》에 「벽화 속의 고양이3」을, 2002년 1월 《시평》겨울호에 「수락산」 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집』 『슬픔의 뼈대』 『너는』, 저서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등을 비롯하여 다수가 있다. 현재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이다.

 

* 《쿨투라》 2022년 8월호(통권 9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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