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em] 박인애 시인의 「버려짐에 대하여」
[K-Poem] 박인애 시인의 「버려짐에 대하여」
  • 해나(본지 에디터)
  • 승인 2022.12.1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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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짐에 대하여

박인애

 

노인의 집 앞에
웃돈을 얹어주어야 치워 갈 듯한
대용량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구형 모니터와 무거워 보이는 데스크톱
전선으로 목이 칭칭 감긴 키보드
유선 마우스와 스피커까지
일가족이 거리로 나앉았다

그 집에서 버려지는 물건은
낡았거나 어둡거나 슬프다
오물로 얼룩진 매트릭스
니스가 벗겨진 나무 의자
누렇게 색이 변한 책과 이 빠진 접시
한때 노인이 아꼈을 애장품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버려지고 또 버려진다

그의 창은 닫혀있다
소리도 냄새도 담을 넘지 않는다
간병인과 배달 차량 정원사
이따금 자손들이 드나들며

제 몫을 하고 갈 뿐이다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던 통로는
뽑힌 플러그처럼 차단되었다

내 의지가 있을 때까지만 살다가
너라는 폴더 하나 가슴에 저장하고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버려지는 게 아닌
또 다른 이름으로 저장되는 거니까

버려진다는 것은 지독히 슬픈 일이다

 


제1회 정지용 해외문학상 박인애 재미시인 수상

재미시인협회(회장 고광이)가 옥천군 문화원, 동행문학과 주관한 제1회 정지용 해외문학상은 박인애 시인(텍사스주 달라스)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심사를 맡은 문태준 시인과 문학평론가 송기한 대전대 교수는 “시적 지향이 정지용의 시세계에 가장 근접해 있는 「누름꽃」 외 9편을 응모한 박인애 시인을 수상자로 결정했고 시편들 가운데 「버려짐에 대하여」를 수상작으로 뽑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지용 시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일상성을 감각적인 언어로 서정화시켰는가 하면, 정지용 시인의 또 다른 특성인 자연을 인생의 한 자락으로 의미화시키는 데에도 탁월한 면을 보여주었다. 내용의 진솔성과 일상성, 그리고 형식이 주는 조화감이 「누름꽃」 외 9편의 서정적 특징이었다고 심사평을 덧붙였다.

박인애 시인의 대표작 「버려짐에 대하여」는 평온한 듯 보이는 일상 속에서 한 노인이 경험하게 된 고독과 단절감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집 바깥으로 세간들이 하나 둘씩 버려지고, 점차 외부와 차갑게 차단되어 가는 한 개인의 고립감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등 일상의 풍경을 세밀하게 관찰한 빼어난 시작詩作이다.

제1회 정지용 해외문학상을 수상한 박인애 시인은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했으며, 《문예사조》 시 부문, 《에세이문예》 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달라스한인문학회 회장. 미주한국문인협회 부회장. LA한국일보, KTN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시문학상, 해외한국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시집 『말은 말을 삼키고 말은 말을 그리고』와 에세이집 『인애, 마법의 꽃을 만나다』, 편역 6·25 전쟁수기집 『집으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 《쿨투라》 2022년 12월호(통권 10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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