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오늘의 영화 - 무뢰한] 내면으로 향하는 내리막길
[2016 오늘의 영화 - 무뢰한] 내면으로 향하는 내리막길
  • 김남석
  • 승인 2016.0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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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자와 여자를 뒤쫓는 시선

영화 〈무뢰한〉을 갱스터 무비로 이해하려 한다면, 사실 이 영화의 매력을 절반쯤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 영화는 ‘무뢰한—범인’을 뒤쫓는 형사의 이야기로 짜여 있지만, 실제로 형사가 악한을 추적하는 재미만을 노린 영화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추적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한 여자와, 그 여자를 향하는 마음을 추적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무리 없는 해석일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무뢰한〉을 보는 것에 동의한다면, ‘여자—김혜경’(전도연 분)을 포착하거나 따르는 카메라의 위치는 무척 중요해진다. 여자는 허름한 아파트에서 처음 포착되며, 그녀를 포착하는 시선의 주체는 ‘범인—박준길’(박성웅 분)을 쫓는 형사(들)이다. 그러한 시선 속에서 여자는 의외로 당당하다. 처음부터 당당해서, 뒤쫓는 시선을 알고 있는 듯하기까지 하다. 그 시선 속에 ‘형사—정재곤’(김남길 분)도 포함되어 있다.

시선을 처리하는 방식은 그 대상을 보여주는 방식에 달렸다고 해야 한다. 〈무뢰한〉의 카메라에 포착된 김혜경은 유유히 ‘워킹’을 즐기면서, 자신의 것을 보란 듯이 내주는 대범한 성격의 여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대범함을 상대하기 위해서 정재곤은 ‘무뢰한—이영준’으로 변장하여 그녀가 일하는 곳으로 잠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입한 시선에 따라, 그녀는 처음에는 보여주지 않던 모습들을 영화 곳곳에서 노출하기 시작한다. 애인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거나 애인을 기다리다 못해 투정을 하는 모습, 혹은 찾아온 애인에게 가볍게 질투하는 정황 등이 그러하다. 이렇게 감추어졌던 그녀의 마음은 이영준이 훔쳐보고 엿듣는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에, 그 파장이 관객에게 직접 전달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이 영화가 은밀하다는 느낌을 준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는 훔쳐보는 시선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기본적으로는 영화의 속성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무뢰한의 마음을 녹이는 특유의 마력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매력으로 일단 간주할 수도 있겠다. 더구나 무뢰한의 마음을 녹이는 시선으로 인해 〈무뢰한〉은 다른 차원의 영화로 접어들 수 있었고, 이 영화는 흔한 갱스터 무비에서 한층 변전한 형태의 텍스트, 이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요소가 추가된 ‘조폭 텍스트’가 될 수 있었다. 이 추가된 요소가 바로 ‘내면’이다.

2. 보여주기의 방식 : 길을 따르는 시선들

문제는 이러한 설정을 보여주는 방식일 것이다. 적의 아내, 상대의 여자,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인물을 사랑하는 플롯이 이 세상에서 이 작품 하나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기본 설정만을 놓고 본다면 상투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상투성을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무뢰한〉은 더욱 깊숙이 그녀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했다. 내면으로 향하는 몇 가지 방식은 기본적으로 이 영화를 차별화시키는 이유이기도 했다.

일단,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 보자. 야트막한 언덕이 있고, 그 언덕은 3류 술집 마담으로 전락한 김혜경이 출근하는 길이다. 이 길은 혼란한 그녀의 마음처럼 심란한 길일 것이다. 하지만 그 길에서도 김혜경은 어딘지 모르게 당당하다. 수심이 사라지지 않은 얼굴이지만, 그녀의 걸음걸이는 인생의 마지막을 견디는 힘이 있어 보인다. 아마 이 영화에서 ‘전도연 식’의 이러한 워킹이 없었다면, ‘김혜경’이라는 인물이 내면을 축적한 인물처럼 보이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밤의 이 길은 자동차들로 가득해진다. 카메라는 비스듬히 사선을 그리며 주차한 차들의 행렬 속에서 한 차량을 집요하게 뒤쫓는다. 이영준의 차는 이러한 차량의 행렬 속에 섞여 들어 한 아파트로 향하고, 그 아파트로 남성들과 힘겨운 하루를 보낸 여인이 숨어들 듯 기어든다. 애인을 위해 돈과 집 그리고 자신의 몸을 바치는 여자. 그러한 여자의 내면으로 기어드는 남자. 카메라의 시선은 몇 차례에 걸쳐 이 물리적 길을 오르고, 숨고, 숨어들고, 잠복하면서, 여자로 향하는 시선의 길까지 영화 내로 끌어들인다.

형사와 여자의 관계는 어두운 골목을 따라서도 이어진다. 24시간 해장국집에서 멀리 떨어져 마시던 소주나, 룸살롱 앞에서 헤어지면서 나누는 대화 등은 이러한 관계의 외적 표출이다. 여자는 지쳐 가면서 마음의 균열을 드러내고, 그 균열 안으로 스며든 형사의 마음은 결국 범인 박준길을 향하는 그녀의 마음을 거두게 만든다. 여자의 내면에서 감정의 누수가 시작되면서, ‘형사 정재곤’ 아니, ‘무뢰한 이영준’에게 향하는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길을 바라볼 수 있는 이들에게, 남자는 진짜 무뢰한이 될 수밖에 없다.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본래의 소속을 잊고 눈앞의 이익만을 탐하는 남자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러한 내면의 풍경을 카메라의 시선으로 뒤쫓았지만, 주체와 대상 사이에 놓인 것은 의외로 길이었고, 그 길은 마음의 통로였다. 형사 정재곤으로 돌아온 남자는 밤새 그녀의 집과 방을 뒤쫓는데, 점차 그 시선은 추적이라기보다는 접근에 가까워졌고, 그로 인해 남자의 내면도 어느 정도는 열리게 된다.

이 영화에서 안타까운 지점 중 하나가 남자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생각보다는 제한되었다는 점이다. 개봉된 영화 내에는 정재곤과 아내가 나누는 대화의 파편이 남아 있었는데, 원래 대화는 남자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는 또 다른 다른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카메라는 전지적 시점으로 이 길을 보여줄 수도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이 길은 차단되었고, 그로 인해 무뢰한의 내면을 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제한되고 말았다. 만일 이 길이 있었다면 두 갈래 길에서 방황해야 했던 한 무뢰한의 마음 역시 더 깊숙하게 탐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남자와 여자의 마음이 겹치는 자리

다행스러운 것은 남자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만은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영화의 중대 관심사 중 하나인 마지막 장면이기도 하다. 이 장면은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정재곤이 범인을 잡은 이후, 여인—김혜경을 어떠한 방식으로 대할까 혹은 대해야 했을까 라는.

여인은 창굴 같은 음습한 집으로 끌려가 죽기 직전의 누군가를 돌보아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그 형벌은 여인이 그녀가 지키기로 했던 누군가를 오히려 죽게 만들었고 끝까지 품어야 했던 신뢰를 저버린 벌처럼 여겨진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면으로 가는 길을 함부로 열고 웅크리고 있어야 할 감정의 밑바닥을 드러낸 자기 형극 같은 것일 지도 모른다.

이 여자에게 무뢰한이 다시 접근했다. 무뢰한의 사전적 의미는 ‘성품이 막되어 예의와 염치를 모르며, 일정한 소속이나 직업이 없이 불량한 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이다. 형편없는 삶으로 내려앉은 여자에게 남자는 예의와 염치를 차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다시 한 번 무뢰한이 되었고, 그것을 자신에 대한 정당하지 못한 침입으로 단정한 여자는 이에 대해 응징을 시도했다. 칼로 남자를 찌르는 여자의 마음은 복잡다단해서 단순한 침입에 대한 응답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겠지만, 실제로는 그녀와 정재곤이 만나는 전 과정이 이러한 무례한 침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녀의 칼부림은 결과적으로 일면 정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그 이후 남자의 태도이다. 여자는 남자를 찔렀고, 남자는 당장 쓰러지지 않을 정도만 살아남은 채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여자에게 향했던 자신의 길을 돌아 나와, 자신이 왔던 길처럼 보이는 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그 길에서 무뢰한은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그래서 흐릿하게만 보였던 이 만남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자의 내면은 이 만남에서 늘 부분적으로만 드러났고, 항상 파편처럼 흩어져 있어야 했다. 여자에게 향하는 마음이 분명 존재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배신으로 끝나야 했듯, 하나의 단일한 마음이 아니라 늘 길항하는 여러 개의 마음들이 묶음처럼 널려 있어야 했다. 하지만 걸어 내려가는 이 길만은 남자의 마음을 하나로 들추어낸다. 예의와 염치를 도외시하고 한 여자의 마음을 짓밟았지만 그 여자는 자신의 마음에 숨겨져 있던 마음을 밖으로 끄집어내 주었던 것이다.

한 여인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길과 그 길에서 치명상을 입고 돌아 나온 길에서 이 무뢰한이 자신이 마주했던 세계—이 세계는 영화 속에서 ‘범인’과 ‘범인의 여자’라는 단순화된 기호로부터 출발하고자 했다—의 아주 작은 오의奧義를 알아챘다면 과장일까. 피가 흐르는 가슴의 상처는 분명 치명적인 것이었지만, 그 상처 자체는 내면의 풍경을 투영하도록 자신을 풀어헤치는 열쇠가 될 수 있었다. 적어도 이 상처는 자신의 내면과 상대의 내면이 어느 한 순간일지라도 겹쳐지는 순간이 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증거하고 있고, 세상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복잡한 논리 이면에도 이러한 마음들이 소중한 자리를 틀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니 말이다. 마음으로 가는 길이 남아 있고, 그 길 위에서 잠시 쉬어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막연한 믿음 같은. 비록 그 길이 내리막길일지라도 말이다.

 


김남석 1973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와 동대학원 졸업. 199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당선. 저서로 『조선의여배우들』 『조선의 연극인들』 『조선의 대중극단들』 등이 있음. 현재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darkjedi@dreamwiz.com

 

 

 

* 『2016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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