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오늘의 영화 - 내부자들] 복수극으로 드러낸 한국의 부패 구조
[2016 오늘의 영화 - 내부자들] 복수극으로 드러낸 한국의 부패 구조
  • 공광규
  • 승인 2016.02.04 13: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내부자들〉(2015. 11)은 인물들 간의 대립과 갈등, 공생과 배신, 속임수와 복수가 얽히고설켜 상영 시간 내내 나를 긴장시켰다. 재벌 그룹의 회장과 유력한 대통령 후보, 이를 설계하는 언론의 유착 관계가 대한민국이 현실과 무척 닮아서 놀랐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주연에서 조연까지 모두 흠이 없었다.

스토리는 정치인, 자본가, 언론의 끈끈한 유착과 이들에게 이용당하다가 버려지는 깡패와 비자금 조사에 뛰어든 정의감 넘치는 열혈 검사가 뒤섞여 벌이는 한판 복수극이다. 이런 깡패와 검사가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지는 않지만, 19금 관람 등급 답게 욕설과 잔인함과 성접대 등 적나라한 장면이 현실감을 갖게 했다.

이 영화는 깡패인 안상구(이병헌 분)와 기자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안상구가 기자를 앞에 두고 잭 니콜슨이 출연한 영화 〈차이나타운〉 얘기를 하다가 “정의심? 복수? 그딴 것은 난 상관없소. 하지만 빌어먹을 내 손이 없어졌단 말이오.”라는 부분에서 인간의 실존성이 확 살아났다. 아마 이럴 경우 거의가 정의감, 의리 때문에 복수를 한다는 관념적 대답을 할 것이다. 이 뻔한 관념은 영화를 재미로만 보게 할 것이다. 이 대답 하나로 이 영화를 보는내내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안상구가, 미래자동차 비자금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장필우 의원(이경영 분)에게 흘러간 것을 폭로하기로 선택한 것은 정의나 의리가 아닌 몸의 일부인 손을 훼손당한 실존적 상황 때문이다. 안상구는 조국일보 이강희(백윤식 분) 논설 주간에 의해 정치 깡패로 입문한다. 그리고 이강희의 계획과 요구로 선거와 노조 파업 구사대로 동원된다. 선거가 끝나고서는 국회의원을 대신해 감옥에 간다. 이강희의 요구였다.

이런 식으로 안상구는 이강희와 오랜 공생을 하다가, 자기가 좀 큰 줄로 알고, 더 성공해 보려고 미래자동차 비자금 리스트를 가지고 이강희와 거래를 하려다가 미래자동차 조 상무에게 잡혀 손목이 잘린다. 재벌, 정치, 언론이 같이 노는 클럽에 깡패는 끼워 줄 수 없다는 메시지다. 깡패는 개나 돼지같은 보조자이고 지원자일 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결국 나중에는 안상구가 이강희의 손목을 자르면서, 이강희와 관계는 공생과 배신, 그리고 파탄으로 끝난다.

안상구는 “정의? 우리나라에 그런 달달한 게 남아 있기나 한가?”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의 정의를 믿지 않는다.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면서 겪은 경험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다가 언론과 정치와 재벌의 동맹 관계를 의심하고 추적하는 우장훈(조승우 분) 검사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복수를 위해 협력한다. 스스로 “그래도 내는요, 니처럼 드럽지는 않아요.”라고 하는 우 검사는 지방대와 경찰 출신이다. 그야말로 족보가 없이 검찰에 입성하여 검찰 내부에서도 차별을 당하고 있다. 승진 누락이라는 구체적 현실로. 이렇게 사회 곳곳에 신분의 차별이 있다.

정·경·언 유착 관계에서 언론의 역할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조국일보 논설 주간 이강희이다. 그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검사 출신인 장필우를 정계에 입문시키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도록 키운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미래자동차 오현수(김홍파 분) 회장을 장 의원의 후원자가 되도록 연결시켜 준 인물이다.

당연히 미래자동차는 이강희가 소속된 신문사의 최대 광고주이기도 하다. 신문사 편집회의에서 기사를 논의하며 이강희는 후배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신문이 미래자동차 없이 굴러갈 것 같애? 누가 니 월급 주는데?” 기자는 아무 말을 못하고 수긍한다. 그리고 재벌과 정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우리 신문의 방침”이라고 한다. 미래자동차가 없으면 신문사도 없고, 기자도 없다. 신문사 운영의 재원이 재벌사의 광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은 재벌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수사 과정에서 미래자동차에 대출을 해 준 석명관 은행장(권혁풍 분)이 우 검사에게 최조를 받던 중, 성 접대 동영상을 보다가 수치감에 투신을 하는데, 논설 주간인 이강희는 이를 검찰의 과잉 수사라는 내용으로 논설을 쓴다.

이강희의 말투는 언론의 모호한 성격을 그대로 대리한다. 상황에 따라 이쪽저쪽 붙어 다니는 지식인의 전형이다. “끝에 세 단어만 바꾸죠. ‘볼 수 있다’에서 ‘매우 보여진다’고.” 이강희가 검찰에서 나오면서 하는 말이다. 이런
말장난으로 국민을 혹세무민하는 언론의 대리인 이강희는 화면에서 관객을 쳐다보면서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 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 속의 인물에게 하는 말이 기도 하지만 영화 밖의 관객과 국민에게 던지는 말이다.

아마 이강희의 말 가운데 나를 가장 화나게 한 지점은 “우리나라 민족성이 원래 금방 끓고 금방 식지 않습니까.”라고 하는, 오래된 식상한 대목이었다. 이런, 많이 들어본 민족 비하의 발언과 함께 “화이또 다이죠부요.”라고
외치는 대목에서는 피가 끓었다. 친일 지식인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 지배적인 언론 자본의 근원이 친일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언론은 스스로 자신이 ‘구리다’는 것을 안다. 이강희가 “서로 구린 놈끼리 같이 가야지 냄새를 풍겨도 괜찮겠지 않겠나.”처럼. 그리고 모든 구린 것이 밝혀지면서 “좆됐네.”하고 허탈해 하기도 한다. 그럴 때 스스로 나서서 ‘클럽’을 가동한다. 언론과 정치와 자본이 거래하는 클럽이다.

나중에 안상구는 도끼로 이강희의 손목을 자르며 이런 말을 남긴다. “이제 남은 왼손은 똥 닦는 데나 쓰라, 글 쓰지 말고.” 이강희는 손목을 잘린 뒤에도 친자본과 정치 권력을 위한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다. “오른손이요? 까짓것 왼손으로 쓰면 되지요? 으허허.”처럼, 언론은 배경이 든든하니 교도소에 수감되고서도 변함없는 자신감을 보인다.

재벌이 국민을 보는 관점도 가관이다. 노동자를 종으로, 국민을 일꾼으로 생각한다. 미래자동차 오 회장은 “이 새끼들 이거, 이래서 인간들은 덜도 말고 딱 굶어 디지지 않을 정도로 살게 해 줘야 딴생각을 안 하는 건대.” 하며 노동자와 국민을 멸시한다. 그리고 “여기 내 돈 안 먹은 놈이 어딨노?” 하며 정치와 정부 관계에도 자신감을 피력한다. 거기다 조 상무(조우진 분)가 안상구를 납치하여 손을 자르기 전에 “쓰레기를 치우라카믄 쓰레기만 치우지, 와 쓰레기를 훔칠라카노?”라고 말하는 데서 자본의 절대적이고 지배적인 태도가 읽힌다. 자본의 절대 권력에 도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재벌은 정치를 조종한다. 오 회장은 장 의원에게 “장 의원 클럽이 억수로 실하네.”라고 한다. 정치는 은행에 압력을 넣고 그 대가로 정치 비자금을 받는다. 이런 과정에서 은행장 역시 성 접대를 받는다. 장 의원은 “걱정마십시오 회장님, 이 장필우가 목숨 걸고 막고 있습니다.” “이번 회기가 끝나면 넝마가 될 겁니다.”라고 한다. 장 의원이 목숨 걸고 막는 것은 노동법 개정이다.

정치는 때로 자신을 키운 언론을 배신하기도 한다. 장 의원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자, 고교 동창인 이강희에게 “넌 어차피 내 똥구멍 닦으면서 살아갈 인생이야. 우리 역할은 정해져 있어. 그러니 계속 내 똥구멍이나 닦고 살면 돼.”라고 한다.

아무튼 이 영화는 내용의 개연성과 강렬함으로 한동안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이 영화는 썩은 대한민국의 부패 구조를 은유하고 있다. 없는 얘기가 아니라 가능한, 있을 수 있는, 또는 실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부자들〉은 윤태호 작가의 미완성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고 한다. 결국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실세들에게 배신당한 정치 깡패와 정의로운 검사가 손을 잡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장필우 의원의 비자금을 폭로하게 된다.

이 영화는 스크린 안에서나마 한국의 부패형 권력 구조를 여지없이 폭로하고 단죄한 유쾌한 수작이다. 영화가 은유한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자.

 


공광규 시인. 1986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담장을 허물다』 등이 있음. 윤동주상문학대상,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kkkong60@daum.net

 

 

 

* 『2016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