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독일의 역사와 예술이 흐르는 베를린 박물관섬을 거닐다
[베를린] 독일의 역사와 예술이 흐르는 베를린 박물관섬을 거닐다
  • 손희 에디터
  • 승인 2023.03.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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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인구 수 대비 박물관의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에서도 베를린은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최대 예술도시이며, 이곳에서 수많은 갤러리들을 모두 섭렵하려면 몇 개월은 머물러야 한다. 미술 애호가라면 독일 베를린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미술관을 원할 것이다.

베를린을 중심으로 흐르는 슈프레강 북쪽 끝에는 베를린 박물관섬이 위치해 있다. 박물관섬은 프로이센 왕국의 소장품들을 중심으로 1828년부터 1930년에 걸쳐 조성되었으며 전쟁의 상흔을 딛고 독일 통일 이후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1999년 이후 독보적인 건축물이자 복합 문화공간인 박물관섬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박물관섬의 소장품은 여러 시대에 걸쳐 이루어진 문명 발전을 더듬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며, 도시 풍의 뛰어난 건축적 특성에 의해 그 중요성이 한층 증대된다.

 

구박물관과 신박물관

박물관섬을 찾은 첫날(2월 18일)에는 온종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베를린영화제가 열리는 포츠담광장 숙소에서 박물관섬은 걸어서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독일에서 가장 큰 교회, 베를린돔으로 불리는 베를린대성당(이름은 대성당이지만 개신교 교회이다)과 낭만 가득한 루스트가르텐Lustgarten(기쁨의 정원)을 만난다. 박물관섬 남쪽으로 내려가면 훔볼트포럼이 나온다. 옛 베를린궁전이었던 자리가 세계대전으로 파괴되고 동독에서는 공화국궁전이라는 정부 건물을 세웠고, 통일 후 공화국궁전을 해체하고 베를린궁전으로 복원하여 다시 완성한 건물이다. 박물관섬으로 알려진 슈프레섬 일부는 16세기에 궁전을 위한 정원인 루스트가르텐이 만들어지면서 개발되었다. 현재와 같은 중요성을 갖게 된 것은 1824년-1828년에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의 설계로 구박물관Altes Museum이 건축되고 나서였다.

 베를린돔 바로 옆에 자리한 구박물관은 베를린 최초의 미술관이며 고전 건축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그리스 로마 시대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으로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건축이 인상적이었다. 높은 토대 위에 직사각형으로 설계된 2층 건물로, 내부 정원 2개와 중앙의 원형 홀 둘레에 전시실이 배열되어 있다. 전면 18개의 이오니아식 기둥 위로 프로이센을 상징하는 18마리의 독수리가 웅장하게 앉아 있다. 입구 우측에 아우구스 키스의 <전투하는 아마존> 조각이 유명하고 내부 중앙에 로마 판테온Pantheon을 모델로 한 원형홀Rotunda이 볼 만하다. 기원전 1세기에서 10세기 사이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구박물관이 건축되고 난 뒤 1841년에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명령에 따라 궁정 건축가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스튈러Friedrich August Stüler가 섬의 구박물관 뒤편을 개발하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에 따라 처음 건축된 것이 신박물관Neues Museum(1843-1855)이다.

 배치는 구박물관과 유사하지만, 구박물관의 원형 홀 대신 거대한 주 계단이 있다. 1859년에 싱켈의 제자 한 명이 설계하여 완성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화로 외벽만 남기고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 21세기 들어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며 2009년에 재개관하였다. 신박물관은 고대 이집트 보물을 다량 보유하고 있어 박물관 섬에서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끝이 없이 이어지는 유물과 보물 속에서 3,300년은 족히 되었을 거라 추정되는 〈네페르티티의 홍상〉과 청동 기시대의 유물인 〈황금 모자〉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전시장 2층에는 전시가 끝난 후 개최할 저녁 음악회 리허설이 열리고 있었다. 박물관을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한 융복합공연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유익해 보였다.

구국립미술관 보데박물관
다음 날(2월 19일)은 날이 맑았다. 오늘은 1866년에 요한 하인리히 슈트래크
Johann Heinrich Strack의 작품인 구 국립미술관, 1897년-1904년에 에른스트 폰 이네Ernst von Ihne의 설계로 건축된 보데박물관(전 카이저 프리드리히 박물관), 그리고 1909년-1930년에 완공된 알프레드 메셀Alfred Messel의 페르가몬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했다. 높은 마름돌로 된 블록 형태의 토대 위에 세워진 구국립미술관은 네브라 지역의 사암으로 덮여 있다. 직사각형 창이 있고, 건물 윗부분에는 그리스 신전 유형의 코린트식 이중 열주 성전이 있으며, 출입구가 개방되어 있다. 19세기 조각에서 회화에 이르기까지 사실주의,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비더마이어 시대, 인상주의와 초기 모더니즘의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어 19세기 미술사조와 독일미술을 이해할 수 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를 비롯한 19세기 독일의 대표작가 작품과 유명한 모네와 르누아르, 로댕, 마네, 세잔 등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에두아르 마네의 <겨울정원>과 아르놀트 뵈클린의 <죽은 자들의 섬> 을 찾아 원화를 가까이서 감상해 보는 것도 의미 있다. 박물관 자체가 작품인 보데박물관은 마치 궁전 같은 신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박물관섬의 가장 끝 북서쪽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보데박물관은 슈프레강을 가로지르는 오래된 다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둥근 형태의 입구 파사드는 코린트식 기둥과 개방된 둥근 아치로 장식되어 있고, 규모가 큰 계단이 있는 입구는 2개의 돔 중 작은 돔의 아래에 있다.

보데박물관은 박물관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크게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는데, 박물관의 첫 큐레이터였던 빌헬름 폰 보데Wilhelm von Bode의 이름을 따 보데박물관이라 불렀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현관홀의 큰 조각상이 보인다. 프레드리히 빌헬름 1세의 기마상이다. 전시장 내부는 조각 미술과 비잔틴 미술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으며, 중세의 조각품과 이탈리아 고딕 양식 예술품,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유물, 비잔틴 예술품, 옛 화폐와 메달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이슬람미술관Museum für Islamische Kunst은 주로 스페인과 인도 등지에서 출토된, 8세기에서 19세기 사이의 유물들이다. 대표적인 전시물은 므샤타 궁전 유적으로 현재의 요르단인 암만의 남쪽 지역에 위치한, 미완의 초기 이슬람식 궁전을 일부 옮겨온 것이다. 이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인 압둘 아미드 2세가 빌헬름 2세에게 선물한 것으로 전해진다. 궁전 유적의 일부는 아직까지 요르단에 있다. 또 다른 볼거리는 알레포 방이다. 대표적인 전시품으로는 이슈타르 문과 바빌론의 행렬의 길과 함께 네부카드네자르 3세의 권좌를 들 수 있다. 바빌론 유적지에서 파편들을 가지고와서 박물관 크기에 맞게 복원했다고 한다. 파란색 타일들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페르가몬박물관

독일 한복판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만날 수 있는 페르가몬박물관은 가장 기대했던 박물관이다. 박물관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박물관으로 문명의 요람 메소포타미아 문화와 이슬람미술을 통해 중근동 역사에 대해 조망한다. 연간 100만 관객수를 자랑하며 유럽 제일의 중근동 역사와 헬레니즘 문화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은 독일이 페르가몬과 소아시아의 다른 그리스 유적을 발굴하면서 크게 늘어난 고대 유물과 이전에 중동전시관에서 전시하던 메소포타미아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부속 건물이 3개 있는 이 박물관은 슈프레강에서 바로 시야에 들어오는데, 규모와 비율 면에서 강과 조화를 이룬다. 중심 블록과 측면의 부속 건물에는 창문이 없는 대신 평평하고 거대한 벽기둥과 가파른 박공벽이 있다. 소아시아의 고대 도시 페르가몬으로부터 페르가몬의 대제단을 관내로 이축한 데서 박물관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유적지 현지에서 출토된 그대로 옮겨져, 실제 크기로 재건되어 전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전시품의 소유권에 관한 국가간 법적 논쟁에 휘 말려 있기도 하다.

고대유물전시관Antikensammlung은 대부분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가 취미삼아 모은 수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품들은 주로 아르카익 시대부터 헬레니스틱 시대까지의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건축, 조각, 비문, 모자이크, 동상, 보석, 도자기 등이다. 이들 중 대표작은 기원전 2세기 경 지어진 페르가몬 대제단(제우스의 대제단과 밀레토스의 시장문으로, 이중 페르가몬대제단은 거인들과 신들의 전쟁을 묘사한 높이 113미터의 프리즈(소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터키 페르가몬 도시의 당시 모습을 3D로 재현한 파노라마관은 놀라웠다. 본관이 유적 실물을 갖다 놓는 곳이라면, 파노라마관은 실물보다 더 생생하게 과거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이곳엔 독일 아티스트이자 파노라마 스페셜리스트인 야데가르 아시시Yadegar Asisi가 이끈 팀의 작품이 30m 높이의 원형홀에 360도 파노라마로 걸려 있었다. 규모는 물론 너무나 아름다워 함성을 지를 뻔 했다. 홀 가운데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층에서 내리자 눈앞에 더욱 형언할 수 없는 전경이 펼쳐졌다. 첨단기술로 재현된 현대예술의 미학의 극치가 외경스러웠다.

파노라마에는 페르가몬왕국의 디오니소스축제를 실제 벽화처럼 제작하여 당시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신전에서 제물을 바치는 모습, 공연을 보는 원형극장, 술파는 여인, 들판의 마을들, 시장, 신전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돼있었다. 구름과 하늘색까지도 시간대로 바뀌어 페르가몬의 하루를 리얼하게 엿볼 수 있었다. 꼭 저 그림 속이 현실인 듯 착각이 들었다.

고대 왕국을 통째로 옮겨온 파노라마관은 2,000년 전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온 듯한 환상적인 기분은 물론 고대 유적지 구석구석을 누비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이곳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소풍 장소로도 참 좋을 것 같다.

파노라마관을 빠져나오자 날이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소시지를 파는 노점이 있고, 책과 앨범을 파는 길거리 시장이 열리고 있다. 강변을 따라가면 주말에만 열리는 미술마켓도 길게 펼쳐져 있다. 저녁노을처럼 베를린 박물관섬이 아름답게 물들어간다. 

 

 


 

* 《쿨투라》 2023년 3월호(통권 10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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