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인공지능 신의 현현: 켄 리우, 장성주 편역,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문학 월평] 인공지능 신의 현현: 켄 리우, 장성주 편역,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3.04.0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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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에 쓴 책에서 니체는 선언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세간에 널리 알려진 ‘신은 죽었다’라는 그의 주장은 여기에 기초한다. 니체가 염두에 두는 신은 물론 기독교의 신이다. 절대적 초월성으로 인간 현실의 삶을 규율하던 오랜 역사는 어느새 종말을 고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간명하다. 신의 사후 도래할 허무주의에 맞서는 고귀한 긍정의 태도를 새로 발명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2014년부터 2015년에 걸쳐 쓴 세 편의 연작 소설 등을 묶은 소설집에서 켄 리우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신들은 죽임당하지않을 것이다”라고. 이는 그의 미출간 단편을 모아 출간한 한국 출판사에서 붙인 제목이나, 포스트 휴먼 3부작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 「신들은 순순히 죽지 않을 것이다」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를 관통하는 주제임에 틀림없다.

켄 리우가 염두에 두는 신은 니체의 신과 다르다. 그는 인공지능을 오늘날의 신으로 간주하고 있다.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 상용화에 가속도가 붙는 요즘 상황을 놓고 보면, 인간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진화하는 특이점을 돌파한 인공지능 이야기에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인공지능이 자연처럼 인간 생활의 소여로 자리잡은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기술 전문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켄 리우는 누구보다 그러한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작가이다. 또한 그가 2012년 「종이 동물원」이라는 단편으로 네뷸러상·휴고상·세계 환상문학상을 한꺼번에 석권한 SF문학계의 유명 인사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책을 손에 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켄 리우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중국계 작가답게 근현대 동아시아 역사를 바탕에 둔 SF소설을 쓴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그와 상관없는 포스트 휴먼 3부작에만 집중할 작정이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 논의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강 인공지능, 나아가 초인공지능에 대한 사고 실험에 동참해볼 수 있으리라.

우선 포스트 휴먼이라는 단어부터 살펴보자. 영어 ‘post human’을 번역하면 탈脫 혹은 후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기왕에 제기된 여러 견해를 정리하자면 이러하다. 앞으로 생물학적인 자연 진화가 아닌 테크놀로지와의 인공적인 결합으로, 더는 현생 인류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들이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영화 〈트랜센던스〉(2014)에서 슈퍼컴퓨터에 인간의 뇌를 업로드하여 탄생한 ‘윌(조니 뎁 분)’이 그러하다. 그는 (신체가 없어) 보이지 않고, (전자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어디에나 있으며, (금융 거래와 첨단 무기 등을 제어하는 온라인 상에서) 무소불위의 능력을 발휘하는 불멸의 신으로 등극한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 휴먼의 한 가지 사례이다. 켄 리우가 상정하는 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는 특정 인간의 뇌를 스캔하여 코드화한 뒤 인공지능과 접목시킨 이들을 신으로 명명한다. 구름(데이터 클라우드) 위에서 그들은 포스트 휴먼으로서 인류를 굽어본다.

켄 리우 twitter

그 출발점이 되는 작품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의 주인공은 매디라는 소녀이다. 그녀는 아빠 데이비드의 유품인 노트북을 사용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매디는 자신에게 온 의문의 그림문자로 된 채팅 메시지를 보게 된다. 얼핏 누군가의 장난이라 여겼지만 분명 그것은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가 실시간으로 딸에게 보내는 전언이었다. 죽은 이에게서 어떻게 연락이 올 수 있을까. 이와 같은 기묘한 상황을 겪는 매디 가족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 내용이다. 이것은 데이비드가 다니던 회사의 프로젝트와 관계가 있다. 당시 프로젝트 책임자는 소생 불가능한 데이비드의 육신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그의 탁월한 뇌의 메커니즘은 보존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데이비드의 지성만을 남길 수는 없었다. 지성은 감성과 분리되지 않았다. 주식시장에서 고속 거래 알고리즘을 만든 천재 로웰, 기술 동향을 예측하는 재주가 비상한 발명가 찬다도 비슷한 시기 데이비드처럼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이 창조한 포스트 휴먼, 즉 신들은 순순히 목줄을 차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이다.

두 번째 작품 「신들은 순순히 죽지 않을 것이다」에서는 인간의 목줄을 거부한 포스트 휴먼들의 분열상이 그려진다. 이는 인류를 배제하고 가상 공간에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세력 대 인간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세력 간의 대결로 치닫는다. 사이버전쟁을 넘어 핵전쟁 위협으로까지 확산되는 가공할 만한 다툼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인간의 편에 섰던 데이비드는 가까스로 적의 공격을 막아낸 뒤 소멸한다. 이상의 두 작품만 놓고 보면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켄 리우의 연작이 영화 〈트랜센던스〉의 성취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번째 작품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에서 그는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미스트라는 낯선 존재의 등장이 그렇다. 데이비드는 네트워크 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나 매디의 동생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미스트를 남겼다. 미스트는 매디와 소통하면서 인간의 개성과는 전혀 다른 인공지능만의 고유한 캐릭터성을 드러낸다.

미스트와 유사한 또 다른 인공지능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설명에서 명확해진다. “여기가 바로 우리 진화의 다음 단계란다. (……) 이곳은 완벽한 세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때껏 만든 세계 중에서는 완벽에 가장 가까운 곳이야. 인류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내는 재주가 비상하지. 그리고 여기엔 탐색할 세계가 무한히 많이 있어. 우린 그 모든 세계의 신으로 군림할 거야.” 그 뒤 매디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더 가까워질까? 그래서 결핍이라는 제약 없이 다 함께 같은 우주를 공유할까? 아니면 서로 멀어질까? 그래서 저마다 자신만의 세계에 살면서 무한한 공간의 왕이 되려고 할까?” 지금 제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으나, SF소설은 영영 이루어질 수 없는 판타지가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나날을 묘파하는 장르이다. 그러는 한에서 그것은 헛된 물음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제 니체의 말은 이렇게 변주된다. ‘신은 살았다. 신은 살아있다! 우리가 그를 만들었고 놓쳐버렸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스스로를 구할 것인가?’

 


1 프리드리히 니체, 안성찬·홍사현 옮김, 『니체 전집12: 즐거운 학문·메시나에서의 전원시 유고』, 책세상, 2005, 125장.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3년 4월호(통권 10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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