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이야기
정끝별
아이스커피 잔에 맺힌 물방울이 미끄러지자
하지의 저녁 창에 소나기가 들이쳤다
급히 닫힌 창 안은 꽃 속인 듯 깊고
창에 맺힌 빗방울이 폐포처럼 벌떡이다
물 끓는 소리를 내며 가쁘게 흘러내렸다
찬물에 해동되는 굴비가 비릿하고
한소끔 끓어오른 아욱국이 자욱하고
식탁엔 숟가락과 젓가락이 기다랗고
세찬 비는 흠뻑 젖은 귀갓길 신발들을
서, 서, 서, 창 안으로 다급히 쓸어 담고
- 정끝별 시집 『모래는 뭐래』(창비) 중에서
정끝별 시인은 1964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 시 부문에 「칼레의 바다」 외 여섯편의 시가1,9 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서늘한 패러디스트의 절망과 모색」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후 시쓰기와 평론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은는이가』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등이 있다. 현재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에 재직 중이다.
* 《쿨투라》 2023년 6월호(통권 10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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