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아기를 마중하는 노력: 김의경, 『헬로 베이비』(은행나무)
[문학 월평] 아기를 마중하는 노력: 김의경, 『헬로 베이비』(은행나무)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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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시행하는 사업 가운데 ‘남녀임신준비 지원’이 있다. 임신 준비 가정이 각종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남자의 경우는 가까운 의료 기관에 가서 정액 검사를 한다. 나는 작년 봄 검사와 상담을 받았다. 산부인과와 난임 치료에 특화된 규모가 큰 병원이었다. 합계출생률 0.78이라는 통계가 무색하게 그곳은 사람들로 붐볐다. 단번에 임신 출산계로 진입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속한 세계의 중심은 이제 내가 아니었다. 아직 오지 않은 아이를 맞기 위한 일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정액 검사 결과 후 의사로부터 정자 운동성이 낮아 임신이 쉽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피임을 중단하면 곧 임신에 성공할 거라고 여겼는데, 그러한 생각이 근거 없는 낙관임을 깨달았다. 아이는 내가 원한다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처럼 애타게 아이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부, 특히 30~40대 여성의 삶을 조명한 장편소설이 『헬로 베이비』이다. 『콜센터』로 2018년 수림문학상을 수상한김의경의 작품이다. 오랜만에 발표한 신작인데,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왜 이번 작품을 쓰는 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였다. 집에서 가까운 보건소에 찾아가 산전검사를 하고 반년이 지나 방문한 난임병원에서 예상치 못한 풍경과 맞닥트렸다. 뜻밖에도 그곳에는 아기를 간절히 바라는 여자들이 대기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와 같은 그녀의 경험이 이 소설에 핍진하게 담겨있다. 작가는 투명인간처럼 살아가는 난임부부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투명인간이라는비유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이다. 실제로 그녀는 아이가 없는 대로 살아도 되지 않느냐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난임치료를 하면서 아이를 낳으려는 태도를 집착으로 간주하는 이상한 분위기가 있다는 뜻이다.

임신과 출산이 개인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 작동하는 사건임을 『헬로 베이비』는 분명하게 드러낸다. 가장 오랫동안 난임치료를 받던 정효의 병리적 증상도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시대적 흐름에서 아이를 낳겠다는 열망, ‘임신 이전의 이야기’는 당사자의 절박함과는 별개로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여성들이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갈등도 존재한다고 봐요. 그러니 난임부부들은 갈수록 입을 다물게 되죠.”(주간조선, 2023년 4월 16일 작가 인터뷰) 이는 입장이 다른 여성 간의 갈등에 그치지 않고, 여성주의의 스펙트럼이 다채로울 수 있음을 가리킨다.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여성관에 가려진 여성의 발언권을 존중하는 일 또한 여성주의의 한 갈래이다. 이를 위하여 작가는 변호사·회사원·기자·수의사·가정주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을 소설에 등장시킨 옴니버스 형식을 차용한다. 이들은 따로 또 같이 난임, 그리고 난임을 둘러싼 사회적 공기에 절망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설 제목인 ‘헬로 베이비’는 그들의 단체 채팅방 명칭이다. 각자 사연은 달라도 이들은 임신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위로를 얻는다.

변호사로 일하는 여성은 혜경이다. 그녀는 2년째 난임병원에 다니고 있다. 시험관은 아홉 번 실패했다. 근종수술을 앞두고 혜경은 무심하게 구는 남편에게 울먹이며 말한다. “2년 동안 난임병원 다니면서 회사 화장실에서 내 손으로 배에 주삿바늘 찔러넣고 수면마취 하고 난자 채취하고 배아 이식하고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데 당신은 정말 그게 뭔지 하나도 모른다는 거야?” 그녀의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남편만이 아니다. 회사원인 지은의 경우가 그렇다. 그녀의 남편은 든든한 지원군이다. 남편은 난임이 자신의 폐쇄성 무정자증 때문임을 시아버지에게 당당하게 밝힌다. 더불어 “마취를 하고 고환을 찢어 정자를 채취하는 것은 꽤 아프다던데 집에와서도 엄살을 떨지 않았다.” 그렇지만 회사 동료들은 달랐다. 사내 익명게시판에 공개된 난임휴가를 사용하는 여성을 저격하는 글과 거기에 달린 댓글이 그러하다.

“나중에 출산휴가 육아휴직까지 다 쓰고 퇴직금 받으며 그만두겠지? 애 낳은 게 무슨 벼슬이라고. 진짜 여자의 수치다.” 기혼자가 많은 여초 회사임에도 난임 치료를 받는 여성을 향한 공감 여론은 찾을 수 없다. 이것이 임신 9주 차에 계류유산을 한 지은이 소파수술을 받고 돌아온 날 맞이한 상황이다. 그녀는 임신과 유산을 회사 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끝내 사직서를 제출한다. “지은은 회사를 그만두는 날까지도 익명게시판에서 저격당한 선배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임신과 출산이 개인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 작동하는 사건임을 『헬로 베이비』는 분명하게 드러낸다. 가장 오랫동안 난임 치료를 받던 정효의 병리적 증상도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시대적 흐름에서 아이를 낳겠다는 열망, ‘임신 이전의 이야기’는 당사자의 절박함과는 별개로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독자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출간 자체로 의의가 있다. 합계출생률 0.78명 프레임에서 배제된 난임 담론을 전면화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수의사 소라의 선택도 임신과 출산 담론의 폭을 넓힌다. 비혼인 그녀는 난자 냉동을 해두었으나 정자 기증을 받아 아기를 가질 수 없다. “국내에서는 법적인 부부에게만 정자 기증을 허용하고 있었다. 현행법상 배우자가 없으면 정자를 기증받을 수도 없었다.” 가족 형태의 다변화가 가속화하는 세태에 역행하는 정책을 언제까지 그대로 유지할지 진지한 정치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가령 방송인 사유리와 젠 모자의 사례를 별종으로만 취급하는 한, 한국에서의 임신과 출산 담론은 진전되지 못할 것이다.

작가는 “누군가 왜 아기를 낳으려 하느냐고 묻는다면 말문이 막힌다. 그냥 ‘만나고 싶다’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혹시 만나게 된다면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고 싶다.”라고 작가의 말을 마무리한다. 왜 아기를 낳으려 하느냐는 물음은 왜 사랑을 하려 하느냐는 물음과 같다. 대답하는 쪽에서는 ‘만나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고 답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진실인 까닭이다. 운 좋게 나는 아기와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고 있다. 의사와의 상담 후 느닷없이 아이가 찾아와 올해 4월 세상에 나와서다. 내가 산전검사를 받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아기의 탄생을 범상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지금은 안다. 아기와의 만남이 결코 범상하지도 당연하지도 않음을. ‘헬로 베이비’는 가벼운 인사가 아니라 지극한 환대이다.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3년 6월호(통권 10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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