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 진짜 가족이 되었다
[5월 Theme]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 진짜 가족이 되었다
  • 김보영(컨텐츠 기획자)
  • 승인 2019.04.26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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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출산, 입양의 과정 없이 가족과 비슷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사는 것을 유사가족이라 부른다면,

우리의 관계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맞으리라.

나의 유사가족 관계는 함께 살며 시작되었고,

떨어져 살면서 진화하는 중이다.

 

사람 셋 개 하나, 우리는 갑자기 가족이 되었다.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보증금 500만원, 월세 40만원 짜리 다세대 주택. 각자의 문제를 안고 있던 20대 중후반의 세 사람이 처음부터 서로를 가족으로 여긴 것은 아니었다. 진로와 연애 문제를 비롯해 감정적, 경제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한 집에 모여들던 것이 자연스레 동거로 이어졌다. 영화 <청춘스케치 The Reality Bites>를 보고 서태지와 너바나의 음악을 듣고 자란 7말8초 세대, 그것도 홍대를 기반으로 “가난하지만 충만한 우리”에 취해있던 세 사람의 공간은 집이라기보다 히피 공동체나 쉼터shelter에 가까웠다. 공식적으로는 셋이 나눠 내기로 한 월세와 관리비는 그 달에 돈이 있는 사람이 냈고(혹은 안 내기도 했고), 각자의 방이 있었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방에서나 생활했다. 유일한 직장인이었던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동거인들이 전날 밤 데려온 친구들과 마주치는 게 일상이었으니, 의도치 않았으나 그 집의 슬로건은 “지치고 상처받은 자 응암동으로 모이라”가 되었다.

 집을 드나든 수많은 친구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셋이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 것은 개 한 마리 덕이라 하겠다. 따지자면 나에게 딸려 있는 식구였지만 출장이 많은 주양육자 대신 개를 돌본 건 주로 동거인들이었다. 그렇게 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 개는 자유와 무질서가 뒤범벅된 15평 남짓의 집에서 자애로운 큰언니, 일하느라 바쁜 둘째, 예술가를 꿈꾸는 막내, 그리고 집안에 드나드는 모 든 이가 한심스러운 개의 역할을 수행하며 나름의 평화를 누리고 살았다.

 

헤어지고 나서 우리는 서로의 주양육자가 되었다.

 우리가 영원히 20대일 수는 없었다. 성인이 되어 부모에게서 독립하듯 우리는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레 응암동 쉼터를 떠났다. 헤어지는 과정은 독립이라기보다 이혼에 가까웠는데, 함께 사는 동안 세탁기 하나, 냉장고 하나, 가스레인지도 하나였기에 가장 나중에 집을 나온 나는 빈 집에 버려진 강아지 마냥 참치 캔과 빵을 먹으며 일주일가량을 지내기도 했다. 혼자만의 공간과 자신만의 규칙이 필요해 선택한 이별이었지만, 간단하게 헤어질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을까. 시간차는 있었지만 우리가 구한 집은 같은 골목 안에 있었고, 원하면 언제든 서로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좁은 집으로 이사한 개에 대한 책임감을 함께 나누며, 우리는 함께 살 때보다 단단해진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양육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후에도 여러 번, 응암동에서 상수동으로, 합정동과 망원동으로 이사했지만, 한 번도 10분을 넘지 않고 언제든 달려올 수 있는 거리를 유지했다. 친한 친구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다. 개가 수술을 앞두고 입원해 있을 때 수술비를 보태고, 시간이 지 나 그 개가 큰 병에 걸렸을 때 일주일 단위로 죽을 쑤어 배달해주고, 막내의 (친)동생이 방황할 때 함께 나서서 잔소리를 하고, 애인과 헤어져 괴로워할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으로 납치해 먹이고 재우는 행동이 모여 우리를 가족으로 만들었다고 짐작할 뿐이다. 날카로운 20대였던 우리는 함께 나이 들며 이 해관계 없이 주고 받는 법을 배웠다. 대상은 정이기도, 음식이기도, 가끔은 돈이기도 했다. 자매가 없던 나에게 언니와 동생이 생긴 것이다.

 
가족은 변하고, 성장하고, 확장된다.

 우리는 여전히 10분 거리에 살고 있다. 15년의 시간은 각자의 직업도, 생활 방식도 바꾸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심리적, 육체적 혹은 사회적 방어선이 무너지기 직전에 서로를 찾는다. 우리끼리는 이를 “우쭈쭈” 시기라 부르는데, 문자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만으로 “우쭈쭈 경보”를 감지하고 달려올 수 있는 센서가 생겼다. 개는 한 마리에서 네 마리로 늘어났다가 현재는 개 세 마리(지난해 우리의 최초의 개가 떠났다)에 고양이 한 마리가 되었고, 월세도 못 내던 우리는 함께 해외여행을 갈 정도로 어른이 되었다.

 상황은 바뀌고 관계는 변한다. 우리가 언젠가 다시 함께 살게 될지, 혹은 언제까지 마포구 기반의 근거리 유사 가족으로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관계는 공짜가 아니다. 생득적 관계라고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듯 우리의 가족 관계 또한 애정에 기반한 노력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그 노력 중 하나가 적절한 시기에 헤어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에게 닥친 변화를 주시하며 방치하지 않은 것이다. 함께 살지 않았으면 서로를 알지 못했을 것이고,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서로를 아끼지 못했을 것이다. 식구의 정의가 한집에서 살며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지만, 한집이 아니어도 같이 살 수 있고 서로 다른 장소에서도 끼니를 함께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른바 문고리 정책으로 끼니를 나누는데, 동짓날엔 내 집 현관문에 팥죽이 걸려 있고, 막내의 생일엔 그 집 앞에 미역국과 잡채를 걸어두고 오는 식이다.

 현재의 나는 세 개의 가족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부모의 혼인과 출산으로 형성된 제1가족, 성인이 된 후 스스로 생성한 공동체 기반 제2의 유사 가족, 그리고 하나의 ‘가구’를 형성하고 있는 ‘나’만의 1인 가족. 이 중 어느 형태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직관하기에, 우르르 몰려 산 후 각자 혼자가 되었다가 근거리에서 서로를 돌보는, 나름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온 나의 제2가족에게서 이제는 ‘유사’라는 접두어를 삭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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