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칸영화제] 제76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해부
[2023 칸영화제] 제76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해부
  • 설재원 에디터
  • 승인 202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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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I C’EST CANNES! 소문난 잔치는 명성만큼 화려했다. 거장들의 귀환으로 기대감을 한껏 높였던 제76회 칸국제영화제는 이름값을 제대로 한 축제의 장이었다. 올해도 《쿨투라》 편집부는 칸을 찾아 생생한 영화제 현장을 리뷰한다.

올해의 영화제는 경쟁부문에서는 화제성과 대중성을 모두 거머쥔 성공적인 축제로 기록될 것이다. 올해의 선정작은 대체로 칸의 명성에 부합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간혹 이에 미치지 못했던 작품(〈디 아이돌〉 등)도 있었지만, 화제성을 확실히 높이며 축제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냈다.

올해 영화제의 돋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장편’ 영화 라인업이었다.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왕빙의 〈청춘〉과 누이 빌게 제일란의 〈건초에 대하여About Dry Grasses〉는 각각 212분과 197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그리고 특별상영에 이름을 올린 스티브 맥퀸의 다큐멘터리 〈점령된 도시Occupied City〉의 러닝타임은 무려 262분이다. 러닝타임으로 화제를 모은 세 작품은 작품성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영화적 경험과 극장 경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지금, 칸은 시리즈와 OTT영화의 극단에 있는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며 전 세계 영화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올해의 최고작
황금종려상 〈추락의 해부〉

올해의 경쟁부문 선정작은 칸영화제라는 이름에 걸맞은 작품 수준을 보여주었고, 최근 몇 년 간 가장 논란이 적은 수상 결과와 함께 막을 내렸다.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프랑스의 여성 감독 쥐스틴 트리에의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에 주어졌다. 여성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고, 단독 수상으로는 2021년 〈티탄〉의 쥘리아 뒤쿠르노에 이어 2년 만에 이룬 두 번째 쾌거이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첫 번째 여성 감독은 1993년에 〈패왕별희〉의 천카이거와 공동수상한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이다.

〈추락의 해부〉를 성공으로 이끈 가장 큰 원동력은 매력적인 각본의 힘이다. 필자도 참여한 《인디와이어》의 전 세계 5대륙 60인의 전문가 설문에 따르면, 올해 상영된 장편영화 전체 중에서 〈추락의 해부〉가 홀로 30%의 표를 독차지하며 최고의 각본으로 뽑혔다. 계단에서 통통 떨어지는 공으로 시작하는 〈추락의 해부〉는 남편 사뮈엘(사무엘 테이스 분)의 의문사로 인한 가족의 파괴를 냉정하게 추적하는 법정물이다.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아내 상드라(산드라 휠러 분)는 프랑스인 소설가 남편을 따라 그르노블로 이주한 독일 작가이다. 그녀에게 사뮈엘의 죽음은 위태롭게 지속해오던 부부 관계의 끝이며 가족의 파괴이다. 상드라는 자신이 소설에 쓴 것처럼 남편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뒤집기 위해, 그리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뮈엘의 죽음이 자살임을 입증해야 한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쥐스틴 트리에 ⓒAFP

작품의 묘미는 사뮈엘이 어떻게,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불분명한 사건이 아들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너 분)을 깊은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데 있다. 감정적으로 절제된 채 차갑고 건조한 재판의 가장 큰 희생자는 다니엘이다. 상드라와 사뮈엘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시발점은 사뮈엘의 실수로 다니엘이 시력을 거의 잃게되는 사건이다. 다니엘을 둘러싼 사뮈엘의 죄책감과 상드라의 원망감에서 비롯된 부부관계의 파탄은 다니엘에게 사라진 시력 이상으로 깊게 파인 상처이다. 법정에서의 날선 공방 속에서 카메라는 다니엘에 초점을 맞추고, 다니엘은 아버지의 사인을 추측한다. 서사 속에서 다니엘의 심리는 상드라와 사뮈엘 사이에서 흔들리고 무너져 내린다.

이 과정에서 각본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작품에서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진술 번복이다. 특히 상드라가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다니엘과 죽은 사뮈엘까지도 보호하기 위해 후반부에 진술을 바꿀 때 펼쳐지는 치밀한 심리 묘사는 가히 압권이다. 오디오 파일을 통해 비로소 밝혀지는 사망 전날의 대화는 다니엘을 고통의 절벽 끝에서 추락시킨다. 감독의 전작 〈시빌〉에서 주인공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와 치유가 극의 중요한 동력이었듯, 이번 작품에서도 ‘추락의 해부’ 가장 깊은 곳에는 다니엘의 트라우마와 치유가 자리한다.

또한, 〈추락의 해부〉는 황금종려상에 이어 팜독어워즈Palm Dog Award의 최고상까지도 휩쓰는 진기록을 세웠다. 사무엘의 시신을 처음 발견할 때부터 다니엘과 늘 함께하고, 그의 치유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스눕 역의 보더콜리 메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팜독으로 선정되어 올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개로 이름을 남겼다.

《르 필름 프랑세》 종합 평점
《스크린 인터내셔널》 종합 평점

심사위원의 선택
최고의 화제작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낙엽들〉

심사위원대상(그랑프리)의 주인공은 조나단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이다. 공교롭게도 원작 소설을 쓴 마틴 에이미스는 프리미어 상영이 진행된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올해 최고의 논쟁작인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차분하게 홀로코스트를 다루고 있는 섬찟한 작품이다. 영화의 시선은 홀로코스트의 잔혹한 학살이 아니라, 수용소 앞에 사는 부역자의 가족의 삶을 향한다. 홀로코스트의 악령은 끔찍한 범죄 현장과 무관해보이는 가족의 삶을 쫓고 있으나, 이들은 무감각하며 규범에 맞게 ‘열심히’ 살아간다.

이번 작품 역시 글레이저답게 이미지의 홍수가 프레임에 넘쳐 흐르고, 어마어마한 기호들이 폭풍처럼 몰아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영화제 내내 수많은 시네아스트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나,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해도에 있어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유럽과 비유럽권 베이스 사이에는 작품 수용에 있어 미묘한 간극이 존재했다. 아무래도 나를 포함한 비유럽권 기반(북미권조차)의 여러 기자, 평론가들은 작품에 깊게 몰입하여 빠져들었음에도, 방대한 정보량에 허우적대며 여러 궁금증을 안게 되는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글레이저의 미학적인 화면과 구조는 분명 깊은 울림을 주었고,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 뒤에 깔린 비명과 울부짖음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귓가에 진동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사운드 디자인을 맡은 조니 번은 2018년까지 벌칸상이라는 이름으로 시상했던 CST 테크니컬 아티스트 어워드를 차지하기도 했다.

〈토니 에드만〉으로 이미 검증된 ‘믿고 보는 배우’ 산드라 휠러는 〈추락의 해부〉와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엄청난 연기를 보였지만, 너무 뛰어난 작품 탓에 연기상을 놓쳤다. (최근 칸영화제는 한 작품에 하나의 상만 수여하고 있다.) 송강호가 〈기생충〉 이후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듯, 산드라 휠러도 가까운 미래에 여우주연상을 받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조나단 글레이저 ©VALERY HACHE

2017년 〈희망의 건너편〉을 끝으로 은퇴 선언을 했던 핀란드를 대표하는 감독 아키 카리우스마키는 신작 〈낙엽들Fallen Leaves〉로 심사위원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천국의 그림자〉(1986), 〈아리엘〉(1988), 〈성냥공장 소녀〉(1989의 프롤레타리아 3부작을 잇는 이번 작품은 암울한 세상 속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는 따스한 ‘로맨틱 코미디’이다. 81분의 담백한 러닝타임동안 날카로운 시선을 유쾌한 서사로 풀어낸 〈낙엽들〉은 영화제 주요 데일리 중 하나인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최고 평점을 받기도 했다.

안사(알마 포위스티 분)는 슈퍼마켓에서 노숙자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나눠주다 해고되고, 곧이어 취직한 펍에서도 사장이 마약거래로 체포되면서 빈털터리가 된다. 그녀가 라디오를 켤 때마다 들려오는 뉴스는 모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에게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눈앞에 닥친 두려움이자 암울함 그 자체이다. 우울해만 보이는 상황 속에서 안사가 건설 노동자 홀라파(주시 바타넨 분)를 만나며 카리우스마키 식 로맨스가 펼쳐진다. 외로운 두 사람의 로맨스는 어색한 불협화음으로 매번 위기를 맞지만 그럼에도 작품에서 주목하는 것은 희망의 가능성이다. 또한, 작품 곳곳에서 발견되는 브레송과 고다르, 비스콘티와, 오즈 야스지로, 찰리 채플린, 짐 자무쉬에 대한 애정은 〈낙엽들〉의 또다른 즐거움이며, ‘영화보기’를 통해 우울한 일상에서도 소소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도당 부팡의 열정> ⓒGAUMONT

그밖의 수상작들

감독상과 각본상은 베트남 출신의 프랑스 감독인 〈도당 부팡의 열정The Pot Au Feu〉의 쩐 아인 훙과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괴물〉의 사카모토 유지가 차지했다. 〈그린 파파야 향기〉(1993)로 황금카메라상(칸영화제의 신인감독상)을 받으며 영화계에 데뷔한 쩐 아인 훙은, 미식가 도당(브누아 마지멜 분)과 셰프 유지니(쥘리엣 비노슈 분)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무려 30년만에 칸에서 상을 받았다. 이번 작품은 〈그린 파파야 향기〉와 달리 완전한 프랑스영화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에서 태어난 감독이 가지고 있는 아시아적 시선이 작품에 녹아있긴 하지만, 이를 장점으로 살리기 보다는 프랑스의 영화 전통에 충실한 작품이다.

마르셀 루프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도당 부팡의 열정〉은 벨에포크 시대를 배경으로 실존 인물인 브리야사바랭Jean Brillat-Savarin의 이야기를 고풍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도당은 하루종일 음식만 생각하고, 유지니는 도당의 생각을 최고급 음식으로 구현해 낸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볼거리는 호화스러운 주방을 배경으로 한 두 배우의 호연이다. 도당과 유지니의 비밀스러운 사랑은 과거 실제 연인이었던 브누와 마지멜과 쥘리엣 비노슈의 환상적인 연기로 완성되었다.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을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대감을 모았던 〈괴물〉은, 화제의 이유를 각본상 수상으로 증명해 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데뷔작인 〈환상의 빛〉(1995)을 제외하면 지난해 송강호에게 칸 남우주연상을 안긴 〈브로커〉까지 모두 스스로 각본을 써왔는데, 이번에는 일본의 인기 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 위에서 특유의 연출력을 발휘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기존의 고레에다의 우울한 담론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 올리는 힘이 있는데 어쩌면 그 부분이 사카모토 유지와의 협업에서 나온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괴물〉은 한 가지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의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사카모토 유지는 효과적으로 진실을 숨기고, 또 벗겨낸다. 두 사람이 만들어 낸 복잡한 구조와 혼란스러운 내러티브에서 관객은 ‘누가 괴물인지’ 쫓는다. 고레에다 감독의 장점인 아이의 시선 활용이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며, 작품 말미에는 퀴어코드를 부드럽게 담아내 퀴어종려상을 받기도 했다.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메르베 디즈다르와 시상자 송강호 ©VALERY HACHE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은 각각 빔 벤더스가 연출한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의 야쿠쇼 코지와 누리 빌게 제일란이 연출한 〈건초에 대하여〉의 메르베 디즈다르가 받았다. 일본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의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브로커〉에 이어 아시아 배우가 2년 연속 남우주연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 배우로는 14세의 나이에 〈아무도 모른다〉로 상을 받은 야기라 유야 이후 19년 만에 두 번째 남우주연상 수상이다. 

여우주연상은 〈건초에 대하여〉의 두 번째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소화한 메르베 디즈다르에게 주어졌다. 〈건초에 대하여〉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추락의 해부〉와 함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이어서 특히 애정이 가는 수상이다. 그리고 누리 빌게 제일란은 〈우작〉(2003)으로 두 명의 남우주연상 배우를 배출한 데 이어, 이번 작품으로 20년 만에 여우주연상 배우까지도 배출하는 멋진 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모두 2년 연속 아시아 배우가 차지하는 기록도 세웠다.

〈메이 디셈버〉 ©Rocket Science

주목할만한 비수상작

개인적으로 올해 수상 결과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2013년(66회) 이후 오랜만에 공동 수상이 사라진 점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심사위원대상과 심사위원상이 모두 공동 수상이었고, 여기에 75주년 특별상까지 신설하면서 상을 남발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러한 비판을 인식한 듯 올해는 공로상인 명예황금종려상을 제외한 본상은 모두 단독 수상이 이루어졌다.

때문에 평단의 호평에도 아쉬움을 삼킨 몇몇 작품이 눈에 띈다. 특히 경쟁부문에 세 작품이나 이름을 올린 이탈리아 영화계는 속이 쓰릴 것이다. 그중 마르코 벨로키오의 〈납치Kidnapped〉와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키메라La Chimera〉는 다른 해였다면 수상을 노려볼만한 작품이었다. 벨로키오의 은퇴작 〈납치〉는 교회 역사상 최대의 스캔들 중 하나인 모르타라 납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스필버그가 연출을 맡을 뻔했던 이 작품은 벨로키오의 손을 거쳐 더욱 ‘이탈리아’적으로 변모하였으며, 실제 역사적 사실을 건조하게 다루었다. ‘하늘의 파이’를 뜻하는 영화 〈키메라〉는 이룰 수 없는 꿈과 환상적인 약속을 은유한다. 에트루리아의 유물을 도굴해 팔아 넘기는 조직 툼바롤리를 통해 펼쳐지는 서사는 누가 과거를 차지하는가에 대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으며, 이탈리아 영화 전통(특히 로셀리니)을 통해 이를 낭만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토드 헤인즈의 〈메이 디셈버May December〉도 빈 손으로 돌아가긴 아까운 작품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를 뜻하는 〈메이 디셈버〉는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섹스 스캔들에 기반하고 있다. 아쉽게도 무관에 그쳤지만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토드 헤인즈에게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끊임없이 뒤바뀌는 구조와 정밀하게 계산된 미장센의 아름다움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줄리안 무어와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는 두말할 것도 없었고, 이에 밀리지 않은 한국계 배우 찰스 멜튼 또한 놀라운 연기를 펼쳤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올해의 발견은 라마타 툴라예 사이의 〈바넬과 아다마Banel & Adama〉이다. 페미스를 졸업한 세네갈의 신성 라마타 툴라예 사이는 올해 경쟁작 중 유일한 신인 감독이다. 세네갈 사회의 구조적 차별 속 로맨스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자칫 흔한 이야기로 빠질 법한 주제를 아프리카의 위대한 배경을 바탕으로 힘있게 끌어가고 있다. 특히 작품 후반에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며 〈바넬과 아다마〉는 스스로 경쟁작 선정 이유를 증명하였다.

수상자 단체사진.

이어지는 유럽영화의 강세

수상 결과를 종합하면, 올해도 유럽영화가 영화제를 지배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프랑스는 〈추락의 해부〉로 〈티탄〉 수상 이후 2년만에 황금종려상을 되찾았고, 쩐 아인 훙이 감독상도 차지하면서 기분좋게 축제를 마무리했다. 심사위원대상과 심사위원상도 조나단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영국)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낙엽들〉(핀란드)에 각각 주어지면서 유럽영화가 본상 주요부문을 휩쓸었다. 네 작품 모두 올해 칸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작품들로, 유럽영화의 ‘이유있는 강세’를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알렸다.

아시아영화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기상을 모두 가져갔고, 여기에 각본상을 더했다. 특기할 점으로는 아시아영화는 상영 일정이 초반에 몰려 있었다. 경쟁작이 상영되는 첫 날인 개막 다음 날에 〈괴물〉, 둘째 날에 〈청춘〉, 셋째 날에 〈건초에 대하여〉가 연달아 상영되었고,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는 영화제의 막바지인 25일 목요일에 상영되었다. 영화제의 시작과 끝에 프리미어 상영을 하면 수상에 불리하다는 풍문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시아영화는 네 작품 중 세 작품이 보란듯이 수상에 성공했다. 아시아영화의 또다른 성취는 〈노란 고치 껍질 안에서Inside the Yellow Cocoon Shell〉의 황금카메라상 수상이다. 팜 티엔 안의 〈노란 고치 껍질 안에서〉는 영화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베트남에서 피어난 보석 같은 작품으로, 베트남 영화계는 〈그린 파파야 향기〉 이후 30년 만에 황금카메라상을 거머쥐는 경사를 껴안았다. 특히 이 작품은 공식부문에 초청받지 못하고 감독주간에 이름을 올려 영화제 시작 전까지만해도 황금카메라상의 후보로 큰 기대를 모으지 못했다. 그럼에도 감독이 포착하는 시선과 작품의 유려한 완성도로 입소문을 타 ‘깜짝 수상’에 성공했다.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미국영화는 〈섹스하는 법How to Have a Sex〉이 주목할만한 시선상을 받으며 체면치레에 성공했다. 개인적으로는 〈섹스하는 법〉에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이 작품이 요즘 미국영화 스타일을 잘 살려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고 수상까지 성공한 점은 미국 아트시네마의 앞날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올해 미국 아트시네마의 선두주자인 토드 헤인즈와 웨스 앤더슨의 작품이 경쟁부문에 참여하며 큰 기대감을 안겼던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결과인 것은 분명하다.(범위를 넓히면 심사위원대상의 〈존 오브 인 터레스트〉에 영국, 폴란드와 함께 미국 프로덕션도 참여했다.) 최근 몇 년동안 유럽영화가 선두에 서고 그 뒤를 아시아영화가 바짝 따라 붙으며, 저 멀리서 미국영화가 쫓는 형국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폐막식이 끝나면 유럽영화 편중 현상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적어도 올해는 그러한 논란에서 자유로울 듯하다.수상에 실패해 아쉬운 작품도 여럿 보이지만, 그럼에도 본상 수상작은 하나같이 반짝이는 수작들이다. 올해 칸 영화제는 근래의 가장 좋은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싶다. 12일간의 영화 축제를 즐겁게 만든 훌륭한 작품들의 향연과, 이에 부응하듯 뤼미에르대극장을 가득 메운 영화인들의 모습은 영화의 위기 속 영화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했다. ‘영화의 위기’ 시대에 영화는 또 다시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1 Blauvelt, C. (2023). The Best Movies of the 2023 Cannes Film Festival, According to 60 Critics. IndieWire. https://www.indiewire.com/criticism/movies/2023-cannes-critics-survey-zone-of-interest-fallen-leaves-1234868716/


사진제공 칸국제영화제

 

 

* 《쿨투라》 2023년 6월호(통권 10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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