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칸영화제] 칸영화제를 수놓은 일곱 빛깔 K-무비
[2023 칸영화제] 칸영화제를 수놓은 일곱 빛깔 K-무비
  • 손정순 편집인, 설재원 에디터
  • 승인 202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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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무려 7편의 작품이 칸영화제를 찾았다. 지난해 경쟁부문에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 두 편이 올라 모두 본상을 수상했기에 올해 경쟁부문에 한국영화가 한 편도 없는 점은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전 부문에 걸쳐 장편 다섯 작품과 단편 두 작품이 고르게 선정된 것은 한국영화의 높은 위상을 잘 보여준다.

〈잠〉 월드프리미어 상영

스크린을 가득 채운 긴장감
〈잠〉과 〈탈출〉

올해 한국영화는 영화제 중후반에 상영 일정이 몰려 있었는데, 그 시작은 비평가주간에 이름을 올린 유재선 감독의 〈잠〉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소개되며 칸에서도 주목을 받은 유재선 감독은, 현수(이선균 분)가 잠에 빠지며 시작되는 신혼부부의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풀어 냈다. 현수가 수면 중 이상행동을 벌이며 시작된 사건은 가정을 지키기 위한 현수와 수진(정유미 분)의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기묘한 서스펜스를 형성한다. 작품에서 이선균과 정유미 두배우의 호흡이 돋보이며, 긴장감 넘치는 플롯 속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요소가 빛난다. 특히 〈잠〉은 섬뜩함을 배가시키는 독특한 사운드디자인이 아주 흥미롭게 표현하였으며, 반대 구도를 활용하여 매력적인 미장센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잠〉을 꼭 극장의 큰 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로 즐겨야 하는 이유이다.

김태곤 감독의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는 비경쟁부문의 미드나잇 스크리닝으로 칸을 찾았다. 비경쟁부문에 선정된 만큼 대중성과 재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복제견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탈출〉은 공항대교에 고립된 사람들의 생존기로 인물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요소에 재난을 결합한 한국형 재난물이다. 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하던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실험견 ‘에코’ 시리즈가 풀려나면서 공항에서 나오던 여행객들이 위험에 빠지고, 함께 힘을 모아 위기에서 탈출한다. 이선균, 주지훈, 김희원, 문성근, 박희본 등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하여 다양한 인간 군상과 각자의 사연을 현실감있게 전달하며, 자욱한 안개 속에서 펼쳐지는 긴장감 넘치는 액션으로 영화적 쾌감을 표현해 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하는 공항대교 장면을 전부 그린스크린에서 촬영하였는데,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자연스러운 CG 활용이 돋보인다.

코리안 아트시네마의 현주소
〈화란〉과 〈우리와 함께〉, 그리고 〈거미집〉

주목할 만한 시선에 이름을 올린 김창훈 감독의 〈화란〉은 한국 누아르 영화의 계보를 잇는 강렬한 작품이다. 〈화란〉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연규(홍사빈 분)가 치건(송중기 분)을 만나며 벌어지는 ‘지옥 속’ 이야기이다. 작품의 제목인 ‘화란’은 네덜란드를 의미하며 주인공 연규가 꿈꾸는 희망의 공간으로 연규와 치건, 하얀(김형서 분)의 공간인 명안과 반대되는 곳이다. (〈화란〉의 영문 제목이 ‘Hopeless’라는 점을 다시금 주목하게 된다.)

노골적인 폭력의 현장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화란〉은 희망이 사라진 이들의 절규와 꿈을 차갑고 건조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연규와 치건, 연규와 하얀 사이의 묘한 심리 묘사를 통해 김창훈 감독은 가족에 대한 또다른 화두를 던진다.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배어 있으면서도 쉼없이 진동하는 카메라의 호흡이 깊은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홍상수 감독의 〈우리와 함께〉는 감독주간의 폐막을 장식했다. 홍상수 감독의 서른 번째 작품인 〈우리와 함께〉는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스물 다섯 컷 내외의 ‘홍상수’ 영화이다. 전작 〈물 안에서〉가 윤곽선을 흐뜨리며 새로운 시도를 보인, 조금은 ‘튀는’ 작품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다시 홍상수 감독 본연의 스타일로 돌아가 구조적 즐거움을 한껏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섯 개의 장은 각각 상원(김민희 분)과 의주(기주봉 분)의 이야기를 교차로 보여주는데, 언제나 그렇듯 두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다. 첫째 장과 둘째 장에서 ‘거실-침실-계단-거실-밖’의 구조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상원과 의주 모두에게 선물을 들고 손님이 찾아오면서 그들의 과거가 드러난다. 이어 이 구조를 변주하고 반복하면서 상원과 의주의 이야기가 뒤섞이고, 숨겨진 진실, ‘오답일 수밖에 없는 진실’에 다가간다.

오랜만에 칸을 찾은 홍상수 감독은 여전한 인기를 자랑했다. 폐막식과 이튿날 Q&A까지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으로 감독주간 측에서 홍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극장을 찾은 관객은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그의 전작들에 대한 메타포에 미소지었고, 그 유명한 ‘가위 바위 보’가 나오자 탄성과 환호를 보내며 감독에 대한 진한 애정을 표현했다.

영화제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은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이다.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 이어 15년 만에 비경쟁부문에 세 번째로 찾은 김지운 감독의 신작 〈거미집〉은 검열이 존재하던 70년대의 영화 현장을 그린 블랙 코미디이다. ‘영화 만들기’에 대한 김지운 감독의 애정이 가득 담겨있는 작품이며, 무심하게 튀어나오는 유머코드와 적절한 팝송 활용은 〈조용한 가족〉(1998)이나 〈반칙왕〉(2000) 등 그의 초기작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한정된 공간을 탁월하게 활용하는 김지운 감독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세트장을 무대로 정신없는 촬영 현장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왔다.

배우들의 환상적인 호흡도 눈에 띈다. 지난해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가 김기열 감독으로 분해 중심을 잡고, 주위에서 정수정, 전여빈, 임수정, 박정수, 장영남, 오정세 배우가 마음껏 스크린을 휘젓는다. 특히 ‘배우’를 연기한 정수정, 임수정, 박정수, 오정세 배우는 흑백화면에서 더욱 더 강한 에너지를 내뿜었다. 이들을 둘러싼 세트장의 디테일한 미술과 아름다운 화면 구성도 놓쳐서는 안될 〈거미집〉의 또다른 강점이다.

〈홀〉 영화진흥위원회 제공
〈이씨 가문의 형제들〉 한국영화아카데미 제공

국가대표 학생영화
〈홀〉과 〈이씨 가문의 형제들〉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라 시네프(시네파운데이션)에는 황혜인 감독의 〈홀〉과 서정미 감독의 〈이씨 가문의 형제들〉이 상영되었다. 라 시네프에 한국영화가 초청된 것은 2021년 윤대원 감독의 〈매미〉 이후 2년만이다.

라 시네프 수상자들. 오른쪽이 황혜인 감독 ©Joachim Tournebize_FDC

황혜인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졸업작품인 〈홀〉은 남매의 집을 방문한 사회복지사가 아이들에게 방 안의 커다란 맨홀에 들어갈 것을 제안받으며 벌어지는 24분짜리 단편 스릴러이다. 〈홀〉은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2009) 이후 14년 만에 칸에 진출한 KAFA 작품인데, 2년 전 〈매미〉 이후 두 번째 2등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아직 한국영화가 라 시네프에 서 대상을 받은 적은 없다.

서정미 감독

서정미 감독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작품인 〈이씨 가문의 형제들〉은 구시대적인 가부장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가족의 추억이 모두 담긴 시골집이 집에 대한 추억이 전혀 없는 장손에게 넘어가 외지인에게 팔린 상황에서, 남은 이씨 가문 형제들이 새로운 집에서 집안의 무형 가치를 이어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작품은 2021년부터 매년 칸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2년 전 수상에 성공한 〈매미〉의 윤대원 감독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이다.


세계영화제 속 한국영화의 흐름

올해 선정된 한국영화의 경향을 살펴보면 모두 ‘오리지널 한국영화’라고 할 수 있다. 장편 5편과 단편 2편 모두 한국감독이 만든 한국영화이며, 대체로 한국영화의 흐름 안에 있는 작품들이다. 이점은 앞선 베를린영화제와 지난해 칸영화제 등 팬데믹 이후의 선정작들을 돌아보게 한다.

지난해 칸에 왔던 〈브로커〉와 〈리턴 투 서울〉은 외국감독이 한국배우와 함께 한국을 배경으로 혹은 한국을 소재로 만든 작품이었다. ‘외국감독이 만든 한국영화’는 지난해 칸에서 핫한 주제였고, 두 작품은 각각 경쟁부문과 주목할만한 시선에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어 올해 2월에 열린 베를린영화제에는 셀린 송 감독의 〈전생〉과 말레네 최 감독의 〈조용한 이주〉가 있었다. 두 작품의 시선이 공통적으로 향하는 지점은 한국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자란 이민자의 삶이다. 두 감독은 모두 어린시절 이민을 떠난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냈고, 한국계의 정체성을 가진채 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모습이 작품에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번 영화제에서는 요근래 부상하던 합작영화가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이민자의 삶에 대한 메타포가 담긴 폐막작 피터 손 감독의 〈엘리멘탈〉(미국 프로덕션)이 있지만, 이를 제외한 일곱 편의 작품은 모두 순수 한국영화이다.

한국 영화의 밤에서 〈잠〉의 유재선 감독과 이선균 배우
한국 영화의 밤에서 〈잠〉의 유재선 감독과 이선균 배우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는 작품들의 크레딧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유럽영화는 여러 국가의 프로덕션이 함께 참여한 합작영화 형태이다. 한국에서는 60년대 후반부터 K-무비의 선구자격인 정창화 감독이 홍콩합작 액션영화를 여럿 찍었지만 한국영화 암흑기를 거치며 점차 자취를 감추었고, 90년대 영화중흥기를 거치며 다시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합작영화가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기생충〉의 성공과 K-콘텐츠 열풍으로 불어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 덕분에 최근 몇 년간은 이전보다 활발하게 합작영화가 제작되었고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성과를 냈다. 다양성과 다문화가 경쟁력이 되는 흐름 속에서 합작화는 한국영화의 글로벌화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영진위 기자간담회에서 박기용 위원장

이 부분은 한국영화계가 강력하게 추진중인 정책이기도 하다. 영화제 기간동안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프랑스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협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영진위는 프랑스국립영화영상센터CNC와 함께 ‘아시아영화 협력의 장려와 강화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주제로 한 패널 토론을 개최했고, 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프로, 몽골, 대만 등 아시아 7개국 영화기관 협력체인 AFANAsian Film Aliance Network 출범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미래를 위한 교육 분야에서는 KAFA와 페미스La Fémis를 주축으로 하는 한-프 아카데미를 추진해 관련 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냈다. 영진위 박기용 위원장은 한국과 프랑스의 영화산업 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이번에 프랑스 문예공로훈장을 받았다. 또한 한국과 프랑스의 대표적인 영화도시 부산과 칸이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서로의 비전을 공유하게 된 부분도 고무적이다.

폐막 전 영화인들과의 만찬왼쪽부터 하은선 기자,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 설재원 에디터, 손정순 발행인, 전찬일 평론가, 이향진 교수
폐막 전 영화인들과의 만찬
왼쪽부터 하은선 기자,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 설재원 에디터, 손정순 발행인, 전찬일 평론가, 이향진 교수

동시에, 순수 한국영화로만 꾸려진 올해 프로그램의 선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곱 편의 작품은 한국적인 정서가 묻어나고 스타일적으로도 ‘한국영화적인’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이 영화제에 초청받고 관객에게 선택받는다는 것은 세계영화의 지형도 내에 한국 스타일에 대한 수요가 단단히 자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예술영화의 축제 한가운데서 재미와 즐거움을 담당하는 영화로 〈잠〉과 〈탈출〉, 〈거미집〉을 선택한 점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한국영화의 전통에 대한 높은 선호도를 반영한 것이다. 이를 보면 한국영화의 흐름이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지 앞으로가 더 궁금해진다. 더불어 칸에서 성공적으로 첫 선을 보인 작품들이 〈범죄도시3〉가 불을 지핀 국내 극장가에 계속해서 활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자. 

 


 

사진제공 칸국제영화제, 설재원

 

 

* 《쿨투라》 2023년 6월호(통권 10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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