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더, 깊은, ‘진실’을 위해: 방민호, 『이광수 문학의 심층적 독해 - ‘근대주의’의 오독을 넘어』
[북리뷰] 더, 깊은, ‘진실’을 위해: 방민호, 『이광수 문학의 심층적 독해 - ‘근대주의’의 오독을 넘어』
  • 김혜원 인턴 기자
  • 승인 202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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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소설 『무정』을 집필한 이광수는 옛 관습에서 벗어난 근대 문학의 선두주자였고, 시, 수필, 희곡, 전기 등 여러 분야에서 우수한 작품을 남긴 인물이다. 1919년 2·8 독립 선언서를 썼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을 맡아 글을 쓰는 등 독립운동에도 참여했지만, 1921년에 일본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은 뒤부터는 변절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우리 민족을 비하하고 일제를 찬양하는 글을 작성하는 등 친일 행동에 앞장섰다.

이러한 그의 행적으로 인해 이광수 사후 그의 문학은 비평의 주요 대상이 되어왔고, 특히 『무정』을 중심으로 한 ‘근대주의’적 독해가 주를 이뤄왔다. 하지만 『이광수 문학의 심층적 독해 - ‘근대주의’의 오독을 넘어』의 저자 방민호는 『무정』의 탄생 이후 끊임없이 지속 되어 온 이광수에 대한 ‘근대주의’적 독해가 오독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그럼으로써 이광수와 그 문학에 대한 또다른 오해를 반복해서 낳고 있음을 밝힌다. 또한 ‘근대주의’적 해석 전통과는 다른 독해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이광수 문학에는 보다 더 깊은 ‘진실’이 있음을 말한다. 즉, 저자는 이광수 문학을 ‘근대주의’, ‘계몽주의의 세계’라고 규정하고 만족하는, 그것이 정답이라고 간주하는 모든 논의에 대해 그렇지만은 않다고 주장한다.

폴 드 만은 ‘모든 독해는 오독’이라 했다. 그의 책 『독서의 알레고리』는 독해 행위로서의 특정한 형태의 비평이 필연적으로 노정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논리화한다. 어떤 독해도 완전할 수는 없다. 모든 독해는 해석될 수 없는 여분을 남기며 숱란 오독의 역사를 거느린다. 때문에, 작품과 작가의 해석, 독해로서의 문학 연구는 마치 신화에 등장하는 시시포스의 형벌과도 같다. 신들을 속인 죄로 시시포스는 산꼭대기까지 커다란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 천신만고 끝네 바위를 정상 가까이 밀어 올리면 다시 바위는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그럼으로써 영원히 형벌은 되풀이된다.
- 「서문」 중에서, 본문 6쪽

그러나 이광수 문학은 식민지적 현대화 과정을 겪어 나온 비서구 사회의 문학인의 복합성을 보여주는 커다란 저수지다. 이 복합성을 해명하는 일은 옹호와 비판 이상의 탐구를 필요로 한다. 식민지 상태에 떨어지지 않은 사회였다 해도 서구적 현대성을 어떤 방향으로든 처리해야 했던 것은 비서구 사회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식민지 과정을 헤쳐 나와야 했던 비서구 사회들 가운데 한국은 일종의 예외적인 경험을 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은 서구 제국이 아니라 같은 동아시아의 일부인 일본에 강점된 나라였다. 일본은 비록 서구의 영향 아래 현대화 과정에 들어섰지만 시대적 추세에 발 빠르게 적응하면서 류큐를 복속시키고, 홋카이도에 진출한 데 이어, 한국을 식민지로 강점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 「이광수 문학, 다른 독해의 길」 중에서, 본문 223쪽

여기서 저자가 규정하는 ‘근대주의’는 복합적인 구성물이다. 일차적으로, 이광수 문학과 관련하여 이 ‘근대주의’는 이광수의 문학이 조선의 근대화를 추구하고자 한 그의 이상주의적 이념의 산물이었다고 보는 시각과 태도를 의미한다. 이 ‘근대주의’에 따르면 이광수는 육친의 고아, 조국 상실의 고아, 나아가 사상의 고아였다. 그런 그에게 근대화의 이념을 불어넣은 것은 근대 일본이었다. 두 차례의 일본 제도교육의 세례를 통해서 훈육·획득된 근대화의 이념은 이광수의 평생에 걸친 사고의 패러다임이자 문학 생산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이 광수는 서구 문학, 그리고 그것을 모점 삼아 형성된 일본의 문학을 따라 한국문학을 근대화하고자 했다.

다음으로, ‘근대주의’는, 이광수가 문학을 근대화하고자 했을 뿐 아니라 서구와 일본의 근대 자체를 이식, 모방, ‘번역’하고자 했음을 논의한다. ‘근대주의’는 이광수의 문학을 일본의 근대문학에 대한 이식이나 모방, ‘번역’으로 보려는 시각을 뜻하며, 이광수의 능동적, 비약적 창작 과정을 그러한 개념 아래 제약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광수는 당대의 각종 근대화 담론들, 사회 진화론이나 문명 등급론 등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으며, 그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식민지적 근대화론’이라 불리는 사고를, 그 패러다임을 내재화하고 있었다.

이 책은 이광수의 문학이 서구와 일본 문화의 이식, 모방, ‘번역’이었다는 기존의 논의에서 벗어나 그의 고통스러운 창작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이광수는 조선적인 문학적 전통과 그 바깥의 것들, ‘동양’에 속한 사상과 ‘서구’로부터 온 사상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들, ‘소설’적인 양식과 ‘노블’적인 양식을 창조적으로 접합히켜 새로운 단계의 소설을 창조한 존재였다.

또한, 이광수 문학은 한국의 현대문학을 서구나 일본의 아류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 새로운 특이성을 가진 문학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 놓여있었고, 이인직과 이해조, 신채호 문학이 구축한 양식 접합의 전통을 새로운 차원에서 시도한 문학인이었다. 이 단계에서 이광수는 바로 자기의 ‘정’을, ‘사랑’을 창조했다. 『무정』에서 『재생』과 『흙』을 거쳐 『사랑』에 이르는 ‘정’의 문학, ‘사랑’의 소설들, 『마의태자』 『이차돈의 사』 『원효대사』의 ‘신라 삼부작’을 비롯한 역사소설들, 그리고 그의 독특한 자전적 소설들은 그의 문학이 단순한 모방, 이식, ‘번역’의 ‘증빙서류’가 아님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가 다양한 사상적·양식적 기원의 것들을 창조적으로 접합시켜 새로운 ‘발명’을 이룬 존재였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 《쿨투라》 2023년 6월호(통권 10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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