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에스터 감독] 머리를 왜 깨부수냐고요? 재밌잖아요!: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아리 에스터 감독
[아리 에스터 감독] 머리를 왜 깨부수냐고요? 재밌잖아요!: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아리 에스터 감독
  • 설재원 에디터
  • 승인 2023.06.2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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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에스터 감독이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들고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유전〉과 〈미드소마〉를 통해 전 세계 관객들을 공포에 떨게 한 아리 에스터 감독은 최근 호러영화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스타 감독으로,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소름 끼칠 정도로 섬세하게 영화적으로 전달한다. 지난 27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아리 에스터 감독을 만났다.

이번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인생unlived life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머가 있으면서도 불안과 긴장을 관객분들이 느꼈으면 좋겠고, 특히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가 이 작품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제 영화가 어렵고 복잡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놀라곤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제 작품은 되게 단순하고 쉽거든요. 관객에게 긴장감을 주고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저도 무서워하는 게 되게 많은데, 그런 것들을 영화에 다 집어넣으면 관객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웃음) 영화에 머리를 깨부수는 장면은…. 재밌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그런 장면들을 넣으면 좀 만족스러운 게 있어요.

사진 제공 싸이더스

그의 작품에는 공포스러움 뒤에 늘 ‘불편함’이라는 꼬리표가 함께 붙는다. 그의 작품에서 불편함을 마주하게 되는 이유는 그의 모든 작품이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가족을 통해 인물의 가장 밑바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 편의 제 영화는 어떻게 보면 모두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제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죽음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해 항상 이야기하려 한 것 같아요. 제가 이러한 주제에 왜 끌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계속 이 주제에 천착하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가족은 드라마의 원천으로서 소재를 많이 줄 수 있는테마인 것 같아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끊어낼 수 없는 관계라는 게 가족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제 작품 속 가족이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과 다르다는 말씀을 많이 하는데요, 저는 반대로 이렇게 질문하고 싶어요. 일반적인 가족이란, 그 보통의 가족은 어떤 모습인 걸까요? 아무리 건강해 보이는 가족이라 해도, 가족 관계라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그 안에는 뭐랄까 기대감도 있고, 실망과 스트레스 이런 것도 있어서 다 나름대로 힘든 게 있어요.

저는 그런 껍데기를 스토리텔링을 통해 한 겹씩 벗겨내면 가족이라는 것, 그리고 가족 관계의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주제가 일정 부분 제 모든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것 같고, 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을 가족답지 않은 모습으로 바꾸면 어떨까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가족과 의무감, 해방감 등을 다루고 있는데, 각 공간이 다른 공간들을 전부 다 비추는, 서로를 반사하는 거울의 방 같은 느낌을 주게 만들었습니다. 작품을 보시면 무슨 말씀이신지 아실 겁니다.

사진 제공 싸이더스

이번 작품은 앞선 〈유전〉이나 〈미드소마〉와 같은 전형적인 호러영화의 전통에 있는 영화가 아니다. 작품에 호러영화의 특징이 일정 부분 묻어나지만,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그렇게만 한정한다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이번 작품은 공포에 질린 보의 하루를 통한 아리 에스터 감독식 초현실적인 오디세이에 가깝다. 그는 이번 작품을 “유대인식 오디세이”라고도 표현했는데,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 있는 혹은 터무니 없는 은유와 불쾌한 코미디가 눈에 띈다.

제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반지의 제왕〉의 유대인 버전이라고 말한 적이 있기는 한데 그건 되게 농담처럼 얘기한 거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반지의 제왕〉을 언급할 필요가 있었나 싶어요. 이미 〈반지의 제왕〉은 유대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제 작품을 〈반지의 제왕〉의 유대인 버전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거죠. 좀 다른 비유였으면 나았을 텐데 말이죠.

이번 영화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방대하고 정교한 유대인들의 농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어머니가 조금 신격화되어 신적인 존재로 나오는데 그러한 부분이 유대인의 문화나 그런 생각들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뭐랄까 신화의 무게를 표현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토리텔링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신화의 발생과 전파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아요. 지루하거나 평범할 수 있는 일상을 조금 더 고차원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달까요?

사진 제공 싸이더스

이번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는 179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으며 극을 이끌었다. 정서적으로 강하게 억압된, 그래서 강렬함을 보여주는 캐릭터와는 거리가 있는 보를 연기하면서도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보를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호아킨 피닉스가 작품의 컨셉에 대해 너무 잘 이해하고 있어서 별다른 주문이 필요 없었습니다. 촬영 전에 시나리오를 두고 대화를 정말 많이 했고, 작품에 들어갔을 땐 우리가 이 영화에 대해 같은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걸 충분히 확인한 상태였어요. 오히려 너무 많은 얘기를 하고 촬영에 들어가서, 현장에서 놓치는 게 있으면 어쩌나 조심했죠. 그런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게 호아킨은 늘 생생하고 진정성 있는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배우입니다. 배우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참여하면 감독으로서도 이걸 잘 살려야겠다고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각본을 위한 각본, 대사를 위한 대사보다는 진정성 있는 내용을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호아킨과 작업하는 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사진 제공 싸이더스

아리 에스터 감독에게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유독 각별하다. 그의 작품 중 가장 그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본 작업에만 무려 10년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10여 년의 노력이 담긴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세상에 내놓은 감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제가 12년 전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잘 안됐어요. 그래서 서랍에 넣어놓고 좀 잊고 있다가 〈미드소마〉 마치고 다시 생각이 나서 읽어봤더니 바꿔야 할 부분도 있지만 쓸만한 부분이 꽤 있더라구요. 그래서 1년 정도 시나리오 작업을 했습니다.

이렇게 작업을 마치고 영화가 나오니까 시원섭섭한 것 같아요. 약간 공허함도 느끼는 것 같고요. 저는 보의 세상에 대해 굉장히 애착이 많았거든요. 저는 보의 입장과 세계관이 잘 이해가 되기 때문에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번 작업이 굉장히 즐거웠고, 제 모습이 많이 반영된 게 좋았기 때문에 앞으로 비슷한 작업을 한 번 더 해도 되지 않을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감사한 마음도 큰 것 같아요. 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이 작품을 이렇게 끝까지 잘 만들 수 있었다는 데서 감사한 마음이 크고, 제가 여태 만들었던 모든 작품 중에 가장 아끼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제가 이 영화를 더 잘 보호해 줘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좋아하는, 저를 가장 잘 반영하는 유머가 많이 들어있어요. 친한 친구들과 영화에 대해 얘기를 해보면 먼저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이 영화 되게 저 같다고, 제 성격이 영화에 많이 드러나는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 그리고 제가 두려워하는 것들 또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 들에 대해 좀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기회였던 점도 이 작품을 개인적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주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해요. 이번 작품을 끝까지 잘 해낸 것, 그리고 작품 자체에 대해서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진 제공 싸이더스

첫 내한이지만 아리 에스터 감독에게 한국이 낯설기만한 곳은 아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났어야 했다”는 농담을 던질 정도로 자타공인 한국영화 마니아이다. 특히 이번 내한 일정에는 아리 에스터 감독이 애정을 표현한 봉준호 감독과의 GV도 예정되어 있어 큰 기대를 모은다.

고전영화로는 김기영 감독님의 팬이고, 유현목 감독님의 〈오발탄〉도 정말 많이 좋아합니다. 최근에는, 그러니까 최근 30년 정도를 보면 이창동 감독님이 정말 뛰어난 감독이라고 생각해요. 봉준호 감독님과 박찬욱 감독님도 제가 팬이고요. 그리고 홍상수 감독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편안함과 위안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한국의 에릭 로메르랄까요? 그리고 장준환 감독님과 나홍진 감독님도 좋아합니다.

〈미드소마〉가 〈지구를 지켜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이건 조금 와전된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영화에서 영감을 받을 때가 많다고 얘기하면서 그 예로 〈지구를 지켜라!〉를 말했는데, 기사는 〈미드소마〉가 직접적으로 〈지구를 지켜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나왔더라고요. 그 부분은 조금 아쉬운 게있어요. 그렇지만 〈지구를 지켜라!〉는 제가 대학생때 정말 재밌게 봤던 영화입니다. 어떻게 한 편의 영화에 이렇게 다양한 영화 레퍼런스를 집약시킬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나오는 작품들은 뭐랄까 굉장히 한국적인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좀 다양한 시도를 하는 그런 작품이 많은 것 같고, 모험적이거나 실험적인 영화도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어떤 장르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규칙을 따르지 않고 더 자유롭고 과감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제가 많이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봉준호 감독님이나 박찬욱 감독님, 나홍진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되게 과감하게 장르를 해체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의 형식이나 구조를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입맛에 따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아서 인상적이에요. 영화적인 언어도 세련되고요.

이창동 감독님 작품은 문학적인 가치가 뛰어난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본다기 보다는 소설을 한 편 읽거나,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인물과 구조를 다루는 방식에서 정말 깊이가 느껴져요. 〈시〉도 그렇고 〈밀양〉, 그리고 〈버닝〉, 〈오아시스〉나 〈박하사탕〉 다 굉장히 미묘하면서도 복잡하고 깊이 있는 그런 영화들이라 제가 그런 점에 매료된 것 같아요. 사실 봉준호 감독님은 이전에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세요. 이미 제 작품을 보셨고 영화 재밌게 잘 봤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감독님들 칭찬은 믿을 수 없어요. (웃음) 예의상 그렇게 말씀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봉준호 감독님께 서 GV를 함께 해 주시는 건 너무 감사하죠. 봉준호 감독님과 그리고 팬분들을 함께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 정말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한테는 큰 영광이죠.

사진 제공 싸이더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장편 세 작품은 모두 A24에서 제작했다. 2010년대 혜성처럼 등장해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요즘의 미국 독립영화를 선도하는 A24와의 작업은 어땠을까.


요즘 할리우드에서 오리지널 영화 만들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제가 A24와 오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건 참 운이 좋은 거죠. 제가 첫 작품을 A24에서 한 이후로 A24도 엄청 성장했는데,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A24만의 장점, 그 초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로 아티스트의 창작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해 준다는 점인데요, A24는 어떤 작품이나 어떤 감독을 선택하고 제작하기로 결정하면 감독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보여줍니다. 물론 작업 과정에서 편집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갈 수 있고, 러닝타임이라든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조율하긴 하지만, 작품에 개입한다거나 강제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전혀 없습니다. 끝까지 아티스트의 선택과 비전을 믿어주고 뒷받침해준다는 게 A24만의 아주 큰 특별함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회사가 성장하고 규모가 커지면 어떤 감독과 작업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기준은 앞으로 바뀔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티스트를 전적으로 믿고 지지하는 그러한 철학은 변함이 없을거라고 믿어요. 이런 제작자와 여태 계속해서 작업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복이죠.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오랜 기간 서로 건설적인 파트너십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 제공 싸이더스


감독의 장기인 사운드는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때론 강렬하게, 그리곤 부드럽게. 보와 함께 호흡하며 숨 쉬듯이 공존하는 음향 효과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또 하나의 묘미이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전작인 〈유전〉이나 〈미드소마〉의 2:1 화면비가 아닌 일반적인 1.85:1의 화면비를 선택했다. 이러한 감독의 미학적 선택의 이유는 어쩌면 극장에서 찾을 수 있다. 자리를 떠나기 전 아리 에스터 감독은 마지막으로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꼭 극장에서 관람해주길 바랐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극장 상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기본적으로 장르가 코미디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관람할 때 더 재밌습니다. 다음으로 저희 제작진 모두가 극장에서 상영한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신경 써서 작업했습니다. 음향 효과 같은 경우 여기에만 수개월을 쏟아부었을 정도로 극장에서의 최적의 경험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혼자 TV로 보면 손해입니다. (웃음) TV로 보실 때와 극장에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향의 기본적인 설계가 모두 영화관의 사이즈나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둔 거라 극장에서 관람하시면 훨씬 더 재밌게 영화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보의 세상에 관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보의 세상에 관객이 빠져서 그 세상에 직접 있는 것처럼 둘러싸이는 경험을 전해드리려고 굉장히 애를 많이 썼어요. 그래서 이런 부분을 최대치로 경험하시려면 극장에 오셔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쿨투라》 2023년 7월호(통권 10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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