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세계 미술 현장에서 한국 미술의 자리는 어디에 있나: 《아트바젤 바젤 2023》에서 보고 느낀 것들
[Gallery] 세계 미술 현장에서 한국 미술의 자리는 어디에 있나: 《아트바젤 바젤 2023》에서 보고 느낀 것들
  • 장재선(문화일보 부국장. 선임기자)
  • 승인 2023.06.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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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유럽 수집가들이 대거 몰렸습니다. 전통적으로 아트바젤에 대한 선호가 높아서일 것입니다.” “중국과 동남아 콜렉터들도 많이 왔는데, 이들은 그동안 코로나 19로 봉쇄돼 있다가 그게 풀려서 움직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상대적으로 미국 수집가들이 이번에 바젤에 많이 오지 않았습니다. 올 가을에 교통이 훨씬 편한 프랑스 파리 아트페어로 가겠다고 정한 게 이유일 것입니다.” “한국 수집가들도 과거보다 줄었는데, 올 가을에 서울에서 영국 아트페어 《프리즈Frize》가 열리는 영향이 큽니다.”

스위스 《아트바젤 바젤 2023Art Basel in Basel 2023》 현장에서 세계를 무대로 뛰는 국내 미술 기획자들과 취재 기자들이 나눈 대화이다. 6월 12-18일(현지 시간) 열린 이 아트페어에는 35개국 285개 화랑이 초청을 받아 참여했다. 국내 화랑은 갤러리현대와 국제갤러리 2곳뿐이었다. 그만큼 한국을 대표한다는 상징성이 컸다.

현장을 찾아보니 세계 각지에서 미술 관계자와 수집가들이 모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스위스 5대 도시 중 하나인 바젤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흥성거리는 모습이었다.

특별히 흥미로웠던 것은 《아트바젤》 기간 이 도시의 모든 뮤지엄들이 《아트바젤》 VIP들에게 무료로 입장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바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 바일암라인Weil am Rheinl 지역에 있는 비트라디자인박물관도 아트바젤 VIP는 무료로 들어가게 했다. 《아트바젤》이 국경을 넘어 이 일대의 큰 축제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 서울의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도 이것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부터 《프리즈》와 함께 아트페어를 공동 개최하며 외국 미술 관계자들이 많이 찾고 있으니.

‘언리미티드’ 는 역시!

세계 최대 미술장터로 꼽히는 《아트바젤 바젤》의 하이라이트는 ‘언리미티드Unlimited’ 섹션이다. 바젤의 화상畵商 에른스트 바이엘러 등이 주도해 1970년 창설한 《아트바젤》은 미국 마이애미, 홍콩, 파리에서도 아트페어를 열고 있다. 《아트바젤 바젤》은 창설지에서 열린다는 것 외에도 ‘언리미티드’ 섹션을 유일하게 펼치고 있어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 이번에 현지 취재를 함께 한 한국의 한 경제지 기자가 “머나먼 바젤까지 오는 이유는 언리미티드를 보기 위해서”라고 할 정도이다.

‘언리미티드’는 말 그대로 기존 개념을 넘어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섹션이다. 세계 각국 갤러리가 추천한 작품들 중 심사를 통해 선정된 작품을 전시한다. 미술품을 매매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보여준다는 《아트바젤》 측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올해도 현대 미술의 살아 있는 실험실로 불리는 쿤스트 할레생갈렌Kunst Halle Sankt Gallen의 디렉터인 죠반니 까르미네가 감독을 맡아 76점의 대형 설치 작품을 전시했다. 세계 각국 화랑으로부터 추천 받은 500여 점 중 뽑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갤러리현대가 추천한 듀오 작가 문경원&전준호의 영상설치작 〈미지에서 온 소식: 이클립스News from Nowhere: Eclipse〉가 선정됐다.

‘언리미티드’ 개막일인 12일 오후 VIP 오픈이 시작되기 30분 전 프레스 카드로 입장해서 전시장을 둘러보며 “역시!”라는 감탄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회화, 사진, 퍼포먼스, 영상 등의 각종 장르와 돌, 철, 나무, 유리 등 지상에 있는 온갖 재료를 다 활용한 작품들이 계속 발길을 붙들었다.

우선 전시장 맨 앞의 영상 설치작품 〈Jam Proximus Ardet〉는 바다 위의 선박이 불타오르는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트로이의 비극을 다룬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d〉에서 제목을 빌려옴으로써 당대의 위기를 은유한 작품이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알제리 출신의 작가 아델 압데쎄메드는 불타오르는 배의 앞에 서서 관객을 만나는 영상 이미지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현대미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섹션 취지에 맞게 기발한 착상의 작품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독일 작가 올라프 니콜라이는 환경미화원 복장을 하고 전시장을 청소하는 퍼포먼스를 펼쳤고,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란츠 웨스트(바로 그 직전에 탐방을 간 바이엘러 뮤지엄에서 이 작가의 작품 ‘램프’)를 만나기도 했다.)는 99개의 의자를 늘어놓고 〈100개의 의자100 Chairs〉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국 작가 코넬리아 파커는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에 나오는 헛간을 재현한 후 〈사이코반Psycho Barn〉이라고 했다. 1990년생 리투아니아 작가 아우구스타스 세라피나스는 체육관 풍경을 재현하는 작품을 펼쳤다. 하얀 체육복을 입은 퍼포먼서들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체력 단련을 하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미소를 지었다.

독일 작가 올라프 니콜라이의 환경미화원 복장을 하고 전시장을 청소하는 퍼포먼스

게르하르트 리히터, 토마스 샤이비츠 등 한국에서도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도 곳곳에서 보였다. 널찍한 공간에서 만나는 대작들은 그 자체로 시각적 쾌감을 주었지만, 작품 하나마다 당대의 세상을 성찰하는 주제 의식이 뚜렷이 들어가 있었다. 영국 작가 잉카 쇼니베어의 ‘아프리칸 라이브러리’가 아프리카의 정치 현실을 상기시킨다든지, 독일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 작가 모니카 본비치니의 ‘네버 어게인 2006’이 쇠사슬 그네의 아이러니를 통해 성적 정체성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내면을 담아낸 것 등이 그랬다.

전시장 맨 뒤쪽에 자리한 문경원 & 전준호의 〈미지에서 온 소식:이클립스〉는 맨 앞의 설치작 〈Jam Proximus Ardet〉과 영상 장면이 조응했다. 배 한 척에 의지해 바다에 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17분짜리 영상은 망망대해를 떠도는 주인공의 생존 투쟁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표면 이야기일 뿐 가상과 현실의 혼돈 속에서 삶을 반복하는 당대인의 모습을 성찰하도록 이끈다.

“라이프 보트가 생명을 구하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이 거기에 붙잡혀 있는 모습을 상징한다”라는 것이 현장에서 만난 작가들의 설명이었다. 양쪽 벽 철제 그리드의 조명이 점멸하며 현실에서 운용되는 제도와 시스템의 불완전성을 상징한다. 음향과 조도가 영상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며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 낸다.

두 작가가 지난 2012년부터 시작한 ‘미지에서 온 소식’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이 시리즈는 기후변화 등 인류가 처한 각종 위기 상황에서 예술의 역할이 과연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것으로, 그동안 독일·미국·스위스·이탈리아·영국 등의 비엔날레와 뮤지엄 전시 등을 통해 호평을 얻었다. 이번 작품은 작년 일본 가나자와金澤 21세기 미술관에서 첫 선을 보인 것을 《아트바젤》 공간에 맞게 새롭게 설치한 것이다. 두 작가는 “6m 높이의 공간에 영상과 철제 그리드를 설치하느라 갤러리 스태프들이 엄청나게 고생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아트바젤》을 취재하는 동안 이 부스에 세 번 갔는데, 그때마다 관객의 반응이 뜨거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세계 각국의 미술 관계자와 수집가들이 많이 찾아와 아주 흥미롭게 지켜봤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람자들이 저희 공간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보며 참 놀랍고 좋았습니다. 언어, 국가, 제도, 시스템이 달라도 서로 통하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경원)

“종말론적 위기 상황에 있는 인간 존재의 모순과 양면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상업성을 전제로 하는 아트페어에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미술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람객도 많이 봐 주셔서 기뻤습니다.” (전준호)

프란츠 웨스트의 설치작 〈100개의 의자〉.

메인 섹션 혼잡 속 한국화랑 부스의 선전

메인 섹션인 ‘갤러리즈Galleries’는 하루 늦게 개막했는데, VIP 입장 때부터 관람객이 넘쳐났다. 이 섹션에 초대받은 세계 240여 개 화랑이 출품한 작품들을 돌아볼 때마다 사람들에 부딪쳐서 작품을 훼손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세계 최고 명성의 아트페어이지만, 혼잡함을 다스리지는 못한 모습이었다.

역시 세계 명문으로 불리는 페이스, 가고시안, 타데우스 로팍, 하우저&워스 등에 수집가들이 가장 많이 몰렸다. 올 가을에 한국에 진출하겠다고 밝힌 영국의 화이트 큐브도 인기였다.

페이스 갤러리가 로버트 어윈, 앤디 워홀 등 쟁쟁한 거물들 작품 옆에 이우환의 ‘윈드’ 시리즈 작품 하나를 걸어놓은 것이 무척 반가웠다. 해외에 나오면 아무래도 애국자(?)가 된다. 알민 레흐 갤러리가 김민정 작가의 회화를 전시한 것도 눈에 띄었다.

뉴욕의 3대 갤러리 중 하나인 데이비드 즈위너는 쿠사마 야요이 작품으로 부스를 다 채웠다. 쿠사마 작품은 에드워드 타일러 나헴 갤러리 부스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쿠사마가 당대에 가장 잘 팔리는 작가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문경원&전준호의 영상설치작품 〈미지에서 온 소식: 이클립스〉.

메인 섹션에서 한국 화랑인 갤러리현대와 국제갤러리 부스를 만날 수 있었다. 각국의 화랑들을 몇 차례 돌다가 두 부스에서 꼭 오래 머물게 됐다. 세계 정상급 화랑만 초대받는 자리에 국내 갤러리가 참가한 것에 대한 응원의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부스 자체가 뿜어내는 독특한 매력에 끌려서였다. 특히 이우환 작가와 박영숙 도예가의 2인전으로 꾸민 갤러리현대 부스는 그 독창성에서 아우라가 컸다. 아트페어 전시로는 이례적으로 벽면에 여백을 둠으로써 동양 특유의 절제 미학을 담아낸 부스였다. 한국 예술의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낸 이 부스는 미술계 구글이라고 불리는 아트시ARTSY가 ‘톱 10’에 선정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이우환의 회화 2점은 첫날에 팔렸고, 테라코타와 세라믹 접시 작품도 각 2점씩 판매됐다. 유럽에서 첫 선을 보인 두 작가의 협업작 대형 달항아리도 매매됐다. 세계무대에 한국 작가를 소개하겠다는 의지가 상업공간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국제갤러리는 그동안 국내외 정상급 작가들과 연을 맺어온 역량을 보여주는 부스를 꾸렸다. 모빌의 대명사인 알렉산더 칼더, 인도 출신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 미국 현대미술가 로니 혼, 프랑스의 유리구슬 작가 장-미셸 오토니엘 등 명성 높은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이와 함께 한국 작가로 박서보, 이우환, 하종현의 단색화를 비롯해 이승조의 파이프 회화, 최욱경의 추상회화, 함경아의 자수회화 연작과 강서경, 이기봉, 이희준, 구본창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세계 무대에서 이름이 높은 설치 작가 양혜규의 작품도 물론 나왔다. 갤러리 측에 따르면, VIP 데이부터 판매 호조를 보여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양혜규, 이기봉, 이희준, 강서경, 구본창, 장 미셸 오토니엘 등의 작품이 나갔다고 한다. 현장에서 만난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작가들이 《아트바젤》에 모두 나오고 싶어하니 국내외에서 전시 중이거나 앞두고 있는 작가들을 두루 배려했다”라고 밝혔다.

아트바젤 한국 부스

세계 속 한국 아트에 대한 시사점

갤러리현대는 올해 《아트바젤 바젤》에 15년 만에 초대를 받았다. 자타공인 한국 정상급인 이 화랑은 1996년부터 2008년까지 초대를 받아 10회의 전시를 펼쳤다. 그러나 이후 오랫동안 초청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에 대해 추정은 가능하지만, 《아트바젤》 측에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입방아를 찧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갤러리현대가 재입성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인 것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화랑 경영 측면에서 지분 구조의 변화를 꾀하는 한편 《아트바젤》이 다른 지역에서 여는 아트페어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서 역량을 보여줬다. 또한 한국 대표 작가들을 해외에 꾸준히 소개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이 화랑이 연을 맺은 세계 미술계 인사들을 활용해서 《아트바젤》 측에 꾸준히 재입성의 명분을 호소했음을 말할 나위도 없다. 이와 관련,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정말 갖은 노력을 다했다”라고 했다.

아트바젤 갤러리현대 부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이 화랑은 올해 세 개의 섹션에 초대받음으로써 기염을 토했다. ‘언리미티드’, ‘갤러리즈’ 섹션 외에도 ‘필름’ 섹터에서 김아영 작가의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를 상영했다. 도 대표는 “저희가 응한 세 개의 섹션에 모두 초대를 받은 것에 대해 한국 화랑으로서 큰 자긍심을 느낀다”라고 했다.

그는 개막 전 “《아트바젤 바젤》은 한국미술을 알리는 중요한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메인 섹션의 부스를 이우환·박영숙 2인전으로 꾸민 것을 보니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판매만을 생각하면,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다채롭게 구성하는 것이 유리하다. 다양한 성향의 수집가들을 유인할 수 있는 까닭이다. 갤러리현대가 그동안 연을 맺어온 작가 목록에서 고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나 이 화랑은 해외 아트페어에서 한국 작가를 소개해 왔다는 정체성을 지키며 동시에 ‘회화와 도예의 합작’이라는 도전을 함께 시도했다.

이 부스는 벽면 공간의 여백을 통해 동양 특유의 절제미학을 담아냈다. 《아트바젤》 측으로부터 비싸게 돈을 주고 산 부스의 벽면을 여백으로 둔 것은 사치스러운 모험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성공해야 상업공간에서도 미술의 품격이 지켜질 것이다. 아트시ARTSY가 이번에 갤러리현대 부스를 ‘톱 10’에 선정했다며 취재한 것을 보면, 해외 매체들도 비슷하게 느꼈음을 알 수 있다.

체육관 모습을 재현한 리투아니아 작가 작품.

‘언리미티드’에 대형 영상설치 작품을 출품한 문경원·전준호 작가는 “저희 작품은 전시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화랑 측에서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제작하라고 해 줘서 참 고마웠다”라고 했다. 이와 관련, 도 대표는 “작가들은 한 발 앞서가는 게 있는데, 화랑이 한 몸으로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다”라며 “비즈니스 켄셉만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한국 미술을 높이 세울 수 없다”라고 했다. 그의 말이 한화랑 뿐 만 아니라 한국 업계 전체에서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이번에 《아트바젤》을 보며 새삼 느낀 것은, 단순히 미술품 매매 현장이 아니라 세계 미술인들의 교류 현장이라는 것이다. 이화여대 서양화과 교수인 문경원 작가는 “세계 각국의 미술관장, 큐레이터, 비평가들을 너무 많이 만나 깜짝 놀랐다”라고 했다. 전준호 작가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아트바젤》 현장 뿐만 아니라 바젤 거리를 걸어가다가 만난 세계 각국 미술 애호가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특유의 유머를 섞어 활발하게 소통하는 모습이었다.

〈아프리칸 라이브러리〉

세계 미술 현장 찾은 재계 아트 경영 선두

올해에도 이효리-이상순 부부와 노홍철 등 국내 유명인들이 《아트바젤》에 등장했다. 그중 제주 포도뮤지엄 총괄디렉터인 김희영 T&C재단 이사장과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 사장이 온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김 이사장은 지난 2021년 제주 서귀포 안덕면에 개관한 포도뮤지엄을 이끌며 예술을 통해 사회적 인식 개선을 하는 전시를 펼치고 있다. 그는 최태원 SK회장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과 함께 《아트바젤》에 왔다. 향후 SK의 아트 경영에 그가 어떤 식으로든 관여를 하게 될 것이 예측되는 시점에서 세계 미술 시장의 흐름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은 필요한 일로 보인다.

정 사장은 이화여대와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에서 공부한 예술학도로 이전부터 예술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왔다. 그가 아트 경영에서 적극 행보를 보이며 관련 조직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유명하다. 지난 5월에도 아트앤스페이스 담당을 신설하고 김경은 서아키텍스 디자인 소장을 영입했다. 신세계의 서울옥션 인수가 표면적으론 무산됐으나, 어떤 식으로든 유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그래서 그가 세계 미술의 뜨거운 현장을 직접 찾은 것은 주목된다.

이로써 보면, 재계 3세들의 아트 경영이 본격화하는 느낌이다.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삼성미술관 리움 운영위원장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화가 최근 프랑스 3대 미술관 퐁피두 센터 분원을 유치한 것도 재계 3세의 움직임과 관련해 볼 수 있다. 이들 세대는 시야가 국내를 넘어 세계 전역으로 뻗어 있다는 공통적 특징이 있다. 그것이 K-컬처의 다른 영역에 비해 세계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을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장재선 문화일보 부국장·선임기자.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3년 7월호(통권 10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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