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중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항미원조: 중국인들의 한국전쟁』
[북리뷰] 중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항미원조: 중국인들의 한국전쟁』
  • 김혜원 인턴 기자
  • 승인 2023.06.3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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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을 부르는 중국의 공식 명칭은 ‘항미원조전쟁’이다. 중국군이 한국전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1950년 10월 25일 운산전투에서부터 2년 9개월 동안, 한반도에 들어온 중국인민지원군의 수는 연간 240만을 넘었다. 전 육군참모총장이자 장관이었던 백선엽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한국전쟁 중 처음 3개월을 제하면 인민군은 중공군의 향도向導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즉, 한국전쟁의 대부분이 사실상 중공군과의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이상하리만치 희미하다.

역사에서의 비극적 기억은 결코 합당한 절차 없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지속적인 반추와 재평가를 통해 화해를 이루지 못하면 언젠가 한층 기형적인 형태로 되돌아온다. 한국전쟁은 내전인 동시에 전 세계 20여 개의 나라가 참전한, 자칫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도 있었던 국제전이다. 남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막대한 인력과 국력을 쏟아부은 미국과 중국 역시 한국전쟁의 주요 당사자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전쟁의 행위자로서 중국의 역할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북한보다도 컸다.

중국은 정전회담에 참가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종전선언에서 중국을 배제해야 한다는 사고는 어디서 온 것일까. 물론 거기에는 ‘사드 논란’ 이후 한국사회에 증대한 반중감정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원적으로는 우리의 무의식 어딘가에 잠복한, 한국전쟁에서 중국의 존재를 적으로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모종의 뒤틀린 타자 의식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간 한국전쟁을 반추하고 극복하려는 지적 작업에 당사자들 모두가 소극적이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당사자들에게 서로 다른 이름으로 명명되고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무엇인지도 여전히 미완의 질문이지만, ‘그들’에게 이 전쟁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은 지금껏 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거나 망각(당)했는지, 또 이 전쟁은 ‘그들’의 현재에 어떤 유산으로 남아 있는지, 우리는 좀처럼 아는 바가 없다.

이 책은 중국에서의 한국전쟁이 무엇이었나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중국에서도 한국전쟁의 기억이 20세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억눌려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오랜 금기와 기억의 유배 상태에서 방치되었던 한국전쟁이 2000년대 들어 귀환하는 평탄치 않은 과정을 2000-2001년대의 영화, 드라마 등의 작품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중국 블로그나 유튜브 등 온라인 매체에서 ‘항미원조전쟁’을 검색하다 보면 ‘냉궁冷宮에 유폐된’이라는 수식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항미원조전쟁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제작자들이 선뜻 건드리지 않던 영역이다. 종종 항미원조전쟁은 탁구의 엣지볼로 비유되곤 한다. 드러내놓고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모호한 레드라인이 숨겨져 있어, 건드리기도 쉽지 않지만 잘못 건드렸다간 곤욕을 치르기 십상이다. 건국 이래 항일 전쟁과 해방전쟁(국공내전)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들이 수없이 쏟아진 데 비해, 항미원조에 관한 작품 수가 현저하게 적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 「냉궁에 유폐된 기억」, 본문 47쪽


이처럼 극도로 신중한 분위기 속에서도 2000년 1월 1일, 항미원조전쟁 50주년 기념 영화 한 편이 출시되었다. 81영화제작소 출신으로 수많은 전쟁역사 영화를 제작한 왕 샤오민王曉民 감독의 〈38선의 여병三八線上的女兵〉(1990)이다. 이 영화는 50주년이라는 특별한 주기를 맞아 항미원조전쟁 기념식을 복원하면서도 미중관계가 손상될까 전전긍긍했던 모순적 환경에서 제작이 허가되고 방영까지 성공한 유일한 작품이다. 이 영화가 어떤 과정에서 만들어졌는지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 「검열 속에 핀 꽃: 〈38선의 여병〉」, 본문 61쪽

 

영화 〈장진호長津湖〉(2021)를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은 신흥리의 승리와 수문교 폭파를 중심으로 재구성된 서사의 실타래를 역으로 풀어나가면서 실타래 속에 감겨 들어간 질문들을 하나씩 빗겨내어 명료히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제는 중국에만 던져진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한국전쟁을 복수의 당사자들이 함께 반추하는 하나의 두서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현재에서 자기 고발을 각오하는 것, 각자의 어둠을 집요하게 추궁하는 작업을 통해 비로소 과거의 (어쩌면 현재도 여전히 그러한) ‘적’과 대화할 길이 열릴 것이며, 진정으로 종전을 논한 정동적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이미 역사화되었다고 생각했던 냉전이 부단히 현재로 살아 돌아오는 지금, 지연시켜온 냉점의 극복을 진정으로 재사유하는 길이기도 하다.

- 「자기 고발을 당할 각오」, 본문 343쪽

저자는 한국전쟁이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영화를 통해 중국 대중에게 귀환하는 과정은 국가가 대중에게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단순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비록 제한적이지만, 그 여정 곳곳에는 오랫동안 이 전쟁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애도할 길이 막혔던 계층의 목소리와 시선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마음 각자의 독백을 넘어 불편한 타자들과의 대화가 형성될 때, 그래서 이 전쟁을 ‘우리’와 ‘그들’이 함께 기념할 수 있는 작은 여지라도 마련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종전을 논할 수 있는 두서가 우리 손에 쥐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쿨투라》 2023년 7월호(통권 10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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