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노욕에 관하여: 김강, 『그래스프 리플렉스』(2023)
[문학 월평] 노욕에 관하여: 김강, 『그래스프 리플렉스』(2023)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3.07.3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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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스프 리플렉스Grasp Reflex는 ‘움켜잡기반사’를 뜻하는 의학 용어다. 아기 손바닥에 무언가를 닿게 하면 꽉쥐고 놓지 않는 현상 말이다. 요즘 생후 100일 된 딸을 키우고 있어서 종종 움켜잡기반사를 시험해볼 때가 있다. 내 새끼손가락을 딸 손바닥에 가져다 대면 얼른 움켜쥔다. 몸무게가 6kg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자그마한 아기의 악력이라고 하기에는 깜짝 놀랄 정도의 힘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은 움켜잡았던 내 새끼손가락을 다시 놓는다. 반사는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만큼 금방 풀린다. 장편소설 『그래스프 리플렉스』의 등장인물—부와 권력를 소유한 노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움켜쥔 모든 것을 놓을 생각이 없다. 이들은 인공장기이식으로 노화한 신체 기관을 교체하면서 장수를 누린다. 진시황이 그토록 찾기를 바랐던 불로초는 인공장기이식 테크놀로지에 의해 실현된 셈이다.

이것은 현재의 한국이 아니라 근미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오늘날 한국 노인 빈곤율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거리 없이 가난하게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여겨진다. 노인 자살률이 유독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노인 문제의 정책적 해결을 촉구하는 한편으로, 분명하게 예견되는 바는 앞으로 한국이 노인의 나라가 되리라는 사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70년 한국 인구는 3800만 명이고 그중 노인이 절반 비중을 차지한다.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나도 80대 노인일텐데, 지금으로서는 그날이 오는 것이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 근미래에 관한 수많은 예측을 해봄으로써 막연함을 달래볼 수 있다. 가능한 시나리오 가운데 『그래스프 리플렉스』는 그럴듯한 앞날을 그려낸다. 그렇지만 진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 읽기를 마쳤다.

“죽어라 일하는 노예. 그 노예의 꿈이 뭔지 아세요? 신이 되는 거예요. 어렵지 않아요. 일찍 죽지만 않으면, 시간만 보내다 보면 저절로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고 신전에 들어가 있겠지요. (……) 에휴, 사람이 말이야. 내려놓을 때가 되면 내려놓기도 해야 하고 갈 때가 되면 갈 줄도 알아야지. 사람이 말이야. 그 모든 것 붙잡고, 그것도 모자라 손가락에 걸리는 모든 것들을 움켜쥐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이 작품에서 한국은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나라가 되었다. 원래는 전 국민 기본 소득을 추진했으나, 노인의 표를 의식하고 그 자신이 노인이었던 유력 정치인들은 노년 기본 소득으로 정책을 선회시켰다. 여기에 70대 정치인 ‘영권’이 힘을 행사했다. 노인 유권자의 지지를 기반으로 그는 출마한 다섯 번의 선거에서 모두 이겼고, 소속 상임위도 “노인복지위원회”에서 줄곧 활동하고 있다. 영권의 후원자가 80대 기업인 ‘만식’이다. 그는 노인을 주고객층으로 삼은 회사 올더앤베러를 창업하고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만식은 본명이 영달이었던 영권의 새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기도 하다. 남들 앞에서는 찰 영자에 돌아볼 권자를 써서 “항상 뒤를 돌아보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채우라는 뜻”으로 이야기하고, 스스로 다짐할 때는 길 영자에 권세 권자를 써서 “영원한 권력”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정경유착은 당연하게도 사회 전체가 아니라 그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둔다. 그런데 이는 정말로 영속화할 조짐을 보인다. 인공장기이식으로 건강함을 유지하는 만식이 대표적이다. 영권도 그에 못지않게 건재하다. 만식의 아들 ‘필립’과 영권의 아들 ‘인호’는 각각 50대와 40대이지만, 존재감과 영향력이 대단한 아버지의 밑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를 정확하게 반영한 제목이 소설의 개별 장들을 구성한다. 예컨대 ‘노송 아래 아무것도 없었다’(2장), ‘올림퍼스의 노예들’(5장)이 그렇다. “계곡의 노송들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 아름이 넘는 지름을 가진 노송들이 서로 간격을 두고 서 있을 뿐이었다. 이제 막 자라난 어린 소나무도, 노송의 허리춤까지 따라잡은 청년의 소나무도 없었다. 오로지 노송들만이 계곡의 깊이만큼 솟아 있었다.”(47쪽)라는 구절에는 은유적인 세태 풍자가 담겨 있다.

올림퍼스의 노예들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젊은이 의 신세 한탄이 이루어진다. “죽어라 일하는 노예. 그 노예의 꿈이 뭔지 아세요? 신이 되는 거예요. 어렵지 않아요. 일찍 죽지만 않으면, 시간만 보내다 보면 저절로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고 신전에 들어가 있겠지요. (……) 에휴, 사람이 말이야. 내려놓을 때가 되면 내려놓기도 해야 하고 갈 때가 되면 갈 줄도 알아야지. 사람이 말이야. 그 모든 것 붙잡고, 그것도 모자라 손가락에 걸리는 모든 것들을 움켜쥐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아요?”(129-130쪽) 이처럼 “손가락에 걸리는 모든 것들을 움켜쥐는” 자들을 빗대 김강은 이 작품을 ‘그래스프 리플렉스’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첫 번째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2020)과 두 번째 소설집 『소비노동조합』(2021)에서도 근미래를 배경으로 다채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러기에 김강 소설에서는 사회파적 면모가 두드러진다. 그는 내면에 침잠하기보다 바깥의 사태에 발언하는 소설을 주로 쓴다. 이번 작품에서는 “저는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만 소설을 씁니다.”(작가의 말)라고 명확하게 자신의 소설관을 밝혔다. 이 책을 통해 그가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는 충분히 독자에게 전달된다. 김강은 출생률 감소와 노인의 장수가 초래할 한국 근미래의 일그러진 초상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동시에 아직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시점인 지금 문제 제기를 함으로써, 실제로 그와 같은 세상이 도래하지 않기를 염원하는 듯하다. 그것은 청년과 노년의 세대 투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김강은 이 작품에 또 다른 결을 내포하여 이렇게 묻는다. ‘후속 세대가 기성 세대로부터 부와 권력을 쟁취했다고 하자. 이로써 갈등이 다 봉합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계급은? 젠더는? 이들이 얽힌 교차성은?’

김강 작가 ⓒ작가 제공
김강 작가 ⓒ작가 제공

『그래스프 리플렉스』는 이에 대한 계몽적 언설을 늘어놓기보다는,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 서사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과 묻고 싶은 것을 녹여 낸다. 소설 읽기가 지루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게 결말에 다다르고 나면 “누구나 마땅한 일을 하는 겁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얼마나 섬뜩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다소 아쉬움도 있다. 가령 만식의 아이를 임신한 ‘안나’와 같은 여성 캐릭터의 입체성이 좀 더 부각되기를 바란다는 것. 근미래 한국은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가진 재미와 의미는 빛바래지 않는다. 세대 투쟁과 연관된 계급과 젠더의 공통항은 목하 흡입력 있는 주제이다. 부정적 미래의 불투명성은 이상의 책을 읽고 궁리함으로써 선명해진다.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3년 8월호(통권 11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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