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밀수〉: 류승완식 레트로 정의구현 복수극
[영화 월평] 〈밀수〉: 류승완식 레트로 정의구현 복수극
  • 강유정(영화평론가, 강남대 교수)
  • 승인 2023.07.31 14: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제공 ⓒNEW

류승완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 특별한 이름이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과 이름이 병렬되기도 하지만 류승완 감독하면 칸이나 베니스 같은 우아한 영화제보다는 거친 현장 바닥이 먼저 떠오른다. 근본 없는 일본어가 난무하는 영화촬영 현장에서 비롯된 영화 제목 〈다찌마와 리〉처럼,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는 현장에서 익히고 얻은 감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류승완 감독하면 자동 연상되는 배우 류승범도 마찬가지이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배워서 고민해 만들어낸 하이-컨셉, 사유형 작품이라기보다 타고 난 감각과 경험으로 빚어낸, 동경의 산물처럼 보인다. 류승완 감독이 시네 키드로서 흠모했던 세계의 재현, 재창조가 바로 류승완의 영화세계인 셈이다.

사진제공 ⓒNEW

〈밀수〉는 여러 면에서, 류승완 감독의 초기작을 떠올리게 한다. 거칠지만 힘이 넘치고, 투박하지만 진심이 전달되는 류승완식의 주제의식 말이다. 제작비 문제로 동생과 동생 친구들을 캐스팅해 만들었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보여준 날 것의 정서나 〈짝패〉에서 정두홍 액션 감독과 함께 구현하고 싶었던 액션에 대한 열망이 〈밀수〉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찬욱이나 봉준호 감독과 가장 대비되는 지점이라면 류승완 감독의 영화엔 사회의 구조적 갈등에 대한 비판이나 인간의 근본적 모순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가 발견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류승완 감독에게 사회성이나 철학성은 없는 게 아니라 다르다. 박찬욱이나 봉준호 감독의 것이 정교하고 섬세하다면 류승완 감독의 사회성이나 철학은 구비문학이나 대중문학에서 보아온 것처럼 단순하고 명쾌하다. 나쁜 놈은 벌 받고,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 평범하고 단순한 대중 판타지, 사필귀정의 철학이 바로 류승완 감독이 영화를 통해 구현하고 싶은 세상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NEW

대중적 판타지로서의 사필귀정은 류승완 감독이 무척 애호했던 서부극이나 홍콩 무협 영화에 담긴 핵심 윤리이다. 절대적 악의 세력과 맞붙어 결국 선이 승리하는 세상, 비록 선이 나약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옳은 것이라면 결국 어떻게 해서든 옳은 것이 이겨내고야 마는 세상, 이 소박한 인과응보야말로 영화를 비롯한 대중 서사가 지켜왔던 허구적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충청도 액션 복수극이라고 할 수 있을 〈짝패〉가 독보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필귀정과 인과응보의 복수극을 류승완식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2023년 〈밀수〉는 여러 면에서 〈짝패〉의 여성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정서가 닮았다. 그 정서는 물질하는 해녀들과 조춘자(김혜수) 엄진숙(염정아)이 한껏 멋을 내고 찍은 단체 사진의 포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순진했던 시절의 우정과 연대가 어른이 되어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고 결렬되는가라는 문제, 이게 바로 류승완식 믿음의 벨트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사진제공 ⓒNEW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친구, 동료들, 우정과 의리를 나누었던 무리 사이에서 오해와 배신이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진정한 배신자를 가려내는 것 그게 바로 제대로 된 복수이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영화 〈베테랑〉의 대사처럼, 우정의 진정성 여부 역시 섬세한 인과관계를 통해 감별되는 게 아니라 “너 나 몰라”라는 멋진 대사로 구별된다. 〈짝패〉가 이 여정을 류승완, 정두홍 두 사람의 버디물로 보여주었다면 〈밀수〉는 김혜수, 염정아 두 여배우의 긴장감을 통해 재해석해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 활극으로서의 면모이다.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가 1980년대를 범죄의 관점에서 새롭게 재현했듯이 〈밀수〉는 당시 팽배했던 밀수 범죄의 관점에서 1970년대라는 시대를 재구성해서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기억과 체험으로 남아 있을, 코티분, 소니 전자 제품, 코끼리 밥솥과 같은 수입품 이야기가 세관 공무원, 밀수 사업자, 그 외의 수많은 밀수종사자들로 구체화 되어 한국 전쟁 이후 급속한 성장 속 혼란스러웠던 한국 경제사의 이면을 피카레스크 장르 문법의 오락적 통쾌함으로 전달된다.

사진제공 ⓒNEW

장기하가 조율한 1970년대 유행가와 대중가요, 배우들의 한껏 부풀린 머리와 판탈롱 바지 같은 과거 유행 스타일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기본적으로는 불행했던 사건과 복구불가능한 피해, 집안의 불명예를 갚고자 절치부심하는 복수서사가 중심이지만 특정한 주인공에게 이야기가 집중된다기보다 다수의 인물들이 앙상블 연기를 펼치며 조화롭게 이야기를 풍성히 해나간다.

고민시, 박정민, 조인성, 김종수 같은 배우들은 비중을 따지기 어려울 만큼 나름의 호소력을 보여주며 이야기의 탄력을 높인다. 류승완 감독의 전작인 〈모가디슈〉에서도 함께 했던 조인성이 〈밀수〉를 통해 자기만의 이미지와 개성 하나를 분명 덧보태는 데 성공했다는 데엔 이견이 없을 듯하다. 〈모가디슈〉에서 싸움에 능한 액션 배우의 이미지를 선보였다면 〈밀수〉에서는 훨씬 더 정교한 고난이도의 액션씬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며 잘생긴 외모에 국한되었던 배우로서의 한계 지점을 넘어서 새로운 인상을 각인시킨다.

사진제공 ⓒNEW

〈밀수〉의 정서는 “너 나 모르냐”라는 무언의 연대, 투박한 믿음의 벨트에 압축된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설득하는 관계가 아니라 사람을 믿고 전적으로 투신하는, 올 인의 연대, 완벽한 신의를 전제로 한 의리는 어쩌면 요즘과 같은 세상에선, 이루어진 복수보다 훨씬 더 신화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이 신화적인 세계를 지나치게 비통하거나 처참한 방식이 아닌 가볍고, 통쾌하게 그러면서도 노련한 반어의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해 낸다는 점에서, 〈밀수〉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적 만듦새의 완결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원한 바다 속 장면들의 시각적 쾌감도 기대해 볼 만 하다.

 

 


강유정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2005년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등단, 저서로는 『영화 글쓰기 강의』 『타인을 앓다』 등이 있다.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 《쿨투라》 2023년 8월호(통권 110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