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산을 버리고 독립을 택한 어느 포수의 이야기: 방현석 장편소설 『범도』
[북리뷰] 산을 버리고 독립을 택한 어느 포수의 이야기: 방현석 장편소설 『범도』
  • 권준안 인턴 기자
  • 승인 2023.07.31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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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칼을 들고 나타나 투쟁했던 의병들의 역사는 언제나 반복되어왔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의병들의 정신은 일제강점기 독립의 정신으로 이어졌다.

병인양요부터 봉오동전투, 청산리 전투까지 승리를 거둔 현장에는 언제나 산포수들이 있었다. ‘타이거 헌터’, 호랑이 사냥꾼인 이들은 조총을 개조하여 사용했는데, 사거리가 짧고 연사 속도가 느린 탓에 근거리에서 호랑이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을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자만이 살아남았다.

계절이 바뀌고 해를 더하는 동안 나는 금강산의 일부가 되었다. 토끼의 길과 노루의 서식처, 호랑이의 사냥터와 멧돼지의 동선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눈을 감고도 내달릴 수 있을 만큼 금강이 발에 익었다. 호랑이를 네 마리 더 잡았고, 금강산에 무서운 범포수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태백준령을 따라 번져나갔다. 내가 잡은 다섯 마리 호랑이가 스무 마리로 슬금슬금 불어나더니, 일곱 마리째를 잡고 덕원장 터에 내려갔더니 어느새 오십 마리를 잡은 것으로 불어나 있었다.
─ 1권 282쪽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산포수를 꼽으라 하면 누가 있을까?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를 이루었던 조선 최고의 명사수 홍범도 장군이 떠오른다. 한반도 내외에서 일어났던 대한독립운동은 두 가지 성격을 지닌다. 3·1 만세운동처럼 비폭력적인 선언과 시위로 일제를 거부했던 이들이 있던 한편 독립을 위해 적을 직접 처단하고 승리할 생각으로 무기를 들고 무장투쟁을 벌였던 이들도 있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에 빼앗겨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잠시 총구를 돌렸던 인물이다.

작가 방현석은 13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장편소설 『범도』를 집필했다. 『범도』는 홍범도가 산짐승을 사냥하는 포수로서 산야를 떠돌다 항일 운동에 투신하여 각종 인간군상을 만나며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 홍범도’라는 단순한 전기가 아니다. 독립군을 이끈 홍범도가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홍범도와 인연이 닿았던 수많은 인물을 아는 이도 많지 않다. 하지만 『범도』는 알고 있다. 신포수부터 지청천에 이르기까지 여러 주인공들을 홍범도가 관찰하고 연결한다. 역사 교과서에 담기지 않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역사 ‘소설’인 것이다.

“진포와 현창하, 안국환이 전설입니다. 일격필살의 여성 저격수이자 작전참모 진포, 열여섯 살의 청년저격대장 현창하, 하루에 백 개의 적정을 탐지하는 도주 안국환, 이들은 지금까지 어느 전쟁에서도 보지 못한 영웅이었어요…… 제가 삼수성 점령 작전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왜놈들의 모가지도, 총기도, 식량도 아닙니다. 저는 일본 육군의 신화가 된 하세가와의 직할부대를 이긴 진포와 현창하, 안국환의 이름을 양반들이 말과 글로 깎아내릴 수도, 고쳐 쓸 수도, 지워버릴 수도 없는 전설로 만들고 싶습니다.”
“젊은 그애들을 전설로 만들어 하세가와의 신화를 무너뜨리고 우린 죽자, 이 소리지?”
“네.”
하세가와는 자기가 양성한 저격수들의 전공을 가로채 신화가 되었지만 나는 나의 대원들을 전설로 만들고 싶었다.
─ 2권 19쪽

『범도』를 펴낸 6월 7일은, 대한독립군이 일본군과 처음으로 맞붙은 대규모 전투이자 독립군이 대승을 거둔 ‘봉오동 전투’의 개전일이다. 작가가 펼쳐 보이는 이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각각의 시대에는 각각의 어려움이 있다. 『범도』가 던지는, ‘삶 속에서 어떤 가치를 수호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은, 그들이 만든 지금의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언제, 한 번이라도 우리에게 기약할 내일이 있었소?”
“기약할 내일은 없어도 싸워야 할 내일은 있지 않습니까. 내일 아침에도 제가 살아서 눈을 뜨기만 한다면 저에게 싸울 날이 하루 더 생기는 것이니까요.”
─ 2권 448쪽

문학동네 사진제공

방현석 작가는 저서로 소설집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세월』 『사파에서』,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당신의 왼편』, 산문집 『하노이에 별이 뜨다』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 《쿨투라》 2023년 8월호(통권 11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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