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오늘의 영화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유머와 풍자, 그로테스크 판타지의 영상미
[2015 오늘의 영화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유머와 풍자, 그로테스크 판타지의 영상미
  • 우정권
  • 승인 2015.04.01 0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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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아는 것보다 먼저 앞서야 하는 것이, 그 영화가 관람객에게 어떻게,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가이다. 그래서 필자는 영화를 내러티브 예술로 보고, 관객의 삶과 조응되는 스토리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먼저 생각한다. 감독이 영상만으로 많은 것을 표현한다고 하여도 관객에게 스토리상 별 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다면 그 영화를 좋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상만으로도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비주얼 스토리텔링이 뛰어나 다양한 미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좋은 영화로 본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많은 이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감독의 미장센의 탁월함, 지명도 높은 할리우드 배우 캐스팅, 영화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 등등이 하나로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한다. 필자 역시 이 영화에 대한 이런 평가에 동감한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정서의 울림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정서의 울림이 스토리의 새로움을 통해, 또는 스토리 전개의 긴장에 의해 감동과 재미를 주는 것이 아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뛰고 머리가 같이 움직여진 것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다. 시각과 청각, 후각, 미각 등이 스토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구슈타프가 언제나 뿌리고 다니는 파나슈 향수는, 탈옥 장면, 군인들이 자신을 살인자로 보고 추적하자 기차에서 도중하차하여 도망을 가지만 군인들이 향수를 맡아 그가 기차 안에 있었음을 알게 한 장면,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던 장면 등에서 후각과 스토리의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맨들 케익이라는 미각은 구슈타프가 탈옥하고 난 뒤 그를 쫓아온 살인자로부터 탈옥과 맨들 케이크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가 되고, 아가시, 제로와 함께 호텔에 숨겨 놓은 〈사과를 든 소년〉 그림을 찾아갈 때 군인들에게 케이크를 배달해 주는 것으로 위장하게 하며, 제로와 아가시가 군인들의 총질을 피해 맨들 케이크로 가득 찬 차 위로 떨어지면서 목숨을 건지는 등 미각과 스토리가 서로 관련 있게 배치되어 있다. 이와 같은 후각과 미각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각으로 옮겨 오면 스토리와 상관성을 이뤄 내는 데 더욱 더 큰 효과를 낸다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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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미가 가장 압권인 장면은 제로와 아가시가 호텔 베란다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부분이다. 이때 신랑과 신부, 하객인 십자 열쇠 회원들이 입은 옷이 보라색, 빨간색, 노란색 등으로 하얀 백색의 눈 덮인 산과 대비되어 선명하게 보인다. 이와 같이 스토리가 기쁘고 즐거운 분위기로 전개될 때는 색깔 대비를 극명하게 하는 방식의 미장센이 나타난다. 그와 반대로 비극적이고 안 좋은 내용의 스토리가 이어질 때는 흑백으로 변한다. 구슈타프를 기차에서 검문하는 군인들의 복장이 검은색이고, 이때 미장센이 흑백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구슈타프와 제로가 살인자를 추적하는 장면이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경기장을 지나는데 모든 게 하얀색으로 뒤덮여 있다. 그리고 제로의 발길질 하나에 잔인한 살인자가 죽는아이러니한 상황에서도 색깔은 단조롭다.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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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영화를 통해 우리가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하는 것을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수작이다. 그러면서 흔히 관객들과의 거리를 갖게 하는 예술영화의 난해함이 이 영화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각기 다양한 미학적 장치들이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 빠져들게 한다. 즉 미학적 예술성과 대중성이란 둘로 나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감독이자 작가가 던진 메시지, 즉 스토리의 주제는전쟁에 대한 반대이다. 이 영화가 1930년대 산 중턱에 세워진 호텔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리고 그 호텔의 주인이 누구였으며,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가를 스토리의 플롯으로 잡고 있지만, 결국 서브플롯 속에는 영화 속의 주동 인물인 구슈타프와 제로가 어떤 이유로 만나게 되어 헤어지게 되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전쟁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한다. 두 번에 걸친 전쟁으로 인해 이 두 인물이 살아남기도 하고, 또 한 번의 전쟁에서는 구슈타프가 죽기도 하는 이야기, 그리고 제로가 어떤 이유로 호텔의 로비 보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결국 전쟁으로 인해 인물의 운명이 달라지고, 호텔의 운명마저 달라지게 되었다.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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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전쟁이 인간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구슈타프와 제로의 인간관계에서 제로가 불법 이민자로서 여행 허가서를 받아 줘 제로가 살아남은 경우도 있는 반면에, 두 번째 전쟁에서는 제로를 살리려고 하다가 구슈타프가 목숨을 잃게 된다.

첫 번째 전쟁이 두 인물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구슈타프와 제로가 억만장자인 마담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문상을 가는 기차 안에서이다. 기차 안에서 신분증이 없는 제로를 군인들이 하차시키려 하자 구슈타프는 그를 데려가겠다고 저항을 하고, 그 사이 군인이 구슈타프가 호텔 지배인임을 알아보고 여행 허가증이라는 것을 써 주고 통과시켜 준다. 두 번째 전쟁에서는 구슈타프가 살인자라는 누명에서도 벗어났고, 마담이 남긴 재산을 모두 물려받은 뒤 제로와 그의 부인이 된 아가시와 기차를 타고 가다가 검문을 받고, 역시 제로가 신분증이 없는 것을 안 군인이 그를 데리고 가려 하자 저항을 하고, 그러다가 결국 군인에게 죽음을 당한다. 구슈타프가 제로를 살려 주려고 애를 쓴 것은 구슈타프가 탈옥하는 데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수족이 되어 모든 것을 대신 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구슈타프로부터 보호를 받은 제로는 아버지와 가족, 마을 모두를 전쟁으로 잃어 그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난민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난민이 구슈타프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전쟁으로 부를 얻은 것이다. 그런 제로의 피부 색깔은 아랍계와 같다. 감독이 제로의 인종을 아랍계로 설정한 것은 감독이 지금,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부정과 저항, 그리고 그것에 대해 풍자를 하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풍자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호텔에서 군인과 호텔 직원끼리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지 못하고 총을 쏘는 장면이다. 여기서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이 드러난다. 즉 전쟁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그저 총을 쏘면서 자신의 목숨을 지켜 내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 이념과 가치, 승리해야 할 이유란 없는 것이다.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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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것에 대한 비꼬기, 엄숙함에 대한 비웃음 등은 마치보르헤스의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판타지를 갖게 한다. 역사 속의 장소와 시간, 사건(전쟁) 등이 있지만 이들 모두 판타지 세계 속에 있으면서 유머를 잃지 않고 영상미와 스토리를 조화롭게 끌고 나간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타페스트 호텔〉은 분명히 2014년을 대표하는 영화이다.

 


우정권 스토리텔링 전공,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영화콘텐츠학과 교수. aporia@dankook.ac.kr

 

 

* 『2015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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