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오늘의 영화 - 인터스텔라] 차가운 우주宇宙와 따뜻한 인정人情
[2015 오늘의 영화 - 인터스텔라] 차가운 우주宇宙와 따뜻한 인정人情
  • 이정우
  • 승인 2015.04.01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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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영화(공상과학 영화)에는 여러 종류의 영화들이 있다. ‘우주 영화[space cinema]’라 부를 수 있을 영화는 우주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는 영화로서,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그 전형을 보여준다. ‘사이버펑크cyberpunk계통의 영화들은 대개 사이보그를 주제의 중심에 놓는 영화들로서,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바이센터니얼 맨〉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외계인의 침임으로 인한 전쟁을 그리는에일리언의 영화라든가(〈우주전쟁〉, 〈에일리언〉 등), 시간의 순환적 구조를 그리는 영화(〈타임 라인〉, 〈터미네이터〉 등), ‘세계의 다원성을 그리는 영화(〈매트릭스〉, 13층〉, 〈오픈 유어 아이스〉 등)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SF들이 있다.

〈인터스텔라〉는 전형적인 우주 영화로서, 〈스타워즈〉류의 완전한 공상과학 영화보다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처럼 자연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우주 탐사 과정을 그리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영화를 비교해 보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차이점들이 발견된다.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우선 우주로 나아가는 이유가 상이하다.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지적 열망에 이끌려, 세계의 신비를 담고 있는 검은 비석의 진실을 찾기 위해서 우주로 나아간다. 반면 〈인터스텔라〉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 즉 생존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 우주로 나아간다. 전자가 우주에 대한 열정이 드높던 시절의 우주 영화라면, 후자는 종말론적 분위기가 팽배한 우리 시대의 우주 영화이다. 새로운 터전을 찾아 지구를 떠난다는 소재는 이전에도 영화로 또 애니메이션으로 여러 차례 표현되었지만, 이번의 〈인터스텔라〉는 이런 흐름에 있어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양자에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차이는 기계와 인간의 관계이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가장 긴박감 넘치는 장면들 중 하나는 컴퓨터 핼HAL과 조종사 데이비드와의 대결이다. 처음에 체스와 같은 가벼운 놀이를 통해 시사된 이 대결은 후에 우주선을 독차지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핼과 생존을 위해 그와 대결을 벌이는 데이비드의 대결로 확장된다. 차가운 우주공간으로 내쳐질 것이냐 우주선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냐를 둘러싼 기계와 인간의 사투가 압권을 이룬다. 반면 〈인터스텔라〉에서의 기계와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의 관계를 맺는다. 기계는 농담의 수위를 조절해야 할 정도로 인간적이며, 기계와 기계 사이에서도인간적인 대화가 이루어진다. 주인공들의 생명을 구해 주는 것도 기계들이다. SF의 역사에서 기계를 이토록 무신경하게 그린 경우도 드물다 하겠다. 이 점에서기계와의 전쟁을 그린 숱한 SF들과 현저히 다른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워너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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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인터스텔라〉는 공히 상대성이론을 이론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상대성이론이 우주론에서 중요한 의미를 띠는 이유들 중 하나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뉴턴은 공간과 시간을 일종의 그릇으로 보았다. 거대한 공간이라는 그릇이 있고 그 안에서 물체들이 운동하며, 거대한 시간이라는 그릇이 있고 그 안에서 사건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공간과 시간은 등질적이며[homogeneous], 각각 3차원, 1차원의 구조이다. 이에 대해 라이프니츠는 시공간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았다. 라이프니츠는 공간과 시간이 사물들과 사건들의관계를 통해서만들어지는것으로 생각했다. 공간은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되는 위치들의 망이고, 시간은 사건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되는 시점들의 망이다. 따라서절대적·공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공간도 시간도 어디까지나상대적이다. 칸트는 뉴턴이 시공간에 부여했던 성격들(등질적 등등)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이 양자를 객관적 존재들이 아니라감성의 경험독립적(아프리오리) 형식으로 규정했다. 다시 말해 인간이 경험을 통해 대상들을 감각할 때 그에 앞서 미리 존재하는, 그래서 감각 자료[sense-data]를 그것들의 일정한 틀로 구성해서 받아들이게 만드는 틀로 규정했다. 달리 말해, 인간 주체에게는 세계를 받아들일 감성의 틀(공간과 시간)이 이미 장착되어 있고, 이 틀에 따라 감각 작용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세 사람의 시공간론은 이후 전개될 모든 시공간론들의 기본 모델이 된다.

ⓒ워너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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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 이론은 말 그대로 시공간더 이상 따로 다루어지는 공간·시간이 아니라 4차원(공간의 3차원과 시간의 1차원이 혼효된)의 시공간 연속체[space-time continuum]—을 상대적인 것으로 보며, 이 점에서 라이프니츠의 시공간론을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상대성 이론에서 가장 흥미로운(그러나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고 하기에는 아직 무리인) 가설은쌍둥이 역설로서, 〈인터스텔라〉에서 묘사되었듯이, 지구의 시간과 우주 다른 곳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과학적 가설임을 떠나서 그 흥미로운 발상 때문에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가설이다. 따라서 영화라는 대중 예술이 이 가설을 즐겨 다루고 있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겠다.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주인공 데이비드가휘어진 공간을 지나가면서 시간의 변전을 겪고, 마지막에는 어린 아기로 변해 지구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렸다. 〈인터스텔라〉는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대에는 없었던웜홀이라든가블랙홀같은 현상을 다루고 있으나, 이야기 줄거리는 역시 다르게 흘러간 시간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두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차가운 우주의 물리학적 진리를 다루었던 반면, 〈인터스텔라〉는 이 진리에 처한 인간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전자가 우주론적 영화라면 후자는 휴머니즘적 영화이다. 전자에서는 우주를 여행하는 조종사들의 내면을 거의 다루지 않으며, 우주 자체에 눈길을 맞춘다. 부품을 갈아 끼우기 위해서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조종사들의 모습은 인간이 이 거대하고 소리 없는 우주에서 얼마나 고독한 존재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다. 반면 후자는 바로 그 우주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주인공은 바로 우주 자체이다. 그러나 〈인터스텔라〉에서의 우주는 그저 배경일 뿐, 이 영화는 오로지 인간의 영화인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에서의 우주는 차라리, 인간의 우주, 인간의 무의식 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인셉션〉과 쌍둥이와도 같은 영화라 하겠다.

이 점은 주인공이 블랙홀에 들어갔을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영화의 대본을 쓰기 위해서 감독의 동생이 현대 물리학을 4년간 공부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사실 이 영화가 〈스페이스 오디세이〉처럼과학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블랙홀에 들어갔더니 미래의 인류가 설치해 놓은, 그것도 주인공의 기억에 맞추어 그의 책장들을 짜 맞추어 배치해 놓았다는 설정은 매우 상상적이다. 말하자면 블랙홀 한가운데에서 발견한 것은 결국 주인공의 뇌 또는 깊은 무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딸과 교감하게 되고, 마침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할 수 있는 데이터를 구하게 되고, 그것을 시계 초침에 입력해 딸에게 전달해 주는 장면은 우주적 장면이기보다는 차라리의 장면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바로 이 부분이라는 점 또한 사실이다. 마치 『삼국지연의』에서 적벽대전을 그린 대목이 가장 허구가 심한 대목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소설로서는 가장 박진감 넘치는 대목인 것과 마찬가지라 하겠다.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이 영화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의 교감에 있다. 그리고 그 교감은 시간의 문제와 얽힌다. 지구의 시간이 한참 흘러갔을 때, 짧은 시간을 보낸 주인공이 가족과 대화하면서 회한 어린 눈물을 흘린다. 딸과 아버지의 깊은 교감 또한 눈물을 통해 표현된다. SF 영화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이렇게 많이 나온 영화가 또 있을까? ‘SF 멜로또는힐링 SF’라는 말을 써도 될 정도로 이 영화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휴먼 드라마를 보여준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에서 이 영화가 그토록 인기를 얻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넓고 차가운 우주에서 우리가 기댈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인정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영화는 다시 한 번 깨우쳐 주고 있다.

 


이정우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 paideia@khcu.ac.kr

 

 

* 『2015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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