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오늘의 영화 〈명랑〉의 김한민 감독 인터뷰] 한국영화흥행사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다!!
[2015 오늘의 영화 〈명랑〉의 김한민 감독 인터뷰] 한국영화흥행사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다!!
  • 전찬일(영화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5.04.0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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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터뷰에 들어가며

어느 지면(서울신문 8월 15일 자 27면, [시론] “기득권 버리는 진정한 리더십이 그립다”)엔가 썼듯, “이쯤 되면 ‘신드롬’이니 ‘현상’ 등의 의례적 수사로는 부족”하다. "김한민 감독의 〈명량〉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흥행 광풍을 설명하기엔”. 7월 30일 개봉 이후 연일 신기록을 수립한 영화는 고작 12일 만에 1천만 고지를 사뿐히 넘더니만, 〈괴물〉(1,300여만)과 〈아바타〉(1,360여만)의 대기록을 일찌감치 경신하고 21일째인 8월 19일엔 1,500만 고지마저 가볍게 넘었다. 영화는 24일 1,600만을 넘어 33일째인 31일 기준으로 1,700백만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31일째인 29일에는 128,481,090,010원의 매출액을 기록, 〈아바타〉의 128,447,097,523원을 뛰어 넘는, 대한민국 영화사상 최고 매출액 신기록마저도 달성했다. 

애당초 이번 쿨투라 특집은 ‘정도전 현상’이었다. 개봉 당일 〈명량〉의 흥행 스코어는, 그 특집을 전격 바꿔야 할 만큼 강력, 아니 ‘기록적’이었다. 그 기록들은 연일 깨지고 다시 새로 수리될 거지만 말이다. 영화는 일주일 전인 23일, 55만으로 〈군도: 민란의 시대〉(윤종빈)가 세운 역대 최대 오프닝 스코어를 한 주 만에 깨버렸다. “1597년 임진왜란 6년,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공격에 맞서 싸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 ‘명량대첩’을 그린 전쟁 액션 대작”으로. 이 대작은 개봉 하루 만에 682,882명을 불러들이며 〈군도〉의 신기록만이 아니라,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가 보유하고 있었던 역대 최고 평일 스코어 672,469명까지 깨는 신기록을 수립했다. 그리고는 계속 신기록 행진을 벌였다.

영화 〈명량〉이 1,500만 관객을 눈앞에 바라보고 있는 8월 19일 오전, 연일 한국영화사를 새로 작성 중인 그 신기록의 주역 김한민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어보다 먼저 도착해 어느 커피숍 테라스에 앉아 있는 그는 올백에 꽁지머리 헤어스타일이었다. 거기에다 앵클릿에 브라운 슈즈로 한껏 멋을 부렸다. 신세대처럼 조금 튄다고 할 수 있는 헤어스타일임에도 흰 셔츠와 블루 마이가 그의 단정함과 세련미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2. 인터뷰

전찬일(이하 전):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한민(이하 김): 별말씀을요. (웃음)

: 우선 의례적이지만 가볍게 소감 한마디 듣고 이야기를 나눠야 하겠죠?

: 이 영화가 기획된 게 2008년, 어느덧 6년 정도가 흘렀는데요. 그때는 ‘역사 3부작’으로 ‘병자호란-임진왜란-일제강점기’란 큰 틀을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그 기획의 두 번째, 임진왜란의 명량대첩을 다룬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만들어 선보인 거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텐데, 결과까지 좋으니까… 뭐 그냥 그래요 성격이. 지금 당장에 특별히 밀려오는 것은 없어요. (웃음) 나중에 밀려올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감사합니다.

: 〈명량〉은 사실 리스크가 상당히 큰 프로젝트였을 텐데, 만들면서 이렇게 잘될 거란 예상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셨을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그 예상과 결과가 어느 정도 일치하고 어느 정도 어긋난 것인지요? 

: 전 솔직히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영화가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지만, 그 포커스가 해전 중심의 이야기로 갈 수도 있고, 그것이 가능하게 구현이 된다면 관객들은 굉장히 즐겁게, 몰두해서 볼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죠. 이순신 장군 영화가 단순히 인물에 포커싱 되고 전기적인 느낌이었다면 흥행에 실패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새로운 포커싱, 즉 해전 쪽으로 이야기를 몰아서 이순신 장군이라는 실존 인물, 특히 역사 속에서 우리가 추앙하는 인물을 해전과 함께 박진감 있게 잘 다룬다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 그러면 〈명량〉을 일반적으로 스펙터클이라고 칭할 수 있는 해전과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드라마로 나누어, 영화의 반이 드라마고 반이 해전으로 대표되는 스펙터클이라고 했을 때, 해전 즉 스펙터클에 방점을 찍으면 영화가 잘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라고 해석하면 되는 거죠?

: 네, 그렇죠. 조금 더 부연설명하자면,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드라마가 해전에서 완성된다고 봐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분법적으로 초반의 60분은 이순신의 드라마고, 또 후반 60분은 해전의 어떤 스펙터클한 전투다,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무슨 말이냐면, 이순신이라는 그 인물이 명량이라는 해전을 준비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었던 여러 가지, 어떤 복안도 있었을 것이고 , 대내외적으로 받는 프레셔(pressure 압박), 부담 등이 있었을 텐데, 영화 속에서 존재하는 그러한 이순신의 실체가 관객들에게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해전이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해전까지 가는 과정에서 이순신의 캐릭터가 완성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요. 그게 핵심 포인트였고, 그 맥을 놓치면 아까 말씀하신 대로 초반 드라마와 후반 해전으로 물과 기름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눠지면서 관객들이 영화를 볼 때 몰입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굉장한 함정이었다고 생각하는 거죠.

: 네. 평론가로서, 그리고 영화 팬으로서 〈명량〉에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그 점입니다. 편의상 분류를 했지만, 그간의 이런 종류의 대작들이 스펙터클과 드라마가 따로 놀았다면, 〈명량〉은 드라마가 스펙터클에서 완성되고, 결국에는 그 스펙터클이 드라마와 완벽하게, 요즘 말로 융합이 되면서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이런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명량〉에 대해 극찬 내지는 호평을 하지만, 반면 드라마와 스펙터클이 따로 논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적잖이 불만스러워하고 아쉬워했죠. 심지어 진중권 같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논객은 ‘졸작’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요 며칠 새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졸작이라는 평가의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는 않았다고 여겨지지만요.

지금 이 자리에서 〈명량〉이 졸작이냐 걸작이냐 수작이냐 범작이냐, 그런 걸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인터뷰를 작성하면서 영화 평론가로서 충분히 풀 텐데, 감독의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게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길 텐데, 그렇게 졸작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섭섭한지요? 아니면 그럴 수 있다고 여기시는지요?

: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웃음) 저는 처음에 졸작이라고 해서 졸업 작품의 준말을 졸작이라고 하나, 내가 뭘 졸업했지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웃음) 그분이 그런 말을 했더라고요. 〈최종병기 활〉은 참 괜찮았다고. 저는 〈명량〉을 〈활〉처럼 만들었고, 〈활〉보다 훨씬 완성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면, 이 영화를 보는 기대치가 다르거나 채널이 다르거나 한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기존의 어떤 드라마나 전투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드라마에서는 조금 더 밀도 있는 한 인물과 다양한 사람들의 드라마를 기대하는 거고, 그다음에 전투 부분에서는 훨씬 더 할리우드적인 스펙터클과 뭔가 아주 멋들어진 전투, 그런 스케일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철저히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지점인거죠. 그래서 드라마에서는 뭔가 주인공 플러스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가 완성되고, 그들이 전투에 나가서는 치고 박고 열심히 싸운다, 그것도 굉장히 화려하고 멋들어지게 싸운다, 그런 기대치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기대치를 가지고 봤다면 이 영화는 그 기대치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고요. 오히려 저는 그런 한 인물,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전체 초반 드라마에서 후반 해전까지 일맥상통一脈相通하게, 일이관지一以貫之하게 갈 수 있기를 바랐어요. 관객들은 틀림없이 그 인물이 자신의 어려움과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내느냐, 그 부분에서 굉장히 큰 감동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특히 현재 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관객에게는 그런 부분들이 더욱 중요한 지점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와 해전 구성을 한거죠. 사실 애초에는 해전을 60분 이상 방대하게 구성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난중일기』의 아주 러프rough하고 대략적인 부분만 있는 전투의 기승전결을 통해 어떻게 하면 이순신의 정신, 특히 자기가 생각하는 멸사봉공滅私奉公, 자기희생, 그리고 솔선수범하는 그런 모습들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라고 본 것이죠. 그런 이순신의 정신이 마침내 드러났을 때, 그 정신이 어떻게 보임으로써 다른 장교들이 거기에 감화받고 함께, 영화에서 말하는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어, 산에서 지켜보는 민초들마저도 거기에 감화해 같이 무언가를 이루어가는 그것, 그것이 바로 이순신의 정신력이고, 이순신이 의도한 것이며,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하는 굉장히 큰 어떤 지점의 드라마가 아닌가, 생각해요.

: 〈명량〉은 요즘 대세가 되어버린 팩션faction, 팩션의 어떤 기능이랄까요, 팩션의 범위를 최대한 잘 활용한 영화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어떤 부분은 고증에 입각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그렸지만, 또 어떤 부분은 작가로서, 감독으로서 과감한 픽션을 도입해 실제 사실과 허구와의 결합을 효과적으로 했다고 보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픽션을 만들어낼 때, 가장 역점을 둔 것이 있었을 텐데요. 그리고 작업하면서도 실제 사실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거나 또는 느끼지 않았거나, 뭐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을 테고요. 제가 볼 때 영화에서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 대사가, 예를 들면 의리와 충에 대한 거고, 충을 백성으로 돌리게 하는 거라고 보고 있는데, 저는 그러한 몇몇의 결정적 대사가 백만, 이백만, 몇백만을 끌어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플러스, “두려움이 용기로 바뀐다.”

: 네, 그렇죠. 그 대사도 창작이죠. 그리고 비주얼로는 울돌목에 갇힌 대장선을 민초들이 끌어내는 장면, 그 장면이 아마 결정적인 감동을 주었을 텐데, 반면 또 그런 것 때문에 비판을 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민초들이 대장선을 끌어내는 장면은 영화의 주제를 집약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국가 이데올로기적이고, 애국심에 호소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그런 대목들로 인해 못마땅해 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으신지 이야기 해주시죠.

: 우선 픽션에는 분명한 기준점이 있었어요. 픽션을 도입하더라도 어떤 리얼리티적 베이스를 가지고, 그것이 어떤 개연성을 가지면 좋겠다, 게다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순신의 정신과 연결되는 지점에서의 픽션이면 좋겠다는 분명한 기준점들이 있었죠. 그러니까 흔히 팩션이라고 했을 때, 어떤 역사적인 기록의 사실에 더해 거기에 어떤 작가적인 상상력을 가미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작가적인 상상력을 가미한다 할 때도 분명한 원칙은 있다고 봐요. 첫 번째로, 그것이 충분히 그럴법한 개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두 번째로는 다시 반복하지만 이 영화의 주제적인 맥락이 무엇인가, 특히 저는 이순신 정신의 핵심을 자기희생이라 보고, 자기헌신과 자기희생을 통해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가는 그 부분이 영화의 주제라고 봤을 때, 거기에 맞는 어떤 사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죠. 그런 것들이 이번 영화에서 팩션의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던 거죠. 그리고 그런 지점에서 관객들이 긍정적으로 잘 반응해 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자기희생과, 그 희생을 통해 뒤로 물러서 있던 장졸들과 두려움에 떨며 산 위에서 지켜보던 민초들이 장군을 돕게 되고, 그 돕는 방식으로 회오리 바다에 빨려 들어가는 장군의 배를 지탱시

주고 건져내는 민초들의 노력…그런 것들은 ‘다이렉트’하더라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봤고, 그것은 일종의 영화적 컨벤션이라 할지라도 아주 좋은 컨벤션이라고 봐요. 컨벤션이라는 용어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주 고답적이면서 ‘아우, 또 저런 거야’식의 부정적인 컨벤션이 있는가 하면 ‘꼭 해줬으면 좋겠다’는, 관객들이 염원하는 컨벤션이 있다고 보는데, 민초들이 대장선을 구해내는 것은 바로 그 두 번째, 후자의 염원적인, 어떤 긍정적인 의미의 컨벤션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 컨벤션은 작가로서 감독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특히 대중 상업영화에서는 그래야 된다고 보고요. 어떤 주제적인 맥락과 불일치하지 않고 어긋나지 않는다면, 그런 컨벤션은 적극적으로 차용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네, 컨벤션은 장르영화와 연관해서 늘 동원되는 용어인데, 김 감독의 장편영화들 〈극락도 살인사건〉, 〈핸드폰〉, 〈활〉, 〈명량〉 네 편은 장르로 한데 묶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죠? 어떻게 보면 새로운 장르를 즐기면서도 컨벤션이라는 것을 중시한다는 건데, 〈명랑〉의 경우 그것은 역사물이라는 장르보다는 대작영화, 대중을 상대로 한 백 수십억이 들어간 대작영화라는 물적 조건이 작용하기도 한 거겠죠?

: 음, 그것도 사실이지만요. 그거보다는 제 자체가 장르적인 요소를 좋아해요. 저는 저를 대중의 한 일원으로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윤제균 감독의 〈낭만자객〉에서 아이가 죽어 하늘로 승천할 땐 눈물도 흘리고. (웃음) 사람들은 제가 그런 말을 하면 굉장히 뜨악해하고 그렇지만 저는 눈물이 흘렀어요. 예, 그런 지점에서 저는 굉장히 대중적인 어떤 습성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대중들에게 이런 게 먹힐 거야”라는 측면보다 그냥 제 자신이 “아, 이건 감동적이야” 내지 “이런 것들은 컨벤션이지만 정말 우리가 충분히 볼만한 것 같아”라는 지점에서 굉장히 적극적이고 스스럼없이 푸는 편인 것 같아요.

: 장르 컨벤션은 사실 영화 창작과 수용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인데, 한국영화가 과거 산업적으로 발전할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관객들이 장르 컨벤션을 즐기지 않거나 못했기 때문이었죠. 작금의 영화 전문가들이 보이는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도, 그런 장르 컨벤션을 악으로 보거나 나쁜 걸로 보면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도 있어요. 그래서 블록버스터 영화나 대작 영화라면, 그런 대작 영화가 갖추어야 할 컨벤션들이 있는데, 그것을 자기의 바람과 연관을 지으면서 컨벤션들을 매도하는 그런 성향이 강하거든요. 저는 영화 평론가로서 그건 바람직한 접근이 아니라는 주장을 해왔는데, 그런 점에서 김 감독은 의식적으로 평상시에 그런 컨벤션을 즐기면서 영화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이번에 그 컨벤션이 최대치의 효과를 발휘한 거라고 보면 되겠죠?

: 앞에서도 살짝 이야기를 했지만, 장르 컨벤션은 주제적인 맥락과 닿아 있어야 된다는 것이 중요하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대중 상업 영화에 투영시킬 때, 그 지점에서 그런 컨벤션들이 잘 이용된다면 저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밑도 끝도없이 “어떤 영화에서 옷을 좀 벗어줘야 돼”그러면서 “이런 장면에서는 베드신이 하나 정도 있어야 되지 않겠어?”하는 식의 컨벤션하고는 다른 거죠. 가령, 〈베티블루〉 같은 영화는 제 아무리 옷을 많이 벗더라도, 그게 그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와 전적으로 부합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영화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느낌이 남아 있지만, 그것을 거의 그대로 리메이크하디시피 해 한국에서 만든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 같은 경우는 정말 ‘벗기기식’, 그냥 관객에게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자 하는, “많이 벗기면 관객들이 좋아하겠지”하는 그런 컨벤션들이었죠. 결국 컨벤션들에서도 굉장한 차이가 있는 거죠. 그런 지점에서 구분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 그렇죠. 여기서 핵심은 주제적 맥락이고, 맥락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베티블루〉를 예로 드셨지만 〈색, 계〉 같은 경우도 예로 들 수 있겠죠? 처음에 ‘역사 3부작’을 준비했다고 하셨는데, 평상시에 역사에 대한 관심이 크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제가 듣기로 순천고등학교에서 날리던 수재였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수재는 아니었나요? 김한민 감독이 순천고에서 날리던 수재고, 연대 경영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혹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나요? (웃음)

: (웃음) 적당한 성적으로.

: 그리고 동국대 영상대학원까지 졸업했고, “이 사람 학구파다. 이게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보는데 제 해석이 너무 과장된 건가요?

: 네, 많이 과장되었습니다. (웃음)

: 어느 정도는 맞는 거죠?

: 그런 건 있었어요. 역사와 세계사를 본능적으로 좋아했던 것. 특히 역사와 세계사 중에서도 전쟁사에 굉장한 흥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전쟁사를 다루는 책이나 다큐멘터리 등을 볼 때에는 희한하게 연도까지도 다 기억이 되고 이상하게 끌리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전쟁 역사물을 만들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 연도를 잘 기억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건데, 연도 기억이 자연스럽게 된다는 건 자기가 머리가 좋다는 것을 자랑하는 거 아닌가요? (웃음) 저는 연도 기억을 잘 못해서 역사를 잘 못한 사람이라…(웃음)

: 그러니까 가장 핵심적인 연도만 알고 있으면 그 연도에서 ±하면서 기억이 되는 거죠.

: 그렇죠. 농담이 아니고 학생들에게 영화 역사 강의를 할 때에는 그 연도 몇 개를 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통사로써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 감독은 그런 쪽에 재능이 있고, 그것이 결국에 영화적 결과로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첫 두 영화는 역사하고는 거리가 먼데, 데뷔할 때 역사물로 하기는 부담스러워서였나요, 아니면 나중을 노린 겁니까?

: 죄송하지만, 둘 다 아니고요. (웃음) 처음에 영화를 시작할 때는 그런 영화로 시작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당시에는 스릴러, 미스터리가 인기 있었는데, 그 지점에서 영화를 시작하는 것이, 데뷔 감독으로서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죠. 첫 번째는 제작비가 그리 크지 않으니까 신인 감독에게 무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직 영상으로 보여주기 전에 시나리오 상에서 관객들에게 흥미를 줄 수 있는 장르가 스릴러요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극락도 살인사건〉이라는 작품을 만들게 됐고, 〈핸드폰〉까지 간 거죠.

: 〈극락도 살인사건〉은 나름대로 호평을 받았고, 흥행도 꽤 됐죠?

: 네, 흥행이 꽤 됐죠. 한 250만 명 정도…

: 250만 명이면 데뷔작으로 큰 성공을 한 거죠. 저는 당시 〈극락도 살인사건〉을 봤습니다만, 그땐 별로 안 좋아했습니다. 〈핸드폰〉도 별로 안 좋아했었고. (웃음) 김한민 감독은 〈최종병기 활〉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 〈극락도 살인사건〉이 그 당시 비평적으로 꽤 좋은 평가를 받은 것에 대해서 가장 못마땅해 한 평론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 정말 재밌네요. 사는 맛이 있어요. (웃음) 그리고 〈핸드폰〉도 나름 괜찮았죠? 흥행 성적도? 제일 성적이 낮은 걸로는 알고 있습니다만.

: 네, 〈핸드폰〉은 성적이 안 좋았어요. 한 65만 정도. 〈명량〉의 하루 스코어도 안 되는…

: 보통 데뷔작에서 큰 성공을 하고, 두 번째 영화에서 상대적으로 부진할 경우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핸드폰〉 다음 〈활〉은 상당한 대작이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쉽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영화와 영화 사이에 인터벌interval이 상대적으로 짧은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요? 삼성 영상사업단에 몸담았던 걸로 아는데, 그 출신인 것과 연관 있나요? 아니면 연대 경영학과를 나왔는데, 경영적 재능이 있는 겁니까? 어떤 겁니까?

: 어떻게 보면 그 두 가지는 영화제작을 하는데, 어떤 시기까지는 독이었습니다. 제가 삼성 출신이었고, 연대 경영학과를 나왔고 하는 것들이, 제작자들에게는 부담스러웠던 거죠. 그래서 일부러 그런 사실들을 이야기를 잘 안 했어요. 그런데 〈극락도 살인사건〉의 투자와 배급을 맡았던 곳이 ‘MK픽쳐스’였는데, 심재명 대표가 어느 날 오더니 넌지시 “혹시 예전에 삼성 영상사업단에서 근무하지 않으셨어요?”물어서, “ 앗, 들켰다”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웃음) 어쨌든 그렇게 해서 〈극락도 살인사건〉을 통해 어렵게 데뷔를 했고, 물론 여러 상을 받기는 했지만, 그게 아주 크게 흥행한 작품도 아니었기 때문에 〈핸드폰〉을 제작할 때는 거의 새롭게 다시 신인 감독으로서, 데뷔하는 감독의 느낌이었어요. 〈극락도 살인사건〉의 프리미엄이 크게 없었던 겁니다. 〈핸드폰〉이라는 작품을 어렵게, 심지어는 제작자에게 한번 거절당하기도 하고, 결과에서는 어떻게 보면 굴욕적이기도 하지만 저는 〈핸드폰〉이라는 작품에 대한 강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핸드폰〉은 제게 여러 가지 복기하는 것들이 많았어요. 왜 그 작품이 안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따지고 보면, 〈극락도 살인사건〉 때부터 전반적으로 제가 너무 많이 관여했던 것 같아요.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그 전에 너무나도 많은 작품들이 엎어지면서 〈극락도 살인사건〉이 마지막 작품이라 는 생각으로 쓴 건데, 그 영화는 저예산이라도 제작을 겸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쓴 작품이었습니다. 〈극락도 살인사건〉의 제작자는 저하고 친한 분이면서도 그때 막 신생 영화사를 차렸던 분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거의 같이 만들어가는 영화였죠. 그런데 〈핸드폰〉 때도, 그 다음 〈활〉 때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연출에만 집중하지 않고, 전반적인 제작과 캐스팅, 여러가지 스태프 운영과 그런 것들을 같이 겸했던 것이 노하우가 쌓이면서, 오히려 〈명량〉 때는 아예 제작을 하자는 상황이 되었던 겁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감독을 한다는 것은 충분한 시스템의 뒷받침을 받지는 못하기 때문이죠. 감독이 글부터 써야 하고, 이런 구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잖아요? 그래서 완벽하게 준비된 세팅 속에 감독이 연출로만 참여하는 경우는 한국의 제작 시스템에서는 찾기 힘든 게 현실이기 때문에, 이제 그런 지점에서 동원되는 어떤 자구책들이 오히려 다행히 영화를 2년에 한 편씩은 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 그렇군요. 개인적으로 〈명량〉처럼, 한국 영화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세 번 본 건 처음입니다. 시사회에서 두 번 보고 며칠 전 표를 사서 한 번 더 봤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해전도 해전이지만 드라마의 내적 긴장감이 참 좋았거든요. 드라마의 내적 긴장감이 하도 세 정신을 못 차리고 두 시간을 보냈는데, 나중에 보니까 드라마에 대한 말이 많더군요.

: 혹 드라마를 지루하게 봤다는 것 아닙니까?

: 그렇죠. 드라마를 지루하게 봤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영화를 잘못 본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더라고요. 어떻습니까, 드라마를 구축하면서 제일 방점을 찍으려 했던 건 어떤 겁니까?

: 일촉즉발一觸卽發의 긴장감이죠. 왜군들이 언제 몰려올지 모르는데 이순신 진영 내부는 분열되어 있고, 그 상황에서 이순신에게 가해지는 어떤 압박감이 있죠. 드라마에는 전체적인 서스펜스가 있고, 그걸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굉장히 큰 관건이었죠. 교차 편집을 효율적으로 잘 이용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이 이순신과 똑같이 긴장감을 느껴야 하니까. 그런데 막상 시나리오 순서대로 붙여놓으니 약하더라고요. 때문에 장면을 콤팩트하게 재구성하면서, 씬Scene의 마지막 컷들과 다음 신의 첫 컷을 재배열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를 통해 곧 닥쳐올 전쟁이라는, 폭풍전야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게 굉장히 큰 화두였습니다. 감히 말하는데, 영화에서 그걸 이뤘다고 생각해요. 제가 팔불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출정 신 때는 전쟁 수행 자체도 어려운 그런 상황이니까, 눈물이 다 나오더라고요.

: 그러면 극적 긴장감이 뛰어났다는 제 평가는 감독의 의도와 부합되는 것이군요?

: 아주 일치합니다. (웃음)

: 〈활〉 때도 그랬지만, 한국 영화를 보면서 내적 긴장감이 이렇게 뛰어난 영화가 없다고 할 정도로 영화에 빨려드는 것 같았거든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영화를 연출할 때 크게 시각적, 청각적, 이야기, 주제 등 다양한 층위가 있는데, 감독으로서는 골고루 공을 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본인의 성향상 가장 역점을 두는 지점이 있을 거예요. 본인이 연출가로서 가장 역점을 두는 지점은 어딥니까? 

: 그건 한 마디로 말씀드릴 수 있는데, ‘운율과 리듬’이에요.

: 운율과 리듬!

: 네,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영화 서사에서 반드시 달성하고 싶었고, 그 목표를 달성해야만 대중영화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봤어요. 운율이나 리듬이라는 건 결국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니까, 음악이나 뮤직비디오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이런 서사구조에서도 필요하다고 봤죠. 그래서 운율과 리듬에 맞춰서 편집을 합니다. 종합적으로 그런 면을 가장 자신 있게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는 영화가 〈최종병기 활〉이었고요. 그런 다음 감히 이순신 영화인 이 〈명량〉에서 다시 한 번 그 운율과 리듬을 달성하고자 했죠. 덕택에 어떤 측면에서는 61분이나 되는 전투 장면이 지루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의 서사도 긴장감을 형성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고요. 제가 그렇게 해야만 관객들이 즐겁게 영화를 볼 수 있어요. 운율과 리듬에 중점을 두는 아주 큰 이유죠.

문제는 운율과 리듬을 달성하는데 난관이 되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음악이 과도하게 다른 영화보다 많이 쓰여야 한다는 거예요. 영화 자체가 하나의 두 시간짜리 오케스트라라고 보면 됩니다. 음악 감독이 할리우드 영화 이상으로 신경 써서 음악을 작업해줘야 하죠. (웃음) 다른 하나는 대사의 압축과 생략 같은 요소를 굉장히 신경 써야 한다는 겁니다. 늘어놓으면 하나의 서사적인 이야기밖에 안 되기 때문에, 영화를 하나의 음악이나 뮤직비디오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대사가 필수적이고, 어떤 대사들을 쓸 때 얼마만큼 운율을 띠면서 압축과 생략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요. 편집할 때가 되면 저는 항상 기존의 시나리오상에 있었던 것보다 많이 압축하려 하고, 신경도 더 많이 들여요. 대사의 전후 관계에서 편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러다 보면 하나의 큰 맹점이 생기는데, 운율과 리듬을 잘못 잡으면 뒷부분이 싸그리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흔히 관객들이 말하는, 작품에서 튀어나오는 부분이죠. 그래서 영화를 두 시간짜리 오케스트라로 만드는 작업을 ‘모 아니면 도 게임’이라고 봅니다. 제대로 되면 관객들이 굉장한 걸 보게 되고, 어느 순간 탁 틀어지면 관객들이 영화에서 빠져나오면서 굉장히 지루해지고, 피하게 되는 그런 느낌. 자기가 보는 영화의 엇박자를 느끼게 되는 거죠.

: 지금 들어보니 제 해석과 김 감독의 의도가 거의 똑같군요. 왜냐면 〈최종병기 활〉을 보면서 놀랐던 게, 한국에서 이런 식으로 영화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감독이 있구나, 하는 것이었거든요. 김 감독은 특히 음악을 할리우드식으로 사용한 한국 최초의 감독이고 유일한 감독인데, 그런 의미에서 〈명량〉은 〈최종병기 활〉보다 음악의 역할이 더 부각된 작품 아닌가요?

: 사실 〈최종병기 활〉보다 〈명량〉에서의 운율과 리듬이 더 완성도가 있어요. 그렇기에 〈명량〉에 대한 진중권 씨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고요.

: 〈최종병기 활〉과 〈명량〉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활〉에서도 음악이 부재하는 부분은 아주 조금밖에 없는데, 〈명량〉에서는 그보다 더 조금밖에 없죠. 때문에 〈명량〉에서 음악의 비중이 훨씬 더 커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 훨씬 과감한 몸싸움입니다. 음악이 없는 장면에서는 더 과감하게 지워버렸고, 그런 지점들을 선택적으로 집어넣어 놨어요.

: 얘기를 하다 보니 음악에 대해 남다른 면이 있으신데요. 데뷔작에서는 음악 연출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 음악과 연관해 어릴 적부터 어떤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겁니까?

: 전혀 없습니다. 트레이닝 받은 적은 없어요.

: 전혀 교육받은 적이 없는데도, 그렇게 음악적으로 해내는 건가요?

: 아마 영화들을 보면서, 음악적인 면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같아요.

: 〈명량〉의 음악에 대해서 좀 더 말하면, 김태성 음악 감독에게는 기분나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처음에 음악이 맘에 안 들어 바꿔달라고 요구했다고 들었는데, 그랬나요? 아니면 유언비어인가요?

: 아닙니다. 처음에 음악이 맘에 안 드는 경우는 여러 작품에서 비일비재해요. 왜냐면 음악 감독과 감독이 이야기는 주고받지만, 그게 음악으로 나왔을 때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러면 다시 작업을 해나가는 거고요. 물론 음악 감독과 같이 생활하는 기간이 길었죠. 그 음악 감독이 음악을 되게 잘해요. 특히 예고편 음악들을 엄청나게 했던 분이기 때문에, 음악에서 언제 힘을 주고 빼는가를 굉장히 잘 아는 감독이에요. 다만 음악적인 톤이 기획 의도와 다르게 나가는 점이 있을 수 있는데, 제가 같이 있으면서 초기에 고쳐나갈 수 있게 된 거죠. 그렇게 하면서 거의 두 달을 함께 살았으니까요. 그 이야기가 와전된 것 같습니다. 

: 그렇군요. 〈명량〉의 음악을 보면 도입부에서 이미 영화의 음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라는 게 다 나옵니다. 사운드도 비주얼과 마찬가지로 전면, 배면, 중간면이 있다면 도입부에서 영화의 음악에서 나올 수 있는 거의 모든 게 다 나오면서 음악 구성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들려주는데, 그것이 아주 효과적으로 작동한 것 같습니다. 물론 자칫 잘못하면 음악이 과잉이나 통속으로 흐를 수 있는데, 여기서는 효율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자고 결정한 거겠죠?

: 과잉이고 통속이라기보다는 영화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도록 밸런스를 유지하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어떤 밸런스냐면 음악이 굉장히 전위적이면서 파격적인 지점과, 장중하면서 계몽적 분위기의 지점, 그 사이에서의 밸런스라고 할까요. 그 지점을 찾아가는 작업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우리 음악 감독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고민이 많았을 거예요. 처음에 1차 블라인드 모니터링을 했을 때는 토속적인 악기가 있고, 쇠피리나 타악기 소리, 이런 것들이 섞여 있었죠. 가령, 장군이 어머님 앞에 절하고 출정하기 전에 음악이 굉장히, 뭐라고 표현할까, 현충사에서 보이는 그런 헌화하는 느낌의 어떤 정서로서 음악이 나오다보니 영화가 고답적인 느낌으로 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 음악을 잘못 쓰면 영화가 잘못될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렇지만 음악을 써야할 때에는 또 과감하게 사용했습니다. 전쟁 때 구루지마의 안택선安宅船(아타케부네)과 이순신의 대장선이 부딪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음악적 층위는 되게 다양하고 리듬도 정말 파격적이에요. 리듬이 마치 회오리처럼 돌아가는 그런 음악도 있고. 반대로 드라마 쪽에서는 뭔가 16세기 때의 고전음악 쪽의 것들, 서양음악을 많이 썼어요. 희한하게 토속적이거나 동양적인 악기로 구성하니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그건 스케일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 시대의 이순신을 해석하는데 관객들에게 새롭게 다가가야 하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16세기 고전음악들의 음계, 가령 도, 레, 미, 파, 솔, 라, 시, 시#의, 굉장히 장중하고 성스럽게 느껴지는 음계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죠. 그러다 보니 보는 사람들에겐 영화를 보다 보면 굉장히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성웅 이순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고답적이지 않으면서도 그럴듯한 영웅으로 보이게 한다는 게 절대 쉬운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그게 사운드에서도 잘 드러났어요.

: 앞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이라고 했습니다만, 영화의 전반적인 음악이 대개 오케스트라적인 느낌이 강한데, 중간 어느 지점에선가는 피아노로만 진행되는 부분도 있지요.

: 네, 있었죠.

: 전 그때 피아노 선율을 들으면서 음악 감독이 꽤 수준급 음악을 구사하는구나, 싶었어요. 완전히 서구적인 악기 편성이고 서구적인 음악 선택일 수도 있는데, 그것이 영화적 설정과, 전형적인 한국 것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상당한 음악적 수준을 보여준다, 생각을 했죠.

: 사실 저는 그때 반대했었어요. 피아노만 쓰지 말고 스트링을 같이 넣어야지 하는데, 음악 감독이 “여기서는 나를 한 번 믿어 달라. 여기서는 단선적인 피아노로 살짝 까는 것이 훨씬 음악적으로 좋다”, 그러더군요.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는 “스트링도 조금 넣을게요”, 하더라고요. (웃음)

: 전 그 부분이 참 좋았어요. 아까 대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만 대사도 사운드잖아요? 지금 대사와 음악을, 운율과 리듬을 말할 때 중요한 두가지로 들었습니다. 보통 편집에서는 사운드보다 비주얼에 중점을 두기 마련인데, 김 감독은 사운드 쪽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처럼 보여요. 제가 봤을 때 김한민 감독이 대한민국에서 다른 감독들과 가장 다른 점을 든다면 그 사운드에 들이는 공, 그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의식적으로 사운드에 그만한 공을 들이는 건지요? 그것은 평상시의 영화적 지향입니까? 아니면 한국의 다른 감독들이 사운드 연출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에 대한 자신만의 화답입니까?

: 꼭 그런 것은 아니겠죠. 일단 사운드가 주는 순정성이라고 할까요. 영화에서 우리가 갖는 편견 중 하나가“영화는 이미지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우리가 영화를 무성영화와 유성영화 시대로 나누지만, 무성영화 시절에도 오케스트라는 있었어요. 그래서 순수하게 무성영화인 적은 없었다고 할 수 있죠. 그만큼 음악의 중요성, 사운드의 중요성이 크죠. 사람의 뇌가 받아들이는 걸 따지면, 이미지보다도 어떤 사운드가 주는 즉각적인 반응이 더 크대요. 그때가 언제였을까, 대학교 때였나, 잘만 킹 감독의 영화들이 유행했던 적이 있어요. 그 영화를 틀어놓고 잠이 든 적이 있었는데, 잠이 들었으니 이미지는 보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그 꿈결 속에서도 들려오는 전체적인 사운드의 조화가 너무 좋은 거예요. 사운드와 내레이션, 그 발자국 소리가. 그게 아마 〈레드 슈 다이어리〉이었던 것 같은데 그 사운드적인 조화들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그게 아마“내가 영화를 계속 한다면 저런 사운드적 연출을 꼭 해봐야겠다”는 의식을 가지도록 만든 것 같아요. 그때의 결심이 계속 제가 만든 영화들의 작업에 투영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첫 번째 투영이 〈극락도 살인사건〉인데, 그 영화를 그림을 놔두고 사운드만 들어보면 상당히 재밌거든요. 〈명량〉의 경우도 그렇고. 그래서 음악 하시는 분들이 좀 힘들어하긴 해요. 우리 음악 감독도 그렇고, 믹싱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저랑 작업할 때 다른 작업보다 두세 배의 공력과 힘이 든다고 해요. 그렇지만, 미안하긴 해도 어쩔 수 없죠. 거기에서 리듬과 운율이 잡히고 그러니까….

: 음악을 음악 감독과 감독이 협의해서 결정하고 그렇습니다만 선곡과 작곡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여부는 효과에 따라 결정하는 거겠죠? 예를 들면 의도적으로 작곡을 해서 곡을 넣는 것과, 거꾸로 “뭐 애써 만들어? 있는 것 중 적당한 곡 골라 쓰지?”하는 것. 어떻습니까?

: 전체적으로 만드는 건 만드는 거고요. 일단 가이드 곡을 선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다행히 편집 감독이 〈활〉과 〈명량〉을 같이 했는데, 음악적 선곡이나 레퍼런스를 굉장히 잘 준비해와요. 그러면 제가 듣고 좋다 그러는데 음악 감독은 괴로워하죠. 아니 무슨 음악이 〈맨 오브 스틸〉이고 〈다크 나이트〉고, 그런 류냐는 거죠? 본인이 그런 퀄리티로 음악을 만들어내야 하니까 힘들어 하는 거죠. 어쨌든 그런 레퍼런스를 가지고 편집을 하고, 그렇게 편집한 것을 가지고 음악적인 작업을 하고, 다시 그런 음악적 작업을 찾아보면서 편집을 하고…그런 작업들을 반복하는 거죠. 저는 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요. 제 영화들은 거의 2시간 10분 안쪽이고, 이번 영화도 2시간 8분인데, 정확히는 본편만 2시간 2분이에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아니 왜, 영화가 이렇게 짧으냐” 그러는데, 대작이고 사극이, 이순신 영화고 그러니까 훨씬 더 긴 2시간 20분에서 30분 정도의 러닝 타임을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2시간 전후로 만드는 것이 전체 영화를 하나의 리듬으로 만들어내는 데 훨씬 좋은 것 같아요.

: 그런데 음악을 들으면 대부분이 가사가 없는 인스트루멘탈 곡이고, 가사가 있는 곡이 거의 없어요. 효과 때문에 일부러 그런 겁니까, 아니면 가사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런 겁니까?

: 〈활〉에는 있었죠. 엔딩 크레디트 올라갈 때 ‘달그림자’라는 곡이 있었는데, 〈명량〉에서는 그렇지 못했고, 합창은 좀 들어갔어요. 남성과 여성의 합창 부분이 있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 자, 이제 굳이 나누자면 내러티브 층위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어떤 평자는 이 영화를 영웅 서사로 말했고, 저는 영웅 서사를 해체시킨 것이라 말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의식을 했건 하지 않았건 감독으로서 연출 전이든 후든 영웅 서사를 형상화한 겁니까? 아니면 제가 해석했듯 한 영웅의 인간적인 고뇌라든지, 그런 쪽에 초점을 맞췄나요?

: 그 질문의 대답은 둘 다인 것 같습니다. 그게 아이러니한 부분입니다. 처음 의도한 것은 영웅 서사의 해체가 맞아요. 그러니까 이 영화가 영웅 서사로 가면 정말 망한다, 그러면 이 영화를 만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했죠. 그런 지점에서 주연 배우인 최민식 배우와도 서로가 통했고요. 사실 이순신이란 인물을 인간으로 끌어내리자, 그리고 인간으로 끌어내려서 평범하게 밥도 먹게 하고, 아파서 골골거리게도 하고, 심지어는 대내외적인 압박 속에서 피도 토하고, 그러면서 울기도 하고, 그런 인물로 끌어내리자는 해체를 생각했죠.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고 묘한 것이 그럴수록 이순신이 영웅이 되어가더라고요. 참 묘한 지점이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공감하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순신을 보는 듯하지만, 그러면서 영웅이 완성되어가고, 그러더라고요.

: 그러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웅 이순신의 인간적 면모’와 ‘인간 이순신의 영웅적 면모’가 같이 담겼다고. 사실 저도 두 번 볼 때까지는 앞서 말한 영웅의 해체로 해석하고, 세 번째 볼 때는 해체와 영웅 서사 두 가지를 같이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순신을 보여주는 카메라를 볼 때, 처음에는 무리 속의 이순신을 중점적으로 봤습니다. 특히 해전 시퀀스에서, 배에서 싸울 때 보통의 영웅 서사는 이순신이 어떻게 맹활약을 하는가에 카메라를 맞춰야 하는데, 좀처럼 그러지 않거든요. 그러다 한 지점에서 카메라가 천천히 패닝을 하는데, 관객은 이순신이 어디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다 무리 속에서 이순신 장군이 보이는데, 전 그걸 보면서 결국 이게 감독 김한민이 보여주고 싶었던 거구나 싶었거든요. 그러면서 〈명량〉은 영웅 서사를 해체시키는 영화다, 라고 봤는데, 세 번째 보니까 이순신 개인을 클로즈업하면서 영웅적 면모를 부각시키는 장면도 적잖더라고요. 그래 결국에는 결합 내지 융합을 시도한거구나,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영화를 반복해서 봐야 한다는 게 그런 거죠. 첫 번째 두 번째는 비슷하게 보였는데, 세 번째는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한두 번 더 볼 계획인데, 네다섯 번째 보면 또 다른 부분이 보일 것 같습니다.

: 네, 아마 또 다른 게 보일 거예요. (웃음)

: 이제 영웅 서사는 이 정도로 이해를 하고, 박우성이란 평론가가 “누구나 알고 있는 영웅 서사를 누구나 감동할 수 있는 절차로 구성한다”라고 평했는데, 어떻습니까, 많이 알려진 것들을 김한민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보여주는 것, 하나가 있을 거고 아니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을 찾아서 보여주는 것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게 섞였겠지만, 방점을 찍었다면 어느 쪽인가요?

: 이순신 장군을 새롭게 보여준다, 그런 생각보다는 이순신 장군을 좀 더 알아가자는 의미였고, 알아가는 부분에서 좀 더 아는 것을 보여주자,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더 집착할 수밖에 없었고, 반복해서 읽다 보니까 나오는 영감이랄까요 깨달음이랄까요, 그런 것들이 영화 속에 더욱 투영이 된 것 같아요. 가령, 이순신이 왕에게 마지막 장계를 쓰는 대목에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신이 살아 있는 한 적들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 말을 그냥 “장군님이 위대하시니까”, 그렇게만 해석을 했지, 그 속에서 적들이 이순신 장군을 굉장히 두려워했겠구나, 라는 생각은 못했었죠. 그러면서 그때 떠오른 화두가, 두려움은 어쩌면 12척만 남아 있는 이순신 진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들에게도 있겠구나, 라는 깨달음이었죠. 그러면서 더욱 더 그 두려움이라는 코드를 이 영화의 전체적인 핵심 테마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또 두려움을 표현하기 위해 해상 전투가 펼쳐져야 하는데, 그러면 그런 해상 전투를 얼마나 더 리얼하고,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일단 고증을 찾아가 보자, 하고 당시를 찾아가보니까 정말 다양한 무기들이 있더라고요. 그것은 고증을 하면 할수록 더 새롭게 보이는 지점이었어요. 사람들이 모르는 것들, 그리고 그런 무기 체계 속에서 장군이 정말 죽기 살기로 싸웠겠구나, 그런 느낌도 강하게 들고. 그러면서 그런 이순신 장군의 싸움을 그냥 그렇게 보여주니까 그 자체가 아이러니하게도 새롭게 보이는 것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리얼하게 보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바로 우리 영화의 주제적인 맥락인 이순신의 자기희생에 더 맞아떨어지는 그런 느낌으로 보이는 것이죠. 뭐 그랬던 것 같아요.

: 〈명량〉을 보면서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보통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면 피-아가 명백하거든요. 적과 아군이 확실한데, 영화 속에서 실제로 묘사된 것을 보면 적군을 보통의 영화들처럼 특별히 약하게 그린다거나 하질 않고 그냥 그들은 그들, 이들은 이들로 그리더군요. 저는 그런 접근이 참 좋았어요. 그러니까 우리 쪽에서 보면 당연히 왜군 놈들이 죽일 놈들이고 그렇지만, 영화에서 보면 우리네 쪽의 내분을 공들여 묘사하는 것처럼 저쪽 왜군들의 모습을 적잖이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헌데 아마 그 지점에서 또 못마땅해하는 이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왜군들을 좀 더 나쁘게, 악랄하게 그려야 하는 것 아니냐, 는 식의 비판은 듣진 않았나요? (웃음)

: 네, 전혀 못 들어봤어요. 워낙 악랄해 보였기 때문에. (웃음) 그런데 그런 건 있었어요. 이 영화가 다른 어떤 임진왜란을 다룬 작품들과의 차별점이 뭐냐면, 왜군들을 한 덩어리의 적들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그들 각각의 야심이 있고, 그들 각각이 독립적인 개체처럼 보이게끔 하려고 의도했어요. 실제로도 그랬고요. 그들이 막 전국시대를 끝냈는지 안 끝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가장 큰 칼잡이들이 모여서 조선 침략을 하는 것이니까, 그런 지점에서 그들이 왔을 때 그들의 생각도 저마다 달랐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의 생각이 달랐고, 또 소 요시토시라고 하는 쿠시마 군주의 생각도 달랐고… 그런 것들이 분명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왜적이더라도 그들이 가지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상대의 적들이 더 그럴싸해 보이고, 더 리얼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혹자들은 구루지마 역으로 류승룡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했음에도 제대로 역할도 시키지 못하고 소모시켰다는 비판도 있던데요.

: 그거야 뭐 보기 나름이니까. 그렇게 치면 이순신 장군의 비중도 작았다 볼 수 있죠. 왜냐하면 워낙 많은 인물들을 보여주는데, 두 시간 동안 이순신의 영웅담으로만 가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이순신의 비중도 기대치에 비해선 작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저는 보통 다른 영화들에서는 간과하거나 무시할 많은 조연, 단역까지도 비춰주고, 특히 울돌목에 대해 설명하는 김 노인의 의견을 이순신 장군이 들어주는 설정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사실에 입각한 것입니까, 픽션 입니까?

: 그건 픽션입니다.

: 그렇죠? 픽션이죠? 그런 요소들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역할의 비중이 분산될 수밖에 없는데, 저는 그 분산된 것들이 〈명량〉을 남다르게 돋보이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반대로 그 분산으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졌다, 더 중심으로 몰아갔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견도 있는 거고요.

: 저는 그렇기 때문에 더 집중력 있고, 더 몰아갈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 이 영화의 최종 시나리오가 집필된 것이 언제죠?

: 투자사에서 투자 논의가 시작될 수 있었던 완고는 2012년 5월이었어요. 초고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 1월이었고.

: 그러면 2년도 더 지난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명량〉이 2014년 지금 이 시점의 한국 상황을 의도하고 시나리오에 담는 것은 불가능했겠군요. 우리나라 상황은 물론 그때도 엉망이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엉망인데, 세월호 참사도 벌어지면서 영화의 임팩트가 더 배가 되고, 지금과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흥행 결과가 나왔다고 할 수 있죠. 제가 3년 전부터 경희사이버대에서 ‘영화에서 시대를 읽다’라는 강의를 하고 있는데, 결국 영화는 이렇게 시대와 같이 맞물려 가는구나,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됐습니다. 요즘 한국 영화는 시대와 더불어 가고 있는데, 〈명량〉이 시대 상황, 시대 분위기와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룬 것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여담이지만 세월호 참사 때문에 개봉을 연기하느냐 마냐 심각한 상황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오히려 그 참사가 영화의 성공에 큰 도움을 주는 흥미로운 상황이 벌어졌네요. (웃음)

: 그때 생각하면 정말 아찔합니다. (웃음)

: 그래도 2012년 당시 한국 사회와의 연관성을 무시하면서 시나리오를 쓰지는 않았겠죠? 어떻습니까?

: 음, 저에게 그런 성향이 하나 생겼는데요. 영화는 어떤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중에서 어떤 영화의 주제를 잡고, 그 주제가 잡히면 이 영화를 어떤 장르로, 어떤 이야기 구성으로, 어떤 캐릭터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겠다는 하부구조가 결정이 됩니다. 저는 그게 참 좋아요. 그렇게 해서 영화를 구상하고 작품을 낼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역사 3부작이라고 해서 2008년도에 그런 구상을 하긴 했지만, 우리 민족이 겪었던 가장 힘든 수난들을 세 가지로 ‘병자호란-임진왜란-일제강점기’라고 했을 때, 임진왜란은 결국은 이순신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고, 그리고 이순신의 가장 극적인 해전이었던 명량을 영화화해야겠다고, 그때는 그렇게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활〉을 하고 나서 명량을 다시 생각했을 때는 생각이 조금 달랐어요. 어쩌면 이것이 통합과 화합의 가치를 갖는 아이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는 좌다 우다, 진보다 보수다, 그리고 또 계급과 세대 간의 갈등이 굉장히 심한 시대에 살고 있는데,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종교도 지금 우리 사회를 통합해 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김구 선생이 계시지만, 김구 선생마저도 ‘테러리스트’라면서 공격을 받는 느낌이 있고. 그런데 광화문에 저렇게 화석화돼 박제되어 있는 이순신 장군이 지금 현 대한민국을 화합과 통합의 가치로 가져갈 수 있는 좋은 아이콘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굳혀지더라고요. 아, 그러면 이 영화를 더욱 더 꼭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이 아주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 그리고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시나리오를 쓸 때보다 연출을 하는 과정에서 더욱 악화된 한국의 시대상황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담을 수 밖에 없었겠죠? 그렇죠?

: 그래서 탄생한 대사가 있죠. 마지막에 “이 쌓인 원한을 어찌 할꼬?”죠. 그 대사는 어떤 것도 염두에 두지 않았고, 시나리오에도 없던 대사였어요. 전장을 지나가는데, 산 위에선 ‘장군님’하며 민초들이 절을 하고, 바다는 바다대로 느낌이 있을 텐데, 뭔가 대사 한마디를 하면 좋겠다, 이순신 장군이라면 어떤 대사를 했을까, 라는 의문을 품었죠. 거기서 원한에 대한 대사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 대사를 하고 전장을 나가면, 느낌이 굉장히 좋을 것 같았어요.

: 맞아요. 그 대사는 그렇게 생각하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말미배 밑에서 땀 흘려 노를 젓던 격군들이 전투가 끝난 뒤 주고받을 때 나온 “우리가 이렇게 개 고생한 걸 후손들이 알랑가”라는 대사가 있었죠.

: 네, 그 대사는 처음부터 있었어요. 그 대사에는 어떻게 보면 이 영화를 만든 의미가 담겨있죠.“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것을 후손들이 알까? 몰라주면 호로 자식이지”라는 대사는, 처음에는 앞 대사만 넣으려고 했다가 너무 직접적인 것 같아 중간에 끼워 넣기로 결정하고, 쉬고 있는 격군들을 쭉 훑어가는 과정에서 그 대사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쟁을 61분 동안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정말 처절하게 개 고생하는 전투를 보여주면서, 그 전투를 보는 관객들이 “그래, 우리 조상들이 우리나라를 저렇게 지켰구나”, 라는 느낌을 그 대사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었던 거죠. 다이렉트 하지만 저는 그게 더 좋았습니다.

: 그 대사나 그런 것들 때문에 애국 이야기가 나오면서, 애국심에 호소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 거겠죠. 애국심이 사실은 나쁜 것이 아님에도 영화가 애국심과 연결되면 마치 불순한 의도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아도,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게 현실이죠. 앞서 통합과 화합의 가치 등 그런 이야기도 했었는데, 실제로 영화 작업을 하면서 애국이라는 단어와 영화, 본인의 연출을 의식적으로 연결시킨 것이 있었나요? 아니면 전혀 의식하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논의가 나온 것인가요?

: 그건 있어요. 저는 애국보다는 ‘애족’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좋겠어요. 제가 역사를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역사를 쭉 들여다보면 볼수록 상고사에 관심이 가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라는 책도 있고 고대사에 관한 여러 책들이 있는데, 거기에서 보면 우리 민족이 ‘광명민족’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광명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배달倍達민족이라는 의미죠. 배달은 ‘박달’이라는 표현에서 나온 것인데, 박달이란 ‘밝다’는 것이죠. 밝다는 것은 광명이고, 우리 민족이 천손민족이라는 개념들을 끊임없이 상고사에서 말하죠. 이 ‘밝다’는 것은 태양 아래 있어 밝은 것이 아니라 자기완성에 가치를 두고, 곰이 백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었듯이 웅(곰)족이 환웅천제의 어떤 감화를 받아서 자기완성을 이루어가는 것을 ‘밝다’라고 표현한 것 같아요. 이런 상고사적인 개념이 우리 민족에게 쭉 흘러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민족적인 계보를 찾다 보니 민족에 대한 자긍심도 생기고, 자연스럽게 애족이 됐죠.

이순신 장군이 어머니에게 절하는 장면을 연출할 때, 지금의 붉은 악마의 상징인, 14대 자오지천왕인, 자오지라 불린 치우천왕을 현판에 그대로 박아놓고, 밝은 현자를 딱 써놨거든요. 이순신 장군의 본 모습은, 어머니에게 절하는 걸로 보이지만, 사실은 치우천왕 현판에서부터 절을 시작하는거죠. 항간의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 나갈 때 항상 치우천왕 상 앞에서 절을 하고 나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치우천왕은 흔히 황제 헌원하고 싸워 탁록대전에서 크게 승리했었고, 당시 청동 가면을 쓰고 청동기를 무기로 삼아 싸웠던 거니까, 현재로 따지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 같은 대단한 인물이죠. 어쨌든 이러한 상고사에 대한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그게 정말 진실처럼 느껴졌어요. 애족의 정신이 생기더라고요. (웃음) 그런 것이 자꾸 투영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마지막에 충파 때도 그랬는데, 충파돌기가 사실 치우천왕상이거든요. 상고사에 대한 인식을 국민들이 조금 더 가지면 좋겠고, 그에 대한 관심을 강하게 끌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네요.

: 아니 그럼, 임진왜란의 3대 해전 한산도, 노량이 아닌 다른 영화를 먼저 만들 수도 있다는 건가요?

: 예. 그렇죠.

: 그러니까 길게 보는 것이군요. 자, 그럼 이제 연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죠. 최민식 씨가 엄살이든 뭐든 “아직도 찝찝하다. 답답하다”이런 말을 하면서, 혹시 나중에 한산대첩 영화를 한다면 이순신 역할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는데, 어떠세요, 나중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최민식 씨가 이순신 역할을 계속 하길 원하시나요?

: 하면 좋죠, 가장 좋고요. 저는 최민식 배우가 “나는 아직도 찝찝하다”, 라고 하는 건 그가 연기의 지향점을 끝까지 두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또 다른 표현이었다고 봅니다. 그만큼 최선을 다했다는 뜻인 것 같고, 자타가 인정하는 경력과 내공에서 최고의 배우죠. 그런 배우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밖에서 들어보면 배우들이 굉장히 일하기 힘들어하는 감독이라고 하던데요?

: 네버네버! 전혀 아니고요.

: 굉장히 배우를 괴롭히고, 오케이 사인을 잘 주지 않는 악명 높은 감독이라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닙니까? (웃음)

: (웃음)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고, 저는 거의 오케이를 서너 테이크 안에 냈어요. 그렇지 않으면 하루 분량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최민식 배우와 류승룡 배우가 워낙 내공이 있는 배우들이기 때문에 NG를 많이 내지 않아요. 그렇지만 신인배우들에게는 내공 있는 배우들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서, 안 되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으니까. (웃음) 그리고 액션 들어가면 연기자들이 전부 넋을 놓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라도 조금 더 강하게 했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쳐요. 집중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 감독으로서 최민식, 류승용, 조진웅, 김명곤, 진구, 이정현 등 많은 배우들과 함께 했는데, 배우들은 감독으로서 원하는 만큼 다 제 역할을 해냈나요?

: 네네, 그렇죠. 아주 적절하게 다 제 역할을 해냈죠.

: 혹시 뭐, 힘들었거나 특별히 좋았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 다 괜찮았어요. 다 괜찮았고, 이번 작품에는 그 역할에 적합한 배우들이 잘 들어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각자가 그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전부 디테일하게 잘 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오면서 이정현 씨 인터뷰를 읽었어요. 김 감독이 〈활〉 때 같이 못했으니, 다음 작품을 할 때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명량〉 때 정말 연락을 줬다. 감독이 약속을 지켜줘 감사하다는 취지의 인터뷰였는데, 약속을 지키려고 연락을 했던 겁니까, 아니면 이정현이 적역이라고 생각해서 연락한겁니까?

: 둘 다였죠. 둘 다였고, 이정현이라는 배우는 제가 예전부터 마음속에 “저 배우랑 꼭 한번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죠. 〈활〉 때뿐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 그렇죠. 저도 이정현이라는 배우는 아까운 배우라고 보는데, 굉장히 강한 배우잖아요? 그런데 벙어리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갖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어요.

: 말을 못하게 시켜놓으면 무언가 더 강하게 뿜어져 나올 거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리고 말을 하면, 그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거기에서 임팩트가 없어져요. 말을 하지 않고 눈빛과 표정만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임팩트 있을 거라 본 거죠.

: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명량〉에서 개인적으로 또 인상적인 분장에 대해 말해보죠.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이경자라서가 아니라, 분장이 인물들의 내면을, 인물들의 상황을 표현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죠. 대개의 영화들에선 분장은 그런 주요 기능을 못하고 주변적 역할에만 머물기 십상이죠. 대개의 경우 분장은 의례적이고 형식적이기 마련인데, 〈명량〉을 보면서는 분장에까지도 이렇게 섬세하게 신경 썼구나, 싶어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특히 이순신 장군의 얼굴 분장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와 정말 인상 깊었어요. 감독으로서 분장에 각별한 신경을 써달라고 특별히 요구한 것인가요? 아니면 이경자 씨가 분장 감독으로서 알아서 그렇게 한 것인가요?

: 부끄러운 말이지만, 거의 후자라고 볼 수 있어요. 다만 이런 건 있었어요. 이경자 실장이 이 영화의 분장에 참여하면서, 속도가 느리더라도 주연 배우는 자기가 맡아서 하면 좋겠다고 했고,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이 실장은 무언가 분장의 단계들을 분명하게 설정을 했어요. 굉장히 바쁜데도 어김없이 옆에 와서 나직이, “여기서는 이런 분장으로 가는게…”, 그러면 그 의견에 제가 귀를 기울였던 게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경자 실장이 기본적으로 분장의 단계들을 정확히 계산을 하고 있었고, 확인을 받으러 왔을 때 제가 신경을 썼던 게 좋은 작품을 만들게 한 것 같아요. 그런 지점에서 두 사람의 소통이 나쁘지 않았던 거죠.

: 이경자 씨가 분장으로 박사 학위까지 딴 사람인데, 보통은 감독이 그런 데까지 일일이 신경 쓰는 게 쉽진 않거든요. 헌데 〈명량〉에서는 분장이 큰 역할을 하면서 영화의 몰입도와 완성도를 높여 주었다는 거죠. 특히 클로즈업 들어갈 때 이순신 장군의 분장이 정말 좋았고, 구루지마도 그렇고. 심지어 극 중 비중은 작아도, 도도 역의 김명곤 분장도 정말 좋았어요.

3. 인터뷰를 나가며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더라면, 인터뷰는 한층 더 길어졌을 게다. 그랬더라면 보다 더 깊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을 테고. 하지만 본 인터뷰만 시간 반, 인터뷰 전후의 여담까지 2시간여, 가볍게 함께한 점심 식사까지 총 2시간 반 가량의 시간을 함께 한 후, 김한민 감독은 다음 일정을 위해 일어나야만 했다. 하긴 그동안 영화에 대해 내가 말하고 썼던 것을 여기 옮긴다면, 일말의 부족함 내지 아쉬움을 떨치고도 남음이 있을 듯.

주지하다시피,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명량〉은 기적의 흥행 대폭발을 무색케 하는 소위 작품성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 땅의 대표적 논객인 동양대 진중권 교수는, 트위터에 ‘졸작’이라고 단언해 화제 내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명량〉 신드롬은 영화의 인기가 아니라 이순신의 인기일 따름, 영화로서 〈명량〉은 졸작이라는 취지였다. 이번 이순신 특집 중 총론격인 김기봉 교수의 입을 빌리면, “〈명량〉은 이순신을 갖고 ‘꽃 장사’를 잘 해서 흥행에 성공한 것일 뿐, 작품으로서 영화의 완성도는 떨어진다는 것”. 김교수도 반문하듯, “하지만 〈명량〉의 인기와 이순신의 인기가 과연 나눠질 수 있는 것인가? 현재 〈명량〉의 인기가 과거 인물인 이순신의 인기를 자산으로 해서 나온 것이라는 말은 옳다. 하지만 이순신을 소재로 한 모든 영화가 〈명량〉처럼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친김에 서울신문의 내 시론을 빌려 좀더 말해보자. “걸작이든 범작이든 졸작이든, 〈명량〉의 기념비적 흥행의 결정적 요인은 장수 이순신이요, 그의 독보적 리더십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나라의 무능한 고위 지도층을 향한 백성들의 불만이 장군의 헌신적, 실천적 리더십에 열광하고, 그 열광이 영화의 기록적 박스 오피스로 표출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진단이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들이 밀려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왜, 돈이 되는 소재라면 혈안이 돼 달려들기 마련인, 대한민국의 숱한 기획·제작자들은 그 호재를 방치해 오다시피 한 것일까.

2005년 선보인 박중훈 주연의 〈천군〉 같은 변종을 제외하면, 김진규 주연 장일호 감독의 1977년 작 〈난중일기〉 이후 진지한 이순신 영화는 부재했었기에 던져보는 물음이다. 예의 그 영화들이 이렇다 할 재미를 보지 못하고, 이순신 이야기는 돈벌이감이 아니라고 판단해 왔기 때문 아니겠는가. 

〈명량〉이 걸작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나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그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등 허구라지만 최상의 극적 효과를 발휘한 명대사들이 없이도, 대장선이 ‘회오리 바람’에 휘말려 침몰하기 직전 민초들이 작은 배들을 타고 자발적으로 나서 갈고리로 그 큰 배를 끌어 구해내는 결정적 드라마가 없어도, 최민식이 이순신 장군을, 류승룡이 적장 구루지마를 연기하지 않았어도, 때론 전면에 나서고 때론 후면에 머물러 있으면서 제 본분을 톡톡히 해내는 수준급 음악이 없더라도, 영화 속 ‘울돌목’처럼 정중동의 영화 리듬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최상의 연출이 아니라도 〈명량〉이 지금과 같은 역사적 성공을 일궈낼 수가 있을까. 그저 이순신 스토리만으로?”

나는 〈명량〉을 수작을 넘어 걸작이라고 간주·단언하는 부류다. 월간지 《매거진 N》8월호에도 밝혔듯 개인적으로는 〈명량〉에 치명적으로 ‘매혹attraction’당했다. 축약돼 실렸으나 중앙일보에 5점 만점에 4.5점을 부여하며,“ ‘대작’을 넘어 ‘거작’의 아우라! 성격화, 연기, 음악 효과 등 사운드 연출, 극적 호흡, 주제의식 등 영화의 전 층위에서 최상의 수준을 일궈냈다. 사극영화, 해상영화 장르에서도 새 장을 열면서”라는 단평을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실 영화의 잠재적 흠들을 가정해 5점 만점에 4.5점을 줬으나, 5점 만점, 나아가 6점을 줘도 만족스럽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4.5점은 5점 만점보다 더 높은 평점인 셈이다. 〈명량〉의 호평 근거들로 제시되고 있는 ‘이순신 장군을 새롭게 탄생시킨 배우 최민식의 압도적 연기력,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61분간의 해상 전투 씬’ 등은 내 극찬의 이유들로는 부족하다. ‘압도적 연기력’이란 수사부터가 다분히 상투적이다. 어디 최민식만 압도적 연기를 펼쳤겠는가. 적장 구루지마 역의 류승룡도 압도적이긴 그 못잖다. 〈명량〉만이 아니다. 다른 영화들에서도 그런 연기는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지 않은가. 고로‘압도적’은‘독보적’이란, 더 적확한 어휘로 바뀌어야 한다. 최민식 아닌 이순신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까. 최민식 그는 그간 이순신을 현현하기 위해 연기를 해온 듯한 착각마저 일게 하니까. 아낄 대로 아끼는 대사는 말할 것 없고 섬세할 대로 섬세한 표정과 몸짓 연기로.

스토리가 드라마틱하다, 는 것도 별로 내세울 게 못 된다. 그런 영화가 어디 한둘인가.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아닌 영화는 아예 기획조차 되기 어려운 게 우리네 영화 현실 아닌가. 설사 되더라도 투자가 불가하기 십상이고. 관건은 드라마틱함의 속내다. 피-아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명량〉은 흥미롭게도 적군과 아군 간의 긴장·갈등·대립·충돌 못잖게, 아니 그 이상으로 아군들 사이의 그것들을 묘사·표현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그로써 감독은 명량해전의 승리는 12대 330이라는 물적 조건보다는 두려움 등의 심리적 요인에 의해 좌우·결정됐음을 역설한다.

영화의 절반을 차지하는 전투 시퀀스에 대해서는‘기념비적’외에 다른 표현을 찾을 길이 없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 전투 시퀀스들이 여느 웰메이드 액션 영화들과는 달리, 그저 스펙터클에 머무는 게 아니라 출중한 호흡의 극적 플롯과 완벽하게 융합돼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명량〉에서 스펙터클과 드라마를 구분·분리시키는 시선은 중단·지양돼야 한다. 〈명량〉과 예를 본 적 있는가? 내 기억으로는 거의 없다. 〈명량〉을 가리켜‘대작’을 넘어‘거작’의 아우라가 풍긴다고 평한 건 그래서다. 

또 다른 매체(노컷뉴스)에서 나는 〈명량〉은‘보이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받는 부분도 중요’하며, 이순신이란 영웅을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캐릭터들을 희생시키거나 포기하지 않은 것, 이순신 장군을 단독으로 보여주는 숏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무리 안의 이순신을 보여주면서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 등도 주목할 만한 덕목이라고 평했다.”

〈명량〉이 졸작이요 범작이라는 평가나,“ 누구나 알고 있는 영웅 서사를 누구나 감동할 수 있는 절차로 구성한다. 진중하지만 심심하다”(박우성)라는 등의 진단엔 동의하질 않는다.“ 영화는 오히려 영웅 이순신을 해체시키고 인간 이순신을 재구축한다.‘ 오랫동안 반복의 늪 속을 부유하고 있는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등의 극찬을 받은 소설가 김훈이 일찍이 〈칼의 노래〉에서 그랬던 것처럼…….”

 

 


 

* 『2015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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