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K-Writer(케이라이터)》 3호(2023 SUMMER Vol.3)
계간 《K-Writer(케이라이터)》 3호(2023 SUMMER Vol.3)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23.08.1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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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문예지 《K-Writer》 2023년 여름호 특집은 문정희 시인! 한미 작가와 인도네시아 작가들의 작품 소개

국내를 비롯한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한국문학작품과 다양한 K-콘텐츠를 소개하는 한류문예지 《K-Writer》 2023년 여름호(통권 3호)가 발행되었다.

(주)Writer(대표이사, 발행인 설재원)에서 발행하는 《K-Writer》는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과 K-문학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한다. 또한 해외에서 한국문학과 문화예술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그들의 창작의욕을 드높이고,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문학과 문화의 네트워크를 형성해나가고자 한다.

《K-Writer》 3호는 “시는 힘이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매혹적인 힘으로 나를 혁명하고 세계를 혁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문정희 시인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문정희 시인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각광받는 대표적 한국시인이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으며, 한국 여고생 최초로 시집 『꽃숨』을 출간했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였고 이후 지금껏 54년 동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시집으로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다산의 처녀』 『카르마의 바다』 『응』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와 시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 외 장시집, 시극 등과 다수의 산문집이 있으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웨덴어, 스페인어, 일본어, 러시아어, 중국어, 이탈리아어 등 세계 11개 국어로 출판된 14권의 번역시집이 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육사시문학상, 목월문학상, 청마시문학상, 이용악 문학상, 공초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삼성여성행복창조상 등과 마케도니아 세계시인포럼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시인상’(2004), 스웨덴 노벨상수상시인 해리 마르틴손 재단이 수여하는 시카다상(2010)을 수상했다.
고려대학교 교수, 동국대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국립한국문학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Moon Chung-hee is a leading Korean poet who has attracted attention both in Korea and internationally. She was born in Bo-seong, Jeollanam-do Province, and grew up in Seoul. She was the first Korean high school girl to publish a collection of poetry, Kkotsum, and was featured in the New Poet of Monthly Literature in 1969. She has been active for 54 years.
Her poetry collections include A Flock of Birds, Wild Rose, For Men, Come False Love, The Poppy in My Hair, I am Moon, Maiden of Fertility , The Sea of Karma, Yes/ Uh-Huh and most recently A Little Cold Love is Good Today, and the poetry anthology Follow the Rose Now, as well as long poetry collections, poetry plays, and many prose collections. She has published 14 poetry collections translated into 11 languages, including English, French, German, Swedish, Spanish, Japanese, Russian, Chinese, and Italian.
She has won the Sowol Poetry Prize, the Contemporary Literature Prize, the Jeong Ji-yong Literature Award, the Yuksa Prize for Poetry, the Mokwol Prize for Poetry, the Cheongma Prize for Poetry, the Lee Yong-ak Prize for Literature, the Gongcho Prize for Literature, the Korea Arts and Culture Award, and the Samsung Happiness For Tomorrow Awards. She received the "Best Poet Award"(2004) from the World Literature Forum in Macedonia and the Cikada Prize(2010) from the Swedish Nobel Laureate Poet Harry Martinson Foundation.
She is a former professor at Korea University, a former chair professor at Dongguk University, and currently the director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n Literature.

특집 코너에는 문정희 시인의 신작시 「내 안에 우는 눈이 있다」 외 4편과, 대표시 10편, 문정희 시인의 산문 ‘외줄타기의 미래’와 ‘기념비의 시학’으로 명명한 문정희 시인의 시세계(최진석 평론가)를 다루었다.
최진석 교수는 “1969년 등단 이래 문정희가 지금까지 풀어놓은 수많은 언어의 편린들, 시와 소설, 에세이…. 어쩌면 이 모두는 그 자신의 재생, 즉 다시-삶이자 다른-삶을 표지하기 위한 기념비들이 아니었을까? 세상과 만나고 타인들과 부딪히며, 그가운데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견하고 또 발명해야 했던 시적 운동의 다양한 변주들, 일종의 모든 삶[諸-生]으로의 재생이랄까? 통상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되 무(無)는 아닌, 그렇기에 스스로를 증거하고자 표현되어야 했던 시어의 조각들. 하여 기념비는 시인의 존재 자체와 뒤섞인 시의 삶이며, 삶의 시에 값하는 언어의 표석이라 할 만하다. 오직 계속되는 쓰기로써 자신의 현존을 입증하는 역-설(逆/力-說)의 장면을 우리는 이미 읽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최진석 교수가 평했듯이 시력 50년을 훌쩍 넘어선 시인의 글쓰기를 몇 장의 종이에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시를 쓰지 않고, 시를 낳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항상 다른 시로 태어났다. 바꿔 말하면, 시를 낳을 적마다 그는 다른 시인이 되었고, 태어난 시로 인해 또 다른 시인으로 변모해 왔다. 이 과정을 나는 감응의 산파술이라 부르고 싶다. 언어가 지닌 논리나 사유의 법칙을 벗어나, 유랑의 자리마다 시인이 수용했던 감응을 문자의 힘으로 녹여내 발출하는 과정이 꼭 아이를 끌어내는 산파의 몸짓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기이하게도, 태어난 아이와 산모, 산파는 하나이다. 셋인 동시에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다수적 형상 속에 다시 또 분기해 가는 유-랑의 여정. 시인은 언제나 하나였지만 또한 둘이고, 셋이나 넷으로, 무수한 나와 너의 그들로 분열을 이어갈 것이다. 그렇기에 문정희의 시작을 기리는 기념비는 영원히 완성될 수 없는 기념-비로 남아있지 않을까.

문정희 시인은 시인의 산문에서 “내 유년의 기억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하늘을 뒤덮는 폭음소리와 불꽃놀이의 기억”이고. “그것은 한국 전쟁에 대한 기억인데 지금까지도 나에게 불꽃과 파열음으로 남아있다”고 말한다. “분단으로 막을 내린 한국 전쟁은 오늘까지 휴전의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나의 삶은 그런 배경위에서 벌이는 곡예의 시간이고, 나의 시 쓰기는 그런 배경위에서 외줄을 타고 뒤뚱거리는 줄광대의 춤”이라는 것이다. 시인의 죽음을 품은 생명의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지 않은가.

특집 이외에도 ‘K-Poem’에서는 한국·미주·아시아 시인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김완하,  박형준, 문태준, 임성구, 신철규의 빛나는 한국시와 강화식, 곽상희, 김소희, 김준철, 박복수, 윤희경 등의 미주시를 비롯하여 이번호에는 특별히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는 위사공경, 신정근, 채인숙의  시와 이영미 하연수의 수필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미주에서 활동하는 박인애, 최무길의 수필과 올해 칸영화제를 찾아 취재한 설재원 편집인의 “칸영화제를 수놓은 일곱 빛깔 K-무비”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한다. 


본문 속으로

내 안에 우는 눈이 있다
구르고 구르는
슬픈 돌
이 절벽에서 저 절벽으로
날아다니는
소나기가 있다

내 안에 폭포수 계곡이 있다
눈 뜨고도 안 보이는
높이를 모르지만
오르고 오르는
내 안에 우는 산이 있다
오를수록 키가 자라는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숨 쉬는 돌
내 안에 우는 언어가 있다

- 문정희(Moon Chung-hee), 신작시 「내 안에 우는 눈이 있다」 전문, 본문 6쪽

 

우기에 핀 꽃은
산보다 크고 아름답다

나는 다만 시로 저항하다 가고 싶어
영웅도 순교자도 바보도 되고 싶지 않아
저녁 뉴스에서 만난
우기의 시인
심장이 파인 채 시신으로 돌아온 랑군의 슬픔
내 심장이 파인 듯

살아있는가?
검은 트럭에 올라서서
펑펑 울음 터뜨리며 손 흔들던
내 아이오와 친구
제 나라로 돌아가 탱크에 실려
우기 속으로 사라진 젊은 시인

우기에 핀 꽃은
산보다 크고 아름답다

- 문정희(Moon Chung-hee), 신작시 「우기의 시인」 전문, 본문 7쪽

 

이 말을 할 때면 언제나
조금 울게 된다
너는 물보다도 불보다도
기실은 돈보다도 더 많이
말(言)을 사용하며 살게 되리라
그러므로 말을 많이 모아야 한다
그리고 잘 쓰고 가야한다

하지만 말은 칼에 비유하지 않고
화살에 비유한단다
한번 쓰고 나면 어딘가에 박혀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날카롭고 무성한 화살 숲 속에
살아있는 생명, 심장 한 가운데 박혀
오소소 퍼져가는 독 혹은 불꽃
새 경전(經傳)의 첫장처럼
새 말로 시작하는 사랑을 보면
목젖을 떨며 조금 울게 된다

너는 물보다도 불보다도
돈보다도 더 많이
말을 사용하다 가리라
말이 제일 큰 재산이니까
이 말을 할 때면 정말
조금 울게 된다

When I say this
I always cry a bit.

In your life you’ll use more words
Than you’ll use fire, water, or money.
So gather your words and use them well

People compare words not to swords
but to arrows, for like an arrows,
words, once used, don’t return.
In a thick woods of pointed arrows
there’s a heart pierced by words
that spread poison or fire.

When I fall in love with fresh new words,
It’s like the first chapter of a new-found holy book,
And I cry a little, my lips tremulous.

I’ll use more words
than I’ll use fire, water or money,
for words are the most precious thing I own.

When I say this,
I always cry a bit.

- 문정희(Moon Chung-hee), 대표시 「화살 노래(Song of Arrows)」 전문, 본문 12-13쪽

나는 여러 사회 변혁들을 경험하며 언어의 불완전성에 저항하며 겁쟁이 시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시인으로서 시를 쓸 수 있는 풍요한 소재를 가질 수 있어 행운이었다는 고백을 여러 번 했다. 더구나 나는 외부적인 것으로 인하여 시 쓰기를 중단하거나 굴복한 적은 없다.
시는 힘이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매혹적인 힘으로 나를 혁명하고 세계를 혁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내 몸속의 음악소리를 들어본다. 죽음을 품은 생명의 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 시로 태어날 수 있을까? 발가벗은 언어들이 자궁 속으로 일제히 모여든다.

- 문정희(Moon Chung-hee), 시인의 산문 「외줄타기의 미래」 중에서, 본문 34-35쪽

‘단 한 명의 시인’이란 필연코 자기 자신을 가리킬 것이다. 시의 기념비는 세간의 권위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해 발출하는 빛이자 스스로에게 지워진 빚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의 칭송이나 세계의 찬사는, 마치 밤이 아침으로 전변할 때 맺히는 물방울처럼 부수적인 물질적 현상일 뿐 기념이라는 감응의 본질은 아니다. 기념은 지금의 생을 넘어 또 다른 생의 변곡점, 그 문턱과 경계를 표지하는 것이기에 기념비의 주체도 대상도 언제나 시인 자신일 수밖에 없다. 기념비라는 시적 운동의 역설이 놓인 자리가 바로 여기다.
1969년 등단 이래 문정희가 지금까지 풀어놓은 수많은 언어의 편린들, 시와 소설, 에세이…. 어쩌면 이 모두는 그 자신의 재생, 즉 다시-삶이자 다른-삶을 표지하기 위한 기념비들이 아니었을까? 세상과 만나고 타인들과 부딪히며, 그 가운데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견하고 또 발명해야 했던 시적 운동의 다양한 변주들, 일종의 모든 삶[諸-生]으로의 재생이랄까? 통상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되 무(無)는 아닌, 그렇기에 스스로를 증거하고자 표현되어야 했던 시어의 조각들. 하여 기념비는 시인의 존재 자체와 뒤섞인 시의 삶이며, 삶의 시에 값하는 언어의 표석이라 할 만하다. 오직 계속되는 쓰기로써 자신의 현존을 입증하는 역-설(逆/力-說)의 장면을 우리는 이미 읽은 적이 있다.

- 최진석(Choi Jin Seok), 「기념비의 시학」 중에서, 본문 37-38쪽

 

어머니가 돌아오시자 집은 우련 빛으로 차올랐다 방마다 어둠 밀어내며 호롱불빛이 고이기 시작했다 내 건너 밭에 감자꽃이 활짝 피었다고 감자알 굵어지는 소리가 밭고랑을 두더지처럼 돌아다닌다며 어머니 자주색 감자꽃으로 웃으셨다

어머니 따라 내를 건널 때 걷어 올린 종아리 간질이는 물소리가 마정리 여름을 환하게 펼치고 있었다 동구 밖을 내다 서면 둑길로 소를 몰고 오는 이웃집 사내의 지게 가득 출렁이는 풀 무덤 위로 강아지풀이 나폴대고 있었다

사내가 작대기 두드려 부르는 노랫소리 지게목발에 감기고 있었다 어두워지는 들녘에서 숨차게 달려온 길이 하나 마을 탱자나무 사이로 몸을 부린다 논둑으로 작은 봉우리 하나 따라오다 가시에 찔려 나동그라졌다

저녁은 하루 빛을 기워 만든 둥그런 주머니 그 안에 손을 넣으면 모든 것들이 만져졌다 아침에 나갔다 돌아온 누나와 형, 나는 따뜻한 둥지 안에 지핀 불빛을 퍼 하늘로 띄우고 양쪽 주머니 속에도 잔뜩 그러모아 두었다

When mother returned, the house came to be filled with feeble light. Every single room, the kerosene lamp light began to well like a pool, repelling the darkness. Mother smiled a purple potato flower smile, saying that potato flowers in the field across ours had burst into bloom, and the throbbing of swelling potatoes roams around the furrows like a mole.

The water sound, tickling my calves when I crossed a stream after mother with my trousers lifted up radiantly spread the Majung-ri summer. Stepping out of the village’s outskirts, there fluttered the foxtails on the swaying grass barrow filling up the Korean A-frame of a neighbor driving cattle on the bank.

His singing while tapping his rod wound around the wood frame legs. A road breathlessly ran down the darkening field and hid among the village’s trifoliate orange trees. A little peak tracking down the ridge of rice paddies tumbled down, pricked by a thorn.

Evening is a round pouch patched up with the light of the day. I could touch everything, digging my hand in it. I, with my elder sister and brother returning home after leaving in the morning, scooped up the light made in the warm nest and threw it to the sky, while gathering it full in both pockets.

- 김완하(Kim Wanha), 「자줏빛 저녁(A Purlple Evening)」 전문, 본문 58-59쪽

 

1.
아내가 시장에서 사 온 백도를 먹는다
물컹한 단맛들이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어디서, 다가온 사랑이기에
이토록 너는, 만발한가
2.
천도복숭 먹으며 하늘로 간 여자여
그 봄날의 꽃가지가 바람에 출렁이면
어여쁜 웃음이 울컥, 젖꽃처럼 환하다
3.
햇살이 끈적끈적한 꿀물로 떨어지는 오후
손거울을 면경(面鏡)이라 부른 시절을 채록한다
한 장의 첫사랑이 부풀어
가슴이 그만, 꿈틀 한다
1.
Eating white peaches my wife bought from the market
Squashy sweetness melting in the mouth
From where, love, do you creep close to me
You are... in such full blossom
2.
She, who flew to the sky eating heavenly peaches
When the flower branches of spring waver in the wind
Lovely laughter radiant, all of a sudden, like the flower of the bosom
3.
An afternoon, sunlight flowing down like thick honey water
Documenting the times when a hand mirror was called a looking glass
A sheet of first love swollen
Heart, trembling unawares

- 임성구(Im Seonggu), 「복사꽃 먹는 오후(An Afternoon Eating Peach Blossoms)」 전문, 본문 64-65쪽

 

텅 빈 냉장고는 서늘하다
맥 빠진 성욕처럼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났다
말간 눈빛이 텅 빈 자신의 몸속을 비추고 있다
채워지지 않은 몸은 얼마나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렸을까
기다린다는 것은 밀폐된 냉기 속에 갇혀 미이라처럼 변하지 못하고 있다
문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나는 모르는 나의
말이
내가 없이 너와 또 다른 너 사이에서
또 다른 나를 생산하고 제조하고 판매하고
시시덕거리는 은밀하다고 생각하는 미련한 혓바닥들
단단하게 얼려진 각진 언어들이 비틀,
잔뜩 채워진 냉장고의 허기로
웅웅 새벽이 길어지고 있다
The barren fridge, an icy touch it bears,
Like a fleeting passion that ends before it dares.
Vacant gaze reflects within its core,
How long did the unfilled body yearn for more?
To wait is to be trapped in frigid air,
Like a mummy locked, unable to repair.
When the door swings open, words rush out,
Whispers unknown, between you and another you,
Creating, producing, selling anew,
Crafting a different self, amidst me and you.
Whispering secrets, hidden in clandestine code,
The frozen, angular languages tremble.
The ravenous hunger of a fully-stocked space,
Echoes through the elongating dawn's embrace.

- 김준철(Jun Kim), 「빈 냉장고(The Empty Fridge)」 전문, 본문 82-83쪽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 한다.”라는 옛말이 있다. 우리나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라마다 사회 문제 중 하나인 빈곤층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시원한 답이 없다.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원망하고 욕하고 책임 전가할 곳을 찾는다. 이번엔 누구를 욕할까. 무능한 부모? 사람을 물건 취급하고 돈만 챙기는 기생충 같은 브로커? 마약을 먹고 운전하다 사람들을 죽게 한 운전자? 가난도 구제 못 하는 나라님? 이민자 포용 정책을 펼치는 바이든 대통령? 누가 감히 13살짜리 아이들을 국경으로 내몰았냐고 따져 물을 수 있을까. 이 모든 게 세상 어른들의 잘못인 것을.
누가 옷을 벗고 누가 감옥에 가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대안이다. 가난을 피하려고 밀입국을 하는 거라면 가난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노벨 평화상 수상자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의 빈민구제 방법은 빈곤층을 스스로 일어서게 하라는 거였다. 이론상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왠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과테말라 산골 마을을 깨워 스스로 일어서게 할 사람은 누구이고 그 사람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가난한 아이들이 목숨 걸고 밀입국을 하는 판에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 주라면 ‘네’하고 주저앉아 배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라님도 해결 못 하는 답이 나 같은 사람에게서 나올 리 없겠지만, 이렇게 주절거리기라도 해야 속상한 마음이 좀 풀릴 것 같다.
There is an old saying, "Poverty cannot be solved even by a King." It probably doesn't apply only to our country. Each country is making efforts to alleviate the social issue of poverty, but there is no clear solution. Whenever such incidents occur, people blame and criticize someone, trying to shift responsibility. Whom will they blame this time? Incompetent parents? Brokers who treat people like commodities and only seek money? Drivers who cause accidents and deaths while driving under the drug influence? The political leader who cannot alleviate poverty? President Biden, who is implementing immigration inclusion policies? Can anyone question who forced 13-year-old children to the border? All of this is the fault of the adults in this world.
What is more important than who takes the responsibility and who goes to prison is finding alternatives. If crossing the border to escape poverty is the reason, what are the ways to solve poverty?
Nobel Peace Prize laureate Muhammad Yunus, the CEO of Grameen Bank, suggested that the solution to poverty is to empower the poor to stand on their own feet. It's correct in theory. However, it somehow sounds like a fairy tale from a distant country. Who will wake up the impoverished villages in Guatemala and help them stand on their own? If you try to teach poor children, who dare to take the risk of their lives in crossing the border to survive, how to fish instead of giving them fish, how many will eagerly sit down and learn? It's unlikely that the answer, which even the government cannot provide, will come from someone like me, but even just rambling like this might ease the troubled heart a little.

- 박인애(In Ae Park), 「꿈을 찾아서(In Search of Dreams)」 중에서, 본문 102-103쪽, 107-108쪽

 

연못 속에서 수영을 하며 노는 아이들은 아랑곳도 하지 않으면서 마치 물 위를 얼음 지치듯 짧은 직선을 그으며 이동하는 모습은 어린 나의 눈에도 너무나 신기하게 비쳤다. 소금쟁이는 1초에 자기 몸통 길이의 100 배 정도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도대체 소금쟁이는 물에 빠지지 않은 채로 어떻게 물 위를 저렇게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어린 마음에 들었다. 최근에 과학자들은 소금쟁이가 가운데 다리로 물의 표면에 소용돌이를 일으켜서 그것을 추진력으로 삼아 앞으로 나간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어린 마음엔 그것은 그냥 자연의 모습이었으며, 그 신비함 앞에서 함께 어울려 노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오스트리아 최고의 장인들이 크리스털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호투 잠자리는 나의 시선을 받으며 유리장 속에서 무지갯빛을 발하고 있었다.
Completely ignoring the children swimming and playing in the pond, they effortlessly moved in short straight lines, as if skating on ice, and it amazed me as a child. It is said that a water slider can move a distance about 100 times its body length in one second. I wondered how they could move so fast on the water without sinking. Recently, scientists have conducted experiments to prove that water sliders create whirlpools with their middle legs on the water's surface, using them as a kind of propulsion. But to us children, it was simply a natural wonder, and it was enough for us to just play and marvel at them.
The dragonfly, meticulously carved from crystal by Austria's finest craftsmen, caught my attention as it emitted an iridescent glow from within the glass case.

- 최무길(Mookil Choi), 「호투 잠자리(Dragonfly)」 중에서, 본문 114-115쪽, 118쪽


차례

특집 문정희 시인 
06 신작시 | 내 안에 우는 눈이 있다 외 4편
12 대표시 | 화살 노래 외 9편
32 시인의 산문 | 외줄타기의 미래
36 시세계 | 기념비의 시학_최진석

한국·미주·아시아 시인들의 K-Poem
한국시

58 김완하_자줏빛 저녁
60 박형준_칠백만원
62 문태준_가재미
64 임성구_복사꽃 먹는 오후
66 신철규_심장보다 높이
미주시
72 강화식_용늪+소녀+시인
76 곽상희_시간의 발자국이 멈칫,
78 김소희_따뜻한 물주머니
82 김준철_빈 냉장고
84 박복수_마음으로 걸어가는 길
86 윤희경_킬리피쉬
아시아시
90 사공경_나는 박물관에 간다
94 신정근_쌓이는 건 낙엽만이 아닌 것을
96 채인숙_출국

수필
100 박인애_꿈을 찾아서
109 이영미_달 뜨고 달뜨면
113 최무길_호투 잠자리
120 하연수_황매화

영화
124 설재원_칸영화제를 수놓은 일곱 빛깔 K-무비

 

CONTENTS

Features Poet Moon Chung-hee
New Poem | There Are Weeping Eyes in Me and 4 Others
Representative Poem | Song of Arrows and 9 Others
Essay | The Future of Tightrope Walking
Critique | A Poetics of the Monument_Choi Jin Seok

K-Poem
Korean Poem

58 Kim Wanha_A Purple Evening
60 Park Hyungjun_7 Million Won
62 Moon Taejun_Flatfish
64 Im Seonggu_An Afternoon Eating Peach Blossoms
66 Shin Cheolgyu_Higher Than the Heart
American Poem
72 Sharon Hwashik Kwon_The dragon swamp, the little girl and poet
76 Sang hee Kwak_For a while the time stopped
78 Sohee Kim_A pouch of warmth
82 Jun Kim_The Empty Fridge
84 Bok Sue Park_The way to walk with my heart
86 Hee Kyung Yun_Killifish
Asian Poem
90 Sagong Kyung_I am going to the museum
94 Shin Jung Keun_Not Only Leaves Heap Up
96 In Sook Chae_Departure

Essay
100 In Ae Park_In Search of Dreams
109 Lee Young Mi_When the Moon Rises
113 Mookil Choi_ Dragonfly
120 Ha Yeonsu_Kerria

Film
124 Jaewon Sheol_Colorful K-Movies Embroidering Can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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