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나의 첫사랑이야기 공모전 심사평 및 수상작 발표] 첫사랑은 아카시아 꽃잎을 씹는 것처럼, 박정승
[제6회 나의 첫사랑이야기 공모전 심사평 및 수상작 발표] 첫사랑은 아카시아 꽃잎을 씹는 것처럼, 박정승
  • 박정승
  • 승인 2023.09.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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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제6회 나의 첫사랑이야기 공모전에는 많은 분들의 응모가 있었다. 세대를 넘어 많은 분들이 투고해오신 이면에는, 그동안 첫사랑 서사에 기울여온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의 오랜 시간과 또 새롭게 변신한 면모에 대한 믿음이 크게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 위상과 인지도가 한층 높아진 공모전에 출품된 수필들을 읽어나가면서 심사위원들은 이분들의 작품이 첫사랑에 대한 경험적 구체의 양상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참신성과 완성도를 아울러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여 몇몇 탁월한 사례들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모든 청춘을 설레게 하고 잠 못 들게 하는 ‘첫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누군가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어떤 대상에게 느낀 특별한 감정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처음으로 느낀 사랑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누군가를 좋아했더라도, 그것이 일시적인 호기심이나 호감에 그쳤다면, 그것은 첫사랑이 아니다. 그동안의 몸과 마음 상태와는 전혀 다른, 그동안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뛰어넘는, 이제 전혀 다른 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 같은, 그래서 죽을 것만 같은 충격과 감동과 아픔으로 찾아온 그 무엇이 첫사랑이다. 생애를 송두리째 바꾸어버린 그 순간이 있은 후 다른 충격들을 불러오는 것이 말하자면 첫사랑이다. 그러니 생애 처음 찾아온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은 첫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누구나에게 첫사랑이 평등하게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이번 응모작들은 이러한 첫사랑의 비밀을 풍요롭고도 은은하게 담고 있었다.

대상으로 선정된 박정승 씨의 「첫사랑은 아카시아 꽃잎을 씹는 것처럼」은 첫사랑에 세상과 구별되는 순수와 무지가 있음을,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와 세계에 대한 감정적 원점이 있음을 잘 알려주었다. 거기에 대상을 향한 신비로움이 추가되어 첫사랑은 타인으로 흘러들어 가려는 헌신의 시간으로 몸을 바꾼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시간이 한없이 이어져가지만 결국에는 그 사랑이 현실 불가능성으로 끝나는 서사를 아름답게 보여준다. 작가는 아들이 첫사랑에 괴로워하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이 바로 ‘첫사랑은 아카시아 꽃잎을 씹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향은 있지만 그 쓴맛은 잊지 못하는 것, 그러나 그 쓴맛보다 향이 더 기억되는 사랑이 떠오른 것이다.

첫사랑은 실현되지 않지만 아카시아 꽃잎 같은 쓴맛이 아닌 아카시아 꽃잎, 그 향이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사랑이 와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향이 되고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에게 더는 인생에 사랑이 실수하지 않게 인간적인 향으로 다져가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내 좌우명이 된 ‘살면서 사랑하기’처럼 첫사랑을 그리고 짝사랑을 배워간 나는 여전히 사랑에 목마르고 사랑을 하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사랑의 서사를 아들에게까지 전해준 또 다른 시간의 흐름이 미소 짓게 한다. 누구나 잘 알듯이, 생명체로서의 존재증명에 사랑보다 더 분명하고 강렬한 것은 없다. 우리는 첫사랑 이야기가 환기하는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매혹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랑이란 순수와 무지에서 태어나, 타인의 삶으로 흘러들어가려는 헌신과 희생의 형식으로 이어져간다. 그러나 결국 미완에 그친다. 하지만, 비록 흔적으로만 남을지라도 첫사랑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삶에 찾아온 은총이자 특권일 것이다. 이번 응모작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축하와 함께 한없는 위안과 격려를 드린다.

 

심사위원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손정순(시인, 월간 《쿨투라》 발행인)

 


첫사랑이야기 공모전 대상

첫사랑은 아카시아 꽃잎을 씹는 것처럼

박정승

 

얼마 전 아들이 첫사랑에 괴로워하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아빠가 어떻게 알았는지 당황하는 아들에게 내 첫사랑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주었다.

‘첫사랑은 아카시아 꽃잎을 씹는 것이란다.’

아들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들은 곧 그 뜻을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첫사랑은 교회 누나(?)였다. 유난히 큰 키에 피아노를 치던 하얀 여자아이, 같은 또래였지만 성숙하기만 한 그 아이가 처음 피아노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역시 교회는 천사가 있구나 하는 믿음을 갖게 하였다. 나는 처음 천사를 만나고 엉겹결에 ‘누나’로 부르고 말았다. 그 아이는 이미 내 학년을 알고 있었기에 그 한마디에 크게 웃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이 아닌데 왜 그때는 그 상황이 부끄러웠는지…. 그 후 그 아이에게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창살에 가려진 누나,

1년 동안 나는 그 아이 주변만 맴돌았다. 한 주 동안 제일 기다리는 것은 주일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 그 아이는 하나님보다 더 만나고 싶던 아이였다. 한번은 그 아이를 오래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사진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 내 친구의 필름 자동카메라를 빌려 그 아이가 나가는 순간 찍으려고 했다. 장소를 물색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친구의 카메라를 들고 기다렸다. 그러나 순간을 맞춰서 찍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 주가 지나고 또 한 주 지나다 보니 친구는 빌려준 카메라를 내놓으라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잘못한 것인데 그 당시는 그게 왜 서운했는지 결국 싸우기까지 했다. 더는 견딜 수 없었던 순간 용기를 다시 내어 교회 화단 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다. 드디어 그 아이가 오는 순간 떨리는 손가락으로 셔터를 꾹꾹 눌러 몇 장의 사진을 찍었고 과감하게 필름을 돌린 후 친구에게 당당하게 카메라를 돌려줬다. 그리고 그 날 바로 현상소로 뛰어가 사진을 인화하였다. 사진이 나오기까지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가. 사진관을 몇 번을 들락거렸는지 모른다. 드디어 사진이 나왔다. 사진관 사장님은 무엇을 아시는지 웃으시면서 나에게 하얀 사진 봉투를 건네 주셨다. 그리고 도망가듯 가게를 나와 거리에서 봉투를 열어보았다. 사진을 살펴보면서 나는 멍하게 거리에 한참을 서 있었던 것 같다. 사진에 나온 것은 그 아이가 아닌 창살들뿐이었다. 어린 나이에 사진기 초점도 거리도 몰랐던 나는 최악의 사진을 남기게 된 것이다. 초점이 창살에 맞아서 그 아이는 개미보다 더욱 작게 나와 있었다. 하지만 함부로 그 아이의 사진을 버릴 수 없었다. 그 창살 사진을 내가 좋아하던 책 속에 곱게 넣어서 생각날 때마다 개미 천사를 중학교 내내 바라보게 되었다.

 

5월의 여신

첫사랑의 시간은 더디게만 지나갔던 것 같다. 3년의 시간이 흘렀고,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그 아이의 생일은 5월이었다. 5월의 여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선물을 준비했다. 용돈을 모아 거금을 들여 멜로디 보석함을 샀던 것 같다. 어떤 의미였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피아노 치는 그 아이에게 어울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고백을 준비했다. 하루는 교회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 아이를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교회 앞에서 창피하기도 하였지만 달리 할수 있는 것이 없었다.

“너 생일이지, 자 선물, 그리고 나 너랑 친구하고 싶어….”

그 아이는 큰 눈을 꿈벅이면서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당황한 듯 웃으면서 “그래 고마워” 하며 허락을 하였다. 나는 그 다음을 말하지 못한 것 같다. ‘너를 좋아했어’도 아니고 ‘너를 오랫동안 지켜봐왔어’도 아닌 애매모호한 친구라는 말에 나는 그냥 그 아이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펄쩍 뛰며 좋아했던 것 같다.

“이제 너와 나 친구야.”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내 고백은 성공한 듯하였다.

나는 한 주 동안 고민을 하였다. 고백을 하였지만 뭔가 변화된 것은 없었다. 여전히 일요일만 되면 그 아이는 피아노 반주를 하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가고 나는 3년 동안 하던 뒷모습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 당시 내가 생각했던 첫사랑과 연애는 떡볶이도 같이 먹고, 손도 잡고 놀이공원도 가는 것인데 나의 첫사랑은 혼자되는 사랑만 지속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아이를 좋아했던 역사를 장문의 편지로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 아이를 생각했을 때마다 들었던 음악들을 카세트 테잎에 녹음해서 일요일만 기다렸다. 그리고 그 아이가 교회를 떠날 때 편지를 내밀었다. “이것이 뭐야?” 라고 묻는 아이에게 나는 웃으면서 “편지, 그동안 널 좋아한 이야기를 썼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아이는 그 편지를 가만히 들고만 있었다.

“난 공부도 해야 하고, 이 편지를 받으면 나도 써야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어….”

나는 그 아이의 말에 화가 났다. 오랫동안 널 기다리면서 혼자 좋아하고 기다렸는데 공부 때문에 편지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 나를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았다. 들고 있던 편지와 테잎을 빼앗아 가듯 다시 가져오면서 나는 말하였다.

“그래, 우리 인사만 하고 지내는 친구가 되자.”

그리고 돌아서 버렸다. 그 아이는 멍하니 서 있다 그렇게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교회가 이전하면서 그 아이를 더 이상 교회에서 보지 못하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아이 집안은 매우 보수적이어서 아이는 특목고를 준비하고 있었고, 대학 또한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까지 할 정도로 나와는 다른 공부에 전심인 아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것을 받아주고 지켜봐 줄 여유가 없었다. 첫사랑이 그렇게 지독한 짝사랑으로 끝났을 때, 나는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의 「군말」을 보게 되었다. “당신의 님은 그림자”라는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래 내가 좋아한 첫사랑은 내 그림자였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그 아이 이름으로 붙잡아 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는 그림자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그 후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다.

잠실역 지하철 역에서

동물원의 <시청앞 지하철역에서>라는 노래처럼 2월에 어느 토요일 난 그녀를 잠실역 지하철역에서 만나게 되었다. 군 입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봉사하던 교회 같은 부서 선생님 결혼식이 있어서 서초역으로 가기 위해 난 잠실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카시아 꽃잎 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 짙은 브라운 코트를 입고 단아한 그녀가 서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순간 교회 화단 앞 사진을 찍던 소년으로 나는 돌아가 있었다. 당황하며 내 사랑의 스토리를 모두 아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녀가 내 앞에 있다고,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아무렇지 않게 그냥 가서 인사하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그녀에게 가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아무개야 나 기억하니?”

그 아이는 잠시 당황한 듯 했지만, 내가 편지를 주었던 그 눈빛으로 나를 기억한 것 같았다. 잠시 인사를 마치고 별 말을 하지 못했을 때 지하철이 들어왔다. 소음 속에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꺼낸 말이

“나 군대 가, 공군 군악대야.”

그녀는 지하철 소음에 듣지 못했는지 “뭐라고?” 하면서 귀를 내 입에 가져 왔다. 나는 더 큰 소리로 말하고 말았다.

“와! 멋지다.”

그녀의 그 한마디가 왜 그렇게 으쓱했는지…. 지하철은 멈추었고, 그녀와 나는 어색한 웃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녀가 객차 안에 타고 나서 나는 바로 친구에게 전화했다.

“나 어떻게 해 그녀가 지금 객차 안에 탔어.”

친구는 호통치듯 말하였다.

“바보 같이 뭐해! 얼른 따라 타.”

나는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닫히는 문을 열고 그녀가 탄 객차가 아닌 하나 밑에 객차를 타게 되었다. 주말 2호선은 사람이 붐비었다. 그 많은 사람들을 헤집고 드디어 그녀 앞에 섰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고 놀라는 그녀에게 좀 더 당당한 어른이 되어 물었다.

“나 궁금한 게 있어. 너 번호를 묻지 않았네.”

그녀는 웃으면서 PCS폰은 없고 호출기만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번호를 알려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중학생 아이들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연락한다는 말을 남겼고, 그녀는 목적지에 내리고 말았다. 나는 그녀가 적어준 번호를 꼭 쥐고 돌아왔다. 주말 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녀의 번호를 눌러 호출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왜 그랬을까? 나는 그 번호를 누르지 못하였다. 20살 초반 나에게 군대는 세상의 끝과 같았기 때문이다. 용기와는 다른 문제였다. 입대를 앞두고 다시 그녀의 번호를 눌렀던 것 같다. 그리고 호출 번호가 아닌 음성을 남겼다.

“누구야 난 너를 무지 좋아했던 것 같아, 내 첫사랑은 너였던 것 같다. 고맙다.”

그리고 호출 번호를 남기지 않았다. 그것은 내 첫사랑에 대한 예의였다.

지금도 우리 아내는 내 첫사랑의 이야기를 안다. 이 글을 쓰면서 켜놓은 동물원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아내는 웃으면서 방문을 닫아 준다. 나는 궁금해서 아내에게 물었다. 나에게 소중한 첫사랑 이야기가 당신에게는 어떤 기분을 안겨주냐고 물으니 내 예상과 다르게 아내는 아무렇지 않다고 하였다. 다만 아들이 첫사랑에 몸살이 걸려있는 상황이 오니 아내는 당신이 겪은 옛날이 생각난다고 말한다. 나의 첫사랑은 내 그림자가 맞았다. 하지만 그 의미는 달라졌다.

첫사랑이 아카시아 꽃잎을 씹는다는 말을 해준 사람은 아버지 밑에서 일을 하시던 도사 같은 분이었다. 집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보면서 해주시던 말이 나에게는 오래 기억되어 아들에게까지 전수된 것이다. 그 후 몰래 아카시아 꽃잎을 씹어본 적이 있다. 아름다운 향은 있지만 그 쓴맛은 잊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쓴맛보다 향이 더 기억 되는 것 같다.

아이를 보면서 첫사랑을 다시 떠올려 본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 공부를 다시 하면서 어린 학생들과 어울리다보니 그들보다 나이가 든 나는 선배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똑같은 농담을 한다.

“내가 첫사랑에 실패만 하지 않았어도 그대들과 같은 아이들이 있을 텐데…”

인생 선배들이 왜 첫사랑의 실패를 농담으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첫사랑의 실패가 인생의 실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은연 중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첫사랑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아카시아 꽃잎 같은 쓴맛이 아닌 아카시아 꽃잎, 그 향이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사랑이 와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향이 되고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의 인생에서 사랑이 실수하지 않게 인간적인 향으로 다져가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좌우명이 된 ‘살면서 사랑하기’처럼 첫사랑을 그리고 짝사랑을 배워간 나는 여전히 사랑에 목마르고 사랑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아들은 지금 아카시아 꽃잎을 씹고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아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것은 살면서 사랑을 배우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첫사랑, 그 짝사랑은 여전히 순수한 5월의 잔향으로 남겨진 것처럼 아들의 향도 오랫동안 간직될 것이다.

 


박정승 해미리 대표이며, 꿈을이루는지역아동센터시설장. 고려대 일반대학원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 《쿨투라》 2023년 9월호(통권 1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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