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FF 2023] 아름다운 메스티아산맥에서 영화로 하나되는 경험
[MFF 2023] 아름다운 메스티아산맥에서 영화로 하나되는 경험
  • 설재원(에디터)
  • 승인 2023.09.0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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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티아국제단편·산악영화제(Mestia International Short & Mountain Film Festival)

올해로 3회째를 맞는 메스티아국제단편·산악영화제Mestia International Short & Mountain Film Festival(이하 메스티아영화제)가 지난 8월 22일(화)부터 26일(토)까지 조지아 스바네티 지역의 메스티아에서 열렸다. 장엄한 코카서스 산맥을 품고 있는 메스티아는 조지아 북단에 위치한 스바네티 지역의 가장 큰 도시이다. 메스티아 중심부에서 열리는 이 영화제는 산악영화와 단편영화 두 가지 경쟁부문을 가지고 있으며, 단편부문 대상Best Short Film과 산악부문 대상Best Mountain Film, 그리고 부문과 관계없이 한 작품에 그랑프리Grand Prix를 시상한다. 여기에 촬영이나 제작, 연기나 미술 등 작품의 미학성을 한층 높인 뛰어난 성과를 보인 영역에 대하여 심사위원이 하나의 영역에 대해 특별상Special Prize과 특별언급상Special Mention을 수여한다.

 

다시 찾은 메스티아영화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시작된 인연으로 영화제에 초청된 나는 올해에도 외신기자로서 메스티아를 다시 찾게 되었다. 폐막 파티에 내년에도 다시 보자던 말이 신기하게도 정말 이루어졌고, 지난해 참여했던 외신기자 중에 홀로 이곳을 다시 찾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올해에는 나를 포함하여 캐나다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제이슨 고버Jason Gorber와 독일에서 활동하는 알리스 칸테리안Alice Kanterian, 카타리나 도크혼Katharina Dockhorn, 토마스 슐츠Thomas Schultze, 이렇게 다섯 명의 외신기자단이 꾸려졌다.

19일 오후 트빌리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지난해에 이어 조지아관광청에서 섭외한 전문 가이드 다빗David Nozadze이 반겨주었다. 도하를 거쳐 13시간여 만에 조지아에 다시 돌아온 게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다빗은 메스티아로 가기 전 트빌리시에서부터, 함께 도착한 제이슨과의 트빌리시 투어를 진행해 주었다. 이어 영화제 개막일 이른 아침, 토마스가 우리 일행에 합류했고 그렇게 넷이서 메스티아로 떠났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는 500km 정도의 거리인데 시간은 무려 9시간 이상 걸린다. 수도인 트빌리시 주변에는 고속도로가 잘 닦여 있지만, 코카서스 산맥에 진입하면 곳곳에 비포장도로가 보이고 산을 따라 휘어진 급커브와 비탈길이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올해는 트빌리시에서 출발하는 인원이 줄어 차량이 미니버스에서 SUV로 바뀌기도 했고, 또 작년에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인지 올해의 메스티아행은 훨씬 편안했다. 몸이 안정되니 창밖에 펼쳐진 웅장한 산악지형이 더 눈에 잘 들어왔다.

코카서스 산맥의 푸르름에 한껏 빠져있다 보니 어느새 스바네티 지역의 전통적인 스반 타워 건축물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영화제가 열리는 메스티아에 도착했다. 지난해 촉박하게 도착했던 기억 때문에 그보다 1시간 일찍 출발한 올해는 개막식 전 약간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덕분에 하루 일찍 도착한 알리스, 카타리나와 간단히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바투미에서 출발한 알리스와 카타리나는 바다와 산을 모두 품은 조지아의 아름다운 모습에 흠뻑 빠져 있었고, 트빌리시에서 출발한 우리에게 바투미도 꼭 한번 가봐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외신기자들.

개막작은 자자 할바시의 유작 〈Drawing Lots〉

개막식이 열리는 메스티아문화예술센터에 도착하니 이미 축제의 흥분된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메스티아 지역민들은 물론, 이곳을 찾은 게스트와 관광객은 개막식 현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조지아 전통의상과 화려한 드레스로 한껏 멋낸 이들이 레드카펫을 빛내주었다. 또한 메인 베뉴 안으로 진입하자 영화제 시작에 맞춰 열린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탄생 100년(1924년 트빌리시 출생)을 기념하는 사진전이 펼쳐져 있었다. 사진 작가 유리 메치토프Yuri Mechitov는 78년 11월 감옥에서 돌아온 파라자노프를 만났고 그때부터 그의 사진 수백 장을 남겼다. 영화제 기간에 그의 컬렉션 중 일부를 이곳 메스티아문화예술센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전.

식이 시작하기 전에 1년만에 다시 만난 하투나 훈다제Khatuna Khundaze 집행위원장과 게기 팔리아니Gegi Paliani 부집행위원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처럼 나를 따듯하게 맞아주었고, 특히 게기 위원장은 두 번째 조지아를 찾았으니 이제 이름이 있어야 한다며 ‘제일란Jeiran’이라는 조지아식 이름을 붙여주었다. 덕분에 이번 영화제 내내 나는 ‘제일란’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개막식은 스바네티 전통음악과 무용이 어우러진 축하공연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후반부에는 스바네티 지역 전통 악기 두 가지를 선보이며 이색적인 선율로 흥을 돋우었다. 이어 무대에 오른 하투나 훈다제 집행위원장은 “올해도 아름다운 메스티아에서 영화제를 시작하게 되어 기쁘다”면서 “아름다운 산맥 가운데서 영화로 모두가 하나되는 즐거운 경험을 함께 하길 소망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개막 축하공연.

다음으로 심사위원진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졌다. 올해의 심사위원은 교수, 감독, 제작자, 영화제 관계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다섯 명으로 이루어졌다. 심사위원장은 베를린예술대학 총장을 역임한 아인슈타인 재단의 의장 마틴 레너트Martin Rennert가 맡았고, 심사위원으로는 영화제작사 ‘트레모라Tremora’의 설립자이자 뛰어난 리투아니아 제작자로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수많은 수상작을 만든 이에바 노르빌리에네Ieva Norvilienė,헝가리국립영화제Hungarian Motion Picture Festival의 프로그램 디렉터 피터 무작티스Peter Muszatics, 조지아국립쇼타루스타벨리연극영화대학의 영화비평이론학과 학장 렐라 오치아우리Lela Ochiauri, 〈키불라〉, 〈옥수수 섬〉, 〈제방의 저편〉 등을 선보인 조지아를 대표하는 감독 게오르기 오바슈빌리로 구성되었다.

개막작 〈Drawing Lots〉

개막작은 올해 로테르담영화제에서 프리미어상영을 한 자자 할바시Zaza Khalvashi와 탐타 할바시Tamta Khalvashi의 〈Drawing Lots〉이다. 2020년 심장마비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자자 할바시가 미처 세상에 내놓지 못한 작품을 그의 딸 탐타 할바시가 마무리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할바시의 유족과 〈Drawing Lots〉의 제작자인 심사위원 이에바 노르빌리에네가 함께하여 그 의미를 더했다.

이 작품은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순간을 포착하여 공동체 내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유쾌하게 전달한다. 특히 작품은 긴밀하게 연결된 공동체의 모습을 부분부분 느슨하게 보여주면서 이들의 삶의 현장에 빠져들게 하고, 우아한 흑백 촬영은 건조한 인물들의 얼굴 틈 사이의 아이러니한 지점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심사위원.

개막작 상영 후 애프터파티에서는 풍성한 조지아 식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조지아는 동유럽과 서아시아 음식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대표적인 미식 강국이다. 한국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지금도 러시아와 동유럽에는 조지아음식이 풍부한 맛으로 정평이 나 있고, 조지아가 와인의 발상지인 만큼 조지아 와인을 최고로 평가한다.

테이블에는 조지아 대표 요리인 치즈를 넣고 오븐에 구운 빵 하차푸리khachapuri부터 콩이 들어간 로비아니lobiani, 갓 익힌 바비큐 등 훌륭한 음식으로 가득했고, 그 옆에는 영롱한 빛깔의 앰버 와인(오렌지 와인)과 레드 와인, 그리고 조지아식 보드카인 차차chacha가 준비되어 있었다. 웅장한 산을 배경삼아 오랜만에 만난 영화제 스태프와 처음 만난 게스트, 메스티아 주민들 모두와 새벽 늦은 시간까지 음식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특히 이에바 노르빌리에네는 나를 보더니 10여 년 전 부산영화제를 방문한 추억을 꺼내기도 했다. 아시아에 좋은 영화제가 있다고 해서 김동호 집행위원장 시절 부산에 처음 가보았는데, 정말 영화판에 유명한 사람들을 거기서 다 만날 수 있었다며 그때 참 재미났다는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았다. 이어 다음 작품으로 부산에 꼭 다시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메스티아의 인연을 부산에서도 계속 이어가자는 말을 더했다.

 

영화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산악 프로그램

미하일헤르기아니박물관.

올해는 영화제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산악’ 테마가 한층 강화되었다. 개막 이튿날 오전 프로그램은 미하일헤르기아니박물관Mikhail Khergiani House Museum에서 이루어졌다. 미하엘 헤르기아니Mikhail Khergiani는 조지아의 전설적인 산악인으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붙여준 ‘절벽의 호랑이Tiger of the Cliff’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메스티아 출신이면서 소련에서 체육인명예훈장을 받을 정도로 산악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를 낸 그는 영화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인물로, 메스티아영화제는 산악부문 대상을 미하엘헤르기아니상이라는 이름으로 시상한다. 미하일 헤르기아니가 묻힌 장소에 지금의 미하일헤르기아니박물관이 세워졌고, 영화제의 첫 프로그램으로 그의 삶의 궤적을 함께 쫓으면서 그의 일생과 과거 메스티아의 삶의 모습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는 메스티아 사람에게 산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일부임을 강조했다. 미하일 헤르기아니가 스포츠인으로서 7번이나 전국 산악 챔피언에 오른 뛰어난 성과를 보인 것도 맞지만, 그에게 있어 등반은 스포츠보다는 삶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는 산을 사랑했고, 산과 사람의 동행을 중시했다. 그가 평생에 가장 자랑스러워 한 것은 수많은 메달이 아닌, 등반 과정에서 위험에 빠진 여러 목숨을 구한 구조자로서의 활동이었다. 이외에도 이곳은 그가 살던 시절 메스티아 전통 가옥과 스반 타워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하츠발리.
하츠발리.

이어 점심 장소인 하츠발리를 향했다. 메스티아에서 가장 유명한 스키리조트이기도 한 이곳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멋진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이다. 8월이라 스키는 탈 수 없었지만 평탄한 숲을 산책할 수 있는 코스가 함께 있어, 천천히 푸른 산의 시원한 공기를 만끽하며 걸을 수 있었다. 과거에는 12월 초부터 6월 말까지 하츠발리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었는데 이제 눈 내리는 날이 줄고 기온이 오르면서 이곳도 스키 시즌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스키장이 폐장하는 비시즌에도 케이블카를 운영하며 이곳을 즐길 수 있는 더 친환경적이고 새로운 산과의 공존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스키 없는 스키장이었지만, 이곳을 걷는 것 만으로도 하츠발리의 여름과 그 푸르름은 충분히 멋졌다.

하츠발리 케이블카.
하츠발리 케이블카.

다음 날부터는 메스티아 주변의 작은 마을을 찾았다. 먼저 찾은 곳은 메스티아에서 20㎞정도 떨어진 베초Becho였다. 여기서부터 산을 오르면 메스티아의 가장 험악한 산 우쉬바Ushiba의 빙하에서 내려오는 쉬두그라폭포Shdugra Waterfall를 볼 수 있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폭포까지 닿지는 못했지만, 자연 속을 걸으며 흘리는 땀방울은 유쾌한 기분 전환이 되었다. 산행 후 점심은 꿀맛이었다. 메인디시로 구운 송어와 튀긴 송어가 나왔는데, 튀긴 송어는 빵과 생선을 같이 먹는 듯한 신기한 맛이 나는 음식이었다. 여기에 함께 나온 상쾌한 차차는 음식의 풍미를 더해주었다. 식사가 끝나갈 때 즈음에는 하투나와 게기 위원장이 깜짝 선물로 심사위원과 게스트에게 스바네티 전통 모자를 씌워주었다.

우쉬굴리.
우쉬굴리.

다음은 우쉬굴리Ushiguli였다. 메스티아 주변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꼽히는 우쉬굴리는 해발 2,100m에 위치한,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 중 하나이다. 1년 중 절반이 눈에 덮여 있는 이곳은 메스티아에서 따로 4륜구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올 수 있는 험악한 지형에 위치해 있다. 길의 30% 이상이 비포장도로이고, 그마저도 눈이 많이 오면 아예 진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과거부터 주변에서 조지아를 공격하더라도 이곳까지는 침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중세 풍의 도시환경과 스바네티 전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마을 높은 곳에 위치한 라마리아성당은 오래 전부터 내려온 조지아정교회의 전통을 볼 수 있었고, 천장으로 눈을 돌리면 10세기와 13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를 만날 수 있었다. 우쉬굴리와 영화의 인연을 살펴보면, 1958년 제11회 칸영화제에서 〈학이 난다Letyat Zhuravli〉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미하일 칼라토조프Mikhail Kalatozov의 단편 〈솔트 오브 스바네티아Jim Shvante〉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라마리아 성당 프레스코.
라마리아 성당 프레스코.

마지막 날에는 스바네티역사박물관Svaneti Museum of History and Ethnography과 찰라디 빙하Chaladi Glaciers를 찾았다. 박물관 로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장관인 스바네티역사박물관은 이 지역에서 발견된 것만을 전시하는 로컬뮤지엄으로, 스바네티만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지역민들의 과거를 알 수 있는 옷과 장신구, 도구와 무기, 성화와 성서 등 다양한 유물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스바네티역사박물관.
스바네티역사박물관.

박물관을 나와서 점심은 지역민의 가정을 찾아 함께했다. 지난해에는 스바네티 전통 소금을 만들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올해는 스바네티의 대표 음식인 구부다리kubudari를 함께 만들어 먹었다. 구부다리는 육회에 갖가지 자연의 양념을 더해 오븐에 구워 먹는 이 지역의 음식으로 속이 고기로 가득 찬 빵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의 다양한 맛을 품고 있는 구부다리를 베어 물고 한입에 스바네티를 느낄 수 있었다.

구부다리 요리 과정.
구부다리 요리 과정.

식사 후에는 산을 올라 찰라디 빙하로 향했다. 찰라디 빙하로 가는 길은 바위와 돌이 많아 앞선 다른 하이킹보다 길이 험했지만, 2시간 내외의 시간을 투자할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오랜만에 길 없는 산을 오르는 일은 자연과 하나되는 듯한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찰라디 빙하는 여름이라 꽤 녹아 있었다. 그렇지만 따스한 햇살로 주변 바위 틈에 피어난 풀꽃들은 빙하의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드높여 주었다.

찰라디 빙하.
찰라디 빙하.

지난해와 올해 프로그램의 가장 큰 다른 점은, 지난해에는 모든 프로그램을 모두가 함께 했다면 올해는 프로그램 선택의 폭이 더 넓어졌다는 것이다. 우쉬굴리나 찰라디 빙하는 나와 같은 기자단이나 소수의 게스트만 참여했고, 다른 이들은 또 다른 곳에서 메스티아의 아름다운 숨결을 즐길 수 있었다. 해를 거듭해가며 프로그램이 다양해지고 영화제 운영이 안정되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제를 빛낸 대망의 수상작

〈부바, 라차산 봉우리에서Buba〉

찰라디 빙하에서 내려오니 폐막작과 폐막행사만 남았다. 폐막작으로는 최초의 조지아 여성 영화감독 누차 고베리제Nutsa Gogoberidze의 〈부바, 라차산 봉우리에서Buba〉가 상영되었다. 1930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소련의 부상 이후 최빈층으로 몰락한 라차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작은 공동체의 삶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희로애락을 담아냈으며, 30여 분의 짧은 러닝타임동안 자연과 노동을 대비시키며 마을을 재건하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냈다.

트로피.
트로피.

이어지는 폐막식에서는 경쟁부문의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개막일과 폐막일을 제외한 3일 동안 매일 오후 6시에는 단편부문이, 8시에는 산악부문의 작품이 상영되었는데, 그 결과로 우선 특별언급상은 카타르지나 시코르스카Katarzyna Sikorska 감독의 폴란드 작품 〈The Delivery〉의 배우 크세냐 토르슈코Ksenia Tchórzko가, 특별상은 〈Samichay〉의 배우 아미엘 카요Amiel Cayo가 차지했다. 놀랍게도 특별언급상과 특별상 모두 연기 분야에서 상이 나왔다.

특별언급상을 받은〈The Delivery〉의 배우 크세냐 토르슈코. 그랑프리 발표. 트로피.

〈The Delivery〉는 딸을 기대하는 알리샤와 대리모 옥산나 사이의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이다. 알리샤는 출장 중인 남편에게 대리모를 사용하는 사실을 숨기는데, 옥산나가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둘 사이에 갈등이 피어난다. 상을 받은 크세냐 토르슈코는 건강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적인 문제 사이에서 고민하는 옥산나 역을 맡아 복잡한 심리를 잘 표현해 냈다. 아미엘 카요는 〈Samichay〉에서 가난한 페루 원주민 셀레스티노로 분하여 안데스 산맥에 살고 있는 농부의 삶을 보여주었다. 셀레스티노를 둘러싼 경제적인 결핍과 가족과의 관계에서의 어려움은 안데스 산맥만큼이나 척박하고 장애물이 많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그의 곁을 담담하게 지키는 소 사미차이와 차분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을 건조한 캐릭터로 그려냈다.

〈The Delivery〉

단편부문 대상은 파이자 암바Faiza Ambah 감독의 사우디아라비아 영화 〈Nours Shams〉, 산악부문 대상은 파볼 바라바스Pavol Barabas 감독의 슬로바키아 영화 〈Mountain Guides〉, 그랑프리는 마우리치오 프랑코Mauricio Franco 감독의 페루 영화 〈Samichay〉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Nours Shams〉는 제다에서 우버 운전을 하는 아프리카 이민자 샴즈의 삶을 그리고 있다. 샴즈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멘 남편과 결혼하지만 머지 않아 남편은 그의 전부인에게로 떠나가고, 샴즈는 하나뿐인 아들 마키를 금지옥엽으로 키운다. 마키는 래퍼가 되고 싶어하고 랩 대회에서 우승을 한 뒤 프랑스로 떠나려 하는데, 샴즈는 그런 아들의 생각과는 달리 마키와 함께 제다에 남고 싶어 한다. 둘 사이의 갈등은 점점 격화되고 끝내 샴즈는 아들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할지, 그를 보내고 자신의 삶을 찾아갈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Nours Shams〉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그동안 잘 다루지 않던 이민자 가정의 삶을 조명하며, 그 안의 갈등과 어려움을 긴장감 있게 풀어냈다. 화려한 제다의 색채와 개성 넘치는 힙합 음악은 이와 대비되는 샴즈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배가시키며, 마침내 감동적인 드라마를 완성한다.

〈Mountain Guides〉

산악부문의 대상인 〈Mountain Guides〉는, 제목 그대로 등반을 돕는 가이드의 삶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감독인 파볼 바라바스는 고타트리 산맥 등반을 꿈꾸는 이들을 돕는 가이드의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애정있게 그려냈다. 〈Mountain Guides〉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촬영이다. 드론을 이용하거나 암벽, 헬멧에 달린 카메라는 다이나믹한 프레임을 보여주며, 마치 함께 산을 오르는 듯한 현실감 있는 화면을 보여준다. 여기에 장엄하게 펼쳐진 고타트리 산맥은 그 자체로 하나의 플롯이 되어 작품을 끌고 간다.

〈Samichay〉

〈Samichay〉는 그랑프리를 받으며 심사위원 특별상에 이어 2관왕을 달성했다. 흑백화면에 와이드 스크린으로 구성된 〈Samichay〉는 안개 자욱한 안데스 산맥을 위엄있게 그려냈다. 프랑코 감독은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안데스 산맥이 만들어 낸 험난한 셀레스티노의 여정을 보여주는 데 할애하였는데, 무자비한 환경 속의 미약한 인간의 삶을 가혹하게 그려냈다. 영화는 셀레스티노가 노모의 죽음과 딸의 죽음 이후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벗인 사미차이를 팔기로 하면서 무너져 내리는 삶의 현장을 칙칙한 화면으로 담아냈다.

그랑프리 발표.
그랑프리 발표.

심사위원장 마틴 레너트는 “심사위원 다섯 명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함께 모여 치열하게 토론을 펼쳤고 지금의 결과를 냈다”며 “좋은 작품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고 느낄 수 있어 즐거웠다”고 밝혔다. 특히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스물 다섯 편의 작품이 스물 다섯 개의 서로 다른 국가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아주 인상적”이라며 “각기 작품에는 다양한 문화와 시선이 들어있었고, 그러한 점에서 함께 작품을 보고 다름을 공유한는 시간은 의미있었다”고 올해 영화제를 총평했다.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하면 확실히 올해 초청된 작품들이 한층 수준이 높았다. 단편영화 라인업에는 이미 타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 꽤 있었고, 산악영화는 산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산과 함께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더욱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었다. 사바Saba Makharashvili 프로그래머는 “지난해보다 출품작이 배로 늘어나 좋은 작품을 많이 가져올 수 있었다”며 “내년에는 더 좋은 영화 프로그램으로 돌아오겠다”는 말로 기대감을 높였다.

하투나 훈다제 집행위원장과 함께.

모든 행사가 끝나고 폐막 리셉션에 앞서 게기 팔리아니 부집행위원장은 단상으로 올라와 기자단을 불러 우리에게도 스바네티 전통 모자를 씌워주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5일간이었지만, 메스티아에서의 여정은 영화와 산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인간에 대한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지는 리셉션에서는 모두 함께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페스티벌의 마지막을 불태웠다. 하투나 훈다제 집행위원장은 “메스티아에서 영화제를 개최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는데 이제 영화제가 메스티아에 제대로 스며든 것 같다”면서 “모두가 기다리는 메스티아의 축제를 더욱 잘 준비하겠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도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당부했다.

지난해 게기 부위원장은 “언젠가 스바네티 지역에도 영화가 뿌리내리길 바란다”는 염원을 전했는데, 분명 1년 만에 돌아온 메스티아는 조금 더 영화도시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작지만 강한 메스티아 영화제가 자리하고 있다.

 


 

사진 제공 메스티아국제단편·산악영화제

* 《쿨투라》 2023년 9월호(통권 1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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