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속의 詩] 김명인 시인의 「이모들」
[새 시집 속의 詩] 김명인 시인의 「이모들」
  • 김명인(시인)
  • 승인 2023.10.0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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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들

김명인

세상 모든 할머니의 보퉁이에는

오롯하게 꾸려놓은 스무 살

싱싱한 이모가 있다

치매를 둘러 패는 화투 한판

거기 끼어서도 저 이모

빨리 끌러보라고 성화다

가슴 어디에 전대로 싸맨 세월이 남았는지

우세스러워 한 번도 내뱉지 못한

농담조차 녹슨 작두로 잘라 보이며

뜬금없이 불쑥 섞는

스무 살 칼칼한 웃음소리들

해묵은 탄금이라 언제

줄 끊어지더라도 하릴없지만

아직은 쨍쨍한 늦가을 꽃길

산들거리가 한창이다

 

- 김명인 시집 『오늘은 진행이 빠르다』(문학과지성사) 중에서

 


김명인 시인은 1946년 경북 울진군에서 태어나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출항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東豆川』 『머나먼 곳 스와니』 『물 건너는 사람』 『푸른 강아지와 놀다』 『바닷가의 장례』 『길의 침묵』 『바다의 아코디언』 『파문』 『꽃차례』 『여행자 나무』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와 시선집 『따뜻한 적막』 『아버지의 고기잡이』, 산문집 『소금바다로 가다』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목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쿨투라》 2023년 10월호(통권 1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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