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고단한 생활과 윤리적 서정: 박소란, 「숨」에 대하여
[문학 월평] 고단한 생활과 윤리적 서정: 박소란, 「숨」에 대하여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3.10.0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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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월평은 최근에 출간된 작품을 다루는 코너이다. 나름의 기준으로는 3개월 전 발간된 문학까지를 제한선으로 설정해두었다. 이번에는 그 선을 넘었다. 무려 작년 여름 발표된 한 편의 시를 살펴볼 작정이다. 그렇게 된 사정이 있다. 첫째, 이 시가 올해 쿨투라 어워즈 ‘오늘의 시’ 수상작이라는 것. 둘째, 갈수록 부박해지는 시대에 이 시가 그에 대한 일정한 해독 작용을 해줄 수 있으리라 여겨서다. 무슨 작품인가 하면 박소란 시인의 「숨」이라는 시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박소란 시에 대한 글을 몇 편 쓴 적이 있다. 첫 번째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2015), 두 번째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2019), 세 번째 시집 『있다』(2021)를 읽어오는 동안, 오랜 독자의 자격으로 나는 그녀의 작품을 평했다. 박소란 시의 낭만성은 낭만주의의 기율 “시는 윤리적으로 되어야 하고 모든 윤리는 시적으로 되어야 한다.”(프리드리히 슐레겔)를 있는 그대로 수행한다는 것이 핵심적인 주장이었다.

기왕의 논지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문학 월평에서는 「숨」 한 편만을 조명하는 만큼 조금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싶다. 박소란 시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시인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그녀의 시는 그녀라는 사람과 긴밀하게 공명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 아니겠냐고 누군가는 반문하겠지. 그러나 시의 아우라와 시인의 됨됨이가 일치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지는 않다. 독자에게 위로를 전하는 따뜻한 시를 썼다고 해서, 그 시를 쓴 시인의 실제 언행이 따뜻하리라고 예상해서는 곤란하다. 박소란은 시와 시인이 일치하는 드문 사례다. 한 문예지의 편집위원으로 같이 활동하는 동안 결론 내린 바다. 그녀는 섬세하게 생각하되 차갑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되 비굴하지 않다.

이는 정확하게 박소란 시와 조응한다. 문체가 글의 스타일에 국한되지 않고, 쓰는 자의 몸이자 세계에 대한 태도라는 점에서, 그녀의 시는 곧 그녀가 세상을 사는 방식을 보여준다. 세계의 물적 토대를 부동산 혹은주식 투자의 관점으로만 판단하거나, 세계의 운영 원리를 현실 정치의 음험한 계략으로만 간주하는 이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박소란은 세계에 발 딛고 살면서 아니 세계를 버텨내면서도, 결코 내던져서는 안 되는 인생의 본질적인 가치가 있음을 시로 쓴다. 그녀는 생존을 경시하지 않지만 생존이 곧 삶과 등치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그러한 입장에 바탕을 두고 박소란은 「숨」을 썼다. 추천위원들이 이 작품을 올해 쿨투라 어워즈 시 부문 수상작 ‘오늘의 시’로 뽑은 이유가 전부 같지는 않겠으나, 한 가지 공통점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작품이 고단한 생활의 층위와 윤리적 서정의 거리를 밀착시켰다는 사실과 결부된다. 이 시의 제목인 ‘숨’은 살아 있음의 증표이다. 평소 숨의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모든 생명이 움츠러드는 겨울에만 숨의 흐름이 입김으로 포착된다. 그리하여 이 시는 “겨울의 한 모퉁이에 서 있는 것이다”로 시작한다. 하지만 겨울을 반드시 계절적 배경으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 겨울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엄혹한 고난을 상징하니까. 시련이 금세 지나갈 리 없다. 그러므로 언젠가 도래하리라 믿는, 지금보다 나아진 미래를 “어쨌든 기다리는 것이다”. “남몰래 주먹을 쥐고 가슴을 땅땅 때리며” 애타게, “시도 쓰고 일도 하며 (……) 병원도 다니고 (……) 과장된 웃음을 짓기도 하는” 범상한 하루를 보내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가 예증하듯이 기다림의 종결은 늘 유예되기 마련이다. 기다림의 주체는 미신인 줄 알면서도 거기에 괜한 기대를 걸어보고 싶은 심정을 품는다. 또한 길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는 “알바”도 ‘나’처럼 무언가를 기다리는 존재임을 알기에 광고지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고단한 생활의 층위를 보여준다면, 이후부터는 박소란 시 특유의 윤리적 서정이 전개된다. ‘나’는 “마스크 위로 터지듯 새어 나오는 입김”, 그러니까 살아가는 일이 버거워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생의 자취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속된 세상에 있기에는 “지나치게 희고 따뜻한 것”, 부풀고 수그러지며 “다시 속살거리는 것” ‘나’의 눈에 숨이라는 살아 있음의 증표는 그렇게 보인다. 동시에 이것은 각각의 이야기로 화하여 “곁을 맴도는 것이다”.

이처럼 박소란 시는 개별적인 숨에서 공동의 삶을, 공동의 삶에서 고유한 서사를 발견한다. 세상살이를 쉽게 하려면 세계의 중심을 차지하면 된다고 설파하는 자들에게 이 시가 주목하는 광경은 부차적이고 쓸데없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윤리적 서정을 견지하는 이는 다르다. 내면과 연동하는 풍경이 일깨우는 감각을 그는 다음과 같이 발화한다. “아 신기해라, 조용히 발음해보는 것이다”. 고단한 생활의 층위만 그려내거나 윤리적 서정만 강조하는 시들 속에서, 박소란은 양자를 횡단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시가 있음을 「숨」으로 증명해낸다. 이렇게 보면 “시는 윤리적으로 되어야 하고 모든 윤리는 시적으로 되어야 한다.”라는 낭만주의의 명제가 어떻게 박소란 시에 적용되는지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이 시에서 되풀이되는 “~것이다”라는 종결어미도 흥미롭다. 화법이 곧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인데, 화자의 전망과 소신이 “~것이다”를 통해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바꿔 말하면 갈망하는 대상이 올 것이 확실해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충실한 기다림의 주체는 확률을 따져 유리한 편에 서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자세 “기다리는 것이다”를 관철한다. 이해타산을 제일로 꼽는 세태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인생관이다. 이와 같은 불화는 나쁘지 않다. 조화가 항상 아름다운 것일 수 없는 한에서 그러하다. 갈수록 부박해지는 시대에 무리 없이 적응하였다는 의미는 이미 심각한 중독 상태에 이르렀음을 가리킨다. 해독은 이에 대한 위화감을 느낌으로써 가능해진다. 그 역할을 박소란 시가 감당한다. 모두가 다가올 수 있도록 난해의 장막을 거둔 언어로 심층적인 삶의 실감을 구현함으로써.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3년 10월호(통권 1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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