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키아프·프리즈》 참관기] 컬렉터들의 총성 없는 미술 전쟁: 《키아프·프리즈》에 모여든 독보적인 작품과 미술애호가들
[2023 《키아프·프리즈》 참관기] 컬렉터들의 총성 없는 미술 전쟁: 《키아프·프리즈》에 모여든 독보적인 작품과 미술애호가들
  • 박영민 기자
  • 승인 2023.10.0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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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란 의미를 다진 두 번째 공동 아트페어 《키아프·프리즈》가 9월 6일 오후 VIP 사전관람을 시작으로 개막했다. 《키아프 서울》은 코엑스 A, B홀과 그랜드 볼룸에서 9월 10일까지 닷새간, 《프리즈 서울》은 코엑스 C, D홀에서 9일까지 나흘간 개최되어 국내 미술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전 세계 정상급 갤러리 330여 곳과 17세기 명작부터 신예 작가까지 수천억 원대의 작품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모인 것이다.

구사마 야요이, 붉은 신의 호박(red god pumpkin).

VIP 사전관람 첫날부터 솔드 아웃
구사마 야요이 〈붉은 신의 호박〉 580만 달러 판매

《쿨투라》가 찾은 VIP 사전관람 현장의 열기는 체온 이상이었다. 개막 첫날부터 부스 곳곳에서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작품들의 ‘솔드 아웃’ 행진이 이어졌다. 미국 갤러리 데이비드즈위너는 이날 구사마 야요이의 회화 작품 〈붉은 신의 호박〉을 580만 달러(약 77억 원)에 판매했다. 《키아프》와 《프리즈》를 통틀어 가장 비싸게 팔린 이 작품을 “한국고객이 사갔다”고 하는데 과연 누구일까.

아트페어가 ‘미술시장’이지만 장터에서 작품만 파는 것은 아니다. 독보적인 식견과 안목과 기회도 판다. 핑크팬더를 그림에 담는 미국 작가 캐서린 번하트의 작품도 200만 달러를 웃도는 가격에 팔렸다. 《프리즈》에 참여한 데이비드즈위너, 하우저앤워스, 페이스갤러리 등 세계적 규모의 갤러리는 이날 일제히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매출을 달성했다.

루치오 폰타나, 마졸레니(Mazzoleni), 1964-1965. 프리즈 서울.

이탈리아 화가 루치오 폰타나(1899-1968)의 100억 원대로 알려진 ‘마졸레니Mazzoleni’와 제프 쿤스의 360만 달러(약 48억 원) 상당의 〈게이징 볼〉에도 관람객이 몰렸으며, 데미안 허스트 작품 〈삶의 나무〉도 나왔다.

국내외 210곳의 갤러리가 참여한 《키아프 서울》에도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신랑신부Les mariés〉가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키아프》에 단독부스를 마련한 장갑작가 정경연 부스와 작년 11월 《쿨투라》 표지를 장식했던 홍경택 작가의 작품도 눈에 띄었다.

제프 쿤스, 게이징 볼(Centaur and Lapith Maiden), 2013. 프리즈 서울.

프리즈 전시장을 찾은 유명인사와 VIP 컬렉터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BTS, 블랙핑크 등

서울에 상륙한 《프리즈》는 여전히 강했다. 눈 돌리면 피카소가 걸려 있고, 코너를 돌면 샤갈이 나온다. 그중 고대 거장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걸작으로 구성한 ‘프리즈 마스터즈’는 말할 것도 없다. 교과서에서만 만나던, 도록에서조차 아껴보던 값비싼 현대 미술작품을 대거 출품했다.

이에 질세라 1만 명에 달하는 세계 VIP 컬렉터와 국내외 미술관계자들도 대거 전시장을 찾았다. 방탄소년단의 RM과 지민은 공식 입장이 시작되기 전 조용히 프리즈 행사장을 찾았고 블랙핑크의 지수와 로제, 박기용 배우도 목격됐다. 가수 조영남 작가를 비롯한 김종원 전시 미술감독 등 주요 미술관계자들도 현장에서 자주 부딪혔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와 이웅렬 코오롱 명예회장, 두산가의 박서원 전 오리콤 부사장, 정도련 홍콩M+ 뮤지엄 부관장, 토비아스 버거 홍콩 타이쿤미술관 관장, 구겐하임 빌바오 뮤지엄의 아트 패트론 그룹 등 기업인과 관련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이다. 《프리즈》가 좀처럼 대중에 섞이지 않았던 홍 전 관장까지 움직이게 한 것이다. 인솔자 두 명만 단출하게 대동한 채 빠른 걸음으로 현장을 둘러보던 홍 전 관장은 간혹 마주친 미술계 관계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김구림 작가도 휠체어를 타고 전시를 둘러보았으며, 곳곳에서 중국어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코로나19로 막혔던 여행제한이 풀린 중국 관객들도 행사장을 대거 찾은 것이다.

이처럼 2회째 서울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키아프》와 《프리즈》는 다소 움츠렸던 미술계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수만 명의 미술애호가들이 미술 축제를 만끽하게 했다. 이번 행사로 미국, 중국, 유럽 등 각지에서 거물급 미술계 인사들이 대거 방문하면서 국내 미술계 네트워크가 확대되고 한국 작가와 작품이 많이 소개된 것은 우리 미술계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한국화랑협회가 주관하는 《키아프》에는 5일간 총 8만 명 이상이 방문했으며, 《프리즈》 폐막으로 《키아프》에만 입장할 수 있었던 10일에는 입장권만 6000장이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주최 측은 “실제 방문객 수는 전년 대비 약 15% 늘어난 수치로 이는 국내 미술시장의 활기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발 디딜 틈 없이 붐빈 ‘2023 키아프서울’ 전경.

거장뿐 아니라 함경아, 양혜규, 강서경 등
세계 미술계가 국내 작가들에 관심 가져

판매 성과에 대해선 갤러리별로 희비가 갈렸지만 《키아프》는 미디어아트 특별전, 박생광·박래현의 우리 채색화 특별전 등으로 ‘기획의 힘’에 승부수를 띄우며 지난해보다 더 많은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원로 블루칩 작가와 중견작가뿐 아니라 신진 작가들의 작품도 강세를 보였다.

국제갤러리는 박서보 작품을 49만 55만달러(약 6억5천-7억8천만원)에 판매한 것을 비롯해 하종현, 함경아, 이광호 등 한국 대표 작가 작품을 다수 판매했으며, 우고 론디노네 3m짜리 초대형 신작 회화를 24만-28만8000달러(약 3억2000-3억8000만원)에 판매했다. 론디노네의 소형 수채화 ‘매티턱’ 연작은 첫날 10점 모두 팔려나갔다.

갤러리 현대는 이성자의 작품 2점을 40만-45만달러대에 판매했으며, 첫날에만 라이언 갠더 작품을 2만5000-9만파운드(약 4000만-1억5000만원)에 여러 점 판매했다. 학고재 갤러리의 변월룡과 하인두 작품 역시 각각 1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LKIF갤러리는 행사 시작과 동시에 ‘완판’을 기록했다.

한 중견 갤러리 대표는 “올해 《프리즈》 출품작에 실망해 《키아프》에 와서 작품을 사간 컬렉터들이 있었다”며 “작년보다 실구매자가 더 많았고 행사장도 지난해보다 동선이나 전시 구성 등이 더 개선됐다”고 했다.

중형 화랑들은 대체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서 작품을 판매했으며, 신진 갤러리 옵스큐라는 VIP 프리뷰 때 배병우 작품을 2억원에 판매했다.

해외 정상급 갤러리 부스에서는 리만머핀이 성능경, 홍순명, 타데우스 로팍이 정희민 등 한국 작가 작품을 다수 내세우며 우리 작가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박서보·하종현 등 단색화 거장뿐 아니라 함경아, 양혜규, 강서경 등 우리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빠른 속도로 팔리며 세계 미술계가 국내 작가들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필립 거스턴, COMBAT I.

행사 전후로 개최된 다양한 미술 행사
한국 미술 현장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마련

《프리즈 서울》에 참여한 해외 갤러리들은 한국 미술 시장과 컬렉터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지난해 《프리즈》로 관객과 컬렉터가 쏠리는 현상은 올해 확연히 완화됐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또한, 축제 기간 전후로 서울 전역에서 개최된 다양한 미술 행사로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밤낮없이 이어졌다. 서울 한남동과 청담동, 삼청동의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는 아트페어 기간 동안 밤늦게까지 문을 열고 관객을 맞았다. ‘청담 나이트’와 ‘삼청 나이트’ 때는 갤러리 일대에서 파티를 즐기며 전시를 관람하는 특별한 시간이 이어졌다.

방한한 주요 해외 미술계 인사들과 미술계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이들에게 한국 미술의 현장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MoMA,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LA카운티미술관LACMA,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아트 미술관 등 미국의 유명 미술관을 비롯해 영국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과 일본의 모리 미술관, 홍콩의 엠플러스(M+) 미술관 등의 관계자들이 아트페어를 전후해 한국을 찾아 미술관과 갤러리, 작가 작업실 등 한국 미술 현장을 둘러보고 국내 미술계 인사들을 만났다.

키아프 단독 부스 전시를 하고 있는 정경연 작가 부스를 찾은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과 본지 손정순 발행인

《프리즈》의 사이먼 폭스 CEO는 “공동 개최되고 있는 《키아프》와 《프리즈》의 협력관계는 ‘장기적인 결혼’으로 보고 있다”며 “두 아트페어는 서로 보완적이어야 하며, 함께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키아프》와 《프리즈》가 동시에 문을 열었지만 달라 보이는 건 관점의 차이이기도 하다. 《키아프》가 화랑협회 회원 화랑들을 위한 행사라면, 《프리즈》는 컬렉터들을 위한 행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웠던 점은 아직 《키아프》가 《프리즈》의 전문적인 전시기획과 연출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프리즈》가 각 부스들을 세심하게 기획하여 작품에 집중력을 높였다면 《키아프》는 산만하고 강약 없는 부스로 작품관람에 집중력을 높이지 못했다. 하지만 아트페어가 거듭될수록 화랑과 작가, 컬렉터의 미술 수준이 더 높아지고 섬세해지리라 기대한다. 이번 《키아프》와 《프리즈》는 컬렉터들의 총성 없는 미술 전쟁과도 같었다. 이 효과는 국내 미술계 전반을 재구축하고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쿨투라》 표지를 장식했던 홍경택 작가의 작품.

 


 

* 《쿨투라》 2023년 10월호(통권 1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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