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원작영화 특별상영회 〈바보들의 행진〉 GV] 최인호 작가의 기발한 센스와 하길종 감독의 사회의식이 빚어낸 명작
[최인호 원작영화 특별상영회 〈바보들의 행진〉 GV] 최인호 작가의 기발한 센스와 하길종 감독의 사회의식이 빚어낸 명작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23.10.0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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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23년 9월 23일
장소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1관
사회 강유정
게스트 이장호·하명중·배창호 감독 김애란 작가

최인호 10주기 추모행사가 지난 9월 22일 제1회 최인호청년문화상 시상식, 23일 최인호원작영화 특별영상회로 양일간 개최되었다.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된 최인호청년문화상 시상식에서는 1회 수상자인 김애란 작가에게 상금 1천만 원과 상패를 수여했다. 제정위원회 이장호 감독(위원장)과 배창호 감독, 김규헌 변호사, 김홍준 영상자료원장을 비롯한, 주관사인 본지 손정순 발행인, 심사경위(심사평)를 밝힌 이광호 문학평론가와 홍창수 극작가, 강유정 영화평론가를 비롯한 심사위원, 축사로 빛내준 유현종 소설가와 문정희 국립문학관장을 비롯한 안성기 배우, 영화제작자 이우석 회장과 황기성 회장, 김두호 영화평론가, 김종근 미술평론가 등 문화예술인 200여 명이 참석했다.

또한 시상식 다음날인 9월 23일 토요일 오후 3시에는 한국영상자료원(원장 김홍준)과 공동주최로 최인호 특별상영회를 영상자료원에서 개최하였다. 상영작은 최인호 원작영화, 하길종 감독이 연출한 〈바보들의 행진〉이다. 3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메웠으며, 영화 상영 후에는 강유정 평론가의 진행으로 GV를 가졌다. 게스트로 김애란 수상자와 이장호·배창호·하명중 감독이 참여하였으며, GV 내용을 정리하여 싣는다. 지면 관계상 관객과의 Q&A는 온라인 사이트에 그 전문을 게재한다.

- 편집자 주

 

영화 관람 소감과 최인호청년문화상의 의미

강유정 안녕하세요. 강유정입니다. 오늘 모신 게스트분들을 소개드리자면 이번에 제정된 최인호청년문화상 첫 번째 수상자인 김애란 작가님, 그리고 배창호 감독님, 하길종 감독님의 동생분이시기도 하고 또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기도 한 하명중 감독님, 이장호 감독님께서 함께 자리했습니다. 우선 소감을 한번 들어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최인호청년문화상의 의미도 함께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제정위원장이시기도 한 이장호 감독님 말씀부터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이장호 오래간만에 (이 영화를) 또 봤는데 역시 마지막 장면에 뭉클한 거는 참을 수가 없네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그러는데 최인호 소설이 일본에 번역돼서 소개됐을 때는 <서울의 황홀한 우울>이라고 일본에서는 제목을 지어가지고 발표를 했습니다. 제목이 오히려 <바보들의 행진>보다 더 구체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게 오늘 보니까 진짜 서울의 우울한 황홀이란 느낌이 드네요.

하명중 우선 1970년대 80년대 매우 우울한 시대에 최인호군이 우리에게 많은 따뜻함과 희망을 줬던 작가라고 생각을 해요. 그분이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 현재도 한국이 굉장히 우울한 환경에 처해 있는데 그러한 청년문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의미로 이 청년문화상 제정을 한 거라고 느껴집니다. 오늘 <바보들의 행진>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좋은 행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창호 제 옆에 계신 하명중 감독님은 최인호 형이 가장 애착을 가졌던 마지막 작품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로 영화 연출을 하셨습니다. 이번에 한 편밖에 상영을 못해서 어쩔 수 없지만 하명중 감독의 이 작품은 다음 기회에 같이 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71학번인데요. <바보들의 행진>은 대학 시절의 풍경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이 일간 스포츠라는 일간지에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를 했는데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최인호 선배님께서도 70년대에 마지막 학번으로 졸업을 하셨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꿈, 방황, 사랑, 좌절 그런 것을 너무 잘 아셨고 그걸 또 너무나 재미있게 쓰셨기 때문에 빨리 다음 회를 보고 싶어서 마냥 신문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신문이 아마 판매 부수가 많이 올랐던 걸로 기억이 나고. 74년엔가 개봉을 했는데 이 영화가 특히 하길종 감독님에 의해서 영화가 된다고 하니 그 케미가 아주 폭발적인 관심을 일으켰죠. 하길종 감독님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UCLA를 졸업하고 귀국하셔서 문제작을 만드시다가 아마 처음으로 대중적인 작품을 선택하시고 이 작품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제가 마지막으로 본 건 최인호 선배님하고 같이 봤습니다. 지금은 허물어진 국도극장에서 무슨 행사 때문에 이 작품을 했어요. 거의 한 24-5년 전 되는데 제가 이 작품을 적극 추천했던 것은 최인호 선배님이 영화를 보시고 나서 국도극장 로비 소파에 앉아서 펑펑 우는데 난 인호 형이 그렇게 우는 걸 처음 봤습니다. 아마 그때 40대가 돼서 20대 때 젊은 날 같은 그런 그리움이 너무 밀려와서 그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오늘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서 또 눈물을 진하게 흘렸습니다.

김애란 저는 이 영화를 세 번 정도 봤는데요. 어릴 때 TV에서 방영해주던 걸 두 번 정도 봤고 40대가 되어서 가장 최근에 또 접했습니다. 자연스레 매번 느낌이 달랐는데요. 어릴 때 미처 몰랐던 거, 알아차리지 못했던 점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어떤 작품하고 저하고 시차가 생기는 게 좋구나.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하나의 몸으로 하나의 영화를 여러 번 경험할 수 있게 돼서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자리에 왔습니다.

<바보들의 행진> 영화 상영 전 인사말을 하는 김홍준 영상자료원장

청년문화를 어떻게 보는가

강유정 그럼 몇 가지 준비된 질문을 해볼텐데요. 그 전에 잠깐 말씀드리자면 이 자리에 제 제자이긴 하지만 20대 학생 6명이 와 있어요. 제가 그 옆에 앉아서 보는데 저는 눈물이 나는데 옆에서 웃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20대에게는 어떻게 보였을지도 좀 궁금했어요. 최인호 작가의 특히 이 <바보들의 행진>은 청년이라는 키워드와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래서 지금 김애란 작가께서도 말씀하셨지만 현장에서 그 시간의 간극에서 새로운 어떤 이야기들을 얻을 수 있는 자리가 될 듯도 해요. 각각 다른 세대들, 그래서 일단 청년 문화의 기수이시기도 하셨던 두 감독님들 그리고 그 시작을 함께했던 하명중 감독님, 또 김애란 작가는 그 세대의 또 청년성을 담보하고 계신 작가니까 이 청년이란 문화를 어떻게들 보시는지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이번에도 이장호 감독님부터 말씀해 주실까요?

이장호 얼마 전에 영상자료원 김홍준 원장하고 얘기를 하다가 제가 ‘아 나도 이젠 꼰대가 다 됐구나’ 그런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는 그 시절에 청년으로서, 우리 세대는 항상 기성세대의 눈치를 보고 기성세대에 눌려서 좀 매가리 없는 청춘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뭐 장발 단속하지 미니스커트 단속하지 그런데 짓눌려서 살면서도 우리 문화를 키워보겠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최근의 청년 세대에 대해서는 제가 오해를 했어요. 소비의 중심이 돼서 모든 기업이라든지 상품들이 청년들의 비율을 맞추고 청년들을 앞세우기 때문에 청년들이 굉장히 기성세대를 무시할 수 있고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는데 김홍준 감독이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요즘에 청년들은 자기 위 청년들에게 눌려서 살기 때문에 우리 시대는 언제나 오나 하는 그런 뭔가 우울함이 또 따로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주는데 영화감독으로 보면 박찬욱이나 봉준호가 청년이라는 거예요. 그 청년들이 5-60이 되는데 그러면 2-30대들이 언제 빛을 보나 그런 것에 눌려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좀 복잡하구나, 내가 생각한 거하고 다르구나, 라고 얘기를 하면서 할 수 없이 나는 꼰대가 될 수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강유정 맞습니다. 아까 영화 대사에도 나왔지만 “반대쪽 빰도 때려주시죠”라고 말할 정도의 패기를 지금 20대들이 보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좀 궁금해지기도 했거든요. 조금 훌쩍 건너뛰어서 김애란 작가에게 청년이라는 것을 어떻게 보고 계시고 또 어떻게 나름의 해석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보겠습니다.

김애란 각 세대마다 저마다 지니는 어려움들이 다 달라서 특정 세대를 특권화시키거나 절대적으로 비교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그리고 저도 청년 정신이라는 건 여전히 계승하고 싶지만, 생물학적 나이로는 기성세대에 가까워져가고 있습니다. 그럼 이전의 나와 지금 내가 뭐가 다른가라고 되짚어봤더니, 40대 초반은 이제 인생이 뭔지 좀 알 것 같고, 인간이 뭔지 좀 알 것 같다고 착각하기 쉬운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기성 작가에게 제일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어쩌면 모름을 훈련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청년문화 세대 선배님들이 만든 작품을 보면서 들었어요.
그래서 영화 속 인물들을 보니까 어떤 답을 내리거나 이렇게 뭔가 안다는 느낌을 가진 채가 아니라 모르는 채 방황하고 흔들리고 갈등하는 모습들도 각별하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하나만 더 보태면 저 안에서도 이제 바깥 사회랑 자기들 안의 고민이랑 충돌하는 장면들이 언뜻언뜻 나오는데, 청년들이 사회나 바깥의 문제들이랑 어떤 긴장관계에 있을 때의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를테면 지금 청년들은 더 많은 영상 매체와 친숙하고 익숙해진 세대일 텐데요. 저도 그렇고요. 제가 집중하는 사회 문제, 어떤 큰 사회적 죽음이나 사고나 사건들을 보다가, 알고리즘에 의해 저절로 제가 관심 있었던 상품 쪽으로 눈이 돌아갈 때가 있어요. 그러면 옛날엔 편집권이 어떤 신문사의 지향이나 가치에 있거나 그 학교 그 학교 학생회의 전체 목소리 안에 있었다면 이제 나에게 혹은 요즘 청년들에게 편집권은 자기 욕망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안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얼마나 더 클까 싶고요. 그 배열과 배치가 비도덕까지는 아니어도 무도덕하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 청년분들 모두 개인 문제도 있고 사회 문제도 있겠지만, 그것과 충돌하는 방식, 노출의 환경 자체가 많이 달라졌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보들의 행진> 속 캐릭터들과
<고래사냥> 캐릭터들 간 차이와 연속성

강유정 이 영화를 지금 보면서 20대가 보기엔 해설이 많이 필요하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만 해도 75년생인데 이 영화가 제가 태어난 해에 상영한 영화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활에 있어서 굳이 설명은 필요 없거든요. 제가 배워서가 아니라 어디서 들었던 얘기들, 이를테면 왜 장발 단속을 하는지, 그리고 군대가 왜 3년인지. 이런 것들도 그렇게 설명이 필요 없는 요소들인데 지금 20대들에게는 많이 필요하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봤을 때도 병태가 주인공인 줄 알았더니 영철이 주인공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배창호 감독님은 여기서 나오는 고래 모티프가 매우 중심에 서는 <고래사냥>이라는 또 다른 작품으로 연출을 하시고 또 최인호 작가하고도 깊은 연이 닿아 있는데요. 이 영화 속 캐릭터들과 배창호 감독이 만든 그 캐릭터들 간에 어떤 차이와 연속성이 있을까요?

배창호 70년대에 만들어진 이 영화의 젊은이들의 원형은 지금과 흡사하다고 봅니다. 억압에 대한 저항의식이라든지 좌절이라든지 정체성의 방황이라든지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지만 특히 저희가 기억하는 70년대 사회 풍속도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장발 단속이라든지 통금 위반이라든지 마지막에 입양하는 장면이라든지 그런 것이 곳곳에 있는데 지금의 풍속은 젊은 이들이 느끼는 억압과 또 다른 것이 뭐 있겠죠? 이 영화에서 바로 이제 그 <고래사냥>이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그 제목으로 제가 영화를 만들게 됐고 그 제목으로 최인호 선배님이 또 소설을 쓰셨습니다. 그건 로드무비고 이 영화와 결이 좀 다른데 여기 영화에서의 영철이 찾은 고래는 찾지 못하고 아마 자기 좌절 속에서, 묘지에 가서 죽은 자들의 꿈처럼 죽음으로써 이 생을 마감하는 그러한 결말이었지만 그다음에 만들어진 <고래사냥>은 그 마지막에 정체성을 찾는 자기 마음속에 ‘이웃 사랑’이라는 것을 찾는 해석으로 결말을 지었습니다.

<바보들의 행진>과 하명중 감독의 특별한 인연

강유정 아 그렇게 이어지는 군요. 하 감독님은 이 영화와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말씀을 전해들었는데 어떤 인연일까요?

하명중 제가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하길종이가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길종 감독은 저하고 한 이불 속에서 손잡고 자라다가 한국 땅을 떠났고 다시 돌아와서 세상을 떠날 때도 제 손을 잡고 떠났죠. 그런데 이 <바보들의 행진>은 최인호 작가하고 화천공사에서 처음으로 <별들의 고향>을 제작하면서 최인호 작가를 만나 시작하게 됩니다. 하길종 감독이 서울대학교 다닐 때 4·19 주체 세력이 돼서 반정부 시위를 하다가 추방을 당해요. 그래서 이제 한국에서 생활을 할 수가 없으니까 불란서로 갔다가 미국으로 다시 가서 영화공부를 했는데 강제로 국가에서 데리고 옵니다. 그런데 영화를 해야하는데 중앙정보부에서 반정부주의자니까 영화를 못하게 했어요.
제가 처음 감독 데뷔를 하려고 했던 <화분>을 홍콩에서 만들려고 하다가 그거를 못 만들고 귀국해서 형한테 보여주니까 이걸 하고 싶다고 해요. 그래서 하길종 감독이 <화분>으로 감독 데뷔를 합니다. 그리고 화천공사는 저희 처갓집이에요. 그 회사가 영화 수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영화법이 개정이 돼서 한국 영화 제작을 하게 돼요. 그때 거기에서 처음으로 하길종 감독이 <수저>를 만들고 두 번째 작품으로 <별들의 고향>을 기획해서 하게 되죠. 그러면서 하길종 감독과 최인호 작가가 만나게 됩니다. 거기서 하길종 감독이 자기가 4·19때 학생 시위하고 해외로 갔다가 귀국한 일, 박정희 정권에서 억압받고 있는 캠퍼스의 학생들, 그 모든 이야기를 최인호 작가한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최인호 작가가 <바보들의 행진>에 이야기를 꾸미기 시작하고 연출이 시작이 돼죠. 병태와 영철이는 갈 곳이 없어요. 그필름 속에서 보면 축구경기장 하는 거라든가 야구하는 장면들은 전부 다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시위하는 장면으로 찍었는데 그걸 가지고 상영할 수 없어서다 덜어내고 경기하는 장면으로 교체를 시켰죠. <바보들의 행진>은 최인호 작가의 기발한 센스와 하길종 감독의 그 억압된 젊은이들이 어떻게 해방될 수 있나 하는 고민이 매칭이 되면서 이 스크린이 완성되고 영화가 완성이 됐던 거죠. 제가 엔딩 부분에서, 형한테 ‘꼭 여기 이 동해 바다에 떨어져야 되느냐’라고 했는데 떨어뜨려야겠고 바다로 가야 되겠다는 거예요. 이 영화가 75년도에 개봉이 되고 4년 후에 길종 형은 세상을 떠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그 시대 1960년대에 4·19 혁명을 일으켰던 우리 젊은이들 그리고 박정희 정권하고 그 억압 속에서 살았던 그 젊은이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내 형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개인적으로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보기가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이렇게 가려고 마음을 먹고 쓴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쳤어요. 최인호 작가는 길종 형을 워낙 좋아했어요. 그래서 하길종 감독이라고 명칭을 불러본 적도 없고 그냥 길종 형, 길종 형이었어요. 손 붙들고 참 좋아했던 사이에요. 두 분이 다 이제 여기 없고 하늘나라에 계신데 아마 저분들도 오늘 이 영화를 같이 보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사실 <바보들이 행진>도 한 편만 만들고 더 이상 안 하겠다고 했는데 흥행사들이 자꾸 더 만들어 달라고 해서 <병태와 영자>를 만들었는데 그게 유작이 돼서 저는 사실 <병태와 영자>를 지금까지 안 봤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사실 하길종 감독은 상업영화를 지향하는 작가는 아니었거든요. 그러나 현실이 그러니 뭐 어떻게 합니까 하여튼 하길종 감독과 최인호 작가는 청년문화를 지향했고 우리에게 꿈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최인호 작가가 노년기에 썼던 작품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제가 감독하면서 이분은 노년이 아니다 이 분은 굉장한 순수문학가지 대중문학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김애란 작가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작품 속 메인 캐릭터 주인공들이 너무 젊어요. 너무 의욕적이고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것을 이겨나가는가에 대한 에너지를 그 주인공들이 우리 독자들한테 보여주더라고요. 그래서 최인호는 죽었지만 최인호는 살아있다는 생각이 사뭇 들고 또 우리 김애란 작가님이 1회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 제2의 최인호가 탄생한 것 아닌가 하는 그 기쁨을 저는 누리고 있습니다.

내가 만든 세계가 영화화되었을 때의 기분

강유정 감회가 워낙 깊으셨던 하명중 감독님의 이야기도 처음 공개하시는 부분도 많아 무척 새롭습니다. 제가 사실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어요. 최인호 작가님이 안 계셔서 여기서 유일한 소설가인 김애란 작가께 질문하겠습니다. 내 소설이 영화화되는 과정 그리고 내가 만들었던 인물들이 어떤 배우의 육성과 행위를 통해서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걸 봤을 때 작가의 심정은 좀 더 다르지 않을까요? <두근두근 내 인생>과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가 이미 영화화됐으니 김애란 작가께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 내가 만든 세계가 영화화되었을 때 그 과정이 어떤 느낌이고 어떤 기분인가요?

김애란 보통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 많은데요. 누가 ‘너는 어떤 게 좋아’라고 물어보면 뭐 영화가 좋아 만화가 좋아가 아니라 나는 ‘매체 자의식을 가진 작품이 좋아’라고 얘기해요. 이렇게 자기 장르 특징이나 기술이나 여러 가지를 잘 이해하고 있는 창작자가 만든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영화 제안이 올 때도 제 작품을 얼마나 잘 복원하거나 구현할까 하는 걱정이 되는게 아니라 저 매체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발견이나 즐거움은 뭐가 있을까 하고 기대하면서 기다려요.
실제로 제일 실감하게 되는 건 내 인물들에게 몸이 생겼구나. 라는 거고요. 활자나 종이가 아니라 이렇게 몸으로 제가 경험하게 되면서 느끼는 약간의 전율들이 있고요. 이번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도 소설에는 없던 장면인데 박하선 배우가 이제 망자인 남편의 영혼과 스킨십을 하는데 어떤 슬픔과 쾌락이 섞인 것 같은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지어줄 때도 좀 놀랐었어요. 그래서 그런 것도 흥미롭고 <두근두근 내 인생>의 아역 배우도 영화 촬영을 하는 동안 키가 자랐다는 기사를 보고 아 이런 것도 소설이랑 다르구나 저는 2년 5년 써도 그 인물이 그대로인데 아역 배우가 키가 자라는구나, 몸을 가진 사람들이 스태프들이 몸을 가지고 서로 여러 가지 소통을 하면서 만드는 장르구나, 싶었습니다.

 

<별들의 고향>의 연출 계획

강유정 제가 이제 이장호 감독님께 질문하고 관객 객석에게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별들의 고향>이 연재되면서 화제가 될 때 ‘이거 내가 정말 만들어야 겠다’고욕심내셨던 거잖아요. 그 당시 영화를 만들기 전에 혹시 ‘이걸 내가 영화라는 매체로 꼭 이렇게 해보고 싶다’는 연출 계획이 있으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이장호 아주 정직하게 얘기하면 영화가 뭔지 모르고 만든 게 <별들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이희우라는 사람이 각색을 했는데 어떤 한국영화적인 감각으로 각색을 했어요. 그래서 인호도 그 시나리오를 보고 걱정하고 나도 이거 갖고는 못 만들겠는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거든요. 인호가 갖고 있는 장점이 금방 읽히는 거거든요. 인호는 시나리오를 쓰는데 오래 걸리지 않아요. 보통 한 2주면 완성을 해요. 근데 인호가 쓰는 방법이 드라마를 쌓아가는 게 아니고 에피소드를 계속 진행시키는 거예요. 오늘도 <바보들의 행진> 을 봐도 어떤 드라마 스토리가 있는 게 아니고 계속 에피소드 중심으로 나가잖아요. 이게 인호의 장점인데 그 시나리오 작가가 쓴 거는 너무 드라마처럼 만들어서 어떻게 보면 신파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인호하고 상의를 했더니 인호가 자기가 시나리오 쓰겠다고 해서 호텔에 들어가서 한 2주 만에 완성을 했어요 .
그걸 제작사에다 보여줬더니 제작사는 한국영화 감각이 있으니까 ‘이거 갖고 영화가 되겠어’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방법이 없어요. 빨리 검열을 받아야 되니까. 그래서 이희우 작가의 시나리오 절반하고 최인호가 쓴 절반을 그냥 뭉태기로 잘라서 붙여버렸어요. 나는 현장에 나가서 그 시나리오를 갖고 할 수 없으니까 원작을 들고 다니면서 촬영을 했는데 신성일 씨가 첫날 딱 나오더니 ‘이 감독 그거 가져와 봐’ 해서 원작을 주니까 이렇게 보더니 ‘소설하고 영화는 달라’ 그러면서 탁 버리더라고요. 굉장히 불쾌했지만 그 사람이 스타였고 또 당시 영화 쪽에서는 스타들이 거의 신인 감독을 그렇게 쥐락펴락할 때니까요. 그런 현장에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별들의 고향>은 아마 최인호 소설을 그냥 영화로 만든 거라고 생각하면 될 거에요.
그다음에 지금 얘기하면서 생각나는 게 하길종 감독, 김호선 감독과 나는 그 ‘영상시대’라는 동호회를 했어요. 그런데 하길종 감독은 미국에서 유학 끝나고 들어와서 한국 현실에 계속 부딪혔어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어떤 피해 의식이 굉장히 강했었는데 우리가 서로 얘기할 때 내가 길종 형이라든지 뭐 하 감독님 이러면 그 양반은 꼭 상대방을 뭐라고 부르냐 하면 ‘피고’ 그런다고. 그래서 지금도 생각하면 그 화법이 귀에 쟁쟁해요. 그래서 하길종 감독이 단명한 게 어쩌면 그런 피해의식 때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강유정 그 ‘피고’라는 호명은 매우 문학적이네요. 저는 그 <별들의 고향> 영화를 보면서 늘 볼 때마다 새로운 게 경아가 문호네 집에 가서 샤워기를 들고 문 앞에서 있는 문호에게 뿌리는 장면이에요. 이런 장면은 이전에는 없었을 것 같다는 그런 확신이 드는 거예요. 샤워라는 행위가 에로스라기보다 정서적 충격이 아니었을까, 이건 이장호 감독님의 감성 도발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물과 함께 되게 짧게 지나가는 장면이긴 합니다만, 이거는 이장호 감독님의 센스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혼자 상상했던 기억도 납니다.

 

(관객과의 Q&A 생략)


약속한 시간 30분을 2배 이상 넘겼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부분들이나 더 궁금한 점은 메일이나 어떤 방식으로라도 《쿨투라》 쪽에 보내주시면 또 다른 특집을 한번 엮어볼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함께해 주신 관객 여러분들 몹시 감사합니다. 그리고 게스트로 함께 자리해 주신 작가님, 감독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쿨투라》 2023년 10월호(통권 1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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