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한류] 1인치 장벽을 넘어서
[글로벌 한류] 1인치 장벽을 넘어서
  • 김창래(작가, 서울예대 겸임교수)
  • 승인 2023.11.01 16: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78회 골든글로브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했던 말이다. 정확한 워딩은 다음과 같다.

여러분들이 1인치의 자막의 장벽을 넘어선다면, 보다 많은 훌륭한 영화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 자막을 읽기 귀찮아 외국영화는 무조건 스킵하는 관객이라면, 만약 서브 타이틀을 읽는 약간의 번거로움만 극복한다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실로 가늠할 수 없는 멋진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1인치 자막의 높이는 사실 (당연하게도) 은유적 표현이다. 실제 1인치는 대략 2.5cm정도 되기에 봉 감독님이 극장의 자막 사이즈를 지칭한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모니터 스크린을 말한 것일 거다.

자막, 서브타이틀이라는 게 어찌 보면 참 별거 아닌데 그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가끔은 있다. 특히 전반적으로 미국의 관객은 자막을 싫어한다. 그건 마치 보슬비가 내리는 정도라면 아예 우산을 쓰지 않는 그들의 문화와도 닮아있다. 평소 유튜브에서 K-Pop 리액션을 즐겨보는 나로서는 어느 록 전문 채널의 유튜버가 블랙핑크의 〈셧 다운〉을 처음 듣고 하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자신이 유튜브 리액션을 4, 5년가량 해오고 있는데 자막이 달린 뮤직비디오는 블랙핑크의 〈셧 다운〉이 처음이라 말했다. 맙소사! 자막달린 영상이 처음이라고? 아마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그 말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려서부터 소피 마르소가 나오는 〈라 붐〉을 극장에서 자막으로 보았고, 휘트니 휴스턴이 부르는 〈보디가드〉를 DVD로 보았으며, 타노스가 지구 인구의 절반을 사라지게 하는 〈어벤져스〉 역시 극장에서 자막을 통해 봤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어려서부터 자막을 보며 자랐기에 자막문화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이제 국가 간의 문화적 장벽은 봉준호 감독의 말대로 이미 허물어진 상태이고 자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아울러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자막이란 상대를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자 의지이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막이란 존재는, 뭐랄까 일종의 수중 다이버에게 산소통과 같은 역할을 한다.

코로나의 공포로 인해 사람들은 극도로 외출을 자제했고 집에 오래 있는만큼 넷플릭스를 시청했는데 당시 최고의 수혜자는 〈오징어 게임〉이었다. 전 세계 시청자들은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경쟁사회의 비정함을 데스 서바이벌이라는 은유를 통해 그려낸 K-드라마에 열광했고 이는 엄청난 신드롬으로 표출됐다.

이제 자막이냐, 더빙이냐, 다른 국가의 언어라는 장벽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456억을 차지하기 위해 동료를 짓밟고, 은인을 배신하고, 어릴 적 친구의 등에 칼을 꽂아야만 겨우 버틸 수 있는 비정한 어른들의 세계가 선사하는 드라마의 재미만이 중요했다. 〈오징어 게임〉이 팬데믹 기간동안 세계인을 하나의 언어로 대동단결시켰다면, 이러한 흐름은 코로나가 한풀 꺾인 2022년에도 이어졌다. 여러 글로벌 히트 작품이 있겠지만, 애플 TV가 제작한 〈파칭코〉 역시 〈오징어 게임〉과 유사한 맥락에서 수많은 글로벌 팬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이제 글로벌 팬들, (그중에서도 특히) 북미 시청자들은 봉준호 감독이 말한 그 1인치의 허들을 기꺼이 넘어서려한다. 그동안 왜 이리 멀리 돌아왔을까…. 그렇지 않은가? 10미터의 장벽도 아니고, 10센티미터도 아닌 고작해야 1인치일 뿐인데…. 거기에는 아마도 타인이나 다른 문화권에 대한 두려움, 미국문화만이 세계의 넘버원이라는 일종의 우월감, 그리고 어느 정도의 게으름이 복합적인 요인으로 뒤섞여 있지 않았나 싶다.

 

1인치 장벽의 높이

최근의 할리우드는 다른 언어에 대한 장벽을 조금씩 허물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역대 미국에서 개봉한 외국영화의 흥행 스코어를 분석해 보면 아직도 미국 내 자막영화의 갈 길은 멀다는 걸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2020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10년, 또는 최소 20년 전의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인들이 얼마나 해외 자막영화들에 대해 배타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리우드는 지난 100년 가까이 굳이 해외영화를 찾아볼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영화는 예술적 즐거움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훨씬 강했다. 대중들은 토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함께 볼 코미디와 로맨스를 원했고,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에 온 수많은 이민자들은 언어의 장벽이 비교적 낮은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에 열광했다. 물론 그렇다고 할리우드영화가 오로지 액션 블록버스터 장르영화밖에 없다고 말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할리우드라는 커다란 우산에 가려 이제까지 미국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예술영화가 부각되지 않았다면 그건 사실이 아니다. 미국이야말로 가장 많은 시네아스트를 배출한 예술영화 초강국이다. 60년대 후반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거장들이 그러했고, 존 카사베츠, 우디 앨런, 테렌스 맬릭, 폴 토마스 앤더스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예술영화를 제작한 곳 역시 할리우드다.

1인치 장벽을 넘어서

영화 역사에서 자막의 역사는 그 탄생과 함께 시작했다. 1895년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 이후 1900년대 초반부터 1930년대까지 유성영화가 태동되기 이전까지 영화는 자막을 통해 대중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또한 많은 학자들이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자막을 통해 이해했다. 덕분에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학생들은 1927년 제작된 독일 로버트 비네 감독이 만든 표현주의 영화를 공부할 수 있다.

20세기 초 미국을 비롯한 세계영화 시장에서 자막이 달린 서부영화의 역할은 매우 컸다. 이 당시 자막의 역할은 단순히 오락적 요소뿐만 아니라 미학적 요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관객들은 중간중간 삽입되는 자막을 통해 주인공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고 글자 폰트와 스타일, 자막 테두리의 미술적 처리 역시 주요 볼거리 중 하나였다. 오히려 초기 무성영화 시절, 자막은 당연시 여겨지는 영화의 일부였고, 관객은 모국어가 아니어도 충분히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말대로 1인치 장벽을 넘는다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기생충〉 역시 여러 다른 국가의 영화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물론 가장 큰 영향을 선사한 작품은 김기영 감독의 1960년도 한국영화 〈하녀〉일 것이다. 〈기생충〉의 핵심적인 주제와 이미지는 하녀의 계급 상승에 대한 욕망을 계단을 오르는 이미지와 병치시켜 풀어낸 〈하녀〉로부터 지대한 영감을 받았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하녀〉 이외에도 봉준호 감독은 여러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작품들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아 〈기생충〉을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내 또래의 대다수 관객들 역시 미군방송에서 어릴 적 보았던 영화들을 잊지 못한다. 한국의 경우 1957년 주한미군 방송인 AFKN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 대중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 역시 한국방송보다 어릴 적 미군방송에서 나오던 가요 프로그램과 주말의 영화를 보며 자랐다. 당시 언어는 영어였지만 언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영어는 몰랐지만, 화면 위 흐르는 내용은 이해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 역시 〈기생충〉을 만들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다양한 국가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는데 그 작품들은 1963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천국과 지옥High and Low〉,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의식La Cérémonie〉(1995), 그리고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Psyco〉(1960)이다. 하나는 일본영화이고, 다른 한 작품은 프랑스, 나머지한 작품은 미국영화다. 먼저 〈천국과 지옥〉의 경우, 한국어 제목인 〈천국과 지옥〉보다는 아무래도 영어 제목인 〈High and Low〉가 좀 더 〈기생충〉과 맞닿아 있다.

〈기생충〉에서 지하실은 마치 〈싸이코〉의 지하실이 그러하듯이 작품의 핵심적인 가치관을 폭로하는 결정적인 장소로 사용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빌려 말하자면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는 봉 감독에게, “좋은 의미의 트라우마로서 각인되어 있어서, 영화 속 노먼 베이츠 하우스의 구조와 음악들을 리믹스 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고 말한다. 봉준호 감독은 실로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영화 속의 레퍼런스를 가져와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도 1인치 자막의 허들을 뛰어넘어 가장 큰 혜택을 경험한 사람은 봉준호 감독이 아닌가 싶다.

이제 넷플릭스를 시청할 때 자막을 읽는 건 보편적인 문화가 된 지 오래다. 모쪼록 더 많은 사람들이 자막에 보다 거리감 없이 다가서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더 이상 1인치 장벽을 허들이라 생각하지 않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김창래 뉴욕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NYIT)에서 학사(커뮤니케이션), 대학원 (필름&TV)를 전공했다. 카린 쿠사마 감독의 〈걸 파이트〉 제작부를 거쳐 영화 〈친구〉 조감독을 했으며 〈오로라 공주〉 시나리오 각색을 맡았다. 이후 독립영화 〈렛 미 아웃〉의 시나리오와 감독을 맡았으며, 해당 작품으로 달라스국제영화제,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성균관대학교 연기 예술학부에서 겸임교수를 거쳐 (2009-2020년), 현재는 서울 예술대학 영화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 《쿨투라》 2023년 11월호(통권 113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