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한류]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이 있기까지: 〈설국열차〉는 어떻게 탄생했나?
[글로벌 한류]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이 있기까지: 〈설국열차〉는 어떻게 탄생했나?
  • 남종우(프로듀서, 크로스픽쳐스 부사장)
  • 승인 2023.11.0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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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Snowpiercer〉(2013)는 갑자기 찾아온 기상 이변으로 꽁꽁 얼어붙은 지구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달리는 기차 안 사람들의 이야기로, 동명의 프랑스 만화 『Le Transperceneige』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 기획 당시 그가 즐겨 찾던 신촌의 어느 만화 가게에서 우연히 이 작품을 발견하고는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전 편을 다 읽었다고 한다. 그가 야심차게 2004년부터 준비를 시작한 〈설국열차〉는 2010년쯤이 되어서야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영화의 대사 80% 이상이 영어이며, 대부분의 배우가 외국인인 글로벌 프로젝트로 구상된 〈설국열차〉는 할리우드 시스템으로 제작되었으며, 제작비는 4,000만 달러로 한국영화 제작비로서는 당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당시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약 40억 정도였으니 무려 열 배가 넘는 한국영화 역사상 초유의 예산이었다.

제작을 준비하던 제작사에서 해외투자 유치를 진행 했었는데, 촬영 돌입이 가까워질 때까지 다른 투자사들이 나서질 않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설국열차는 그때까지만 해도 대단히 모험적인 프로젝트였고, 한국 감독을 데리고 북미를 포함한 전 세계 시장을 겨냥해 400억 넘는 제작비의 영어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아직은 생소할 수밖에 없던 그런 시기였다. 하지만 당시 투자와 배급을 맡았던 CJ는 이미 150억을 선투자한 상태였고, 400억이라는 초유의 제작비 투자라는 어려운 결정을 계속 진행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제작비 규모로만 보면 아무리 봉준호 감독이라 해도 투자사 입장에서 손익 계산이 쉽게 나오지 않았지만, (한국영화 전체로 봤을 때는) 리스크가 큰 만큼 해외로 시장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CJ E&M 영화부문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해외 영화사업 부문 중 미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제작되는 글로벌 프로젝트들을 담당하는 해외투자 제작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팀의 차석으로 양자경, 헨리배우가 출연하고 김진아 감독이 연출하는 팬아시안 프로젝트인 〈Final Recipe〉라는 작품의 메인 프로듀서를 맡고 있었고, 그 외에도 몇 개의 글로벌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마침 〈Final Recipe〉 촬영 준비로 싱가폴에 출장 중이었던 나는 갑자기 우리 팀이 〈설국열차〉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팀장의 호출로 급히 귀국을 앞당겨 들어왔다. 알고 보니 국내영화부문에서 진행하던 〈설국열차〉가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하게 되면서 해외부문 쪽으로 책임이 넘어왔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나는 〈설국열차〉의 ‘투자책임’이자 프로듀서 중의 한 명으로 작품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설국열차〉

〈설국 열차〉 아카데미 캠페인

이제는 우리 모두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지만, 〈기생충〉 수상은 영화가 그만큼 잘 만들어졌다는 것 외의 다른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중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기생충〉은 우리에게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 ‘아카데미 캠페인’에 성공한 작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아카데미 캠페인’이란 말 그대로 수상 가능성이 있는 영화가 실제로 아카데미 수상을 할 수 있도록 배급사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아카데미시상식은 매년 투표권을 갖고 있는 아카데미 멤버들의 투표를 통해 수상작이 선정된다. 그런데 이 투표권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도 결국 영화업계 전문가이거나 업계에 가까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미디어의 방향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매년 아카데미시상식 시즌이 되면 업계 주간지나 각종 미디어 관련 온라인 매체에 아카데미 광고가 실리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 영화를 응원한다.”라는 식의 전면 광고를 게재한다든지, 또는 감독이나 배우의 인터뷰 기사들을 특집으로 다룬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여기에 더해 아카데미보다 먼저 열리는 각종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해서 적극적으로 ‘GV’를 하거나, 기자회견 등 매체 노출을 유도하고 여기저기서 파티를 연다. 그렇기에 아카데미 출품을 마케팅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배급사들이 개봉을 앞두고 적지않은 예산을 들여 이러한 캠페인을 미리부터 기획하는 것을 ‘아카데미 캠페인’이라고 한다.

당연히 〈기생충〉의 경우에도 북미 배급을 맡은 배급사 ‘네온Neon’이 앞서 칸영화제의 결과 등을 근거로 일찌감치 아카데미 캠페인을 준비한 것으로 알고있다. 당시 이 캠페인을 주도했던 배급사 네온의 대표 톰 퀸은 공교롭게도 앞서 언급한 〈설국열차〉의 북미 배급을 맡았던 TWC Radius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설국열차〉 이후에 와인스틴 체제에서 독립하여 네온이라는 배급사를 차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이미 〈설국열차〉 때도 톰 퀸의 주도 하에 아카데미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생충〉만큼의 규모는 아니었지만,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이전에 이미 〈설국열차〉로 아카데미 캠페인을 경험해본 바 있다.

〈설국열차〉는 북미 배급사 와인스틴에서 편집 문제로 와이드 릴리즈를 포기하고 극장과 VOD 동시 개봉 모델로 배급 방식을 전환하면서 와인스틴 산하 TWCRadius에서 배급을 맡게 되었다. 아무래도 P&A 비용을 많이 쓸 수 없는 형태이다 보니 광고비가 들지 않는 영화제나 매체 인터뷰에 의존한 마케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봉준호 감독이 워낙 영화제나 평론가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설국열차〉에 대한 기대치도 영화제나 평론가 쪽이 더 높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방식으로 마케팅의 방향성이 세워졌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소위 ‘Festival Circuit’, 즉 각종 영화제를 돌며 영화를 상영하고, 인터뷰를 하고 기사거리를 파생시키는 형태의 마케팅을 하게 되었고, 한 달 이상의 일정으로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스케줄을 확보했다.

필자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워리어스 웨이〉 현장의 스탭들.

미국은 워낙 넓고 주 단위로 문화가 다양해서 지역 영화제가 굉장히 많다. 그러다 보니 주요 영화제 몇 군데를 참여하다 보면 한 달도 빠듯할 정도로 많은 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당시 봉준호 감독은 이 모든 일정을 소화하느라 꽤나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단한 순간도 성의 없는 인터뷰를 한 적이 없을 정도로 모든 인터뷰에 열정적으로 임했고, 그때도 〈기생충〉 때와 같은 어록이 매체 인터뷰를 통해 수차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설국열차〉 캠페인 당시에는 국내 관객보다는 현지 팬들과 기자들에게 더 많은 어필을 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러한 모든 경험들과 노하우가 조금씩 축적되어 〈기생충〉 때에는 이미 봉준호 감독을 미국의 기성 감독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생충〉 아카데미 캠페인을 지켜보며 인상적인 하나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영화제 일정 당시 어느 기자 한 분이 〈기생충〉을 극장에서 봤다며 “이번에는 왜 한국영화를 만들었냐”는 질문을 해서 한국 언론이나 관객을 당황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미국의 팬들이나 기자들에게 봉준호 감독은 이미 그들에게 친근한 기성 감독이었고, 더 이상 ‘한국의 감독’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한 〈설국열차〉 북미 배급 팀은 틸다 스윈튼을 필두로 아카데미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아카데미 캠페인의 선봉에 설 수 있는 사람은 틸다 스윈튼이 유일하다는 쪽으로 내부 의견이 모아졌고, 틸다 스윈튼을 여우 조연상에 내보내자는 취지로 캠페인을 진행했다. 물론 큰 예산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캠페인을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수상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 봉준호 감독의 Festival Circuit과 더불어 〈설국열차〉가 북미 관객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고 개봉 후 스크린 수가 250개 이상까지 늘어나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차지했다. 〈설국열차〉를 통한 톰 퀸과 봉준호 감독의 인연도 어쩌면 이후 태동할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의 전초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오스카상 공식홈페이지

한류 콘텐츠 제작자의 책임감

〈기생충〉 이후 〈미나리〉, 〈오징어 게임〉.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과 이정재 배우, 그리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양자경 배우 등으로 이어지는 K 콘텐츠와 아시아배우들의 할리우드 시상식 수상 소식은 한국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너무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문화 콘텐츠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이제는 단순한 자랑스러움을 넘어 그만큼 책임감도 느낄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도 든다. 〈기생충〉 아카데미 캠페인의 시발점이었던 2019년 10월 뉴욕영화제 링컨센터에서의 〈기생충〉 상영 직후 배급사 네온의 런칭 파티에 직접 참석한 박미나 작가에게 소감을 전해들었다.

박미나 작가는 〈기생충〉 아카데미 캠페인 파티장에 봉 감독이 도착하자 그곳의 감독, 기자, 제작자 모두가 그를 스타 모시듯 대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순간, 어쩌면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기생충〉은 미국 배우 조합상인 ‘SAGScreen Actors Guild’ 어워즈 대상인 ‘앙상블상’을 수상하고 내친김에 오스카 4관왕이라는 역사적인 쾌거를 이루었다. 지금 생각해도 실로 기적과 같은 일들이 벌어진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한발 물러나 지난 수십 년간 한국영화의 도전과 노력을 되짚어 본다면 그러한 결과는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음이 확실하다. 비좁은 충무로 작업실에서 오랜 시간 땀과 노력과 열정을 다해 영화를 만들어 온 우리의 선배 제작자들이 있었고, 김기영, 배창호, 이명세, 이창동, 박찬욱 등 걸출한 감독의 출현과 더불어 전폭적으로 아낌없이 투자를 지원해 온 CJ와 같은 투자배급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은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 없는, 오랜 노력이 밑거름이 되어 이루어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개봉을 하게 된 〈설국열차〉는 한국에서 930만의 관객을 동원했고, 전 세계 167개국에 판매되어 약 2,000만 달러의 해외 수익을 거두었다. 결과적으로 ‘BEP(손익분기)’를 넘긴 셈이다. 하지만 400억이라는 큰 리스크를 지고 투자를 결정했던 CJ가 없었다면 영화는 결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근무했던 해외사업본부에서는 해외에 알릴 수 있는 ‘Cross-over크로스 오버’, ‘East Meets West동서양의 접목’ 컨셉 등을 묵묵히 실현시켜 오기도 하였다. 당시에 투자한 모든 작품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못했지만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이 쌓여서 조금씩 한국영화의 글로벌화에 기여했다. 또한 한국의 자본만으로 글로벌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설국열차〉와, 중국에서 한국영화 〈선물〉을 현지화 한 〈이별계약〉 등의 투자 제작이 존재했기에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기생충〉의 세계적인 성과가 있기까지 CJ가 꾸준히 해온 크리에이터들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과 글로벌 사업에 대한 끊임없는 시도와 노력이 분명 한국영화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남종우 뉴욕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NYIT)에서 학사(커뮤니케이션/필름&TV)를 전공하고, UCLA Extension에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과정을 수료했다. 영화 〈오로라공주〉로 프로듀서 데뷔 후 〈두번째 사랑〉, 〈워리어스 웨이〉, 〈만추〉, 〈설국열차〉등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CJ E&M 영화부문 해외사업본부를 거쳐(2011-2019), 현재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계열사인 크로스픽쳐스에서 프로듀서 및 글로벌 프로젝트팀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 《쿨투라》 2023년 11월호(통권 11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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