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한류] ‘Korean flavor’라는 하나의 맛: 우리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
[글로벌 한류] ‘Korean flavor’라는 하나의 맛: 우리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
  • 박미나(작가, 통번역가)
  • 승인 2023.11.01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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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한국문화의 위상: K-푸드, K-뷰티, K-Pop 2000년대 초부터 한국영화가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오르면서 해가 다르게 자리잡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늘 새로운 것을 찾는 할리우드가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올드보이〉, 〈엽기적인 그녀〉, 〈장화, 홍련〉, 〈시월애〉 등 여러 한국영화의 리메이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또 한국에서는 미국이 촬영지인 합작영화를 열심히 추진하던 때였다. 나라마다 영화 제작 시스템의 차이도 있고 언어와 문화도 다른데다가 당시의 합작은 감독과 메인 팀은 한국측이고 나머지는 현지인 스태프로 구성되는 식이었다. 나도 이때 합작영화 몇 편에 합류해 LA, 시애틀, 프라하에서 일했는데 가는 곳마다 한국영화와 한국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과 호응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미국은 좀 늦은 감이 있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한류가 아시아국가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미국에서 한류 바람은 2010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불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2000년대부터 한국영화나 K-Pop에 대한 컬트적인 팬층이 점점 커지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팬들 대부분은 한국 이민자나 2세들이었고 영화 스크리닝이나 콘서트 같은 행사는 뉴욕이나 LA 같이 한국 이민자가 많은 대도시 중심으로 이뤄졌다. 심지어 이런 도시들을 벗어나면 한국 음식점도 찾기가 어려웠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80년대만 해도 우리 가족은 아이스박스를 싣고 두 시간 넘게 운전해 뉴욕 시내에 와서 한국 장을 봤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래서 ‘한국’적인 것(그게 영화든 음악이든 음식이든)을 알아주고 찾아주는 외국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볼 때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마치 뭔가를 공유하는 기분이었고 게다가 미국에서의 한류효과는 완전히 급이 달랐다next level. 한류 바람이 미국에 좀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한번 제대로 불기 시작하자 급속도로 다방면에서 그 효과를 체감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음식점에 갈 때는 주로 한국 사람끼리 가거나 어쩌다 미국 친구가 한번 한국 음식을 먹고 싶어 하면 함께 가는 경우가 있었다. 이럴 때는 보통 그들이 먹는 메뉴도 정해져 있었고 (비빔밥 또는 불고기) 주문도 당연히 한국 사람인 내가 했다. 그러다가 2010년 이후에는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높아졌고 한국 음식점에 외국 손님이 점점 늘어나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외국 손님 반, 한국 손님 반 정도였는데 불과 몇 년 만에 외국 손님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이렇게 미국사람한테 먼저 인기를 끌기 시작하더니 그 후에는 다른 아시아인들에게도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메뉴도 영어로 만들어졌고, 한국 친구 없이 외국인 가족들끼리 와서 한국 사람처럼 주문도 하고, 고기를 구워 먹을 때에는 한국 사람처럼 쌈도 싸 먹었다. 주위에 김치를 사러 한국 장을 보는 외국 친구들도 늘어났고 심지어 집에서 김치를 담그는 친구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었다. (정말 생소하다!) 이제는 한국음식이 너무나 대중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김치 맛’이나 ‘고추장 소스’처럼 이런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주류 문화에서 사용되고 있다. 마치 미국 문화에 중국 ‘딤섬’이나, 일본 ‘스시’가 자리를 잡은 것처럼 이제는 한국음식도 미국문화의 일부분이 되었다.

K-뷰티의 향상은 더 놀랍다. 정말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듯하다. 어느 날 미국 패션 잡지를 보다가 페이지를 넘기는데 느닷없이 한국 화장품에 관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내 기억으로는 한국 화장품의 ‘Best of-’기사였다. 이 기사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전에는 미국잡지에서 한국 화장품을 언급하는 걸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화장품이면 외국제품이 최고라는 인식이 있을 때였다. 그런데 그렇게 기사가 한 번 나더니 몇 년 사이에 K-뷰티가 뷰티의 선도자가 되어 지금까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화장품 가게의 대명사인 세포라에서 아모레퍼시픽 제품을 구입할 수 있을 때 너무 기뻤던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세포라 안에 K-뷰티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지금의 BTS나 블랙핑크 등을 보면 K-Pop은 비교적 쉽게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난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물론 제일 먼저 팬층이 생겼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미국 땅은 넓은 만큼 음악 취향도 매우 다양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K-Pop도 어느 한 틈새를 잡은 것이지 대중적인 호응도에서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가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나타나면서 모든 것을 바꿔 놨다. 처음에는 내가 발라드를 선호하는 탓에 그리 특별히 인식하지 못했고 외국 사람들이 “오빤 강남스타일~” 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춤을 췄을 때도 그 대단함을 몰랐다. 그러다가 미국 중부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미식축구 하프타임 쇼에 마칭 밴드가 〈강남스타일〉을 연주하는 영상을 보면서 쇼크를 받았다. 미국에서 그보다 더 미국적인 것이 없는 게 고등학교 미식축구 하프타임 쇼인데, 거기서 〈강남스타일〉이 나오다니…. 2012년 12월 31일 밤에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부르고 옆에서 유재석, 하하, 노홍철이 춤을 추는 것을 보는데도 순간 납득이 안됐던 기억이 난다. 지금 그 영상을 다시 찾아봐도 역시 감동이다. 이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미국, 아니 전 세계 팝 컬쳐의 일부가 되었다.

한인 음식점에서 개최했던 한석규영화제 안내서 (© Sungwoo KIM).

미국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시대 & K-드라마

〈써니〉는 한국에서 2011년 5월 4일 개봉했다. 그리고 나는 2011년 8월 초에 뉴욕의 극장에서 〈써니〉를 관람했다. 불과 3개월 후에, 다른 미국영화와 함께 상영하는 일반 극장에서 표를 사서, 〈써니〉를 봤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14년 여름의 일이었다. 뉴욕은 LA처럼 한국영화만 틀어주는 전용 극장은 없지만 타임스퀘어에 인기 있는 한국영화나 인도, 중국영화를 틀어주는 AMC 극장이 하나 있었다. 상영 기간이 딱 일주일인건 아쉬웠지만, 그것도 감지덕지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7월 30일에 개봉한 최민식 배우 주연의 〈명량〉이 입소문이 자자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자 이곳에서도 상영을 기대하게 되었다. 결국 〈명량〉은 뉴욕에서 8월 15일에 개봉했다. 한국영화라서 예매는 안 해도 되겠거니 생각하며 극장으로 갔는데, 그것도 개봉날이고 금요일 밤이어서 그나마 30분 일찍 갔는데…. 오마이! 매진이었다. 이미 표는 밤 10시 상영밖에 없었다. 그것도 매진될 듯 표가 몇 장 남아 있지 않았다. 오늘 〈명량〉을 보기로 한 만큼 어떻게든 영화를 보자는 생각에 나와 친구들은 얼른 표를 샀다. 그리고 근처에서 3시간 넘게 치맥으로 시간을 때운 다음 극장에 도착했더니 역시나 매진이었고 더 큰 극장으로 옮겨져 있었다. (외국영화는 항상 꼭대기 층의 작은 스크린을 배정받았는데 낮은 층의 더 큰 스크린으로 바뀌었다.) 극장에서도 〈명량〉의 뜨거운 호응에 대해서 좀 놀란듯한 눈치였다.

〈명량〉의 성공적인 개봉에 연이어 〈군도〉와 〈해적〉도 개봉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여태까지는 일주일만 상영하고 내려오던 한국영화였는데 그 다음 주에 〈군도〉를 보러 가니 아직도 〈명량〉이 상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다시 일주일 후 〈해적〉을 보러 갔을 때에는 〈명량〉뿐만 아니라 〈군도〉까지도 계속 상영 중이었다. 이런 한류 트렌드가 계속되다 보니 뉴욕에서는 재밌는 현상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한국문화는 한국 사람만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한류는 우리의 것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화가 된 것 같았다.

골든글로브 공식홈페이지

한국드라마도 마찬가지다. K-드라마 역시 내가 처음 뉴욕에 왔을 때는 순전히 한국교포들만 한국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봤다. 그런데 한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차츰 외국 팬층을 확보해 가더니 이제는 넷플릭스에서 한국드라마만 찾아보는 K-드라마 전문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래 전에 함께하며 친해진 배우 배두나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러 일 때문에 뉴욕에 꾸준히 방문해 왔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외국 팬들이 자신이 출연한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얘기도 많이 하기 시작하더라. 특히 한 번은 어느 백인 할머니가 기쁘게 “Oh, Bae Doona!”라고 부르면서 드라마에서 봤는데 제목이 기억이 안 나는지 “A rich guy and….” 하다가 갑자기 “Baek Soo Chan!”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남자 주인공 이름을 불렀다고 얘기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한 번은 너무나 전형적인 미국인 친구를 만났는데 요즘 재밌게 보는 한국드라마 얘기를 해줘서 들어 보니 〈아내의 유혹〉이었다. 그 순간 너무나 놀란 나머지 나는 “아니, 네가 그 막장드라마를 알아? 그리고 어떻게?”라고 되물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일정표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뉴욕의 로컬 케이블 TV채널을 통해서 이미 K-드라마를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총 129부작을 한 편도 빠짐없이 로컬 케이블 TV를 통해 보고 오히려 내게 K-드라마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처럼 한국문화가 다방면에서 호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쩌면 그중 하나는 아시아문화 전체의 힘이 커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산드라 오가 〈킬링 이브〉로 에미상 드라마 부문에서 아시안 최초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때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에미상은 아쉽게 후보에 그쳤지만 산드라 오는 다음 해 〈킬링 이브〉로 마침내 골든글로브시상식에서 TV부문 여우주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K-문화, 더이상 컬트가 아니다

현재 아시안에 대한 위상은 확연히 높아졌다. 지금은 〈기생충〉처럼 자막 영화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 원스〉 같이 거의 올 아시안 캐스트인 영화가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또는 미국배우조합SAG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때이다. 동시에 아시아배우가 연기 주연상을 수상하는 때이기도 하다. 지금은 BTS가 빌보드 차트에 1위를 기록하고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고,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는 ‘베스트 K-Pop’ 부문이 있다. 또 한국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의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다. 미국 내 한류문화의 인기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어떻게 5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났을까? 아니, 한국영화가 한 번도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못 오르다가 〈기생충〉 한 방으로 4관왕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0에서 단 한 걸음에 100으로간 느낌이다.

이러한 급박한 변화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K-문화가 더 이상 컬트가 아닌 대중성을 획득했다는 점이다. 이제 보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막이 달린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얼마 전 한 미국 친구가 ‘mukbang먹방’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할 때 순간 내가 지금 잘못 들은게 아닌가 하고 헷갈렸다. 요즘 들어 주변에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도 많이 생겨서 한국어 학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영어로 된 노래만 부를 필요가 없고, 미국에 알리기 위해 ‘영어로’ 제작된 작품을 만들 필요도 없다. 이제 미국에서는 한국적인 것이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Korean flavor’라는 하나의 맛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지금은 한국의 맛이 가장 핫hot하다. 이제 미국 역시 조금 늦었지만 진정한 지구촌에 합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영화든 음악이든 음식이든 우리는 하나의 언어로 점차 서로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박미나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의 학사를 취득하고 뉴욕의 뉴스쿨에서 미디어스터디스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후 뉴욕 독립영화계에 뛰어들어 주로 조감독/연출부 일을 하면서 장편영화 사이사이에 단편영화 프로듀싱도 했다. 영어/한국어가 능숙해서 한국의 합작영화에도 자주 참여했다. 여러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 봉준호 감독, 이명세 감독, 박철수 감독 등 한국 감독의 통역도 맡았고 50편 이상의 시니리오, 자막, 트리트먼트 등의 번역을 했다. 현재는 장편영화 시나리오와 코미디 시리즈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중이다.

 

* 《쿨투라》 2023년 11월호(통권 1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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