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택 개인전] 9년 만에 돌아온 아시아 팝아트의 아이콘: 홍경택 개인전 《펜, 서재, 훵케스트라 – 욕망, 질서, 감각의 유희》
[홍경택 개인전] 9년 만에 돌아온 아시아 팝아트의 아이콘: 홍경택 개인전 《펜, 서재, 훵케스트라 – 욕망, 질서, 감각의 유희》
  • 설재원 에디터
  • 승인 2023.11.0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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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동시대 한국회화를 대표하는 홍경택 작가의 개인전 《펜, 서재, 훵케스트라 – 욕망, 질서, 감각의 유희Pen, Library, Funkchestra – Play of desire, Order, Sense》가 9월 6일(수)부터 10월 28일(토)까지 약 두 달간 청담 에이든호텔 내 에이라운지, 에이갤러리, 에이든로비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화를 위한 플랫폼 기업 에이프로젝트컴퍼니가 ‘K-ARTIST.COM’과 ‘K-ARTNOW.COM’을 런칭하며 기획한 특별전이다. ‘K-ARTIST.COM’은 선별된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세계 미술시장에 소개하고, ‘K-ARTNOW.COM’은 한국 동시대 미술의 주요 뉴스를 세계 미술계에 알리는 플랫폼이다.

홍경택 작가가 서울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2014년 페리지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이후 약 9년여 만이었다. 홍경택 작가는 2000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첫 개인전 《신전神殿》으로 데뷔한 이래 평단과 대중에게 두루 인정받고 있는 명실상부 한국회화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한국작가로서는 처음으로 2007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셔 약 7억 8천만원이라는 신기록을 세우면서 주목받았고, 순식간에 세계 미술시장에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서재 3〉 1995-2001, 캔버스에 유채, 181 x 227 cm

강박적인 욕망의 표현 ‘펜’

이번 《펜, 서재, 훵케스트라 – 욕망, 질서, 감각의 유희》는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1990년대 초기작품부터 오늘날의 홍경택을 있게 한 ‘펜’ 시리즈, ‘서재’ 시리즈, ‘훵케스트라’ 시리즈의 대표작 30여 점을 한 자리에 모두 모았다. ‘펜’ 시리즈는 일상적인 사물인 ‘펜’에 글쓰기의 무게라는 주제를 입혀 해골, 인형 등의 알레고리와 집적된 화면 구성 등을 활용하여 현대인의 이중적이며 강박적인 욕망을 표현해낸 작품이다. 시리즈의 대표작인 〈펜즈 3Pens 3〉는 꽃들을 중심으로 발산되는 펜들이 잎사귀의 형태로 캔버스를 가득 메운 작품이다. 무려 10년여에 걸쳐 제작된 〈펜즈3〉는 화면 밖으로 쏟아질 것 같은 꽃과 펜의 활력과 확장성이 돋보인다. 다채로운 색과 섬세한 선의 매혹적인 조화는 현대인의 다양한 욕망을 보여주며, 작가의 날카로운 감각을 표현하였다.

압도적 질서의 세계 ‘서재’

‘서재’ 시리즈는 조선 후기 책가도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연작이다. 서재는 문명과 이성을 상징하는 장소로, 책 한권이 개인의 역사라면 책을 모아놓은 도서관은 인류의 역사이다. 그는 은둔하는 선비의 공간인 서가를 현대적으로 변용함으로써 현대인의 내면에 잠재한 의식을 보여준다. 매끈한 질감의 책과 고립되어 있는 인물, 전통 회화의 도상이 혼재하며, 캔버스를 가득 메운 공간 활용이 두드러진다.

‘서재’ 시리즈의 초기작인 〈서재 3Library 3〉은 조선 책거리 그림에서 현대성을 발견하여 시작된 작품이다. 무려 6년여에 걸쳐 정교하게 제작된 이 작품은 밀폐된 공간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책과 책장 묘사가 돋보인다. 그리고 중앙에 쌓여있는 책과 정물은 신전의 제단을 형상화함으로써 작가의 결벽적 성향이 만들어낸 강박적인 완전무결함을 압도적 이미지로 표현해 냈다.

또한 〈서재-수평의 법칙〉과 〈서재-수직의 개념〉, 〈서재-예언자〉는 수평과 수직, 그리고 사선을 중심으로 인간문명을 조명한다. 자연과 종교에 대한 메타포를 지닌 ‘수평’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되돌려 놓는 법칙이며, ‘수직’은 문명과 과학의 개념으로 중력을 거스르는 원초적 욕망을 내포하는 인간의 역동적인 힘을 보여준다. 그리고 수평과 수직의 세계를 뛰어 넘는 ‘사선’의 세계는 사물과 사물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틈’의 무한한 가능성을 조명한다. 홍경택 작가는 ‘서재’ 시리즈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글로 풀어 지난해 11월 본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고흐-별이 빛나는 밤에〉 2020-2022, 린넨에 아크릴과 유채, 181.8 x 227.8 cm

반복되는 리듬의 시각화 ‘훵케스트라’

펑크Funk와 오케스트라Orchestra를 조합하여 만든 ‘훵케스트라’ 시리즈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언더와 오버를 넘나드는 홍경택의 복잡미묘한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훵케스트라 시리즈에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회화와 디자인, 종교와 포르노, 성과 속, 추상과 리얼리즘 등 서로 상반되는 주제들이 서로 교차하며 생생한 색감과 조형으로 재현되었다.

본지 21년 11월호 표지화를 장식하기도 한 〈BTS〉는 한국의 유명인을 작품으로 그려달라는 해외 컬렉터들의 요청으로 시작된 작품이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터져 나오듯 중앙의 소실점을 축으로 상하좌우가 대칭을 이루며 중앙부에 지금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아이콘 BTS가 자리하고 있다. 이 작품은 가로 세로 2m의 캔버스에 8각 구성으로 매력적인 패턴과 강렬한 색상이 반복적인 리듬으로 나타난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 반 고흐를 모티프로 한 〈고흐-별이 빛나는 밤에Gogh-Starry Starry Night〉는 작가가 존경하는 고흐의 작품 속에 표현된 다양한 요소를 그만의 기법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훵케스트라’식 컬러와 구조에 고흐 특유의 붓터치를 결합하여 만들어 낸 이 작품은 가운데 고흐의 초상을 중심으로 별빛 모양 패턴과 두꺼운 유화 물감의 질감을 매혹적으로 조합해냈다. 이처럼 화폭 중앙에 인물을 독점시키면서도 화면 전체로 보면 균질하고 동등하게 밸런스를 맞추는 홍경택의 스타일에 대해 강수미 평론가는 “마치신이 한 번에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홍경택은 화면을 다룬다”고 평했다.

9년만에 서울에서 열린 홍경택의 개인전은 대중과 평단의 높은 주목을 받으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가 고수해온 독특한 팝아트 스타일이 끊임없이 반복과 변주를 거듭하며 진일보하는 모습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은은한 광기가 느껴지는 ‘홍경택 월드’가 어떻게 나아갈지 앞으로가 더욱 궁금해진다.

홍경택 작가

 

 

* 《쿨투라》 2023년 11월호(통권 11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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