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FF 2023] 빔 벤더스부터 장이머우까지. 동서양의 거장을 품은 도쿄국제영화제 개막식
[TIFF 2023] 빔 벤더스부터 장이머우까지. 동서양의 거장을 품은 도쿄국제영화제 개막식
  • 설재원 에디터
  • 승인 2023.11.03 15: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36회 도쿄국제영화제

올해로 36년째를 맞는 도쿄국제영화제가 10월 23일(월)부터 11월 1일(수)까지 도쿄 히비야 일원에서 열린다. 아시아영화제로서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영화제는 부산영화제와 더불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 중 하나이다. 역사가 긴 만큼 80년대부터 수많은 아시아권 작품들이 이곳을 거쳐 세계로 퍼져나갔다.

도쿄영화제는 영화제 이름에서 따온 ‘도쿄’, ‘국제’, ‘영화’, ‘축제’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기본에 충실한 영화제를 표방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영화의 가능성’과 ‘다양한 세계’라는 두 가지 핵심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다. ‘영화의 가능성’은 아트하우스에서 블록버스터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유산을 계승하고(고전영화), 오늘날의 다양성을 포용하며(동시대영화), 미래를 선도할 비전을 가진 새로운 영화를 발굴하려는 영화제의 목표를 보여준다. 또한 ‘다양한 세계’는 영화를 통해 세상의 모든 색을 조명하며 국가와 언어, 문화의 경계를 초월하여 모두가 축제의 순간을 즐기고자 하는 영화제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영화제의 공식 초청을 받아 참여한 본지는 이번호와 다음호에 걸쳐 도쿄영화제 현장의 기록을 전달한다.

재도약 원년 선언

도쿄영화제도 다른 영화제들과 마찬가지로 팬데믹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강력한 방역 정책을 고수하던 일본 정부의 기조와 맞물려 한동안 도쿄영화제는 영화제 규모를 크게 축소했다. 오프라인 마켓도 열리지 못했고, 심포지엄이나 특별전과 같은 각종 이벤트도 소규모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코로나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진 올해의 영화제는 ‘재도약’을 선언하며 팬데믹 이전으로 영화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쿄영화제의 필름마켓인 티프컴TIFFCOM도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오프라인으로 개최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행사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탄생 120주년 특별전과 기념행사가 진행된다. 안도 히로야스 집행위원장은 “팬데믹이 종식된 올해의 영화제가 역대 가장 성공적인 행사가 되기를 바란다”며 “작년보다 20% 이상 상영작을 늘리고, 영화제 분위기를 다시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 100여 명에 불과했던 해외 게스트 수가 올해는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고 강조하며 도쿄영화제가 국제교류의 장으로 거듭나길 희망했다.

경쟁부문 심사위원. 왼쪽부터 알베르 세라, 트란 티 빅 응옥, 빔 벤더스, 자오 타오, 쿠니자에 미즈에.

한일 문화수교 25주년
〈러브레터〉, 〈쉬리〉 그리고 〈너클걸〉

올해는 한일 문화수교 25주년을 맞는 해로, 도쿄영화제는 이를 기념하는 특별상영과 한일 합작을 주제로 영화 프로그램과 심포지엄을 준비했다. 먼저 25일에는 다음 달 아마존 프라임에서 공개 예정인 한일 합작영화 〈너클걸〉의 프리미어 상영이 예정되어 있다. 전상영, 유상진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너클걸〉은 미숙하지만 가슴 속 뜨거움을 안은 청춘을 담은 액션영화이다. 〈표적〉의 창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한국 웹툰이 일본에서 영화화되는 첫 영화이다. 또한, 국내 제작사(크로스픽쳐스)가 아마존 프라임 오리지널 일본 영화를 제작한 첫 사례이기도 해 의미가 크다.

작품 상영 이후에는 제국호텔에서 ‘한일 영화 합작의 미래’를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린다. 이 자리에는 〈너클걸〉의 창 감독과 촬영을 맡은 타쿠로 이시자카, 주연 배우 아야카 미요시와 크로스픽쳐스의 김현우 대표가 참여하여 〈너클걸〉의 제작 과정을 소개하고, 앞으로 한일 합작 영화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한일 합작영화 〈너클걸〉 팀. 왼쪽부터 창 감독, 배우 미요시 아야카, 쿠보즈카 요스케, 마에다 고우키.

또한 한일 문화수교 25주년을 기념하여 26일 27일 양일간 특별상영이 계획되어 있다. 양국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26일에는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가, 27일에는 〈쉬리〉가 상영된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선정된 〈러브레터〉는 제2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한국에서 정식 개봉해 엄청난 인기를 끌며 문화수교 이후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첫 실사 영화이다. 이 작품은 1999년 서울관객 115만 관객이라는 기록적인 흥행을 거두었는데, 지금까지도 일본 실사영화 중에 〈러브레터〉의 115만 관객 기록을 깬 영화가 없다.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선정된 〈쉬리〉 역시 일본에서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18억엔의 대흥행을 기록한 ‘한류열풍’의 시조격인 작품이다. 특히 27일 〈쉬리〉 특별상영에는 강제규 감독의 GV도 예정되어 있어 기대를 모은다.

그리고 같은 날 ‘위먼인모션’ 토크 세션에 배두나 배우와 미즈카와 아사미 감독, 와시오 카요 프로듀서가 참여한다. 위먼인모션은 영화산업에서 여성에 대한 사고방식과 행동의 변화를 목표로 칸영화제 등 주요 영화제와 파트너십을 맺고 여성의 위치를 강조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세 패널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영화산업에서 활동하며 보고 느낀 각자의 독특한 경험을 전달할 예정이다.

개막작 〈퍼펙트 데이즈〉 팀.

개막식을 빛낸 동서양의 거장
빔 벤더스와 장이머우

개막식이 열리는 23일 오후 3시, 히비야스텝스퀘어부터 미드타운히비야를 거쳐 개막식 장소인 타카라즈카 극장까지 기나긴 레드카펫 행렬이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세계 곳곳에서 게스트들이 영화제를 찾은 만큼 스타 감독과 배우를 보기 위해 도쿄 시민들도 히비야 일대를 가득 메웠다. 배우와 감독도 이러한 열렬한 환호에 화답하여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주며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레드카펫 행사는 예정시간을 훌쩍 넘어 개막식 시작 시간을 넘길 정도로 뜨거운 반응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레드카펫 행사에서 가장 인기를 끈 두 사람은 누가 뭐라해도 동서양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 빔 벤더스와 장이머우였다. 빔 벤더스는 개막작 〈퍼펙트 데이즈〉의 감독이자 올해 경쟁부문 의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장이머우는 평생공로상의 수상자로 도쿄를 찾았다. 두 베테랑 감독은 오랜 시간 레드카펫에 남아 수많은 사진 요청에 응하며 거장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레드카펫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개막식은 바이올리니스트 이쿠코 카와이와 퀸텟의 축하공연으로 시작되었다. 축하공연에서는 올해 초 하늘의 별이 된 故 사카모토 류이치를 추모하기 위해 그에게 아시아 최초의 아카데미 음악상을 안겨준 〈마지막 황제〉의 테마곡 등을 연주하였다. 개막 다음날에는 생전 그의 연주 모습을 담은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가 상영되기도 한다. 연주가 끝나자 기시다 총리가 영상 축사로 영화제를 찾아준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올해 특별전의 주인공인 오즈 야스지로를 치켜 세우며 일본의 거장을 예우하는 동시에, 〈퍼펙트 데이즈〉의 감독 빔 벤더스와 주연을 맡은 야쿠쇼 코지, 최근 공동제작 협약을 맺은 이탈리아를 언급하며 국제교류를 강조했다. 이어 등장한 히로야즈 집행위원장은 레드카펫 행사의 지연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뜨거운 열기에 감사를 표했다.

다음으로 장이머우 감독의 평생공로상 수상이 진행되었다. 장이머우 감독이 도쿄영화제를 찾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첫 번째는 36년 전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주연배우로서 2회 영화제(1987)에 〈노정〉으로 도쿄를 찾아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두 번째는 18년 전 18회 영화제(2005)에 심사위원장으로 도쿄를 찾았다. 그리고 세 번째로 영화제를 찾은 올해는 평생공로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장이머우는 “처음 시작한 곳으로 돌아온 기분”이라며 “순환과도 같은 이러한 주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수상 소감을 전했다. 이번 영화제 기간에는 지난해 중국에서 9,20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6위의 흥행 스코어를 기록한 장이머우의 신작 〈만강홍: 사라진 밀서〉를 상영하며, 그의 마스터클래스도 진행될 예정이다.

평생공로상 시상식. 장이머우(좌)와 안도 히로야스 집행위원장(우).

마지막으로 올해의 심사위원장이자 개막작의 주인공인 빔 벤더스가 무대에 올랐다. 먼저 심사위원장으로서 연단에 오른 그는 “여기 있는 심사위원들과 오늘 이 순간까지만 웃으며 지내고 앞으로 열흘동안 치열하게 싸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어 그는 개막작 〈퍼펙트 데이즈〉의 감독으로서 다시 무대에 올랐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퍼펙트 데이즈〉는 빔 벤더스의 일본영화로, 주연 배우인 야쿠쇼 코지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일본배우가 칸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은 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에서 야기라 유야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19년만이다.

“〈퍼펙트 데이즈〉를 통해 칸영화제에서 상영할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의 주연배우가 남우주연상을 받는 꿈도 꾸었습니다. 차마 일본의 오스카 출품작이 될 거라는 꿈은 감히 꾸지 못했죠. 하지만 도쿄영화제 개막작이 되어 일본 관객들 앞에서 상영되는 꿈은 꾸었습니다. 그러다 깨어났죠. 그리고 여기 있네요.”

그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개막작으로 선정된 소감을 전했다. 개막식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순간이었다.

〈퍼펙트 데이즈〉의 빔 벤더스와 야쿠쇼 코지.
〈퍼펙트 데이즈〉의 빔 벤더스와 야쿠쇼 코지.

개막작은 장소를 옮겨 토호시네마즈히비야 12관에서 상영되었다.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에서 청소부로 살아가는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의 일상을 쫓는 작품이다. 문학을 좋아하는 ‘아날로그 인간’인 히라야마의 특별할 것 없는 나날에는 평범함 속에 깊은 울림이 있다. 분명 칸에서도 본 작품이지만 도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도쿄에서 다시 만나니 기분이 또 남달랐다.

재도약을 선언한 올해의 도쿄영화제는 성공적인 개막식으로 기분 좋게 시작을 알렸다. 영화제에서 엄선한 영화 프로그램과 야심차게 준비한 이벤트 등 열흘 간의 영화제 현장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12월호에서 계속된다.

 


* 《쿨투라》 2023년 11월호(통권 113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