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코리안 인베이전
[Talk] 코리안 인베이전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23.11.0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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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 김창래 남종우 박미나

‘한국’ 또는 ‘K—’ 라는 수식어가 단순히 어떤 동양적인 걸 뜻하기 보다는, 좋은 것, 재미있는 것, 강한 것, 쿨한 것을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조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남종우 얼마 전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Kobiz 채널에서 베셔 베이스와 피어스 콘란, 이렇게 두 외국인이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봤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어요. 이제는 외국인들이 한국영화를 논하는 장면이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그런 시대가 된 것 같네요.

김창래 그렇죠. 더 이상 특별한 것도 없고. 미나 작가가 얼마 전 뉴욕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아이리시 펍에서 BTS 노래를 들었다고 하는데 이제 한국어가 거리에 들려도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그런 시대가 온 것 같아요. 특히나 BTS나 블랙핑크의 노래 중 한국어를 그대로 따라 부르는 외국 친구들이 많아진 걸 보니 이제 더 이상 어떤 문화적인 장벽 같은 건 거의 없어지지 않나 싶어요.

박미나 저도 Kobiz 채널에서 외국인 두 분이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었어요.

김창래 이제 외국의 대중들은 K-Pop을 로큰롤과 비교하고 있어요. 더 이상 잠깐 스쳐가는 트렌드라고 말하기 민망한 상황이 된 거죠. 이건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봐야 합니다. 아마도 K-Pop의 인기가 시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K-Pop의 경우 이게 단순한 문화 현상이냐 아니냐, 뭐 그런 걸 논하기 보다는 이제는 K-Pop을 하나의 완성된 음악 장르, 예를 들어 쿠바음악이나, 로큰롤과 같은 그런 차원에서 이야기 해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박미나 얼마 전 애니메이션 영화 〈트롤: 월드 투어〉를 봤는데 트롤 종족을 락, 팝, 클래식 등 음악으로 구별하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메들리 장면의 여러 음악 중에 〈강남스타일〉이 나오는 거예요. 또 종족 내에 갱들이 존재하는 설정이 있는데, 거기에 나온 K-Pop 갱으로 알고 보니 우리 나라 걸그룹 레드벨벳이 출연했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K-Pop이 하나의 장르가 돼버렸고 한국말로 부르는 곡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그런 때가 온 것 같아요. 음악에 대해 어떤 구분이 필요치 않은, 규정하거나 구별 짓는 선이 없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고요. 이제 영화도 그 길을 밟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출발점이 ‘1인치 장벽one-inch barrier’을 넘자는 얘기였는데 이미 영화도 그런 지점에 와있는 건 아닌지…. 〈기생충〉의 경우를 봤을 때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김창래 사람들이 팬데믹을 겪으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만큼 세상도 많이 변한 것 같아요. 굳이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인 인기를 예로 들지 않는다하더라도 확실히 이제는 해외영화, 또는 해외 세일즈international sales 개념이 약화된 것 같고, 전 세계 글로벌 관객들이 집에서 플랫폼으로 해외영화를 이전보다 편하게 시청하는 그런 시대가 된 것 같아요.

남종우 한국영화의 미래를 볼 때 워너 브라더스가 HBO Max에 〈원더 우먼 1984〉를 극장과 스트리밍 플랫폼에 동시에 개봉했던 그 시점부터였던 것 같아요. 2021년부터 〈사냥의 시간〉, 〈더 콜〉이 극장 개봉에서 OTT 개봉으로 우회했던 시기가 그 신호탄이지 않나 싶습니다.

김창래 사실 이제 영화를 극장에서 보느냐, 집에서 보느냐 하는 건, 소비 형태의 문제인거지, 관객에게 크게 달라진 건 없지 않을까요? 제가 아는 지인 중에 극장을 1년에 한 번도 안 가는 사람이 있는데, 매월 플랫폼 결제에는 20만 원이 넘게 쓰시는 분이 있어요. 결국 극장에서 돈을 받느냐, 플랫폼에서 받느냐의 문제인거죠. 그러니까 이런 부분들이 결국 극장 업계의
고민 아닐까요?

박미나 그건 팬데믹 때문에 새로 나온 얘기는 아닌 것 같아요. 몇 년 전부터 그러한 논쟁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있지 않았나요? 예를 들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라는 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논쟁처럼요. 극장 개봉이 필수인지 아니면 스트리밍 매체를 통한 ‘공개’만으로도 자격이 되는지에 대한 논의들은 코로나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죠. 물론 팬데믹을 거치면서 가속도가 붙은 것도 사실이구요.

남종우 공급자적 관점과 소비자적 관점을 나누면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글로벌 시장에서 프로듀서의 역할 중에 영화를 잘 만드는 게 3분의 1이라면, 패키징하고 투자 유치하는 부분이 있고, 또 유통과 마케팅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투자사가 파이낸싱과 마케팅, 배급까지 모두 책임져주는 소위 스튜디오 시스템과 비슷한 시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프로듀서들에게는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일 수 있다는 거죠. 그러나 글로벌한 관점에서는 프로듀서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점점 더 프로듀서는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는 시장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투자와 배급, 해외세일즈까지 연결되는 촘촘한 시장 구조에서 투자배급사의 경우에도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여러 가지 수수료를 포기해야 하고, 인력을 원래 수준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온 것 같아요. 따라서 공급자의 입장에서 보면 투자배급사도 점점 할 일이 없어지는 거고, 시장에도 혼란이 오는 거죠. 〈승리호〉 한 작품은 성공이었을지 몰라도, 이 한 작품을 통해 창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업과 수익창출의 기회가 없어진 셈인데, 그런 관점에서 영화계가 위험하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김창래 그 부분은 조만간 종식될 논쟁인 것 같아요. 어차피 전반적인 세계 트렌드는 언택트, 스트리밍이 강세지요. 코로나가 그런 상황들을 조금 촉진시켰을 뿐이지 극장문화는 이미 100년이 넘게 지속되어 왔어요. 그러니까 미나 작가가 2장에서 언급했던 뉴욕의 안젤리카극장처럼 극장의 역할이 조금 달라지는 것 뿐이지 극장이 사라지진 않을 것 같아요. 대신 가정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홈씨어터home theater’ 개념은 강화되겠죠.

박미나 디지털이 처음 나왔을 때 느낌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필름을 사랑해서 끝까지 필름을 지키고 싶었지만 시간이 좀 걸렸을 뿐이지 결국은 모두 디지털화가 됐잖아요? 필름에서 디지털로 상영을 하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극장들이 죽는 소리를 했지만 이제는 적응해서 살아남은 걸 보면 말이죠. 그리보면 그때의 디지털이 지금의 스트리밍인 것 같아요. 시스템에 새로운 변화가 생기면서 2021년 이후로는 없어지는 일자리도 분명 있겠지만, 또 새로운 기회도 생기지 않을까요? 예전에 있던 필름 네거티브를 자르던 사람 대신에 데이터 매니저가 생긴 것처럼 말이죠. 팬데믹을 통해서 변화가 촉진되다보니 장벽도 없어지고 긍정적인 측면도 많아졌고요. 넷플릭스에 오른 한국영화가 이제는 더 이상 한국영화라기 보다는 그냥 ‘넷플릭스 영화’로 보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지 않은가요?

김창래 결국 우리가 함께 책을 쓰기 시작한 게 1인치의 장벽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면, 마지막 챕터는 ‘We speak one language, Cinema’로 끝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산업 구조가 어떻게 바뀌던, 극장에서 영화를 보든, 집에서 보든, 결국 영화라는 하나의 언어로.

남종우 지난 3년 간의 팬데믹 상황이 장벽을 많이 무너뜨렸고, 전 세계 관객이 우리 영화나 드라마를 더 많이 볼 수 있게 만들어준 건 확실한 것 같아요. 1인치의 장벽이라는 말이 무척 의미 있는 게, 지역별로 나뉘어서 유통이 되던 것이 전통적인 기존의 유통 방식이었다면, OTT 덕분에 그 1인치의 장벽이 더 빠르게 걷혔다고 볼 수 있죠. 그렇다면 왜 K-시네마가 다른 영화보다 더 인기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더 잘 만들어서? 무엇이 이렇게 팬층fan base을 만드는지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김창래 한국영화의 미래는 K-Pop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면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K-Pop의 경우 3분 내외의 뮤직비디오로 비교적 쉽게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을 수 있었고, 시각적으로 복잡한 설명도 필요없었죠. 거기다가 2010년 즈음, K-Pop이 어떤 정체기에 부딪혔을 때 소셜 미디어가 커다란 역할을 했어요. 현재 할리우드영화를 견제할 수 있을 만큼의 퀄리티있는 영화를 제작하는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테마나, 플롯, 비주얼, 제작의 완성도를 비교하면 한국이 다른 국가보다 상당히 우수한 영화를 만들고 있어요.

박미나 덧붙인다면 일단 한국은 장르물을 잘 만들죠. 액션, 스릴러, 멜로, 호러 등 모든 장르를 잘 소화하는 것 같아요. 이전에 만들지 않았던 좀비영화도 한 번 만들기 시작하니까 너무 잘 만들잖아요. 그리고 뻔한 장르물에서 끝나지 않고 거기에 뭔가 추가되는 엑스트라가, 그러니까 한국적인 트위스트를 좀 더해주니까 공감대가 확장되면서도 동시에 뭔가 신선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김창래 그걸 코리안 MSG? 코리안 flavor? 라고 불러도 될까요?

박미나 빙고. (웃음)

3 Alamo Drafthouse 극장 내의 킴스 비디오, 뉴욕 (현재)

김창래 미나 작가가 전에 킴스 비디오라는 뉴욕의비디오 숍을 언급했는데 한국영화 시장의 토양을 돌이켜보면 무척 다양한 자양분을 토대로 성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낮에 극장에서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다이 하드〉를 보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는 골목길에 위치한 ‘으뜸과 버금’에서 프랑스 영화를 볼까 홍콩영화를 볼까 고민하던 그런 시대가 있었어요. 할리우드에 비해 확실히 다양한 작품들이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는거죠. 거기에 삼성이 주최했던 서울단편영화제, 서울독립단편영화제, 미장센영화제 등 단편영화제에 누구보다 진심인 나라가 한국이었던 것 같아요. 한때 전철을 타면 모두가 《씨네21》을 보던, 전 국민의 영화 학인화가 이뤄진, 그런 나라가 한국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종우 2003년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한 해 동안 나온 영화들을 보고 정말로 충격을 받았어요. 지금으로 따지면 1년에 한 편 나올까 말까하는 그런 퀄리티의 영화들이 같은 해에 다 개봉했다고 볼 수 있죠.

김창래 미나 작가가 얘기한 것처럼 그냥 나온 게 아니라 ‘It’s about time.’ 때가 돼서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한국영화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허우 샤오시엔이나 에드워드 양처럼 세계가 대만을 주목하던 시기에 코리안 웨이브도 이미 예열을 마친 상태가 아니었나 싶어요. 단지 필요했던 건 들끓는 재료들을 폭발시켜줄 불꽃이었던 것 같고, 그걸 대기업의 영화 시장 진출이 터뜨려준 게 아닌가 싶어요.

남종우 최근 해외 출장을 나가보면 한국영화에 대해서 정말 많은 얘기가 오가는데, 공통적으로 스토리가 뛰어나고, 프로덕션 퀄리티가 뛰어나고, 장르영화도 잘한다고 평을 해요. 분명 ‘Korean flavor’가 있지않나 싶어요, 한국 사람들이 뭔가 특별한 DNA가 있어서 그런 건가?

김창래 글쎄…. 사실 한국영화가 지나치게 잘난 체 할 필요는 없는 게 지금 한국영화가 누리고 있는 반응은 사실 일본영화가 먼저 겪은 것이고, 중국영화도 한 때 화양연화를 보냈고, 또 홍콩영화에 열광하던 시기도 있었죠. 지금의 분위기가 2030년 이후 인도로 갈 수도 있고 파키스탄으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도 한류만큼 확실한 트렌드가 있지 않은가요? 이를테면 여성영화의 강세…?

박미나 정말 그런 것 같은데요. LA쪽 영화인들도 지금 여성 아이템이 제일 핫하다고 말하고, 또 아시아 스토리, 그중에서도 코리아라고 한다더라고요.

남종우 인도도 그런 것 같아요. 인도의 스트리밍 플랫폼들이 소재를 찾고 있는데, 찾고 있는 장르 중에 가장 많은 게 ‘female based’, 그러니까 여성 관객을 타깃으로 한 작품이에요. 아마존 재팬도 얼마전까지 여성 중심의 서사를 찾는 데 아주 진심이었고요. 이건 전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김창래 한국영화 역시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큰 그림에서 보자면 이제껏 여성 중심의 서사가 너무 부족했지 않았나 싶고. 그러니까 여성 중심의 영화가 너무 오랫동안 인정을 못 받고 눌려 있다가 이제서야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박미나 그렇죠. 우리가 책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영화의 자막 같은 ‘장벽’ 개념이 화두였다면 지금은 이미 그 장벽들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네요. 앞길을 막는 장벽이 약해지면서 김 작가 말씀대로 여성 스토리나 아시아 스토리가 빛을 볼 수 있는 것이고요.

남종우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지역적으로 트렌드가 조금씩 달랐는데,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사한 트렌드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어디서 뭔가 확 올라오면, 사람들 경향이 비슷하게 따라가는 걸 볼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넷플릭스나 디즈니와 같은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전 세계 사람들이 거의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작품을 볼 수 있으니까요. 이제 이 자리를 정리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네요. 앞으로 한국영화의 미래를 어떻게들 바라보나요?

김창래 영화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지표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늘 적응이 안 되는 게 할리우드 영화 관련 데이터입니다. 1980년대 한때 미국영화가 전 세계 시장의 91%까지 점유했던 시기가 있었다고해요. 그때는 미국 사람들이 영어로 되지 않은 영화를 보는 것은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미국인들이 자막영화에 서툰 것도 이해는 가요. 하지만 이제 제법 많은 미국인들이 자막영화나 자막 있는 외국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외국 문화 콘텐츠에 대한 장벽이 낮아졌고 점차 희미해지는 듯 보여요.

〈미나리〉 스틸컷

남종우 〈미나리〉의 경우도, 예전 같았으면 영화인으로서 내 얘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을 것 같아요.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에 제일 하지말아야 할 게 ‘내 이야기’, ‘정체성’ 이야기였어요. 나만 재밌지 다른 사람들은 재미없다는 거죠. 하지만 이제 글로벌 관객은 〈미나리〉를 단순히 한국계 미국인의 이야기로만 해석하지 않아요. 보다 근원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발견하려고 해요. 봉준호 감독님의 표현을 빌려서 말하자면,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창의적인 이야기다!”인거죠.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미나 작가가 양자경 배우의 오스카 수상에 대한 이야기와 전체적으로 정리를 해주면 어떨까요?

박미나 아, 가장 힘든 부분을…. 한번 해 보겠습니다. 일단 최근의 분위기를 정리해 보자면 정말이지 매일 매일 놀라움의 연속인데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생충〉이 오스카의 국제영화부문에 올랐을 때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지금은 한국영화나 배우가 수상 후보에 오른다는 것이 놀랍다기 보다는 조금 당연시하는 분위기죠.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K-문화의 영향을 미국 시골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미국 스타들이 어떤 한국 마스크 팩을 쓰고, 노래방에서 어떤 K-Pop 노래가 18번이며, 한국 사우나에 가서 때를 밀었다는 이야기, 이런 것들은 일상이 된 지가 오래됐죠. 그럼 지난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지? 하고 물으면 “한국이 쿨cool해진 것이다.”라고 답해야겠죠. 할리우드는, 더 넓게 봐서 미국 관객은, 늘 새롭고 신선하고 재미있는 것을 찾고 있는데 지금은 한국이 주는재미에 빠져있는 것 같아요. 또 ‘all things Korean한국적인 모든 것’을 추구하다 보니 천천히 미국 팝 컬쳐에도 스며들어간 것 아닌가 싶어요. ‘김치 맛’이 하나의  보편적인 맛이 되고, BTS 노래를 영어 팝송인양 자연스럽게 한국말로 부른다거나, 넷플릭스에 있는 한국드라마를 그냥 자막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보는 그런 현상이죠. 예전에 이안 감독을 부러워했는데 지금은 미국배우조합상SAG에 송강호, 이선균, 이정은, 조여정 같은 한국 배우들이 수상하잖아요. 가장 미국적인 시상식에서 한국어가 들리는 것 자체로도 코리안쿨의 영향력을 느끼죠.

아카데미 공식홈페이지

2020년 〈기생충〉의 SAG 앙상블상 수상에 이어 다음 해에는 윤여정 배우가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았는데 모두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의 수상이었죠. 아울러 2022년 미국배우조합상 앙상블상은 〈코다〉가 받았는데 이 역시도 어찌보면 〈기생충〉의 선한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마침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미국배우조합상 역대 최다 4관왕을 석권하는 쾌거를 이뤄냈고요. 물론 양자경 배우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키 호이 콴의 남우조연상역시 빼놓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이었죠. 앞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아시안과 한류문화가 세계 팝 컬쳐를 리드하지 않을까 감히 말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한국’ 또는 ‘K—’ 라는 수식어가 단순히 어떤 동양적인 걸 뜻하기 보다는, 좋은 것, 재미있는 것, 강한 것, 쿨한 것을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조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1인치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이렇게 금방 목도하는 현실 자체가 또 한번 놀랍고 반가울 뿐이죠. 이제 에필로그를 마무리하며 최근의 인상적인 두 아시아배우의 말을 인용하고 싶어요. 먼저 산드라 오가 2018년 에미시상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It’s an honor just to be Asian.아시아인이어서 영광스럽다.

골든글러브 공식홈페이지

이 말은 “It’s an honor just to be nominated. 후보에 오른 것 만으로도 영광스럽다.”라는 문구의 말장난이죠. 2018년 에미시상식측에서 부탁 받아서 산드라 오가 그렇게 말한 것이기도 하지만, 인터뷰에서 산드라는 이 말이 진심이었다고 밝혔죠. 이 문구는 후에 티셔츠에 새겨져 팔리기도 했는데 저도 이 티셔츠를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백인들의 잔치였던 할리우드 시상식을 보면서 ‘우리도 저 무대에 섰으면’ 하는 부러움 섞인 시선뿐이었는데 이제는 실제로 우리가 그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장면을 보는 날이 도래했어요. 또 2023년 미국배우조합상 최고의 앙상블 수상 소감에서는 94세의 제임스 홍 배우가 감동적인 말을 남겼어요. 그는 70여 년 전 연기 생활을 시작했을 때 첫 영화를 클라크 게이블과 함께 만들었다면서 그 당시에는 백인 배우 얼굴에 테이프를 붙여서 눈을 치켜 올라가게 만들고 동양인 연기를 했다고 해요. 이유는 제작자들이 동양인 배우는 흥행에 도움이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면서요. 이후 제임스 홍은 세상을 향해 외칩니다.

“But look at us now!”

제임스 홍의 말대로, 지금의 우리를 보세요!

 

 


 

 

* 《쿨투라》 2023년 11월호(통권 11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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