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기 외 1편
이병초
염소 떼 몰고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친구를 찾아 헤매다가
문득 만났네
빼빼 마른 제 몸에 새옷 해 입히려고 사르락사락 계곡 물소리
를 시침질하는 옥수수잎 햇노란 옥수수잎에 눈길이 쏠려 제 심
장을 머리통으로 뿜어 올린 맨드라미를
햐 이거, 계곡물도 헷갈리는지
실바람 한소끔 덜어와 졸졸졸 머리를 식히네
입술
갯가 그물코를 빠져나가는
물떼새 소리 타고
동그랗게 번져오는 잔물결이
옥이 입술 같다
맹꽁이 운동화 새것으로 사 온다더니 여태 소식이 없다고 쫑긋거리는 입술,
입술 속에서 동진강 둑길에 벗어놓은 내 열아홉 살이 당장 튀어나올 것 같다
잣대로 잴 수 없고 저울에 달 수도 없는 우리 시간을
몽당연필처럼 아껴 쓰자고
가만가만 숨소리 나누던 밤이 있었다
이병초 전주 출생. 1998년 《시안》에 연작시 「황방산의 달」이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밤비』 『살구꽃 피고』 『까치독사』 등이 있고 시비평집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와 역사소설 『노량의 바다』가 있다.
* 《쿨투라》 2023년 11월호(통권 11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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