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아내와 아내의 돈을 모두 사랑한 남자의 아이러니에 대하여: 〈플라워 킬링 문〉
[영화 월평] 아내와 아내의 돈을 모두 사랑한 남자의 아이러니에 대하여: 〈플라워 킬링 문〉
  • 강유정(영화평론가, 강남대 교수)
  • 승인 2023.11.0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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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면 오클라호마주 오세이지 영토의 언덕 위엔 클레이토니아라 불리는 제비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신들이 색종이 조각을 흩뿌린 것’같은 4월이 지나고 나면 야생화 제비꽃에게는 시련의 시절 5월이 온다. 제비꽃보다 키가 큰 자주달개비나 노랑데이지 꽃들이 피어나면서 제비꽃에게 와야 할 햇빛을 훔치고 길고 깊은 그늘을 드리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세이족 인디언들은 5월을 꽃을 죽이는 달, ‘플라워 킬링 문’의 시기라고 부른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새 영화 제목 ‘플라워 킬링 문’의 원제는 〈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이다. 원제는 중요한 사실을 암시한다. 영화에서 만나게 될 여러 죽음이 사실 살인이라는 것 말이다.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은 죽음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난다. 문제적인 것은 죽어 간, 수많은 사람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아메리칸 원주민, 오세이지족이라는 점이다. 더욱 공교로운 것은 그렇게 죽어 간 사람들이 전부 다 ‘순혈의 땅’이라 부르는 유전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고 가장 의아한 점은 이 공교로운 죽음의 연쇄와 과도하게 반복되는 우연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살해당하는 동안 단 한 차례의 수사도 없었다. 아메리칸 원주민 흔히 인디언이라 부르는 부자들의 죽음은 백인에게 같은 동족의 죽음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당연히, 그들의 재산이 오세이지 가문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백인들 손에 넘어가도 분노하지 않았다. 슬픔과 분노는 다만 죽은 자들의 가족, 오세이족의 몫이었다.

영화는 아이러니로 넘쳐난다. 시작부터 그렇다. 1880년대, 19세기 말, 아메리칸 원주민들은 강제로 미시시피강 건너 땅으로 쫓겨난다. 평생 살아온 고향땅에서 쫓겨나 아무도 찾지 않는, 낯선 황무지, 오클라호마에 오세이지 족은 정착하게 된다. 그들은 이제 언어와 영혼을 잃고 외계의 언어를 배워 낯건 영혼을 갖게 될거라 슬퍼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황무지에서 오세이지족은 엄청난 부를 쥐게 된다. 거의 평생 마르지않을 황금 창고, 석유가 가득 찬 유전이 터진 것이다. 언어와 영혼을 잃은 오세이지 족에게 엄청난 부, 돈가 찾아온다. 하지만 과연 그 돈과 부, 검은 황금은 축복이었을까?

이제 오세이지족을 내쫓았던 백인들은 오세이지의 돈과 석유를 쫓아 몰려든다. 자신의 땅에서 난 석유지만 시추와 판매 심지어 그로 인해 얻은 이윤조차 오세이지족은 마음대로 관리할 수 없다. 분명 오세이지족, 자신의 부이지만 백인 후견인 없이는 약 값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다. 자신의 돈을 마음대로 쓰지못하는, 부유한 금치산자,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빚어진다.

고급스러운 옷, 사치스러운 귀금속, 최신형 고가 자동차, 희귀한 인테리어 소품으로 가득 찬 집에서 오세이지족들이 살아간다. 백인들은 거지나 부랑자와 다를 바 없다. 오세이지족의 돈이 넘쳐나는 땅으로 흡혈 곤충처럼 백인부랑자들이 노동자 형태로 모여든다. 오클라호마 오세이지 정착촌은 오세이지가 소유한 땅, 유전 그리고 돈을 빨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듯 도시처럼 보일 정도다. 모두 약속이나 한듯 오세이지족에겐 두 배, 세 배의 값을 요구한다. 지어, 관값과 장례비조차도.

가장 중요한 아이러니는 바로 주인공 어니스트다. 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후 만성적 탈장 질환을 안고 돌아온 어니스트는, 택시 기사로 일하게 된다. 어니스트는 우연히 순혈땅을 가진 몰리를 손님으로 태우고 과묵하면서도 우아한 그녀에게 반하고 만다. 자칭 오세이지족의 친구인 삼촌 윌리엄은 어니스트에게 몰리와의 결혼을 제안한다. 어니스트는 몰리에게 청혼하며 당신도 사랑하고, 당신이 가진 돈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몰리의 가족은 오세이지에서 가장 풍요로운 유전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몰리 자매들은 백인들과 연루된 후 일찍이 세상을 뜬다. 삼촌 윌리엄은 그게 몰리의 가족력때문이라 말하지만 어쩐지 가혹하다. 재산을 가진 몰리의 자매들이 하나같이 결혼 이후 시름시름 앓다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말이다. 심지어 여동생 미니의 남편은 미니가 소모성 질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미니의 동생과 재혼한다. 한 집안의 두 여자와 결혼한 셈이다. 언니 안나는 흉측한 모습으로 살해당하고, 미니의 전남편과 결혼한 리타는 폭파사고로 머리가 반이나 날아간 채 사망하고 만다. 사촌 헨리는 우울증으로 사망했다고 하지만 총은 뒤에서 발사되었고 총기조차 찾지 못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이상한 죽음을 묻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계획 뒤에 삼촌 윌리엄, 즉 윌리엄과 어니스트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다. 마틴 스코세즈의 원년 페르조나인 로버트 드니로는 가장 친한 친구이지만 음험한 음모를 숨긴 채 꾸며가는 윌리엄의 이율배반을 능글능글하게 그려낸다. 가장 대단한 모순덩어리는 어니스트다. 어니스트는 돈을 사랑한다. 문제적인 건 그가 아내 몰리 역시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아이러니는 인슐린 주사 사건으로 증폭된다. 몰리의 가족들을 모두 ‘처리’하는 데 성공한 삼촌 윌리엄 일가에게 몰리는 마지막 남은 장애물이다. 몰리만 없다면 몰리 남편인 어니스트에게 상속된 재산, 검은 황금의 순혈땅을 고스란히 뺏어 올 수 있으니 말이다. 당뇨로 고생하는 몰리에게 윌리엄은 세계에서 고작 5명만 맞는 인슐린을 소개한다. 돈은 오세이지가의 주머니에서 나오지만 상속녀 몰리의 치료법을 결정하는 사람은 윌리엄이다. 킹 윌리라는 별명처럼 마을 사람 모두는 윌리엄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어 공포에 떨던 몰리는 의사가 놓아주는 주사를 거부한다. 그래서 몰리는 남편이 주는 인슐린 주사만 맞는다. 윌리엄은 그런 어니스트에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주사 앰플 하나를 건네며, 인슐린에 한 병 다, 남김없이 섞어 사용하라 말한다. 두려움과 불안에 어니스트는 무슨 약이냐 묻지만 윌리엄은 그저 안정제일 뿐이라고 대답한다. 거짓말이라는 직감이 들지만 어니스트는 더 이상 약의 정체를 캐묻지 않는다. 주사를 맞는 횟수가 늘수록 아내가 몸도 추스르지 못할 정도로 약해졌는 데도 말이다.

아내가 세상을 떠날까 두렵지만 한편 삼촌 윌리엄의 계획이 어그러져 오세이지의 돈을 갖지 못할까 불안하다. 두 가지 전부를 욕심내는 어니스트는 평범 이하의 주인공이다. 마틴 스콜세즈가 지금껏 영화에서 그려왔던 인물들, 바보 같은 실수와 멍청한 선택을 하고야 마는 평범 이하의 주인공이 바로 어니스트인 셈이다.

데이비드 그랜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 만큼 영화에 묘사되는 이야기는 전부 역사적 사실이다. 다만 원작이 사건과 기술, 초기 FBI의 활약에 집중하고 있다면 마틴 스코세즈는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우스꽝스러움과 욕망의 추악함에 주목한다. 살인까지 마다않던 백인의 욕망을 단죄하는 또 다른 백인 수사관의 활약보다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아내에게 죽음의 약을 주사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행동에 집중한 셈이다.

대작이란, 그리고 명작 영화란 바로 이런거다. 기계적알고리즘과 논리로 결코 분석해낼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강점과 약점, 그 아이러니를 탐구해 인간 자체를 질문으로 만드는 영화 말이다.

 

사진제공 Apple TV+

 


강유정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2005년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당선으로 등단, 저서로는 『영화 글쓰기 강의』 『타인을 앓다』 등이 있다.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 《쿨투라》 2023년 11월호(통권 11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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