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뤼미에르영화제 스케치] 프랑스 리옹에서 윤용규 감독을 생각한다
[2023 뤼미에르영화제 스케치] 프랑스 리옹에서 윤용규 감독을 생각한다
  • 오성지(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 승인 2023.11.0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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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ivier Chassignole - Festival Lumière 2023

10월 17일

거의 하루가 걸린 것 같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거쳐 리옹 생텍쥐페리 공항에 도착하니 밤 10시 20분, 숙소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에게 생소한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도시 리옹, 이곳에서 2009년부터 매년 10월에 열리는 ‘뤼미에르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꼬박 하루 걸려 온 것이다.

 

10월 18일

일어났더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이미 기상 예보로 날씨가 안 좋을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아침인데도 밖이 컴컴하고 비가 을씨년스럽게 내리니 실망스럽다. 19-20일은 이번 영화제 복원 프로그램에서 상영될 윤용규 감독의 〈마음의 고향〉(1949)을 소개해야 해서 오늘은 맘 편하게 영화를 볼 생각이다. 매년 영화제에서 영화인 한 명을 선정하여 주는 ‘공로상’을 올해는 ‘뉴저먼 시네마’를 이끌었던 빔 벤더스 감독이 수상할 예정이어서, 그의 신작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2023)와 〈안젤름Anselm 3D〉(2023) 표를 끊었다. 역시 프랑스! 〈<마음의 고향〉을 출품할 때 영어 자막은 필요 없고, 프랑스어 자막으로 DCP를 제작해 달라고 할 때부터 알아보았지만, 국제영화인데도 영화는 당연히 프랑스어 자막으로만 상영되었다. 빔 벤더스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 뤼디거 보글러, 그리고 영화제 홍보대사 (아직도 너무 아름다운!) 이렌느 야콥과 함께 영화를 본 것으로만해도 충분히 마음이 설렜고 야쿠쇼 코지를 큰 스크린에서 보는 것은 더욱더 즐거웠다.

오후에는 다행히 날씨가 개어서, 이 영화제를 주최하는 뤼미에르 연구소Institut Lumiere에서 영화제에 참석한 필름 아카이브 관계자들과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뤼미에르 연구소는 이름처럼 1895년 세계 최초로 영화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뤼미에르 형제’를 기념하여 1982년 설립된 영화 기관이다. 프랑스 영화를 진흥하고 보존하는 곳으로 오랫동안 베르트랑 타베르니에(1941-2021) 감독이 대표로 활동하였고,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티에리 프레모가 관장으로 현재까지 기관을 이끌고 있다. 뤼미에르 형제의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 출구”가 이곳에서 촬영되어, 영화제 후반에 공로상을 받은 감독들이 연구소 앞에서 비슷한 장면을 연출하는 이벤트도 개최된다.

Re>Birth 프로그램 <마음의 고향> 영화사적 의미와 복원과정 발표. © 오성지

10월 19일

영화제 복원 프로그램에서 상영되는 영화 6편을 소개하는 “Re>Birth” 행사에서 〈마음의 고향〉을 소개하기로 되어 있어서, 2시 30분까지 개최 장소로 갔다. 이 행사는 복원 영화를 배급사나 DVD 제작사에 판매하는게 주목적이어서 비영리 기관인 우리 기관과 성격이 맞지는 않았지만, 영화 및 복원 과정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참여하였다. 평소처럼 발제 자료와 복원 전후 비교 영상을 포함한 소개 영상을 만들었는데, ‘아뿔싸!’ 다른 참가자들은 15분 발표 시간 내내 두서없이 그냥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프랑스어로 늘어놓는다. 참가자 중 영어로 발제를 한 팀은 우리와 에스토니아 영화연구소, 역시 프랑스어는 아직도 힘을 가지고 있나 보다! 무언가 내가 프로그램을 잘못 이해했다는 자괴감이 들어 우울했는데, ‘뭐 어쩌랴!’

호텔에서 잠시 쉬다, 시내 소극장에서 저녁 7시 30분에 상영되는 〈마음의 고향〉 소개를 위해 복원팀 동료랑 상영 장소로 갔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극장 담당자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인사한다. 본인의 아내가 한국 사람이라며, 한국어-프랑스어 통역을 구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영어로 영화 소개를 준비해 잠시 당황, 그러나 5분도 안 되어 ‘어! 통역자가 못 온대’, 모든 것이 flexible 한 프랑스? 50석 정도의 극장에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분들이 앉아 있다.

〈마음의 고향〉은 일본에서 영화를 배운 윤용규 감독의 데뷔작으로 감독이 한국전쟁 발발 전 북으로 갔기 때문에 잊혀진 영화였다.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각본으로 어린 스님이 어머님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군더더기가 없고 세련되게 연출된 아름다운 영화라 영화를 사랑하는 프랑스 관객들이 좋아할 거로 생각했다. 오랫동안 소실되었다고 생각한 이 영화는 1993년 퐁피두 센터에서 한국 영화 70주년을 맞이하여 준비된 대규모 회고전 시 영화의 기획자인 이광수가 본인이 프랑스로 이주 시 가지고 온 16밀리 프린트를 자료원에 기증하면서 빛을 본 영화였다. 또 이 영화는 1950년 한불 영화 교류를 위해 선정된 영화이기도 하여 여러모로 프랑스와 연관이 많은 영화라고 관객들에게 소개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시네마테크 스위스 프로그래머가 영화 잘 보았다며 자기네 극장에서 상영하고 싶다고 해서 기쁘게 그러라고 했다.

<마음의 고향> 뤼미에르 연구소 상영 시 소개 (영상자료원 복원팀 남형권 대리와 함께). Re>Birth 프로그램 <마음의 고향> 영화사적 의미와 복원과정 발표. © 오성지

10월 20일

21일 오전 10시 반 비행기로 귀국해야 해서 리옹에서 마지막 날인데, 역시 비가 온다. 오전 9시 30분에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누가 올까나 싶었다. 뤼미에르 연구소의 소극장(40석 규모)에서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극장에 가보니 ‘세상에!’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싶어해 옆 소극장도 열어서 9시 30분, 9시 45분 2회 상영이라고 한다. 물론 극장이 아주 작은 규모였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오전 9시 반에 비가 오는 데 와준 관객들이 너무나 소중했다. 뤼미에르 연구소 프로그래머가 올해 복원 프로그램으로 제출된 영화는 180편이 넘었는데 그중에서 발견된 보석 같은 영화라고 소개해 주었다. 우리는 어제와 비슷한 내용으로 영화를 소개했다.

 

10월 21일

오전 8시에 영화제에서 픽업을 와주어 공항에 데려다주었다. 날이 개어서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윤용규 감독을 생각했다. 영화가 만들어진 지 70년이 넘어 프랑스의 한 도시에서 이 영화가 상영될지 윤용규 감독은 알았을까? 북으로 간 뒤 그곳에서도 영화를 만들었지만 1960년대 문화예술인 숙청 시 사라진 감독, 우리에게 단 한 편의 영화만이 보존되어 있지만 그 작품으로 한국영화사에 걸작을 남긴 감독을 생각했다. 지금은 한국 문화가 전 세계에 알려졌지만 정치적으로 혼란하고 경제적으로 빈곤한 1940년대 예술인들은 프랑스를 어떻게 꿈꾸었을까? 그들이 있어서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언가 울적해졌다.

 

 


오성지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차장.

 

 

 

 

* 《쿨투라》 2023년 11월호(통권 11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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