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회 부산국제영화제 스케치] 14만 관객 BIFF 축제 즐겼다
[28회 부산국제영화제 스케치] 14만 관객 BIFF 축제 즐겼다
  • 손정순 본지 편집인
  • 승인 2023.11.03 16: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아시아를 대표하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10월 4일(수)부터 13일(금)일까지 13일 열흘간의 항해를 마무리했다. 영화제 역사상 초유의 집행위원장 대행 체제로 치러진 올해 영화제는 걱정과 달리 14만여 명의 관객과 7,000여 명의 게스트가 부산을 찾아 영화축제를 즐겼다.

박은빈 배우 단독 사회로 개막식 진행

개막일 파라다이스 호텔에 막 도착했을 때 영화제 게스트들을 보기 위해 늘어선 인파에 놀랐다. 2층에는 넷플릭스 파티가 열리고 있었고, 개막식 참여를 위해 로비로 내려오자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중국 여배우 판빙빙과 마주쳤다. 가슴골 라인을 아찔하게 드러낸 홍매화색 드레스를 입은 판빙빙은 톱스타의 자태를 유감 없이 뽐내며 눈길을 끌었다.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개최된 개막식에는 공동 사회자로 예정되었던 배우 이제훈이 건강상의 사유로 불참하면서 배우 박은빈이 단독사회자로 무대에 올랐다.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의 친근한 이미지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안정적인 진행을 펼쳤다.

개막식의 첫 주인공은 올해 한국영화공로상 수상자인 고 윤정희 배우였다. 그의 마지막 작품 〈시〉를 연출한 이창동 감독이 시상자로 올랐고, 대리 수상한 윤정희 배우의 딸 백진희 바이올리니스트가 헌정곡을 연주했다. 이어 1980-90년대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윤발이 올해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했으며, 우뢰와같은 환호소리가 아직도 식지 않은 영웅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수상 축하 영상에선 배우 유덕화를 비롯한 박찬욱, 이안, 지아장커, 허안화 감독이 수상 축하영상 메지지를 통해 주윤발이 아시아영화계에 미친 영향을 회고했다.

‘올해의 호스트’ 송강호에 이어 주윤발, 뤽 베송, 판빙빙, 고레에다 히로카즈, 하마구치 류스케 등 해외 영화인을 비롯해 수많은 한국 영화인이 자리를 빛냈다.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를 비롯한 269편의 영화 상영
작년보다 관객은 감소했지만, 좌석점유율 높아

장강명 작가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개막작 장건재 감독의 〈한국이 싫어서〉는 직장과 가족, 오랜 연인인 남자친구를 뒤로하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 뉴질랜드로 떠나는 20대 청춘 계나(고아성 분)의 이야기이다.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청춘의 기록연가인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이 던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관객들에게도 던졌으며, 다양한 층들의 반응이 리셉션 장에서도 이어졌다.

개막작을 시작으로 초청작과 커뮤니티비프 상영작60편을 포함한 269편이 영화의전당, CGV센텀시티,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롯데시네마 대영 등 총 4개 극장 25개 스크린에서 공개됐다. 올해 영화제는 예산 감소로 공식 초청 작품 수가 209개로 지난해보다 30여 편 적었고 상영 극장, 스크린도 줄었다. 209편(70개국)의 공식 총 관람객 수는 14만여 명으로 집계돼 지난해보다 2만 명가량 감소했지만 좌석 점유율은 82%로 높아 관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총 209편의 공식 선정작 중 294회차가 매진되었고, 총 14만2432명의 관객이 252회의 GV와 다채로운 행사에 참여했다. 관객들과 감독, 배우가 직접 만나는 야외 무대인사와 오픈 토크 행사 등 280여 차례 이벤트가 열렸고, 유명 국내외 게스트 7천700여 명이 참가해 영화제를 빛냈다.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대행은 “영화제의 본질이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를 통해서 서로 소통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런 본질에 가장 충실한 영화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역대 최대 참가 이룬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올해 18회를 맞은 2023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도 49개국 2,479명이 참가해 지난해에 이어 역대 최다 참가기록을 경신했다. 23개국 271개사가 세일즈 부스 98개를 차려 1,800여 건의 미팅이 이뤄진 것이다. 아시아프로젝트마켓에서는 13개국 30편의 장편극영화 프로젝트가 826건의 미팅을 진행하며, 역대 최대수치를 썼다. 원작 판권 거래 마켓인 부산스토리마켓에서도 50편의 한국과 아시아의 원작 IP가 1,000건의 미팅을 진행했다. 명실공히 아시아 중심 영화 시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다.

〈더 레슬러〉 스틸컷

또 올해 처음 시작한 라이징필름즈 인터내셔널 어워즈에서 김미조 감독이 〈경주기행〉으로 수상해 최대 10억원의 제작비를 지원받게 됐으며, 경쟁부문 최고상인 올해 뉴 커런츠 상에는 방글라데시 이퀴발 초두리 감독의 〈더 레슬러〉와 일본 모리 다츠야 감독의 〈1923년 9월〉이 선정됐다. 배우 고민시와 홍경의 사회로 진행된 폐막식은 개막식 못지 않은 배우들의 화려한 레드카펫 행렬은 폐막의 아쉬움을 달랬다. 홍콩 배우 유덕화 주연의 〈영화의 황제〉 상영을 끝으로 13일간의 부산영화제는 막을 내렸다.

우리 모두의 시네필 시절을 떠올리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부산영화제에서 많은 영화를 보고 여러 GV에 참석했지만 내게 가장 큰 감동을 안겨준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출발점이자 빛나던 순간의 추억을 담은 이혁래 감독의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였다.

노란문 멤버
노란문 멤버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는 90년대 초, 시네필Cinephile들의 공동체였던 ‘노란문 영화 연구소’ 멤버들의 추억을 환기하며 봉준호 감독의 최초 연출작인 〈루킹 포 파라다이스Looking For Paradise〉의 여정을 따라가는 다큐영화다.(〈루킹 포 파라다이스〉는 어둡고 더러운 지하실의 고릴라 인형이 ‘똥 벌레’의 공격을 피해 낙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23분짜리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봉 감독이 스물세 살이던 1992년 말 영화동아리 ‘노란문’에서 첫 시사회를 가졌다.)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는 세대불문 공감과 함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상영 후에는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장이 모더레이터로 나서 이혁래 감독과의 GV를 진행했다. 가득 메운 90년대의 시네필들은 물론 20대 청년 시네필들은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박동소리를 멈출 수 없었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꼭꼭 숨겨뒀던 순수하고 뜨거웠던 영화에 대한 열정이 Q&A 시간에 쏟아졌다. 뭉클한 순간이었다. GV 후에도 이혁래 감독을 따라나와 긴 줄을 서가며 사인을 받는 장관은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애정이 얼마나 깊은가를 다시금 실감케 했다.

2000년대 초부터 유수 국제영화제에서 각광받는 한국 감독들이 쏟아져 나왔고 2020년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했다. “도대체 한국영화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라고 외신들이 물을 때마다 봉준호는 연세대 시절 활동한 영화연구소 ‘노란문’을 언급했다. “우리가 시네필 첫 세대다. 영화 공부하고 감독이 된 시네필Cinephile들이 영화산업에 진출한 최초 사례”라는 것이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등 지금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이 바로 이 시네필이었다. 시네마테크는 이러한 시네필들을 위한 공간이었고 봉감독과 같은 세대로 같은 시대에 대학을 다닌 필자로서는 100% 공감한다.

시네마테크 세대 이전에는 문화원 세대가 있었는데 정성일 영화평론가, 김홍준 감독(현 한국영상자료원장), 정지영 감독 등이다. 이들은 시네마테크를 중심으로 한 관객운동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으며, 지금의 ‘K-무비’를 있게 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이 한편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 《쿨투라》 2023년 11월호(통권 113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