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츠지 요헤이 감독] 삶과 죽음, 그 모호한 안개 한가운데에서
[코츠지 요헤이 감독] 삶과 죽음, 그 모호한 안개 한가운데에서
  • 설재원 에디터
  • 승인 2023.11.17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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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Foggy Paradise(曖昧な楽園)〉의 코츠지 요헤이(小辻陽平)
©AIMAINARAKUEN FILM COMMITT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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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도쿄국제영화제에서는 세 개의 일본영화가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중에 첫 장편영화로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이가 있다. 바로 〈A Foggy Paradise曖昧な楽園〉의 코츠지 요헤이小辻陽平 감독이다.

11월 18일 일본에서 개봉 예정인 〈A Foggy Paradise〉는 인생의 모호함을 다루는 복잡하고 미스터리한 슬로우 시네마이다. 죽음에 대한 타츠야(오크츠 유야 분)와 어머니(야지마 야스미 분)의 이야기와 삶에 대한 쿠라게(리 마사토시 분)와 아메(나이토 하루 분)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코츠지 감독은 일상적 평범함 속의 특별한 순간을 포착해낸다.

특수학교 교사로 일하는 코츠지 요헤이 감독은 이번 작품을 완성하는 데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자신이 작품이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손이 벌벌 떨렸다고 말하는 코츠지 요헤이 감독을 월드 프리미어 직전에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우선 축하드립니다. 첫 장편영화 〈A Foggy Paradise〉로 도쿄국제영화제 경쟁부문을 찾으셨습니다. (웃음) 한두 시간만 있으면 〈A Foggy Paradise〉가 프리미어 상영을 하는데요, 감독님이 새로운 관객에게 감독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독립영화를 만드는 〈A Foggy Paradise〉의 감독 코츠지 요헤이입니다. 제 이전 작품은 〈Room on the Shore〉라는 단편영화였고, 이 작품으로 센다이단편영화제 신인경쟁 부문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A Foggy Paradise〉는 제 첫 장편영화입니다.

〈A Foggy Paradise〉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얼핏보면 두 이야기는 서로 단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작품을 계속 보고 있으면 두 이야기는 서로를 비추는 듯합니다. 이러한 구조를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그리고 이야기의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영화를 구상할 때 두 개의 이야기가 서로 얽혀 있으면 더 풍성해질 것 같았어요. 편집 과정을 마치고 나니 이러한 구조가 영화에 깊이를 더한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니 이러한 구조가 실제 삶과 닮아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대화를 하고 있는 중에도 서로 모르고 지나치는 면이 있어요. 서로 다른 이야기를 엮어 하나의 일관성을 만들려고 하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저는 스토리 중심의 접근 방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작품이 실제 삶을 반영하기를 바랐습니다. 굳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무언가를 만들기 보다는 서로 다른 부분들이 각각이 공존하게요.

©AIMAINARAKUEN FILM COMMITTEE

도쿄를 떠난 후 랜턴이 등장하면서 현실적이었던 이야기가 점점 더 미스터리해지고 환상적으로 변화합니다. 이러한 전환 방식은 아주 자연스러웠고 동시에 마법 같은 느낌을 주어 작품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어요.

네 맞아요. 그래서 그 순간 이후부터 내러티브는 쿠라게가 죽은 노인을 모시고 여행을 떠나는 판타지 이야기로 전환됩니다. 아메는 노인의 유령과 함께 걷죠. 저는 이 둘이 거의 다른 차원에 존재하지만, 서로 교차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확실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인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유령이었군요.

네, 작품 내 어디에서도 명시하지는 않았죠. (웃음)

ⓒToky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oky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작품 전반에 걸쳐 물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합니다. 어머니의 오줌과 아들의 눈물, 비와 고인 물, 노인의 입술을 적시는 것과 화분에 물을 주는 것, 바다와 호수 등 반복되는 물의 이미지가 흥미롭습니다. 또 주인공 중 한 명의 이름이 '비(아메)'이고, 아메가 부르는 노래 가사도 물과 연관되어 있는데요, 이렇게 물 이미지를 강조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전작에서도 물을 모티프로 사용했는데, 그때부터 물이라는 소재에 계속 끌렸습니다. 물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고, 저는 여기에서 여러 다양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작품에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겨두셨어요. 작품에는 수많은 기호가 이미지를 통해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반에는 강에 배를 띄우고, 마지막에는 호수 위에 시체가 떠오르죠. 작품 내에서 배는 등장인물들의 욕망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첫 장면에서 쿠라게와 아메는 각자 마지막으로 배를 탔던 때를 이야기하며 배를 함께 탈 사람이 없는 두 인물의 외로움을 강조합니다.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의 방 한편에는 시원하게 물을 가르며 질주하는 보트가 TV에 나오고 있죠.

영화에서 뭐든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장면이 없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관객들이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습니다. 작품을 보는 누구든 각자의 상상력과 기억에 따라 제 영화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게 모두에게 더 좋은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영화에 대한 해석을 듣고 있으면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영화 속 사운드가 흥미롭습니다. 작품 내에서 완벽하게 스며들어 훌륭하게 '연기'하고 있어요. 배경 음악과 함께 자연적인 소리와 인공적인 소리가 작품의 분위기를 잘 만들어 냈는데 사운드를 디자인할 때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요?

음악에 대한 코멘트를 가끔 받는데 저는 특별히 특정 사운드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아요. 저는 영화 촬영 중에 수음된 모든 사운드가 작품에 포함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관객들이 이 영화가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개막작인 〈퍼펙트 데이즈〉가 떠올랐어요. 두 영화는 분명히 다르지만 모두 도쿄를 독특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영화 제목을 ‘A Foggy Paradise’로 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파라다이스의 의미도 궁금합니다. 작품에 흰 구름과 회색 구름이 언급되는 가사도 있는데 이것도 제목과 관련이 있을까요?

맞아요. 비슷한 곳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저는 제목에 ‘파라다이스’가 들어간 영화를 좋아합니다. 〈시네마 천국〉,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천국의 그림자〉 같은 작품들이요. 여기에 ‘foggy안개 낀’를 붙이면 어떤 정해진 내러티브를 피하면서 모호함이 생겨요. 저는 모호하고 불분명한 장면을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그래서 제목을 ‘A Foggy Paradise’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저 가사는 제가 딸과 함께 놀던 게임에서 가져왔어요. 색을 찾는 게임인데 이를 테면 “노란색 표지판을 찾았어!”라고 말하는 식이었죠. 그래서 그 게임을 가져와 배우들에게 게임 규칙에 따라 즉흥적으로 연기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AIMAINARAKUEN FILM COMMITTEE

첫 장편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러닝타임(168분)이 짧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그렇게 길게 느껴지진 않았고 2시간 정도 영화처럼 느껴졌어요. 그래도 첫 작품을 이렇게 러닝타임이 긴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꽤나 과감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를 오래 찍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긴 영화를 만드는 게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를 오랜 기간을 두고 촬영하는 편이고, 배우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는 건 즐거웠어요. 그런데 예산 문제는 있었습니다. 영화 전체에 100만 엔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었는데 제가 너무 계획없이 촬영하다 보니 절반쯤 찍었을 때 돈이 다 떨어졌어요. 그래서 문화청에 AFF라는 보조금을 신청했고, 250만 엔을 더 지원받아 간신히 촬영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시간이 거의 다 끝났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마지막으로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아메 역의 배우 나이토 하루가 앞으로 한국과도 협업 하기를 바라며 하루 배우에 대해 한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감독의 입장에서 하루 배우는 제게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진 배우였어요. 촬영장에서는 저와 디테일한 부분을 조율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깨닫게 해줄 정도로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촬영 전에는 작품을 똑똑하게 이해했고, 촬영에 들어가서는 매끄러운 감정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그게 하루 배우의 탁월한 재능인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친 후 처음으로 관객을 맞으러 가는 그의 표정에는 설렘과 긴장이 모두 보였다. 관객과 함께 이야기를 ‘공동 창작’하고 싶다는 감독의 바람처럼 극장을 찾은 관객 모두가 안개 자욱한 곳에서 각자의 삶을 마주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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